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天才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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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創造에 대하여
   -神, 또는 神에 도전하는 인간이 하는 일이 創造
  
   創造란 말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하느님이 天地를 창조하셨다는 말이 성경의 첫 문장입니다. 하느님이 창조주가 아니고 남이 만든 것을 모방하는 존재였다면 기독교의 하느님은 지금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인간들에게 행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神은 창조하는 사람이고 인간은 피조물, 즉 만들어진 존재라는 공식이 성립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 즉 神聖한 일이란 의미를 깔고 있습니다. 창조하는 인간은 신의 흉내를 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조를 나타내는 말들, 예컨대 창작(創作), 창업(創業), 창설(創設), 창의(創意), 창세(創世), 창시(創始), 창립(創立), 창건(創建), 창당(創), 창군(創軍) 같은 말들은 다 좋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창조란 것은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창조주는 우주를 만들었습니다. 에디슨은 이 세상에 없던 전등과 축음기를 만들었습니다. 벨은 이 세상에 없던 전화기를 만들었습니다. 베토벤은 이 세상에서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던 소리를 창조했습니다. 피카소는 이 세상에 일찍이 본 적이 없었던 그림을 그렸습니다. 서정주(徐廷柱) 시인은 아무도 표현한 적이 없었던 아름다운 신라정신을 아무도 동원한 적이 없었던 거대한 어휘력으로써 그려냈습니다. 콜럼버스는 지도상에 아메리카 대륙을 새로 그려넣도록 했습니다. 이승만(李承晩)은 한반도에 일찍이 없었던 공화국을 세웠습니다.
  
   김유신(金庾信), 김춘추(金春秋), 문무왕(文武王)은 힘을 합쳐서 삼국을 통합한 민족통일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박정희(朴正熙)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한국식 근대화 전략을 창조하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던 나라를 경제대국으로 키웠습니다. 결국 나 같은 보통사람들은 이 창조적인 사람들의 천재성 덕분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범인(凡人)은 항상 천재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인가 봅니다. 우리는 창조의 전문가들인 천재들의 작품을 공짜로 즐기고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적 인간형은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생각이 항상 미지(未知)와 미래(未來)로 향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감과 도전정신으로써 그것을 맞아 나서는 자세, 이것이 창조적 인간형의 실험정신이요 모험심입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오늘에 安住하려는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듣기 쉽습니다. 무모하다든지, 버릇이 없다든지, 괴퍅하다든지. 창조의 반대어가 평범이니 천재는 평범할 수도, 평범해서도 안됩니다. 모범생들 가운데서 천재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인간관계에 충실하려다가 보면 창조할 시간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재한테 예의 좀 지키라고 이야기하는 사회는 그런 천재를 가질 자격이 없습니다.
  
   상가(喪家), 결혼식장, 돐잔치, 회갑연, 출판기념회, 동창회, 동향회, 집들이 등등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꼭 필요한 모임에 일일이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사람이 어디서 창조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창조정신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혼자서 깊은 사색을 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창조에는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천재들은 대체로 인간관계가 삭막하든지, 단출합니다. 팔방미인형이 아니고 고독하고 괴퍅합니다. 창조적 인간형의 돌출행동을 용납하고 관용하는 사회에서만 천재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창조는 이 세상에서 처음인 것을 만드는 것일 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는 다른 것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인간은 이질적(異質的)인 것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경계심과 증오감을 품습니다. 종교가 다르다든지, 이념이 다르다든지, 피부색깔이 다르다든지, 언어가 다르다든지, 국적이 다르다든지 하면 바로 그런 다름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자를 쓰는 사람들이 퍽 적습니다. 모자를 쓰고 가는 사람이 보이면 한번 더 쳐다보게 됩니다. 저도 미국에서 한 1년간 생활할 때는 모자를 곧잘 쓰고 다녔습니다. 모자는 비올 때 우산 대용(代用)으로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귀국한 뒤로는 모자를 잘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자를 쓰고 있다가도 아는 사람들이 보이면, 또는 사무실에 들어갈 때는 모자를 벗어 손에 듭니다. 남의 눈에 튀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입니다.
   한국사회에는 다중(多衆)의 평균적 행태와 다른 행동을 제약하는 무거운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추어가기 시작하면 개성은 사라지고 사회가 획일적이 됩니다. 그러면 창의력도 약해집니다. 너그러운 사회만이 창조할 수 있고 천재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인간을 주려서 天才라고 부릅니다. 천재는 바로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없던 물건, 학설, 빛갈, 나라, 소리, 기계들을 만드는 사람이 천재입니다. 그러면 이 창조와 천재는 어떻게 하여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첫째, 천재는 여유가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태어납니다. 창의력과 활달한 실험정신과 호기심과 모험심을 내리누르는 사회 분위기에선 창조적 인간들은 질식하고 맙니다. 사람들이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물을 과학적으로 관찰하며 공상과 상상에 빠질 수 있는 분위기와 그런 넉넉한 마음을 허용해주는 제도하에서만 천재와 창조는 가능할 것입니다.
  
   북한에서 천재가 나올 수 없으며 미국에서는 천재가 안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창조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故 李秉喆 삼성그룹회장은 이런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회사를 창업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어려운 가운데서 회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끝나고 그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나는 곧 거기에 대해서 흥미를 잃는다』
  
   창조적인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있습니다. 꼭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반복적인 행동, 같은 일상의 되풀이, 도전이 없는 안락한 생활, 이런 것들을 천재들은 증오하고 경멸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물, 새로운 사건, 새로운 地理, 새로운 라이벌, 새로운 도전을 찾아나서지 않으면 이 세상이 미칠 정도로 따분하고 지겹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선 체육선수들의 신기록이란 장르도 있습니다. 마라톤 경기의 신기록, 그것은 운동선수들의 창조적 작업인 것입니다. 1백 미터를 9초에 뛰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는 이 세상에 일찍이 인간이 달려본 적이 없는 속도를 창조한 천재입니다. 한 야구시즌에 홈런을 80개를 친다면 그는 이 세상에 일찍이 없었던 기록을 창조한 천재입니다. 신기록이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그것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만드는 행동, 그것이 창조인 것입니다.
  
   기자들의 창조는 특종입니다. 특종은 어떤 뉴스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알리는 행동입니다. 그 특종은 빠르기 때문에 유일합니다. 그 전에 일찍이 없었던 것입니다. 언론의 특종은 또 숨겨진 사실을 캐내는 창조작업이기도 합니다. 1972년에 워싱턴 포스트의 사회부 기자 두 사람은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던 민주당 대통령선거운동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붙들린 사람들이 닉슨 보좌관들의 명령을 받고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캐내어 결국은 닉슨을 사임으로 몰고 갔습니다. 이것은 특종의 힘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사실을 발견해내는 것은 전화기란 물건을 발명하는 것처럼 엄청난 영향을 우리 사회에 미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의 힘입니다.
   창조적 인간은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입니다. 「내 식대로 하겠다」는 배짱이 창조의 바탕에 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싫어하는 독립심이 창조의 바탕에 있습니다. 유아독존의 오기와 배짱, 이것은 창조자와 天才의 공통점입니다. 남의 시선을 빌지 않고, 남의 감각을 빌지 않고, 남의 논리를 빌리지 않고, 남의 가치관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기준으로, 자신의 감각으로, 자신의 審美眼과 가치관으로써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에 뿌리박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사람, 그가 창조적 인간입니다.
  
  
  
  
  
출처 :
[ 2003-01-23, 23: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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