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내면(內面)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45) “집에서 아버지를 보면 일장기를 그냥 뚤뚤 말아서 광 속에 처박아 버리는 거예요.”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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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아버지의 내면(內面)
 

“평소 아버지 김동인(金東仁)의 생활은 어땠어요?”
내가 물었다.
“주로 밤에 작품을 쓰셨는데 저는 아버지가 잠자리에 누워있는 걸 거의 보지 못했어요. 잠을 자지 않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책상에 앉지 않고 항상 엎드려서 작업을 하셨어요. 그 바람에 자식들인 우리들도 엎드려서 책을 읽는다거나 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작가 아버지의 글에 대한 태도는 어땠죠?”
“아버지는 고운 말 쓰기에 신경을 많이 쓴 분이에요. 동네 새우젓 장사가 지나가면서 틀리게 말하면 그걸 고쳐주려고 애쓴 분이에요. 그리고 저는 평생 아버지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는 걸 듣지 못했어요. ‘도적놈 같으니’가 아버지가 하는 최고의 욕이었어요. 한 번은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그때도 아버지가 한 말은 ‘도적놈 같으니’였죠. 아버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관찰하시고 고쳐주는 적이 많았어요. 사람들이 시계가 죽었다고 하는 걸 보고 ‘시계가 섰지 왜 죽었느냐’고 하시기도 했어요.”

“아버지와 친했던 작가는 누구죠?”
“제 기억으로는 이광수(李光洙) 씨 댁과 친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광수 씨 댁은 부인 허영숙(許英肅) 여사가 산부인과를 하기 때문에 형편이 괜찮았어요. 우리 집은 아버지 원고료만 가지고 살기 때문에 어려웠구요. 아버지는 항상 이광수 씨한테 미안해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경쟁의식도 많았어요. 아버지는 이광수 씨 집 애가 월반했다는 걸 들으시고 제 동생도 월반을 시키셨어요. 그 댁 아이들이 이화여고를 가는 걸 보고 저와 동생을 경기여고에 입학시키셨죠. 한 번은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 산부인과에 같이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제가 동생과 다투니까 아버지가 하는 말이 ‘이광수 씨 집 딸은 싸우지 않고 소곤대면서 잘 지내는데 너희들은 왜 그러니?’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각나요.

아버지 말씀은 이광수 씨는 겉하고 속하고 다른 짓은 절대 하지 못하는 좋은 분이라고 했어요. 이광수 씨는 중학교 때부터 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읽었으면서도 세례받기를 거부했대요. 신도들은 목사가 하는 동정녀의 출산과 부활을 믿느냐는 말에 ‘예’라고 대답하고 세례문답을 받잖아요? 이광수는 자기는 아무래도 그게 믿어지지 않아 세례를 받을 자신이 없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이광수 씨는 그런 성품이라는 거죠.

이광수 씨 집 아이들은 집안에서도 일본말을 쓰게 했죠.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제가 집에 돌아오면 한글을 가르쳐 주셨어요. 한글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아직 어렸던 그때 저는 학교와 아버지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했어요. 학교에 가면 국기인 일장기를 접는 법, 상자에 넣어 선반에 잘 모셔두는 법을 엄하게 배워요. 일장기는 아주 신성하고 소중한 상징물이었죠. 집에서 아버지를 보면 일장기를 그냥 뚤뚤 말아서 광 속에 처박아 버리는 거예요. 어린 저로서는 학교 선생님과 아버지 사이에서 무엇이 올바른 건지 흔들렸어요. 그게 우리 아버지의 의식이었어요.

아버지는 자존심이 강했어요. 그래서인지 자식들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걸 좋아했죠. 아버지의 특징을 하나 말하면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길을 가실 때 앞에 진창이 있어도 돌아가시지 않고 그 위를 저벅저벅 물을 튀기면서 가시는 거예요. 보통은 바지에 물이 튀거나 구두가 더러워질까봐 조심조심 가잖아요?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셨어요.”


(계속)

[ 2018-06-28, 09: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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