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야담(月刊野談)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26)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잡지 만들다 졸도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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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야담(月刊野談)


1935년경 윤백남(尹白南)이 ‘월간야담(月刊野談)’이라는 잡지를 시작했다. 윤백남은 글 쓰는 재주가 비상해서 동아일보의 강연란(講演欄)을 맡고 있었다. 사장 송진우(宋鎭禹)의 부인이 그의 애독자였다. 윤백남은 역사에 관한 원고뭉치를 하나 건네주면서 그 이야기에 따라서 매달 원고지 백 매 분량의 단편소설을 써서 보내달라고 했다. 김동인(金東仁)이 2회 정도 원고를 보냈을 때였다. 윤백남이 잡지발행을 중단하고 만주로 가버렸다. 월간야담(月刊野談)은 초창기인데도 판매부수가 짭짤했다. 별로 오락거리가 없던 그 시절 일반 독자들은 쉽고 재미있는 그런 잡지를 좋아했다.

김동인은 그 자신도 잡지를 하나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달 쓰는 원고량을 합치면 거의 잡지 한 권 분량이 되기 때문이었다. 김동인은 잡지의 경영 상태를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제법 이익이 남는 것 같았다.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약간의 돈을 구해 잡지 창간비용을 마련했다. 그는 ‘야담(野談)’이라는 제목의 잡지를 창간했다.

잡지를 만들면서 그는 변하는 세상을 보았다. 국제적으로 독일은 힌덴부르크 대통령에 이어 히틀러가 재상(宰相)에서 총통으로 됐다. 국무대신들은 국회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총통에 대해서만 충성을 서약하면 되는 체제였다. 일본의 만주침략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논평이 국내 잡지 신동아(新東亞)에 소개되기도 했다. 논평은 일본의 행동이 미국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지(紙)는 유럽제국이 침묵으로 있을 때 일본이 영토침략의 죄를 범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외교의 방향을 바꾸어 소련을 승인을 하면서 소련, 중국, 미국이 일본을 포위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만주와 몽고는 일본의 생명선이었다. 일본의 인구문제와 식량문제 공업원료문제 연료문제를 만주와 몽고에 의존하는 정책방침이었다. 만주의 석유문제를 놓고 미국, 영국, 네덜란드가 일본에 항의했다.

국내적으로는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해지고 있었다. 힘들게 학교를 졸업해도 집에서 룸펜이 되어 낮잠만 자는 청년들이 많았다. 많은 청년들이 겉멋이 들어 마르크스 레닌의 팸플릿 하나만 읽고 사상가인 체 하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시한 소설 하나 시 한 편을 써서 값싼 조선 문단에 내놓고 일류문사인 척하기도 했다. 울릉도의 설해(雪害)와 삼남지방에 대홍수가 났었다. 전답을 잃은 이재민이 만주로 유랑길을 떠나고 있었다. 일본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고 새로 탄생하는 부자들도 있었다.

1935년경 경성비행장에서는 일본 본토의 해군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해 신예 전투기 여섯 대가 축하비행을 하는 화려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조선인 사업가가 기부한 비행기의 명명식(命名式)이었다. 육군과 해군에 비행기를 헌납한 주인공은 조선인 기업가 문명기(文明埼)였다. 언론은 조선인의 비행기 헌납을 대서특필하고 문명기란 조선인 사업가는 전국적인 사회명사가 됐다.

문명기는 어떤 인물인가. 그의 성공담은 그 이전 1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경북 영덕의 읍내에 있는 경찰서장의 관사에 아침마다 팔뚝만한 삼치 한 마리가 떨어져 있곤 했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식모가 그 사실을 서장에게 얘기했다. 서장은 아침마다 싱싱한 삼치를 주고 가는 그 주인공을 찾아보라고 했다. 식모는 다음날 아침에도 역시 담 너머 삼치를 던지는 남자를 보고 그를 불러 세웠다.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일본인 경찰서장이 나왔다. 그의 앞에는 지게에 삼치를 담아 팔러 다니는 생선장사가 서 있었다. 아직 이십대 중반의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바닷바람에 그을은 검은 피부가 마치 마른 가죽 같았다.

“왜 아침마다 우리 집에 생선을 놓고 갑니까?”
서장이 물었다. 생선장사는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서장님께서 우리 읍의 치안을 잘 유지해 주시니 덕택에 저 같은 사람도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달리 보답할 길은 없고 해서 제가 파는 생선이나마 드려서 아침밥상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서장이 그 말에 감동했다.
“보아하니 내가 도움을 받을 처지만은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내가 도와줄 일은 없소?”
“특별한 부탁은 없습니다만…”
그가 주저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밑천이 달려 물건을 많이 받아올 수가 없어서 겨우 지게꾼 행상을 하는 게…”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면 내가 생선 도매상에 소개장을 하나 써 주겠소.”

당시만 경찰서장의 소개장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명기는 생선장사로 돈을 벌었다. 영덕 일대의 풍부한 종이원료를 감안한 그는 서장을 배경으로 제지업을 시작했다. 일본인 관리들이 집중적으로 도와주는 사업은 번창했다. 그는 도계에 있던 금광에 손을 대서 일확천금을 얻었다. 그는 삼치 대신 비행기를 일본제국에 던져 보았다. 그는 영덕 국방회의 의장이 됐다. 그는 뼛속까지 일본화한 인물이었다. 집안에 일본의 개국신(開國神)을 모시는 감실(龕室)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절을 했다. 집안 장이나 의복, 언어는 물론이고 생활방식까지도 전부 일본식으로 개조한 일본인이었다.
 
화신백화점을 운영하는 32세의 청년부자 박흥식(朴興植)도 시대의 화제인 인물이었다. 시골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라는 걸 타보기 위해 경성으로 오면 화신백화점으로 몰려들었다. 유리창이 번쩍이는 르네상스 양식의 화신백화점 건물은 250명의 점원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일층의 문간에는 유럽의 무사복장을 한 아이가 ‘어서옵쇼’를 연발하고 파란 제복에 앞치마를 입은 웨이트리스들이 손님을 맞이했다. 일층의 진열장은 봄철에는 비단옷감을 죽 늘어놓기도 하고 여름에는 수영복에 여행기구들이 즐비하다. 지나가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의 입이 그걸 보고 딱 벌어진다. 백화점에서 수시로 경품 행사를 했다. 금시계나 옷 정도가 아니었다. 성북동에 별장 한 채를 지어주는 것이었다.

박흥식은 영국, 독일, 불란서, 스위스, 핀란드, 캐나다, 미국 등 8개국에서 종이류와 잡화를 수입하고 있었다. 그가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신문인쇄지는 동양의 독점판매권을 가지고 청도나 천진, 남경 등 중국 각지까지 배급하고 있었다. 일본의 자본주의가 만든 조선인 기업가였다.

만주침략에 따른 전쟁 특수(特需)로 경성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외국영화들이 수입되어 대중에 선보였다. ‘아메리카의 비극’과 게리 쿠퍼 주연의 ‘모로코’가 상영되고 있었다. 불란서에서 ‘파리의 지붕 밑’이 들어와 흥행되고 ‘지킬박사와 하이드’도 인기를 얻고 있었다. 조선영화로는 ‘방아타령’, ‘개화당이문’이 상영되고 이규환(李圭煥) 감독이 만든 ‘임자 없는 나룻배’는 과거 나운규(羅雲奎) 식의 모션을 어느 정도 없앴고 촬영에서도 특출한 재주가 나타났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영화관 황금좌에서 이광수(李光洙)의 무정(無情)이 영화로 상영되고 있었다. 박기채 감독은 주인공으로 당대의 주연급 여배우인 문예봉과 한은진이 맡았다. 신문소설을 읽었던 팬들이 밀물처럼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흥행은 대성공이었다. 사람들은 영화관을 나서며 모두 한마디씩 했다.
“한은진의 눈물연기가 일품이고 문예봉의 미모가 영화를 살렸어. 문예봉은 조선 최고의 미인이야.”
김동인은 그 영화를 보고 신문에 영화평을 했다. 짧은 영화가 소설의 깊은 맛을 잃고 있다고.

잡지 月刊야담(野談)이 16호를 넘어 17호까지 이르렀다. 경성의 물가는 비쌌다. 셋째 딸 연환이도 세상에 나왔다. 잡지는 매월 9000부가 나갔다. 팔리는 숫자로 따져 보자면 수지는 맞았다. 그러나 매호 새로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다음 호의 간행이 불가능했다. 겉으로는 남는데 사실상 손에 들어오는 돈은 별로 없었다. 1937년 3월경 월간야담을 만들다가 졸도했다. 극도의 신경쇠약이었다. 그는 잡지를 17회를 발행하고는 그가 아는 진남포 사람에게 인계했다. 형이 평안남도의 영원에서 탄광을 하고 있었다. 김동인은 휴양을 할 겸 그 탄광촌으로 갔다. 탄광촌이지만 산이 깊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계속)


[ 2018-02-21, 16: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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