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선언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38) “진실을 말하는데 무슨 주저가 있겠습니까?”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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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양심선언

김동인(金東仁)의 아들 김광명(金光明) 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일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을 했던 역사학자 이명희 교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자기가 할 말이 있다고 하는 군요. 그리고 친일 반민족행위결정이 난 사람들 중에서 억울한 사람들이 연대해서 투쟁을 해야 한다고 오히려 알려 왔어요.”
뜻밖의 일이었다. 
“그 분을 제가 꼭 만났으면 합니다.”
나는 백만 대군이라도 얻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엄 변호사님의 핸드폰 번호를 그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시죠.”

며칠 후 오전 10시경이었다.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저는 공주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는 이명희라고 합니다. 친일 진상규명위원회의 위원으로 있었는데 엄 변호사를 만나 얘기를 전할 게 있습니다.”
“당장 나가겠습니다. 몇 시에 어디로 가면 될까요?”
“오후 1시경 비원 옆 원서동에 있는 한식점 용수산에서 뵙도록 하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점심시간이 막 끝난 무렵의 음식점 용수산은 조용했다. 내가 도착한 10분 후쯤 작달막한 남자가 어깨가 늘어지도록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도착해서 두리번거렸다. 이명희 교수 같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손을 들었다. 그가 내 앞에 와서 말했다.
“제가 전화를 해 놓고 늦었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원고를 쓰다 보니까 시간 가는 걸 착각했습니다. 잠깐만요.”
그가 내게 양해를 구하더니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그는 노트북을 펼치고 이메일로 자료를 누구에게 보내는 것 같았다. 바쁜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이메일 보내는 걸 마친 그가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친일진상규명 위원회에 위원으로 되어 2년을 보냈습니다. 매번 심의 때마다 심한 불쾌감과 함께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이번에 위원회가 끝이 나는데 그대로 있다가는 영원히 좌파로 매도될 것 같아 나로서는 공개적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내고 싶어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좌파로 매도된다는 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물었다.
“위원회는 나와 한 교수를 빼놓고는 모두 좌파죠.”
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계속했다.

“좌파가 미워하는 걸 이제 알았어요. 그들이 제일 미워하는 건 대한민국입니다. 그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을 세운 사람들은 전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몰아버렸죠.”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나는 보다 구체적으로 묻고 싶었다.
“경성방직의 김연수(金秊洙)의 변호사로서 많은 자료를 내면서 이의신청을 했었는데 그 심사과정이 어땠습니까?”
“심사하는데 몇 분도 걸리지 않았어요. 그냥 기각이었어요.”

“그러면 문학가 김동인(金東仁) 씨는요?”
“거기도 마찬가지죠. 이의신청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도 문제가 있어요. 당당히 역사 앞에 맞서지를 않고 비굴하게 신청서를 써 오는 거예요.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 상 어쩔 수 없었다느니 먹고 살기 위해서 그랬다느니 그렇게 쓴 게 대부분이에요. 약하게 나오면 단번에 밟아 버려요. 그리고 이의신청의 사유를 강하게 쓴 사람들의 것도 실질적으로는 마찬가지지요. 당사자들의 항변은 아무 의미가 없고 위원회의 주류를 구성하는 좌파들의 이론 외에는 없었어요.”

“좌파들의 이론이란 뭔가요?”
“그들은 민중사관이나 운동사관에 입각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독립운동이나 혁명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친일파다 이런 논리죠. 예외가 없습니다.”
“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판단하던 과정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죠. 제 시각으로 그들은 태평양전쟁에 동조한 사람들은 무조건 친일파로 몰아붙였어요. 그렇지만 역사학자인 제 입장으로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제1차 세계대전 경부터 전쟁은 총력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군인만 하는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동원됐죠. 거기다 식민지까지 동원됐습니다. 영국의 경우는 식민지인 인도가 도왔어요. 프랑스의 경우는 알제리가 일체가 되어 전쟁을 했습니다. 식민지에 대한 그 대가는 참정권과 자치권이었습니다. 단순하게 전쟁에 찬성했다고 반민족행위자로 손가락질하거나 단죄할 문제가 아니에요.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각자 생각이 다른 겁니다.
우리의 경우도 이광수(李光洙)나 최남선(崔南善)이 그런 강한 확신을 가진 분들이었어요. 전쟁에 참여해야 우리도 권리를 찾고 자치권을 가진다는 거였죠. 그분들이 다시 살아나서 지금 말한다고 해도 그 확신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순간적으로 일제에 아부하기 위해 그런 분들이 아니니까요. 또 지금이나 당시나 사람들은 양심의 자유가 있고 각자 자기의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아예 도외시하고 태평양전쟁에 참여한 자들은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낙인을 찍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얼핏 일본의 전쟁을 찬성했다면 친일이라고 간단히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외형적인 걸로 한 사람과 그 자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는 폭포수 같이 말을 쏟아놓았다. 그때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음식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주문하시죠?”
내가 그에게 음식을 권했다.
“아니 먼저 하시죠.”
이명희 교수가 사양하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메뉴 중에서 떡국 정식을 택했다. 이 교수도 나와 같은 것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가자 그가 말을 계속했다.

“3·1운동 당시에 일본사람들 중에는 이견(異見)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조선에 대한 통치가 잘못됐으니까 그런 저항운동이 벌어진 게 아니냐, 고치자는 의견이 일어났죠. 또 아예 식민통치를 하지 말자는 주장까지도 있었어요. 조선에 대해 일본국민들 사이에서도 여러 의견이 일어난 거죠. 그런 일본인들에 대해 일본정부가 반민족이라고 비판하고 손가락질을 한 적이 없어요. 우리의 경우는 너무 편협한 겁니다.
또 전쟁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총력전 상태에서 일본은 전쟁에 중국인을 30만 명가량을 동원했습니다. 그 중국인들은 어떤 사상을 가지고 한 게 아니라 일본 노동자들보다 고임금을 준다고 하니까 간 거예요. 우리의 징용도 그냥 끌고 가서 착취를 한 건 아닙니다. 외형적으로는 임금을 주는 경제적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끌려간 우리의 징병이나 지원병들이 모두 총알받이가 됐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그들 중에는 오히려 완전한 공민권을 우리민족이 얻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출전한 사람들이 많죠. 민족의 지위 상승을 위한 거였죠. 당시 지식인들 역시 그런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자치권을 가지고 얼마간 지난 후에 독립하는 게 훨씬 나았을 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나라를 꾸려가는 능력이 부족해서 남북으로 갈리었다는 의견도 있으니까요.”

“친일 반민족 행위를 심사할 때 절차를 어떻게 했습니까?”
나는 그 점을 확인해 두고 싶었다.
“일단 조사팀에서 관련 자료를 먼저 보내줬어요. 그런데 이건 심사가 정황이나 기준에 의해 일괄적으로 가 버리는 거예요. 국방헌금은 무조건 10만 원 이상은 친일 반민족 행위로 보는 거예요. 딱 기준을 정해버린 거죠. 돈을 낸 이면(裏面)이나 동기가 강제냐 아니면 자진해서 낸 거냐를 따지지 않고 시행령이 금액만을 기준으로 한 건 너무 획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으로 정황만 가지고 친일 반민족 행위로 결정하는 게 너무 많았어요. 일제 때 어떤 계급이나 직위에 있었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정황 아닙니까? 그것만 가지고 친일반민족 행위라고 판단하는 건 증거 없이 결정한 거죠.
제가 보면 일제시대를 나누어 3기 이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된 사람들은 전부 억울한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이 지식인이나 문화인, 종교인이죠. 솔직히 음악가 안익태(安益泰) 선생이 무슨 친일의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죠. 만주에서 단체를 만든 사람들이 왜 친일을 했다는 건지…. 저는 위원으로 있었고 역사를 공부했어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동안 선고된 판결을 보면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사들조차 좌파 입장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하니까 문제죠. 그래서 싸워야 합니다.”
 
그로부터 귀한 정보를 얻었다.
“법정에 나가 증언해 주실 수 있습니까?”
어려운 부탁이었다. 양심선언을 하겠느냐는 얘기였다.
“하죠, 진실을 말하는데 무슨 주저가 있겠습니까?”

(계속)

[ 2018-06-20, 12:3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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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     2018-06-20 오후 1:52
엄변이 해야할 양심선언은, 모든 것에 앞서서 박원순을 두둔한 일이다. 조갑제와 엄상익이 그 때 박원순을 두둔하지 않았다면 박원순을 수장으로하는 종북세력 소탕이 가능하였다. 이런 뼈아픈 실수를 양심선언하여야 하는 것이다. 엄변이 속았을 수도 있으나 박주신 병역면탈은 그야말로 증거가 차고넘치는 사건이다. 희대의 사기꾼 박원순이 다시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것 역시 당신의 잘못이 적지 않다고 해야하는 것 아닌가 ?
   이중건     2018-06-19 오후 12:51
이런 분들이 진실로 애국자이십니다.
나쁜쪽으로 보는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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