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길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51) ‘아무런 후회도 회한도 없는 글쟁이의 일생이었소’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51
하늘 길 

‘1951년 1월5일 가족들이 피난을 떠난 왕십리 영단(營團)주택 방 안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셨죠?’
내 마음이 그의 영혼에게 물었다.

‘그렇소. 가족이 떠나고 텅 빈 방의 창문에서 1월의 찬바람이 비명을 지르며 지나가고 있었지. 나는 어둠 속에서 사신(死神)의 숨결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소. 그 순간 일평생 나에게 축적된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파노라마 같이 떠오릅디다.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내 고향 평양의 모란봉이 보이고 물안개 이는 대동강이 보입디다. 밤하늘의 별들이 물 위에 떨어져 흔들리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소.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도 눈앞에 보였소. 내가 사주는 단팥죽을 맛있게 먹던 딸아이의 얼굴도 보이고 품에 안겨 있던 천진난만한 아들의 부드러운 존재의 촉감도 떠올랐소. 사랑이 많은 좋은 부모님을 만나 감사했던 일생이었소. 동경에 가서 공부를 시켜주시기도 하고 아버님의 돈으로 이 땅에 창조(創造)라는 잡지를 만들어 문학을 출범시킨 것에도 아버님께 감사했소.

소년 시절부터 돈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세상의 성공과 거리를 두고 문학을 신(神)으로 삼아 그 순교자가 되기로 결심했었소. 문학을 하는 나는 가난이 더 나에게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소. 가난해야 맑은 샘물 같은 영혼이 솟아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말이요. 두보(杜甫)나 이태백이 중국의 황제보다 더 위라고 나는 생각했소. 평생 외형적으로는 가난뱅이였지만 사실 나는 부자였소. 좋은 사람들과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고 예술을 했으니까 신(神)은 나에게 사랑 할 수 있는 감각을 주셨었지. 돈보다 그걸 가진 사람이 진짜 부자라는 걸 나는 깨달았소.

죽음은 애벌레같이 몸속에 갇혀 있던 영혼이 몸이라는 고치를 뚫고 영원의 세계로 날아오르는 과정이 아니겠소? 죽음의 형식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오. 하나님은 눈 쌓인 하얀 들판에서 얼어 죽는 순간 그의 영혼에 환희와 따뜻함을 주시기도 하니까. 이 세상에 소풍 나온 동안 나는 글이고 글이 나였소. 일생동안 한 칸 한 칸 열정을 쏟아 메워 간 몇만 장의 원고지가 나의 인생 아니겠소?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싶습디다. 그래서 불편한 몸이지만 기어서 방문 밖으로 나갔소. 1951년 1월의 시원한 공기가 폐부까지 들어옵디다. 작은 영단주택의 뒤쪽은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고 그 뒤는 밭이었소. 나는 울타리 사이를 빠져나왔소. 저 멀리 어둠 속에 석탄 야적장이 작은 동산같이 희미하게 보입디다. 나는 온 몸의 힘을 쏟아 마지막 행진을 하고 있었소. 저만치서 물방울무늬가 찍힌 한복저고리를 입은 어머니가 미소 지으면서 오라고 내게 손짓을 하십디다. 아들아 세상에서 수고가 많았다 하시는 것 같았소. 꽃같이 웃는 아내의 수줍은 모습이 눈에 어리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집 쪽에서 들립디다. 어느새 나의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 허공에서 내가 가족과 살던 마지막 집인 영단주택이 내려다 보였소. 텃밭이 있는 작은 마당으로 들어서는 두 개의 작은 계단이 정겹게 보입디다. 아무런 후회도 회한도 없는 글쟁이의 일생이었소.’


(끝)

[ 2018-07-06, 09:40 ] 조회수 : 2576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