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말씀: 김정일이 살아 있는 건 요행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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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四書三經을 어릴 적부터 읽으면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사서는 대학, 중용, 논어, 맹자를 가리키는 것이고 삼경은 詩經, 書經, 易經을 말합니다. 저는 최근 부산으로 내려가는 차중에서 論語를 처음으로 제대로 읽어보았습니다.
  
   옛날 같으면 소년기 때 읽었어야 할 동양 고전을 나이 50을 넘긴 시점에서 읽었다는 것은 우리의 교육방향이 그만큼 바뀌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지금은 四書三經보다는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서양인의 고전인 성경에 필적할 만한 동양의 고전은 論語입니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한 말을 모은 語錄이 논어입니다.
  
   이 논어를 읽으면서 저는 공자란 분은 위대한 심리학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심리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거기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은 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말씀이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우리에게 교훈이 되는 것은 인간의 장단점을 훤히 꿰뚫어본 예수가 「이렇게 해선 안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인간이란 가만히 두면 이런 위험성이 있으니 이런 방법으로 경계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어떤 곳에서 읽어도 유효한 말씀인 것입니다.
  
   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유명한 말들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和而不同하고 소인은 同而不和이니라」
   그 말은 「군자는 남과 화합하지만 雷同하지 않고 소인은 雷同하지만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雷同이란 말은 자신의 주견이 없이 시류에 휩쓸려 어울려 다니는 것을 뜻합니다. 공자의 말을 쉽게 풀면 이런 뜻입니다.
  
   군자는 남과 화합하지만 항상 자신의 주견을 세우고 줏대를 지키면서 어울리지 무조건 패거리를 만들어 따라다니지는 않는다. 반면, 소인은 주견 없이 어울려 다니지만 마음으로 화합하지는 않는다.
  
   군자는 자신의 개성을 살리면서 또 남의 개성도 존중하면서 화합하는 데 반해 소인은 자신의 개성은 죽이면서 한 패가 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하는 쇼이고 속으로는 늘 시기 질투한다는 뜻입니다. 和는 이성적으로 결합된 관계이고 同은 감정적, 맹목적으로 결합된 관계를 가리킵니다. 깡패 집단은 同而不和, 즉 부화뇌동하면서도 불화하는 단체이고 제대로 된 민주정당은 和而不同, 즉 화합하면서도 획일적이지 않는 단체일 것입니다.
  
  和而不同이란 말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잃지 않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인간다운 삶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和而不同이란 말은 개인주의와 국가주의 중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양쪽 가치를 다 수용하고 양쪽 가치 사이를 균형잡으려는 中庸의 자세가 들어 있습니다. 中庸이란 말에 동양적 민주주의의 개념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논어에는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태연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소인은 교만하지만 태연하지 않다」. 태연하다는 것은 자신감과 여유를 가진 인간의 자세입니다. 너그럽고 강한 자의 태도일 것입니다. 교만은 자신감은 있으되 관용이나 여유가 없는 자세입니다. 교만한 인간은 소인배라는 것이 공자의 생각입니다. 논어에서 공자가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겸손과 관용일 것입니다. 공자는 어질 仁자를 강조합니다.
  
   그는 이런 말로 仁을 정의합니다. 「즉, 강직하고 의연하고 질박하고 어눌함은 仁에 가까운 것이다」. 공자는 불의에 굽히지 않고 고난을 태연하게 견디며 소박한 생활을 하고 말이 많지 않고 신중한 것을 유교가 지향하는 仁에 가까운 상태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또「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고, 富者이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쉬우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곱씹어볼 만합니다.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고,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가난하면 이 세상을 원망하고 부자들을 증오하게 되며 자신에 대해서 자학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富者가 겸손해지기는 약간의 수양과 자제력만 발휘하면 되기 때문에 쉽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쉬운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 여기에 숨어 있습니다. 부자들이 먼저 겸손한 자세를 취할 때만이 가난한 사람들이 원망을 하지 않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공자의 말씀은 요즘과 같은 세태에서 더욱 절실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직자와 파산자, 그리고 부도자들이 많이 생길 때일수록 부자들은 겸손하게 처신하고 근검절약해야 가난한 사람들이 억지를 부리는 것을 막고 설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자들이 비교적 쉬운 그런 겸손함마저 보이지 못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이 사회와 질서를 원망하면서 들고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막겠습니까.
  
   論語에는 공자의 인물관을 보여주는 대목도 나옵니다. 子路가 말하기를, 「桓公이 자신의 형인 규를 죽이자 소홀은 따라서 죽었으나 管仲은 죽지 않았으니 말하자면 관중은 仁하지 못한 것이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중이 제후들을 규합하되 병거, 즉 군인들이 타는 수레를 쓰지 아니함은 관중의 힘이었느니라. 누가 그의 仁함과 같으리요」
  
   이 말을 이해하려면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제나라의 임금인 양공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환공은 동생이고 형은 규였습니다. 두 형제는 양공의 폭정을 피해서 이웃나라로 망명했습니다. 양공이 죽자 두 형제 사이에 왕권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져 동생인 환공이 승리하여 형 규를 죽였습니다. 이에 규의 신하인 소홀은 의리를 지켜 자살했지만 관중은 환공에게 잡혀왔습니다. 관중의 친구 포숙은 환공의 신하였는데 환공에게 관중을 천거하여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모시고 제나라를 일으켜 전국시대의 패권국가로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관중이 재상으로는 비록 성공했으나 모시던 규를 따라죽지 않은 것은 의리를 저버린 행동이 아니냐고 공자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공자는 관중을 변호합니다. 즉, 관중은 무력을 쓰지 않고서 여러 나라의 제후들을 규합하여 평화를 이루었으니 이런 관중이 어찌 의리가 있고 너그럽다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소인을 판단하는 잣대로 대인물을 재단해서는 안되고 정치지도자에 대한 평가에는 좀 더 넓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관중에 대한 공자의 변호에 대해서 또 물고 늘어집니다. 논어에는 자공이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관중은 규를 따라 죽지 않고 오히려 규를 죽인 환공을 돕기까지 했으니 어찌 너그럽고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서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서 제후들의 패자가 되게 하고 천하를 하나로 통일하여 바로잡았으니 백성들은 지금도 그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관중이 없었다면 지금도 우리들은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필부들처럼 조그만 信義를 위하여 스스로 개천에서 목메어 죽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런 의리를 요구하는가」
  
  공자는 여기서 아주 유연한 절개론을 보여줍니다. 허울뿐인 명분론이 아니라 실속 있는 행동철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왔는가 하는 것으로 평가되어야지 명분론적인 의리만 강조해선 안된다는 것을 공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리를 소인배의 의리라고 공자는 말합니다. 실용적 명분론을 그는 주장한 것입니다. 공자는 이처럼 신축성이 있는 인간관과 의리론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교가 후대에 오면 송나라 시대에 朱子學이 나타나 지나친 경직성을 보이는 바람에 그 朱子學을 지배적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왕조의 정치는 관념적인 명분론을 무기로 하여 당파싸움을 하다가 날이 새었습니다. 이것은 공자를 욕되게 한 짓이기도 했습니다. 공자는 말이 앞서는 관념론, 명분론, 의리론을 매우 싫어한 사람입니다. 논어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군자는 자신의 말이 행동보다 지나침을 부끄럽게 여기느니라」. 말이 행동보다 앞서면 실천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됩니다. 君子는 자신의 말이 행동보다 앞서 가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남한테 한 약속을 실천하지 못할 때는 그에 대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양심의 소유자를 군자라 일컫는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그 능력이 없음을 걱정할 것이니라」
   요컨대 자신이 가난하고 출세를 하지 못하는 데 대해서 남 탓을 하지말라는 겁니다. 공자는 또 현명한 사람이란 이런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속일 것이라 미리 경계하지 않고 남이 믿지 않을 것이라 미리 억측하지 않으면서도 일이 일어나면 잘못을 깨닫는 사람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니라」
  
   누가 나를 속이지 않나 항상 전전긍긍하지 말고 태연하게 처신하다가도 일이 터지면 그때는 신속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원인을 즉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賢者라는 뜻입니다. 바보처럼 남을 완전히 믿어버리지 말고 그렇다고 남을 늘 의심하여 초조한 생활을 보내지도 말고 中庸을 지키면서 생활하다가 일이 터지면 그때는 무엇이 잘못의 원인인지를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이런 치우침이 없고, 주견이 있는 자세를 중용이라고 했습니다. 중용은 균형감각과 온건함에 기초한 동양적 정의감인 것입니다. 공자는 그러나 무조건 인이나 덕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말이 논어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덕으로 원한을 갚는 것이 어떠하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시다면 덕에는 무엇으로 갚겠소. 直道로 원한을 갚고 덕을 덕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오」라고 했답니다. 원한에는 덕으로 갚아야 할 것이 아니라 直道, 즉 올바른 도리로써 원한을 갚고 덕은 덕으로써 갚아야 덕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원한이 있으면 사리를 엄격하게 따져서 가려야지 무조건 도덕을 갖다 대면 문제만 더 복잡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위선적인 온정론을 경계한 말입니다. 공자는 또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어찌 수고를 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충심이라면 어찌 일깨워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후배를 사랑한다면 그 후배로 하여금 고생하도록 시켜서 가르쳐주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관심을 보이고 단련을 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또 진심이 있기 때문에 깨우치면서 가르치고싶은 정열이 솟구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아랫사람들을 부리기가 좋으니라」
  
   예를 좋아한다는 것은 질서와 법률과 도덕을 지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높은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야 아랫사람들이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화되지 않은 백성을 전쟁에 내보내는 것은 곧 그들을 버리는 것이다」
   공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善人이 7년 동안 백성을 교화시키면 가히 전쟁에라도 내보낼 수 있느니라」.
  
   백성들을 교화시킨다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정신무장을 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정신무장이 안된 국민들을 전쟁터로 내보낸다는 것은 그들의 생명을 버리는 무책임한 행동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남북무력대치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며칠 전 한 국군장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저는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 우리가 북한 인민군을 主敵으로 삼고 적개심을 가져야 하는지, 왜 대한민국이 북한보다도 더 정통성이 있는지, 왜 우리가 북한을 실체로서는 인정할 수는 있지만 국가로서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인지에 대한 정리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화되지 않은 군대란 쉽게 말하면 왜 적개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모르는 군대입니다.
  
   논어의 맨처음에 나오는 말은 학문의 기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벗어 있어 먼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노여워하지 않음은 어찌 군자의 도
  리가 아니겠는가」
   공자는 그러나 배우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오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한 사상
  에 빠지기 쉬우니라」
  
   공자는 여기서 배우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구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을 하
  지 않으면 자신의 진리로 만들 수 없는 법입니다. 배운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지식을 바탕으로 한 주견을 세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주체성을 세우는 일입
  니다.
  
   배우지 않고 생각만 하는 사람은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배움이 없이 생각만 한다는 것
  은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배움이 있어야 생각의 방향과 논리가 세워지는데
  이런 안내자 없이 골똘한 생각만 하면 망상이나 공상, 그리고 환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느니라」
   아주 재미있는 말입니다. 어진 사람만이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는 말은 아주 멋진 말입니다. 어진
  사람이 미워하는 대상은 물론 惡人일 것입니다. 惡人과 惡行을 보고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
  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진 사람은 사람을 좋게만 생각하는 好人이 아닙니다.
  
  惡人을 볼 때 화를 내고 그를 증오하는 것이 없으면 그런 好人은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요사이
  종교단체나 시민단체에서 벌이고 있는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보면서 이 공자의 말을 생각해봅니다.
  
  북한동포의 비참함을 보고 동정심만 가져서는 어진 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북한동포들을 저 모양
  으로 만들어놓은 김일성 - 김정일 세습체제에 대한 증오심이 없으면 그런 사람들은 종교인으로서
  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화를 잘 내어야 성공합니다. 화를 내어야 할 대
  상을 정확하게 골라서 화를 확실하게 내는 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성공조건일 것입니다.
  
  공자는 또 말했습니다. 德不孤라 必有隣이니라. 번역하면 덕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이웃이 있느니라는 뜻입니다. 덕은 혼자서 즐기는 것이 아니고 이웃과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이며 그런 덕을 베풀면 반드시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외롭지 않다라는 뜻일 겁니다. 공자는 말했습니다.
  
   「도를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같지 못하느니라」
   道를 얻었으면 그것을 혼자서 갖고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 세상에서 써먹어야 한다는 뜻입니
  다.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나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사느니라」
  
   공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삶은 원래 정직한 것이니라. 정직하지 않아도 살아 있음은 요행이니라」
  
   공자는 인간 본연의 성품이 착하다는 性善說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생
  각됩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다 죽어야 하는데 살아 있다면 그것은 요행이라는 이 말을 꼭 들려주
  어야 할 대상이 있으니 그것은 김정일 집단일 것입니다. 김정일 집단이 건재하고 있는 것은 공자
  의 말을 빌면 요행인 것입니다. 날로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날로 인간의 욕구가 높아지고 있으며
  날로 인간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는데도 또 개혁개방만 하면 굶주림을 해결할 길이 있는데도
  자신들의 안락을 위해서 주민들을 굶겨죽이고 있는 것은 확실히 요행입니다. 그러나 요행으로 버
  티고 있는 정권이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金正日은 공자 말씀이 얼마나 무서운 예언을 담고 있는지를 알고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반성하고 회개한 뒤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정직하지 않는 자가 살아 있음은 요행이다, 이 말을 기억합시다. 감사합니다.
  
출처 :
[ 2003-01-23, 23: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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