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제국을 붕괴시킨 헬싱키 선언 연구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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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고능력이란 무서운 것이 세계를, 역사를 바꾸는 힘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사이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경비를 지불하고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킬 것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참고가 될 만한 역사적 事例를 찾아보면 1975년 헬싱키 선언이 있습니다. 앞서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붕괴를 가져오는 데 있어서 이 선언의 중요성에 대해서 조금 언급했습니다만 이번에는 소련측에서 이 선언을 어떻게 보았는지 검토해보기로 합시다.
  
  아나톨리 도브린이란 사람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1962년에 미국 주재 소련 대사로 부임하여 그 뒤 24년간 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까지 여섯 대통령과 그 정부를 상대했던 거물 외교관이었습니다.
  
  도브린이 은퇴후에 쓴 회고록 'In Confidence'(비밀로)가 1995년 미국의 타임스 북스(Times Books)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그는 헬싱키 선언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헹싱키 선언은 1975년8월1일에 서명되었다. 이 선언은 그 뒤 소련과 동구 공산국가 내부에서 자유화 운동이 오랫동안 골치아프게 진행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것은 결국 이들 국가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 냉전이 종식되도록 하였다.'
  
  헬싱키에서 열렸던 회의의 공식 명칭은 유럽의 안보와 협력에 관한 회의(The 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iope)였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35개국이 참여했는데, 이는 나폴레옹 전쟁을 마무리한 1815년 비엔나 회의 이후 최대규모였습니다.
  
  이 회의는 소련이 유럽과 미국을 이간질시키려고 제안했던 것인데 미국이 거부하는 바람에 묵혀 있다가 1973년 닉슨 대통령의 결단으로 미국이 참석하면서 예비 회담이 2년간 계속되었습니다.
  
  의제는 세 가지였습니다. 안보, 경제협력, 인도적 협력. 소련은 안보와 경협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미국측은 인도적 협력 즉 인권의 원칙을 이 선언에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소련은 인권문제는 국내문제라는 전제하에서 국제협정으로 이에 간섭하는 것을 거부하려 했습니다. 미국측은 소련이 인권 조항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보 및 경협 부문에 대해서 동의해줄 수 없다고 버티었습니다.
  
  소련은 이 회의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 책정된 폴란드 등 동구 공산국의 국경선을 서방으로부터 보장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방에서 인권조항을 들고나오는 바람에 낭패한 것입니다. 인권조항에는, 서명국은 인권, 이동의 자유, 사상 교류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이 선언의 초안을 정치국 회의에 보내 토론하게 했습니다. 정치국 위원 중 수스로프, 코시긴, 포드고르니, 안드로포프는 인권조항을 받아들인다면 국내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간섭을 허용하게 될 것이라면서 반대했습니다.
  
  많은 소련 대사들도 이 조항 때문에 국제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회의를 준비했던 그로미코 외무장관이 이 초안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무엇이 내정 간섭인가 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소련정부뿐이다. 우리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고 말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설득했습니다.
  
  브레즈네프도 그로미코 편을 들었습니다. 그는 헬싱키의 거대한 국제정상회담장에 나가서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는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이 2천만 명 이상의 인명을 희생시켜가면서 확보한 국경선을 서방이 인정해준다는 것은 기가 막힌 선전 무대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는 또 이것을 소련 국내 선전에 잘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조항에 대해서는 소련 국내에 간단하게 소개하면 그만일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소련은 헬싱키 최종 협정(Helsinki Final Act)라고 불리는 선언에 서명했던 것입니다.
  
  도브리닌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브레즈네프의 판단은 잘못된 것임이 곧 밝혀졌다. 소련의 반체제 세력은 이 역사적 문서에 의해 크게 고무되었다. 프라우다에 보도된 이 선언의 全文은 소련 정부의 공식 문서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 문서는 반체제 자유 세력의 헌장처럼 되었다. 이것은 소련 지도층이 상상하지 못한 사태 전개였다>
  
  재미 있는 것은 브레즈네프를 함정에 빠뜨려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하도록 한 초석을 놓았던 포드 대통령은 미국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성토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소련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고. 공화당내 포드의 경쟁자였던 레이건 지사(뒤에 대통령)도 포드를 공격했습니다.
  
  미국 포드 대통령은 키신저 국무장관의 도움을 받아 이 회의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양보를 소련으로부터 받아냈습니다. 동구권 국가의 국경선을 인정해준다면서 단서 조항을 하나 끼웠던 것입니다. 즉, 평화적 방법으로써 국경선을 변경하는 것은 합법적이란 조항이었습니다. 이 조항은 서독 정부의 부탁을 받아 미국이 밀어붙인 것이었습니다.1990년 동서독이 통일될 때 이 조항으로 해서 소련은 동서독 사이의 국경변경에 대해 불법이란 항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헬싱키 선언이 동구 공산국가들에게 미친 영향도 큰 것이었습니다. 인권조항 때문에 폴란드 같은 데서 反共시위가 일어나도 과거처럼 소련 군대를 보내 탄압하기가 논리상 어렵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차린 바웬사 같은 지도자들이 폴란드에서 반공 노조 운동을 열심히 벌여 공산권 붕괴의 불길을 당겼던 것입니다.
  
  자, 위의 헬싱키 선언 공식을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 어떻게 적용하면 될까요. 김정일이 자멸의 길을 열지로 모르는 인권의 원칙을 수용할 리가 없습니다. 그가 약한 입장에 빠지게 밀어붙인 다음 국제사회가 강력한 입장에서 협상해야 김정일은 울며겨자먹기로 인권의 원칙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예컨대 유엔 안보리 결의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對北 경제 제재를 걸어놓습니다. 중국도, 한국도 참여하여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은 물론이고 무역도 중단시킵니다. 이렇게 해두고 기다리면 김정일 정권은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입니다.
  
  국제사회가 유리한 입장에서 김정일과 협상이 가능해질 때 협상 의제로 인권조항을 넣는 것입니다. 인간 이동의 자유, 사상의 자유, 정치수 수용소 폐지, 이산 가족 재회 등등을 저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북한의 내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교두보가 생겨 민주화 운동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만약 김정일 정권이 인권 조항을 지키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간섭을 받아야 하게 됩니다.
  
  인권문제는 內政이 아니라 국제사회 공통의 문제이므로 인권탄압을 하는 국가를 국제사회가 응징하는 것은 합법적인 행위, 때로는 경찰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생각해봅시다. 김정일의 핵공갈에 대해 한국 미국이 인권을 들고 나와 대응한다면 누가 이길지. 인권, 즉 사랑의 원자탄이 김정일이 만들려고 하는 공포의 원자탄을 녹일 것입니다. 인권은 세계 여론, 특히 NGO와 진보세력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 2003-01-22, 22: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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