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기생으로 환생한 논개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23) 문학적 암시를 활용한 민족사상 배양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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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논개(論介)의 환생


김동인(金東仁)은 조선의 척박한 영혼 속에 민족의식의 씨를 뿌리자는 마음이 들었다. 좁은 방 안에는 각종 역사책이 가득 쌓여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일본서기(日本書紀)는 하도 많이 읽어 도가 통해 있었다. 그는 역사뿐만 아니라 기독교, 불교 등 종교에 대해서도 엄청난 독서를 했다. 낮이면 책을 읽고 한밤중이면 일어나 작품을 썼다. 김동인은 조선의 정체성을 형상화하고 싶었다. 1930년대 기생으로 환생한 논개를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구상이 떠올랐다. 그의 머릿속 드넓은 상상의 공간에서 캐릭터들이 나타나 서로 얽히면서 원고지 위에 이야기가 안개같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진주성이 왜병(倭兵)에게 함락될 때였다. 기생(妓生) 논개(論介)는 그녀를 사랑하는 진주목사(牧使) 서원례를 향해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싸우고 또 싸워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소서. 소첩(小妾)도 또한 나라를 위해 결코 목숨을 아끼지 않으리다. 나라를 위해서 바친 두 개의 혼이 가까운 장래에 저승에서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면서 소첩은 떠납니다.’

진주성은 불탔다. 논개는 새빨갛게 불붙는 진주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안의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왜병에게 도살을 당했다. 성 안의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거두지 못한 시신들이 모두 한줌의 재로 변했다. 그녀를 낳아 길러주던 부모, 동생, 사랑하는 남자가 모두 죽었다. 논개는 원수인 왜장과 왜병이 미웠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일본병사들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얼마 후 화려한 옷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바른 논개가 적진(敵陣) 근처에 나타났다. 그녀의 뛰어난 미모는 단번에 일본의 장수들을 뇌살시켰다. 논개는 촉석루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전승(戰勝) 축하연에 참석했다. 술이 어지간히 돌았다. 여름날 낮이었다. 아래로 흐르는 강의 물소리가 찰락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논개는 물가 바위로 내려갔다. 물이 바위에서 철썩거리며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뒤로 연기가 아직도 솟아오르는 진주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논개야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갑자기 사랑하던 진주목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논개는 깜짝 놀랐다. 뒤로 인기척이 들렸다. 일본군 사령관 가토 기요마사의 심복인 장수가 다가왔다. 논개는 생긋 찬웃음을 웃으면서 장수의 목을 휘감았다. 술 냄새가 짙게 풍겼다. 일본군 장수의 구레나룻이 뺨에 느껴졌다. 논개는 그 순간 일본장수의 목을 끌어안고 바위 위에서 사라졌다. 바위 아래 흐르던 강물에는 커다란 파문 하나가 생겨 차차 넓어져 갔다.

*

명계(冥界)는 빛이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어둡지도 않았다. 미약한 푸른빛이 명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많은 유령들이 흐느적거리며 헤매고 있었다. 논개도 그중 하나였다.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지향 없이 300년이 흐른 어느 날 그녀의 혼(魂)은 1930년대 조선 땅 위를 날고 있었다. 논개의 혼이 갈 곳은 어제 죽은 패연이란 기생의 시체였다. 패연이는 가야금에 능하고 가무(歌舞), 서화(書畫)가 다 능했다. 일본말도 잘하고 일본소리도 잘했다. 논개의 혼은 경성 다방골의 한 집에서 다시 환생(還生)하게 됐다. 나이는 스물하나 키는 후리후리하고 흰 살결과 광채 나는 커다란 두 눈을 가진 여인이 됐다. 논개는 패연이가 됐다. 이상한 건 한 몸 안에 두 개의 여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는 논개이고 다른 하나는 패연이었다.

논개는 시계(時計)라는 오묘한 기계, 행랑아범의 이빨에까지 붙은 황금, 양복, 변한 풍속과 제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성기라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다. 거리에는 일본 사람과 청나라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오후가 되면 그녀의 영혼은 패연이가 됐다. 아무 것도 신기할 게 없었다. 경성 화류계에서 패연이의 이름은 높았다. 풍부한 성량으로 육자배기도 잘 뽑고 샤미센도 웬만큼 했다. 패연이는 놀랄 만큼 잘 팔렸다. 점심 때가 되면 인력거꾼이 패연이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자정이 지나서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논개는 패연이의 몸을 통해 장안의 남자들을 보았다. 나팔바지, 칠피구두, 도금 시곗줄, 양(洋)안경을 쓴 모던보이들이 종로거리에 넘쳤다. 그걸 본 패연 속 논개는 가슴이 아팠다. 세상은 타락해 있었다. 반반한 얼굴에 크림이나 칠하고 머리는 참기름으로 광을 낸 이십대 조선 청년들, 유행가를 흥얼대며 말을 할 때는 일본어만 씨불이는 남자들, 세상은 죽어 있었다. 세상은 돈이 지배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미츠코시 백화점으로 가보았다. 향기롭기보다 역한 냄새였다. 근대적 장식, 온갖 신기한 물건, 눈을 현혹하게 하는 장신구들이 있었다. 패연으로 변한 논개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백화점은 기모노나 훈도시를 찬 일본인들이 가득했다. 보석점 앞으로 갔다. 다이아몬드 하나에 370원이라고 했다. 패연의 속에 잠재해 있는 것 같았던 논개가 점점 전면에 나서게 됐다. 손님방에 유흥을 돋우기 위해 간 패연이의 영혼에는 어느덧 300년 전에 죽은 논개가 들어앉았다. 주석(酒席)에서 취흥이 돋아 손님들이 노래를 한 마디 하라고 할 때 논개는 300년 전의 시조 한 마디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진주 기생 논개에게서 모두 듣고 싶어 하던 조선시조 한 가락이었다.
“아유 듣기 싫어. 상갓집 간 것 같다. 왜 그래?”
“집어치워라.”

조선의 시조를 중단당한 논개는 울분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럼 일본 노래를 불러요?”
논개가 손님에게 물었다.
“그래 최신 곡으로 해라, 사케와 나미다카 다메이키가.”
손님은 모두 혼을 잃어버린 조선인들이었다. 그걸 보고 패연으로 변한 논개는 분개했다. 다음날부터 패연이는 점점 논개가 되었다. 논개를 패연이화하려고 아무리 애썼지만 되지 않았다. 수시로 충돌하는 두 개의 인격 때문에 발광(發狂)이 왔다.

*

김동인은 원고를 써서 잡지사 동광(東光)에 보냈다. 작가로서는 잡지가 조금 더 여유 있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잡지에 보내는 작품은 훨씬 더 공을 들였다.
1931년 잡지 월간 신동아(新東亞)가 창간됐다. 조선일보(朝鮮日報) 기자 출신인 김동환(金東煥)이 잡지 삼천리(三千里)를 발행했다. 김동환은 감성이 풍부한 시인이기도 했다. 김동환은 출입처에서 받은 얼마 안 되는 촌지를 가지고 빈대 투성이 하숙방을 잡지사로 삼아 삼천리를 냈다. 삼천리에 실리는 글은 원고료도 없었다. 김동환은 공짜로 얻은 원고와 혼자서 취재한 폭로기사 등을 자료로 잡지를 꾸려갔다.

김동환은 신문사를 그만두고 잡지에 전력을 기울였다. 당시만 해도 시를 발표할 매체가 거의 없었다. 때때로 창작욕이 터진 우수한 작품들이 저절로 잡지 삼천리로 흘러들기도 했다. 삼천리가 조선문학의 명맥을 잇는 역할을 했다. 신동아는 주로 도시인에게, 삼천리는 시골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김동인은 문학상 암시를 활용해서 민족사상을 글 속에 스며들게 했다. 총독부 검열관이 소설 연재를 중단하라고 했다. 검열관은 이렇게 평가했다.

‘이 글은 다 읽고 가만히 생각하면 은연 중 불온한 사상이 숨어 있다.’
작가 김동인은 작품을 미완(未完)으로 끝내면서 이렇게 독자들에게 알렸다.
“논개를 1932년 경성에 환생시켜 지금 조선의 정경을 보고 비판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붓을 꺾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의 조선에서는 도저히 활자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안의 내용을 말조차 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언젠가 쓸 기회가 있기를 기다리면서 이 사죄의 붓을 놓습니다.”

당시 평론가였던 백철(白鐵)은 좌익계열의 맹장(猛將)이었다. 그는 1932년 11월호 잡지 신동아(新東亞)에서 ‘창작계 총평’이라는 제목으로 이광수(李光洙)와 김동인(金東仁)을 이렇게 평가했다.

<금년에 잡지 삼천리의 4월호에 발표한 이광수 씨의 글에 대해 본다. 그건 소설이라기보다 스물세 개의 잡문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평가하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이광수의 작품은 소설로서의 모든 기본요건을 결여하고 있다. 산만하고 질서가 없고 내용도 없다. 다섯 살짜리가 해수욕장에서 본 설익은 생각을 나열한 것 같은 작품이다. 이광수는 민족부르주아지 문학의 대표작가다. 그리고 곳곳에서 민족주의 사상을 선전하며 훈계하고 있는 민족 운동가이다. 지금 조선의 현실은 심화되고 있는 경제 공황 속에 있다. 실업자가 홍수같이 쏟아져 나오고 농민들은 굶어죽고 있다. 이런 민중을 이광수는 외면하고 감상적인 작품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광수 씨의 작품에 한하지 않고 부르주아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어서 백철은 김동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 씨의 작품을 읽고 첫째로 느껴지는 것은 금년에는 작가로서 김동인 씨의 의식에 확연히 새로운 의식이 생겼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김 씨는 지금까지의 예술적 입장을 버리고 새로 민족주의 작가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김동인 씨는 작품 ‘붉은산’ 에서 만주 조선농민의 생활 즉 중국지주와 조선의 농민의 대립을 그리는 데서 아무리 사나운 사람이라도 민족의식을 발휘할 때에는 귀한 희생이라는 것을 대변하고 절명하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고국의 붉은산과 백의(白衣)를 그리워하게 했다. 그는 작품 ‘논개의 환생’에서 의기 논개를 통해 조선민족적 정의감을 그리려고 했다. 그리고 작품 ‘잡초’와 ‘적막한 황혼’에서도 민족의식을 그리고 있다. 예술파에 속하던 김동인은 이제 민족주의 작가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동인 씨가 진정한 계급적 입장에 서게 됐다면 나의 주목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술적 입장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가 민족주의 작가가 됐더라도 나는 호의를 가질 수 없다. 그는 작품에서 계급적 의식에 눈을 뜬 빈농(貧農)계급을 그리지는 못하고 있다.>

백철은 좌파성향의 비평가로서 부르주아 문학가들을 혹독하게 비평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문단이 침체한 시기에 <개벽(開闢)>을 터전으로 좌경문학은 “낡은 문학과 낡은 사상은 모두 사회에서 청산했다”고 하면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계속)

[ 2018-02-17, 15: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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