한글 지키기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22) “조선말로는 美文을 쓸 수가 없다”는 편견을 뒤집을 결심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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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글 지키기


1934년 9월호 잡지 신동아(新東亞)에 한글학자 최현배(崔鉉培)가 기고한 글이 실려 있었다. 한글을 사랑하는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조선어학회를 만들어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걸 만든 한글학자들에게 재정적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들이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아니라고 하면서 조선인들의 반응이 냉랭한 걸 섭섭해 하고 있었다. 각급 학교에서 조선어시간이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어렵다는 소리가 나오고 일반인들까지 그런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최현배는 그런 현실에 대해 이렇게 글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고 있었다.


<훌륭한 한자(漢字)를 놔두고 한글을 연구한다는 자체가 점잖은 학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비웃음을 받았다. 한글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게 일없는 사람의 괴벽(怪癖)스러운 짓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한글 교과서가 편찬되어 전(全) 조선의 아이들이 한글을 배운 지가 오년이 넘었다. 한글로 된 신문잡지가 전(全) 조선의 집들마다 들어가고 있다. 이런 일들은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들의 결과다. 그러나 이번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어렵다는 소리가 학생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건 한글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하고 교육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배우는 영어와 비교해 보자. 중학교 오년 동안 영어수업은 매주 열 시간이다. 여기에 다시 그 예습 복습에 허비된 시간을 따지면 중학교 오년 동안 영어에 바친 시간은 실로 막대하다. 그러면서도 막상 중학 졸업장을 받아들고도 회화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신문 한 장 읽지 못한다. 전문학교에 진학해 삼 년 동안 열심히 영어를 더 공부해도 영어편지 한 장 쓰지 못하고 회화(會話)는 꿈도 못 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영어가 어렵다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옛날에는 오륙 세 때부터 천자문을 시작해서 백발이 될 때까지 한문을 전공했지만 명문장(名文章)이 되거나 큰 시인이 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한문이 어렵다고 불평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뭘까? 어려운 한문 습득에 부귀와 영화가 달렸기 때문이다. 평생을 한문 학습에 허비한 선조들의 어리석음을 원망하는 오늘의 조선 청년들이 저렇게 어려운 영어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 역시 따지고 보면 옛날사람과 마찬가지 심리다. 영어를 배워야 상급학교에 갈 수 있고 취직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글이 어렵다고 말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한문이나 영어에서 기대하던 것 같은 좋은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한글은 아무리 잘 배워야 상급학교 진학에도 소용없고 취직에도 소용이 없다. 권세(權勢)와 영달(榮達)이 오지 않는 것이다. 아무 이익이 없으니까 그걸 배워보겠다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있다. 바다를 건너온 일본 순사와 교원들은 열심히 한글 공부를 한다. 일본정부에서 주는 조선어 장려금을 받기 위해서다. 조선어도 그걸 잘못하면 보통학교 교원이 될 수 없다든지 상급학교 입시에 넣으면 조선어를 어렵다고 할 사람은 하나도 없어질 것이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옛날부터 남의 문자인 한자를 배우기에만 급급해서 배울 것은 남의 말과 글이요 제 민족의 말은 천부적(天賦的)으로 다 아는 거니까 특별히 힘써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한자 사전은 있지만 제 말인 조선말 사전은 만들려고 꿈도 꾸지 않았다. 반만년 문화민족으로 오늘까지 자기 손으로 만든 사전 한 권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민족적 수치인지도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조선말로 지명을 쓰거나 이름을 짓는 걸 싫어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보다 부친(父親)이, 구리개보다 동현(銅峴)으로, 진고개보다 이현(梨峴)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모처럼 조선말로 부르던 걸 구태여 한자(漢字)로 바꾸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사대주의적 노예근성을 벗어나지 못한 실로 탄식할 만한 일이다. 조선사회에서는 무엇이든지 되어 가는 일에는 반대가 잘 일어난다. 한글운동의 창시자 주시경(周時經) 선생의 학설을 무조건적으로 공격하고 한글 맞춤법을 턱없이 비난하면서 자신의 학문적 지위와 명성을 높이 세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총독부의 철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는데도 보통학교에서 조선어가 경시되고 있다. 교원들이 그 지식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글 습득이 어렵다고만 한다.

우리 집 아이가 새로운 한글을 습득하는 걸 지켜봤다. 금년에 여덟 살이고 봄에 보통학교 입학인데 백일해에 걸려 두 달이나 결석을 했다. 이 아이의 현재의 독서력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소득이다. 가정에서도 결코 이 애를 조직적으로 조선 글을 가르친 것은 아니다. 다만 아침저녁으로 들어오는 신문지에 크게 적힌 약 광고 같은 데서 한 자(字) 두 자씩 그 형제에게 물어서 배우고 차차 쉬운 말을 붙여 읽고 또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첫째 권을 읽고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문 잡지의 쉬운 이야기 같은 것을 읽게 됐다. 한글 가운데 여러 가지 새 받침이 있는데도 아이는 서슴지 않고 내리 읽어 버린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한글을 어렵다고 말하는 심리를 생각해 봤다. 돈도 지위도 이름도 생기지 않으니까 배워서 뭐하냐는 심리다. 영어 같은 것은 밤낮 고심하면서도 어렵다고 하지 않고 한글은 아예 어렵다고 배척한다. 조선말은 도저히 훌륭한 학문의 술어가 될 만한 품위가 없다고 혐오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태도다. 조선말 그까짓 것이야 내가 다 아는데 하는 생각이 있다. 다른 나라 말은 철자법이 조금만 틀려도 자기의 학자적 체면에 손상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한글은 되는 대로 써도 조금도 체면에 상관이 없는 것으로 여긴다. 한글에 대해서는 근본부터 반대를 하는 심리들이 있다.>


한글로 소설을 쓰는 작가에 대한 사회적 대접은 얼어붙을 듯 차가왔다.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실어주는 것만 해도 특혜로 알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약속한 원고료도 주지 않는 곳이 많았다. 글 쓰는 사람들은 늘어가고 발표기관은 적은 상황에서 원고료는 점차 내려갔다. 동아일보(東亞日報)도 형편이 안 좋은지 200자 1매에 50전이던 원고료가 8매에 1원으로 떨어졌다. 작가 한 사람 앞에 다섯 페이지 이내로 지면을 제한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신문사 직원들도 문인(文人)들을 천대했다. 원고를 사들이는 데도 주주총회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김동인(金東仁)은 조선어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주요한(朱耀翰)의 시(詩) ‘불놀이’에서 사용된 조선어는 영구히 기념할 만한 것이었다. 한문식 문장을 순수한 한글로 바꾸었다. 소설에 순수한 우리말의 대화체를 도입했다. 한자(漢字)도 우리말로 고칠 수 있으면 전부 고쳤다. 사람들은 한자로 쓰면 높게 보고 순우리말로 쓰면 무시했다. 소변(小便)이라고 쓰면 옳게 보고 오줌이라 쓰면 더럽게 봤다. 그런 그릇된 관념을 깨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투리도 쓸 만한 말은 모두 추려서 사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말로는 미문(美文)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그걸 뒤집을 결심이었다.


(계속)

[ 2018-02-16, 11: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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