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후 인민재판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37) “친일척결이라는 여론의 급류에 편승해서 김동인이란 사람의 극히 짧은 순간의 글 몇 편으로 친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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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60년 후 인민재판

2010년 4월16일 오후 3시40분. 나는 황사바람이 빌딩 골짜기들을 맴돌고 있는 서초동 언덕의 행정법원을 향하고 있었다. 60년이 흐른 후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는 죽은 김동인을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처분을 내렸다. 그에 대한 행정소송의 첫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그의 영혼은 죽은 지 60년 만에 난데없이 저승에서 끌려 올라와 나와 함께 법원으로 가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아들 김광명(金光明) 박사도 유전인지 몸이 자유롭지 못했다. 노인이 된 그의 딸도 아버지의 영혼재판을 보고 싶지 않아 했다. 나는 행정법원 201호 법정 앞에 도착했다. 벽에 김동인의 이름이 인쇄된 재판진행표가 붙어 있었다. 하얀 종이 속의 그의 이름은 마치 인민재판 석상에 혼자 무릎 꿇린 그의 모습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의 영혼에게 물었다.
‘그 시절 대원군을 민족의 메시아로 만들어 전 민족을 흥분시키시더니 이제 해방된 나라에서 뒤늦게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셨습니다. 느낌이 어떠십니까?’
‘……’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갔다. 방청석이 텅 빈 썰렁한 법정이었다. 방청석 맨 앞줄에 남자 세 명이 보였다. 정부 측에서 나온 소송 수행자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낯이 익었다. 위원회에서 조사팀장으로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대머리에 불그스름한 혈색을 가진 온순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는 역사학자라고 했다. 그 옆에는 공무원풍의 딱딱한 표정을 한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법정 왼편의 변호사 대기석에 가서 앉았다. 시간이 되자 재판장이 배석판사들과 법정으로 들어와 앉았다. 재판장은 두꺼비 같아 보이는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두툼한 안경알 뒤로 눈꼬리가 약간 처지고 짙은 눈썹이 보였다.  

“나오시죠.”
재판장이 나와 정부 측 소송수행자를 보면서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원고석에 가서 섰다. 정부 측 소송수행자 세 명이 피고석에 나란히 섰다. 그들은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이었다. 재판장이 그들 세 명과 익숙한 듯 이렇게 말했다.
“아까 재판을 하고 어디 갔다 오신 겁니까?”
“예, 점심을 먹고 차 한 잔 마시고 왔습니다.”
그중 대표 격인 남자가 말했다. 친근한 사이인 것 같았다.

“김동인의 친일 반민족행위사건의 핵심은 뭡니까?”
재판장이 정부 측 소송수행자에게 물었다.
“간략하게 압축하면 김동인이 1941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백마강’과 그 이후 신문에 쓴 칼럼들이죠. 그 글들을 통해 일제의 침략전쟁과 대동아경영권을 선전 선동했다는 겁니다. 황군위문사절로 화북 지방을 다녀와 문필보국을 적극 주도하고 1944년 매일신보에 산문을 통해 학병, 징병을 선동했습니다. 그래서 2009년 7월10일 위원회는 작가 김동인의 행동들을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했습니다.”

“변호인 측 의견은 어떻습니까?”
재판장이 이번에는 나를 보며 말했다.
“친일척결이라는 여론의 급류에 편승해서 김동인이란 사람의 극히 짧은 순간의 글 몇 편으로 친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적 현실과 가난한 전업(專業)작가로서 김동인이 겪은 극심한 고통이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일률적이고 기계적인 기준에 의해 그의 영혼을 단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를 친일로 낙인찍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살던 시대와 그가 처했던 입장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마주쳤던 삶의 위기와 선택을 그 시대의 시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재판장이 정부 측 소송 관계자 쪽을 보면서 물었다.
“‘백마강’이란 소설은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친일이라고 생각합니까?”
“소설의 곳곳에 백제인과 일본인이 형제처럼 혹은 한민족처럼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부여는 삼국시대 일본과 무역이나 외교가 이루어지던 한반도 내의 일본인 거주지역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일제는 백제와 일본의 교류를 강조했고 조선총독부는 부여를 일본과 조선이 원래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내선일체 사상의 교두보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김동인의 소설 ‘백마강’은 이런 움직임에 부응하는 작품입니다.
또 다른 친일소설 ‘아부용’은 아편전쟁을 다룬 소설입니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침략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썼다고 알려졌는데 미국과 태평양전쟁에 돌입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특징을 침략국 서양과 그에 저항하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아편전쟁을 다룬 글은 일본의 전쟁논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본 겁니다.
또 다른 친일소설 ‘성암의 길’은 일본시인 야나가와 세이강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일본의 근대를 이끈 인물 야나가와 세이강처럼 우리도 시대의 변혁기에 민첩하게 부응해야 한다는 취지가 보여 친일소설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외 몇 편의 칼럼이 있죠.”

재판장이 이번에는 나를 보고 이렇게 권유했다. 
“어떻습니까? 이 사건 위원회에서 지적한 일제시대 발표한 김동인의 글만 보고 법원에서 친일 반민족행위여부를 판단하면 안 되겠습니까?”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를 보면 범죄행위를 하고 작곡을 하는 주인공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또 ‘광화사’를 보면 살인의 순간 그림이 완성되는 대목도 있습니다.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작품입니다. 그런 작품의 일면만을 보고 김동인을 반사회적 범죄적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묻고 싶습니다. 또 재판장님은 소설의 한 페이지만 보고 그 소설을 비평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피카소의 그림 한 귀퉁이만 잘라가지고 그 작품 전체를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소설의 한 페이지는 그 전체와의 연관성을 통해서라야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림도 전체를 봐야 그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쓴 작품들도 그의 삶의 전체의 맥락과 다양한 시각의 예술적 차원에서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법적·정치적 판단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변호사인 저는 김동인의 죽은 영혼을 단죄하는 위원회의 결정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그것은 김동인뿐 아니라 후손을 모멸하는 비열한 행위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정부 측 소송관계자가 맞받아쳤다.
“김동인이 쓴 칼럼만 봐도 친일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더 심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글 자체가 확실한 증거로 있는데 논쟁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그의 말에 나는 다시 이렇게 반박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저는 재판을 할 때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합니다. 존경한다는 말을 하지만 사실 존경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변호사로 먹고살기 위해 재판정에서 수식어로 사용합니다. 일제시대 ‘천황폐하’라고 하면서 그 정책에 동조한 김동인의 내면도 그런 비슷한 요소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는 3·1운동의 격문을 써서 감옥에 갔던 사람입니다. 천황모독죄로 또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가 일제 말 전쟁기에 정책에 동조하는 글을 썼다면 왜 그랬는지 그 앞뒤 정황과 내면을 살펴봐야 하는 게 이 재판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법은 친일반민족행위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일 때에만 친일반민족행위로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그런 글을 썼는지 왜 황군위문단의 일원이 되어 갔는지 알아보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은 한국문학의 선구자입니다. 그분에 대한 이 재판은 한국문학을 재단하는 것이고 법정에 올려진 역사입니다. 이 재판의 결과에 따라 공산주의 문학과 대치되어 온 순수 한국문학이 얼룩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담당변호사로서는 현재 김동인의 전집 20권을 구해서 분석하고 그 외 여러 논문이나 평론도 살피고 있습니다. 이 재판의 변론을 위해서는 아직도 공부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재판은 졸속으로 끝나서는 절대 안 됩니다.”

“김동인이 평생 쓴 작품을 다 읽고 계시다구요? 작품 중 문제된 것만 판단하지 않고 전체를 보고 분석하시겠다는 이유가 뭡니까?”
재판장이 놀라는 눈초리로 내게 물었다. 그걸 번거롭게 왜 다 읽느냐는 표정이었다.

“김동인은 탐미주의 입장에서 순수문학을 추구했습니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본질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가 추구하는 ‘미(美)’가 어떤 것인지도 단순한 법률가의 시각이 아니라 예술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김동인의 경우 글로 밥을 먹고 사는 전업 작가였습니다. 글로 밥을 먹어야 했기에 발표를 하면서 은유를 사용하기도 하고 행간에 의미를 담는 방식도 많이 사용 했습니다. 일제시대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탄생한 김동인의 작품들을 지금의 사상적 정치적인 그리고 일률적인 법의 잣대로 잰다는 것은 잘못하면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변론과 입증은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작품 자체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법률가의 단순한 상식적 잣대보다 다양한 시각에 의한 평가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시대 권위 있는 소설가에게 작품 감정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또 위원회의 결정과정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진술한 위원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재판이 끝났다.


(계속)

[ 2018-06-19, 09: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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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공!     2018-06-20 오후 12:54
한일간 연방제 통일해야 자유민주주의 후손들에게 물려줍니다. 중공에 공녀 안바치려면. 6.25때 국군 위안부도 밝힙시다. 일제의 종군위안부만 밝혀 일본만 망신줄게 아니고, 한국전에서 죽으러 가기 직전, 지휘관이 여자와 합방하고 가라고 위안부에 들어갔어요. 그것을 밝혀, 일정때 종군위안부 상 옆에, 한국군 위안부 옆에 세워, 그들도 위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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