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선정 20세기의 20대 인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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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선정 20세기의 20대 인물(3)
  -간디, 벤 구리온, 毛澤東, 胡志明
  
   엘리너 루스벨트는 프랭크린 루즈벨트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는 남편과 함께 20세기의 위대한 지도자 20명중의 한 사람으로 뽑혔습니다. 타임이 미국 언론 매체이니 미국중심으로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엘리너 루스벨트는 대통령의 영부인이란 위치를 활용하여 여자와 약자들을 위하여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남편에게 종속된 여성상을 탈피하여 남자와 꼭 같이 사회에 대한 발언과 참여를 요구하고 그런 활동가들을 도왔습니다. 그가 이런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남편인 플랭크린 루스벨트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엘리너 루스벨트는 남편으로부터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1948년에 유엔이 인권선언을 발표하도록 한 것도 엘리너 루스벨트였습니다.
  
   인도의 독립운동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도 20세기의 20대 지도자중 한 사람으로 꼽혔습니다. 그의 비폭력 저항운동은 폭력으로 인도 독립운동을 억압하려는 세력들의 양심을 직격하여 그들의 무기를 무력화시켰습니다. 비폭력 운동이 폭력운동보다도 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간디였습니다.
  
  그는 힌두교도였는데 이슬람 교도들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다가 광신자에 의하여 암살되었습니다. 간디는 나치즘과 같은 폭력집단에 대해서도 비폭력 운동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만 나중엔 이 주장을 수정했습니다. 간디의 비폭력 운동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독립운동과정에서는 많은 유혈사태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태에 대해서 간디는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간디에 대한 평가는 그가 이룩한 것보다는 그가 하고자 했던 것을 기준으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의 20대 인물 가운데는 나라를 독립시키고 세운 인물들이 많습니다. 간디, 이스라엘의 건국의 아버지 벤 구리온, 그리고 毛澤東과 남아프리카의 만델라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독립국가를 만드는 지도자가 가장 위대한 지도자란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李承晩 대통령 같은 분이 바로 그런 지도자일 것입니다.
  
  벤 구리온은 나치에 의한 유태인학살의 소용돌이 속에서 2천년만에 처음으로 유태인들을 위한 국가를 세우는 데 앞장섰고 중동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독립을 지키기 위하여 주변 아랍 국가들과 여섯 차례의 전쟁을 했는데 한번도 외국군대의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금전적인 도움은 받았지만 외국군대가 이스라엘에 주둔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우리의 국방은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이런 자주국방 의식이 이스라엘을 당당한 나라로 만든 것입니다. 원래 유태인들은 머리는 좋지만 군사적 전통이 약해서 항상 핍박만 받고 살면서 자신들의 나라를 갖지 못했습니다. 밴 구리온은 이런 고질적인 유태인의 병폐를 뜯어고치고 강력한 지도력을 확립함으로써 유태인의 민족적 체질을 바꾼 사람입니다.
  
  毛澤東이 20대 지도자로 뽑힌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잠자는 사자 중국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당하여 나라가 산산이 쪼개진 상태에 있었는데 毛澤東은 농민군을 조직하여 중국의 독립과 통일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세계 인구의 약4분의 1을 독립국가의 국민으로 만들었다는 점 하나만으로써도 그는 위대한 지도자임이 분명합니다. 毛澤東의 위대성은 그의 전략의 자주성, 주체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대부분의 공산주의자들은 레닌의 방식대로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정권을 잡으려고 했는데 毛澤東은 농민을 혁명의 主力軍으로 보았습니다. 공산주의의 교리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현실에 맞게끔 수정한 것입니다. 毛澤東도 처칠처럼 언어의 힘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정치 슬로건과 전쟁교리는 간단명료한 한자어를 통해서 전략의 핵심을 전해주곤 했습니다.
  
  모택동은 스탈린처럼 死後에 격하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鄧小平 덕분이었습니다. 鄧小平은 모택동에 의하여 숙청되어 죽을 고생을 하다가 周恩來의 도움을 받고서 재기한 사람인데 모택동에 대한 평가를 아주 긍정적으로 하도록 하였습니다. 즉, 모택동이 잘한 점은 70%이고 못한 점은 30%라고 했습니다.
  
  모택동이 못한 점은 인민공사를 만들려다가 중국 경제를 망친 일과 문화대혁명을 주도하여 수천만 명의 인명을 희생시킨 일입니다. 등소평은 모택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중국의 단결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 감정으로 말한다면 부관참시를 해도 시원치 않을 일이지만 등소평은 역사를 긍정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국가를 단합시키고 내분을 막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모택동이 20대 지도자로 뽑힐 수 있었던 것은 등소평의 관용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李光耀는 20세기 동아시아의 3대 지도자로서 등소평과 일본의 요시다 수상,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을 뽑은 적이 있습니다.
  
  월남의 胡志明도 20세기의 20대 지도자로 뽑혔습니다. 胡志明은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결합시켰고 게릴라 전략을 완성시킨 인물로 평가되었습니다. 胡志明이 지도한 월남은 20세기에서 3대 강국과 싸워 모두 이긴 위대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 미국, 그리고 중국과 대결하여 자주를 지킨 나라가 월남이고 胡志明의 지도력이었습니다. 호지명은 청렴하고 단순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그런 솔선수범으로써 월남 인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민심을 거대한 무기로 승화시켰습니다. 미국은 월남전에 50만 대군을 보냈지만 호지명은 수천만의 인민을 전사로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월남전에서 5만 명의 전사자가 나니까 손을 들어버렸는데 호지명은 3백만의 전사자를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인민들을 민족주의로 무장시킴으로써 전인민을 혁명의 예비군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호지명 같은 사람이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다면 남한은 공산화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월남은 통일을 완수한 뒤 공산주의에서 탈피하여 개방정책으로 나아가 경제를 발전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호지명은 공산주의를 이용하여 독립운동을 한 것이지 공산주의란 이데올로기에 맹목적으로 종속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호지명이야말로 주체적인 공산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김일성과 김정일은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의 낡아빠진 교리를 버리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한 수구세력이자 사대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 :
[ 2003-01-24, 16:3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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