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가족과 함께 죽은 이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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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12월 밤 강원도 산골의 외딴집에서 일어난, 이승복 일가 살해 사건의 생존자인 이승복 형(李學官)의 목격담.
  
   <그러다가 그 공비가 “야, 너는 북한이 좋니? 남한이 좋니?”하고 물어요. 승복이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이야기한 것이겠지요. 서슴없이 “우리는 북한은 싫어요. 공산당은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바로 그 공비가 ‘야~!’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승복이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순간 저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엉거주춤했는데 제 옆에 앉았던 공비가 개머리판으로 어깨를 찍어 내렸습니다. 털썩 주저앉으며 보았더니 멱살에 잡혀 버둥거리는 승복이에게 문 가까이 서 있던 놈이 칼을 들고 다가서면서 입 속으로 칼을 쑤셔 박았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죽은 승복이의 입이 오른쪽 귀까지 찢어졌다고 합니다.>
  
   이승복에게만 주의를 기울인 언론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의 두 동생과 어머니도 죽임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잊는 경우가 많다. 공비들은 잠자다가 울며 깨어난 두 동생의 다리를 들어 올려 벽에다가 머리를 패대기쳐 죽였다. 이날 그들이 죽인 네 명은 地主도, 자본가도, 부자도, 계급의 敵도 아닌 가난에 찌든 火田民이었다. 김정일이 대한항공機를 폭파 시켜 죽인 이들이 대부분 중동 건설 노동자였다는 점과 비슷하다.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위한다는 공산당이 노동자 농민을 참살하였다. 선동꾼들이 ‘악마의 변호인’이 되어 한사코 두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현희와 이승복의 말과 행동을 가짜로 몰려고 한 것도 북한 입장에서 보면 ‘가장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
   9년 전 찾았던 反共소년 李承福 기념관(평창군 용평면 노동리)은 全斗煥 당시 대통령의 특명으로 만들어진 기념관이라 그런지 좋은 자리의 좋은 시설이다. 탱크, 자연학습장 등 볼거리도 많다. 이승복군의 生家를 복원해놓았는데, 세 칸짜리 귀틀집이다. 다듬이, 화로, 이불, 쌀독 등 家具도 간단하고 설피, 짚신도 보인다. 이승복군의 집은 지금 기준으로 거의 원시생활을 한 셈이다. 이 집안은 火田에서 옥수수를 키웠다.
  
   李承福군은 이 기념관 부지 안에 있었던 속사 국민 학교 계방분교에 다니던 1968년 12월9일, 그것도 자신의 생일 밤, 외딴 집으로 들어온 무장 공비들 앞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이야기했다가 참살 당하였다. 공비들은 어머니, 두 동생도 같이 죽였다. 공비가 李 군에게 “남조선이 좋으냐, 북조선이 좋으냐”고 물은 데 대하여 李 군은 평소 배운 대로 대답하였던 것이다. 다섯 명의 공비들은 며칠 뒤 매복 중이던 공수부대원들에 의하여 전원 사살당하였다.
  
   기념관 부지 안엔 지금은 폐교된 분교의 교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李군의 교실은 1968년 상태로 복원되어 있다. 나는 왼쪽 줄 앞에서 두 번째인 이승복 군의 책상에 앉아 보았다. 李 군이 느꼈을 溫氣가 전해졌다. 앞 칠판 왼쪽엔 반공, 오른쪽엔 방첩이란 글이 적혀 있었다. 작은 풍금이 교사용 탁자 옆에 놓여 있었다. 李 군은 반공-방첩을 일상적으로 배웠다.
  
   이 校舍 바깥에는 까만 기념비가 서 있다.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반공의 꽃 승복군이 꿈을 키우던 곳
   땡 땡 땡 땡...
   운두령을 감돌며 메아리치는
   저 종소리 속에는
   정직과 용맹
   일깨워주는
   승복군의 또랑한
   목소리가 들어 있다.
  
   그가 목숨을 바쳐 우리에게
   일깨워준 자유의 소중함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피 맺힌 외침을 들을 수 있다.>
  
   한 손에 망치 들고 한 손에 총 들고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던 시절에 불렸던 ‘반공소년 이승복의 노래’가 있다.
  
   <원수의 총칼 앞에 피를 흘리며
   마지막 주고 간 말 “공산당은 싫어요”
   구름도 망설이는 운두령 고개
   새 무덤 오솔길을 산새가 운다.
  
   어린 넋 잠든 곳에
   겨레가 운다
   엎드려 절한 마음 눈물이 솟아
   바람도 길 멈추고 어루만져서
   하늘이 성이 났다. 오랑캐들아!>
  
   1968년 1월21일, 김일성이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기 위하여 특공대를 보내 청와대 습격사건을 벌였다. 그 열 달 뒤 울진 삼척 지구에 중대 규모의 무장공비들이 상륙, 눈덮인 동해안과 태백산맥 일대에선 소탕전이 벌어졌다.
   당시 동해안 레이다 기지에서 공군 졸병으로 근무하던 趙甲濟 상병은 작전 기지 상공의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조명탄이 잇따라 터지고, 1.21 사태 때 생포되었던 김신조가 비행기에서 마이크로 “귀순하라”고 방송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겨울을 보냈다.
  
   李承福 소년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조선일보 기사를, 반공분위기를 조작하기 위한 誤報였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첫해였다. 내가 편집장으로 근무중이던 월간조선 1998년 10, 11월호는 이 주장을 검증, (이동욱 기자의 심층취재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말은 분명히 있었음을 確定하였다. 참살의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이승복 군의 형 이학관씨, 그날 이학관씨로부터 “동생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하는 바람에 변고가 생겼다”는 취지의 말을 전해 들은 주민의 증언이 확보되었다. 조선일보 오보 주장자는 조선일보에 의하여 고소당하여 有罪를 확정선고 받았다.
  
   기념관 곳곳에 月刊朝鮮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승복 동상 철거하고, 교과서에서 빼고...17년간 활개친 狂氣들’이란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가 기념관 입구쪽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공비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부르짖었던 이승복 소년의 입을 칼로 찢었다. 아기인 동생은 달랑 들어 올려 벽에다가 쳐 죽였다. 같이 살던 할머니와 아버지는 다른 마을에 나가 있다가 변을 면하였다. 李군의 아버지는 정신분렬증 치료를 받고 있다. 할머니도 충격으로 정신병을 일으켜 1980년에 죽었다. 형도 4년 전에 죽었다.
  
   기념관에 붙은 이승복 글짓기 대회의 입상작도 세월의 변화를 보여준다.
  ‘국민 학교’ 시절의 입상작은 반공과 자유를 다루고, ‘초등학교’ 시절의 입상작은 김대중, 노무현 연설문과 비슷하다.
  
  부산동래초등학교 4학년 유윤희 학생의 ‘자유의 씨알’은 이렇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그 목소리가
  민들레 꽃으로 피었고
  씨알이 영글어
  하나 둘 날아갔네
  승복이가 남기고 간
  자유의 씨알
  독일장벽 무너뜨리듯
  통일의 싹 되어
  북녘 땅에도 돋아나라.>
  
   이날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구경 온 부모가 많았다. 한 40대 아주머니는 두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설명하였다.
  
  “이승복이란 훌륭한 어린이가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말하니까, 나쁜 놈들이 쳐죽였단다. 공산당은 나쁜 놈이다, 알지?”
  
   어린이들만 온 경우도 있었다. “반공?”하면서 비웃으며 지나가는 소년도 있었다.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일러준다.
   “우리 때는 말이야,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단다. 너희들은 안 배우지?”
   열 살쯤 되는 소년이 되물었다.
   “그런데 아빠, 공산당이 뭐예요?”
  
   그 순간, 서울에선 이런 소년들로 하여금 공산당을 모르도록 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생애를 바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屍身이 온갖 찬사 속에서 공산당 때문에 죽은 수많은 장병들과 애국자들이 묻힌 국립 현충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 2018-12-06, 05:3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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