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靈魂)과의 대화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50) ‘나를 반민족 행위자라고 부르는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묻고 싶소’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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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영혼(靈魂)과의 대화

밤이 늦은 시각이다. 책상 옆의 탁상시계가 밤 1시를 가리키고 있다. 재판은 끝났다. 도대체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판결은 김동인(金東仁)이라는 인생 전체의 극히 미세한 한 조각만 잘라서 보고 결론을 내렸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그 판사는 유신시절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을 재판했을 수도 있다. 그 판결문 하나를 가지고 독재에 협력한 자로 처단한다면 어떨까? 그를 반사회적 행위자라고 정죄한다면 어떨까?

나는 불을 끄고 20층 아파트 아래의 가로등만 군데군데 비치는 검은 아스팔트 도로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30년 변호사를 하면서 죽은 영혼(靈魂)과 소통하려고 시도할 때가 많았다. 죽은 사람은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용히 앉아서 김동인의 영(靈)과 접속을 시도한다.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된다. 내 안의 공간에서 나와 그가 대화를 시작한다.

‘김동인 님 당신의 영이 저승에서 올라와 잠시 나의 마음을 찾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기원하듯 그를 부른다. 밤 한 시의 나의 골방은 진공 속 같이 적막하다. 영이 내려오기 가장 좋은 시각이다. 나는 내면을 주시하며 기다린다. 깊은 우물 속 같은 마음 저쪽에서 잔물결 같은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뭔가 반응하고 있었다.
‘안에 김동인 님의 영혼이 계시다면 몇 가지 묻겠습니다.’
나는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 어떤 존재가 귀를 기울이는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일장기에 대해 쓰신 글이 친일반민족 행위로 판정됐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텔레파시 같은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뭔가 나의 생각을 움직이는 반응이 온다.
‘글 그대로가 나의 생각이요. 일본 국기는 태양의 간결 단순한 표시로 멀리서도 알아보기 쉽고 기억하기 쉽고 그리기 쉽다고 썼소. 사실 아니요? 그걸 친일반민족 행위로 보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시각과 수준을 되묻고 싶소.’

‘북지전선을 향하여라는 글은 왜 그렇게 쓰셨습니까?’
‘판사들이 고정관념을 버리고 얼마나 심사숙고하고서 내 글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뭐라고 써있소? 그 시절 상황을 편견을 버리고 한번 보시오. 내가 뭐라고 했소? 서구 제국주의, 그러니까 백인들에 의해 조종받는 인형 노릇은 그만두자고 했지 않소. 동양이 대부분 서양 백인들의 식민지였던 그 시절 내가 보는 세상은 황인종은 이등민족으로 핍박을 받는 처지였소. 미국 내에서 인디언의 역사를 한번 보시오. 처음에는 사람인가 동물인가 논쟁이 있었소. 그 다음은 사람인가 악마인가의 의견대립도 있었지. 그 사이에 천만 가량의 인디언이 씨가 마를 정도로 다 죽은 비참한 피의 역사가 미국 역사에는 숨어 있소.

독일의 게르만족이 유대인을 집단학살한 것을 보시오. 그들은 슬라브 민족까지 식민지화하려고 소련을 침공했던 게 이차대전의 이면이요. 그런 서구 백인들의 우월의식과 탐욕을 보면서 조선의 많은 지식인들이 황색인종끼리 뭉치자는 생각이었소. 영국인들은 중국인의 땅에 들어와 레스토랑을 하면서 중국인과 개는 들어오면 안된다고 써 붙일 정도였으니까. 서양의 제국주의가 동양을 침략해 우리 조상이 후손들을 위해 남겨두었던 자원들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했소. 공자님과 부처님의 귀한 정신문화가 동양에서 나왔고 동양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유린당한다고 생각했소. 우리는 나름대로 힘들을 뭉쳐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소. 동양에서 당시로서는 가장 문명이 앞서간 일본을 중심으로 나라간의 연합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소. 그런 생각을 글로 적은 것이오.

당시도 사상의 자유와 글을 쓸 자유가 있었소. 내가 미국편을 들지 않은 것은 사실이오. 친일(親日)은 맞지. 그렇다고 나에게 반민족(反民族)까지 덧씌우는 것은 지나친 매도라고 생각하오. 대한민국의 우상이 된 한 분은 미국이 일본을 쳐서 무찌르고 우리 영토를 미국의 하와이 다음으로 한 주가 되게 해 달라고 청원한 분도 있소. 그는 영웅이 되고 나는 반민족 행위자가 되는 게 이해할 수 없소.’ 

‘소설 백마강은 정말 정치적 의도가 있었습니까?’
‘판결문 속에는 신문사의 선전기사까지 나의 책임으로 물었는데 엄 변호사 같으면 그 책임에 동의하겠소?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신문사측 편집진이 마음대로 쓰는 것 아니오? 그리고 작가의 말이 친일로 걸렸는데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판결문에 나와 있는 나의 말을 다시 한 번 보시오. 내가 뭐라고 했소? 700년의 길고긴 왕조를 누려오다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전멸된 백제문화가 바다를 거쳐 일본에 미쳐 오늘날 대일본제국을 이루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고 했소.

역사서적들을 보시오 그건 사실이오. 멸망한 백제 사람들이 큐슈로 가서 명치유신을 일으킨 중심인 죠슈번을 만드는 핵심이 되었소. 그리고 부여는 그 이전부터 백제와 일본이 교류했던 지역이오. 큐슈로 가면 백제를 모시는 신사(神社)가 있지 않소? 나는 조선인과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인이 한 뿌리임을 설명했소. 역사적 사실을 얘기한 게 친일이란 말이오? 그런 의미에서 친일이라면 나는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소. 이야기의 재미상 소설에서 야마토 소녀와 백제청년의 사랑을 만들었소. 소설은 소설일 뿐이오.’

‘이왕 따지는 기회에 법원에서 문제 삼은 글을 모두 따져보겠습니다. 1941년 12월27일 매일신보에 실은 산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용 그대로요. 전쟁 중에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전쟁문학이 있어야 하겠다는 얘기요. 세계대전 이후 구미(歐美)도 전쟁문학이 번성했소. 문학은 정치와는 별개요. 또 상황에 따라서는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소. 미국이 승리해야 하는데 그 반대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친일반민족이라고 한다면 굳이 답변하고 싶지 않소.’

‘1942년 1월6일 매일신문에 낸 태평양송도 친일반민족 성향의 글로 판결이 됐던데요?’
‘그 글을 한번 정독해 보시오. 태평양을 두고 미국과 영국 그리고 다른 나라가 패권다툼을 했소. 미국은 태평양을 거의 내해(內海)로 취급하고 동양권 국가는 겨우 인도네시아나 동지나해 선상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며 다닐 뿐이었소.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란 작은 섬나라가 진주만의 미국 함대를 격파하며 태평양의 세력판도를 다시 만들었소. 황인종으로서 속시원한 면이 있지 않았겠소? 그런 뜻에서 ‘태평양은 내 바다다’라고 주장할 실력을 가진 일본을 칭찬해 주었소. 왜? 모든 시각이 승자인 미국의 편에서만 가지고 있어야 하오?’

‘1942년 1월23일 매일신보에 발표한 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당시 나의 현실론이었소. 한반도는 식민지가 아니라 법상 이미 일본의 본토 일부가 되었소. 조선인들은 모두 일본시민이 되었소. 한 나라가 된 거요. 현실이 그렇다면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소. 일등국인 일본과 한 나라가 되어 그 시민이 되면 굳이 큰 손해는 없었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오.’

‘1944년 1월1일과 같은 달 4일 총동원 태세로라는 제목으로 매일신보에 글을 쓰셨는데 전하려는 메시지가 뭐였습니까?’
‘나는 동양권이 제국주의 영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동아 전쟁의 취지에 동참했소. 그런 상황에서 문학이 보탤 수 있는 힘에 대해 쓴 글이요. 국민들의 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문학에 대한 나의 의견을 썼소.’

‘1944년 1월16일부터 같은달 28일까지 반도민중의 황민화란 제목하에 징병제 실시를 찬성하는 글을 쓰셨던데요?’
‘물론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소. 내 민족의 젊은 청년들이 그 누군가 사랑하며 키운 아들이 총알받이로 전장에 나가는데 선뜻 나가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소? 나 자신부터가 징용에 끌려 나갈 것이 무서워 굴복했는데 말이오. 그러나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는 또 다른 생각이 있었소. 일본인과 차별이 없는 법적인 평등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의무도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소. 일제당국은 병역에서만은 조선인은 배제됐소. 특별히 봐줘서가 아니라 조선인에게 총과 칼을 줬을 때 어떨지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소. 병역의무는 차별을 없애고 우리가 당당한 권리를 가지게 되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었소.’

‘일장기의 물결이라느니 문화인의 총궐기라는 제목으로 한 단계 농도 짙은 칼럼도 쓰셨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에서 썼다시피 당시 분위기는 어둠침침한 정거장에서 여기저기 패거리를 지어 군중들이 일장기를 들고 서 있었소. 군인가는 아들들을 환송하기 위한 자리였지. 기왕의 전쟁이고 나가 싸우는 거면 승리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리고 전쟁 중이라도 문학 등 예술이 폄하돼서는 안 된다고 썼소. 힘든 중에 노래 하나 연극 하나 글 한 편이 지쳐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친일은 맞는 게 아닙니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만 세상을 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오. 일본의 여러 정책에 대해서도 찬성할 게 있고 반대할 게 있었소. 당시 일본 정계도 군부정권에 철저히 반대하는 의회주의 자유민권파도 있었소. 그중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지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나의 독자적인 생각이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오. 역사를 독과점하면서 친일이냐 아니냐의 단일한 잣대로 단죄하는 위원회와 법원을 나는 찬성할 수 없소. 좋소, 친일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소. 그러나 나를 반민족 행위자라고 법원이 낙인을 찍었던데 그렇다면 내가 일제시대 쓴 <운현궁의 봄>이나 그 외 작품들을 어떻게 생각하오? 일제시대 대원군이라는 민족적 메시아를 만들어 나라 없는 국민들의 영혼을 깨우려고 노력했소. 그 시대 모멸을 참으면서 오늘의 한글 문장을 만든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라오. 그 이전 조선 말에 제대로 된 문체나 문장이 있었을 것 같소? 한국문학은 일제 당시 나 같은 문인들의 지극한 정성의 산물이라오. 창작상의 문구인 연(年) 월(月) 일(日) 같은 것까지도 명치(明治), 대정(大正), 소화(昭和) 등의 연호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제의 검열제도 밑에서 된서리를 맞아야 했던 우리를 당신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나를 반민족 행위자라고 부르는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묻고 싶소.’

‘혼돈이 옵니다. 그렇다면 김동인 선생의 영혼의 입장에서 위원회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실체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생각을 말하리다. 한 시대의 역사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공존하고 이질적인 숱한 생각과 몸짓들이 만나고 부딪치면서 빚어지는 거요.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고 대중은 에고덩어리일 수 있소. 그게 현실이지.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역사를 독과점하면서 이념으로 그 시대의 현실을 재단하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오.’     

(계속)

[ 2018-07-04, 11:23 ] 조회수 : 1627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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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18-07-04 오후 3:01
가히 명문 입니다만
개 돼지들이 이해를 하긴 어려울듯 하군요
   證人     2018-07-04 오후 12:30
뜻 깊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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