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의 사상이 궁금하다!

조샛별(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현재 청와대는 임종석 비서실장를 필두로 전대협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신동호 연설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등이 전대협 출신이다. 선임행정관, 행정관 급에도 NL계열의 운동권 출신이 다수 포진해 있다.
  
  1989년 전대협 3기 의장이 된 임종석은 운동권들 사이에서 아이돌 급 인기를 누렸다. 대중 연설을 워낙 잘했다고 하는데, 전대협이 주도한 한 집회에 수배상태에 있던 임종석이 깜짝 출연해 연설을 하자, 당시 운동권이 아닌 학생들까지 몰려가 구경했을 정도였다. 신출귀몰하게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1년 넘게 도피해서 그에겐 홍길동에서 따온 ‘임길동’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가 전대협 의장으로 있던 89년은 임수경의 방북 등 폭력적 방식의 학생운동이 극심했던 해다. 당시 최루탄을 쏘고 전경들을 앞세워 대응하던 경찰에 맞서기 위해, 전대협은 학교별로 ‘사수대’를 조직하기도 했는데, 시위 때 가장 앞장서서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로 공격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비상시에는 전대협 의장 등을 호위하는 ‘호위무사’역할도 했었다. 전남대의 오월대, 조선대의 녹두대가 전투력이 높기로 유명한 사수대였다. 아직도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면, 당시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거리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쇠파이로 땅을 두드리는 이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게시하고 있는 글을 꽤 찾아볼 수 있다.
  
  전대협 3기 의장이었던 임종석은 89년 6월 임수경 방북을 주도했다. 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질투한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가 주도해온 행사인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개최를 유치한다. 북한은 이 행사를 사상최대 규모로 열기로 하는데, 15만 명을 수용하는 5.1능라도경기장도 이때 만들어졌다. 북한은 이 행사에 남한 청년들도 참여시키기로 하고, 전대협 측에 평양 축전 참석을 제안했다. 이 초청장은 조선학생위원회 → 조선(북한)적십자사 → 대한적십자사 →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 전대협의 경로로 전달되고 전대협 의장 임종석의 주도로 '평양축전 참가 준비위원회'를 두어 축전 참가를 준비한다.
  
  당시 일시적인 남북 간 화해 분위기 속에 남한 정부는 축전 참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듯 했지만, 문익환 목사의 밀입북 사건을 기점으로 ‘북한의 반미, 정치 선전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참석을 불허한다. 전대협은 임수경을 밀입북 시키기로 결정했고, 임수경은 동베를린, 모스크바를 거쳐 89년 6월 30일 평양 도착에 성공한다.
  
  운동권들 사이에서 ‘학생운동사에 길이 남을 대첩’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있다. 임수경 방북을 하루 앞둔 1989년 6월 29일, 전대협은 한양대에서 ‘평양축전 결사 참가 결의대회’를 열었다. 정부는 집회를 불허하고 불법집회를 막기 위해 한양대를 원천봉쇄했다. 29일,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약 5천명의 학생들이 한양대 진입에 성공하는데, 당시 운동권들은 ‘뚝섬대첩’이라 불렀다.
  
  2호선 한양대역 바로 전 역이 ‘뚝섬’역인데, 전철 운행을 가로막고 철로를 따라 한양대까지 이동해 한양대 진입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날 일을 자랑스럽게 게시하고 있는 게시물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전대협 3기 한양대 집회에서 전설의 뚝섬대첩으로 한양대에 집결했고, 한양대가 원천봉쇄 되자 수천명의 학생들은 여러 지하철역에 나누어서 같은 지하철을 타고 한양대 전 뚝섬역에서 동시에 내려 지하철을 가로막고 지하철로를 따라 한양대까지 뛰어가고, 이 시간에 맞추어 한양대에서 녹두대와 오월대가 전투를 벌여 경찰의 시선을 돌리는 사이 수천명의 학생들이 한양대 진입에 성공함. 당시 임종석 의장이 임수경의 평양방북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게 됩니다.”
  
  29일 한양대 집회에서 임종석은 임수경의 평양방북을 공식 발표한다. 그 다음날 정부는 대규모 경찰병력을 동원해 한양대 학내로 들어가 이들을 해산시킨다. 전대협은 격렬히 저항하면서 버텼는데 임종석을 비롯한 전대협 지도부는 한양대를 빠져나가는데 성공한다. 좌파 성향의 인터넷 게시글에서는 이날의 ‘성공담’을 마치 일제 때 독립투사들의 투쟁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전대협 간부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대규모 전투병력으로 한양대 학내진입을 했고 각 구역별로 사수대가 방어했지만 한양대 병원쪽의 서총련, 경인총련쪽이 뚫리면서 학생들은 남대협도 할 수 없이 전대협 간부들을 호위하여 한양대 인문관으로 대피하게 됩니다...결국 지도부는 정면돌파를 결정하게 되고...건물옥상에서는 위장을 위하여 수십 명의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사이 오월대, 녹두대가 삼엄한 포위망의 전경중대로 돌진하면서 길을 터주고, 이미 학내외 주변에 수 만명의 경찰병력이 포진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인근 가옥의 돌담과 지붕을 넘어 퇴로를 확보합니다. 또 이들을 쫓기 위해 백골단(당시 전투경찰)과 체포조들이 따라다니르라 수많은 가정집들의 옥상과 기와가 거의 초토화될 지경이었다고 하지요. 결국 전대협간부들과 수천 명의 학생들이 한양대 탈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아마 학생운동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전대협 지도부는 거의 NL(민족민주) 계열, 그 중에서도 주사파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임수경 방북 사건 이후 학생 운동권은 NL과 PD(민중민주) 사이의 논쟁으로 분열된다. 90년대를 전후해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노동자에 의한 집권’을 주장했던 PD세력은 약화되고 NL주사파가 학생운동을 주도한다. 93년 한총련으로 조직을 전환하지만 이들의 무분별한 ‘친북노선’과 과격투쟁은 오히려 많은 학생들의 비난을 사게 되고, 이후 과거와 같은 대규모 학생운동 조직의 활동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사파 운동권의 핵심 세력들이 92년, 97년 대선 과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지지’를 선언하며, 대거 제도권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전대협 출신 인사는 2006년 당시 열린우리당 내 주요 세력을 형성했다. 전대협 1기 출신인 이인영·김태년·우상호, 2기 출신인 오영식·백원우·정청래·최재성, 3기 출신인 임종석·이기우·한병도·복기왕 등이 전직 또는 현직 국회의원으로 있었다. 1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임종석 비서실장을 포함, 많은 전대협 핵심 간부들은 ‘신분 세탁’을 거쳐 현재 이 나라의 지도 세력이 되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2017년 국정감사에서 ‘주사파가 맞느냐’는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의 질문에 대해, ‘잘못 살아오지 않았다’고 버럭 화를 내며 답변을 회피했다. ‘사상전향’을 인정한 사실도 없다. 비서실장이 되기 전까지 그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의 이사장직을 맡았다. 이 단체는 2002년 당시 임종석 국회의원을 대표 제안자로 북한 측의 ‘민족화해협의회(이하 민화협)’ 및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과 남북 경제문화교류를 협의하며 태동했다. 경문협은 2004년 9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통일부로부터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등록허가를 받아 북한과 경제 및 문화 협력을 추진했다.
  
  2005년 3월에는 북측의 민화협 및 '저작권 사무국'과 금강산에서 실무협의를 진행해 저작권 양도에 합의한다. 2006년 3월에는 통일부로부터 사회문화협력사업자로 승인 받아 북측 저작권의 대리・중개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이후 북한의 ‘조선중앙TV’ 영상을 이용하는 KBS, MBC 등 방송사로부터 각각 저작권료를 받아 북한 저작권 사무국에 송금했다.
  
  2005년 이후로 북한에 전달된 저작권료는 총 7억 9천만원 상당이며,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故 박왕자씨) 사살 사건 이후 對北 송금이 중단됐다. 이후 방송사 등으로부터 받은 저작권료는 법원에 공탁해 왔는데, 2009년부터 현재까지 법원에 공탁된 금액은 총 16억 5272만 2624원이라고 통일부는 밝혔다.
  
  NL, 주사파는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본다.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다고 믿으며, 북한은 항일투쟁-친일청산-반미자주의 길을 걷고 있다고 믿는다.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치적 자주, 경제적 자립, 군사적 자위를 갖춘 나라’라고 평가한다.
  
  반면 남한은 미 제국주의에 의해 군사적으로 강점당하고 있는 半식민지로 보고, 남한의 경제체제도 발전할수록 더욱 미국 자본주의 경제에 종속되는 ‘半식민지 자본주의 경제’로 본다. 이들은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평화협정 체결, 연방제 통일 등을 주장하며 사실상 북한 대남노선을 그대로 따랐다.
  
  임종석 실장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 실세로 평가되는 지금, 그의 ‘사상’이 매우 궁금해진다.
  
[ 2018-12-25, 18: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뱀대가리     2018-12-27 오후 3:49
태어나지 말었어야 할 대한민국의 청와대에 지금 똬리를 틀고 있는 임종석등 그리고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있는 이 사람들, 지금도 자신들의 지난 과거에 대한 참회를
한적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대한민국의 정권을 검어쥐고 있단 말인가?
70여년간 인민을 굶주리고 교화소에서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가고 공대총살을 당하는
현상을 가족들이 제일 앞에서 보게 한단다. 이런 최악의 지옥을 형성한 악마가 김가
삼대다 이런 넘들을 지금도 한없이 숭앙하는 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를 향해 굴러가고 있는가?
   白丁     2018-12-26 오전 1:59
설마 진짜로 궁금해서 한 말은 아니겠지…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