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 도시 국가 안도라 紀行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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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는 동서로 뻗은 피레네 산맥이 앉아 있습니다. 3000미터를 넘는 봉우리들이 이어진 약400킬로미터의 큰 산맥입니다. 유럽에서는 알프스 다음 가는 크기입니다.
  
  피레네 산맥은 벽처럼 프랑스와 스페인을 가르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인가 누군가는 '피레네를 넘으면 아프리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산맥 때문에 프랑스와 스페인의 문화, 역사, 지리, 사람들이 매우 다릅니다. 아프리카와 아랍의 영향이 이 피레네 산맥을 넘지 못하고 스페인에 머물렀습니다.
  
  저는 작년 9월말에 프랑스-스페인-안도라를 다녀왔습니다. 안도라라고요?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모임에 가며 가끔 묻습니다. 안도라에 갔다 온 분이 있으신가요라고. 지금까지 단 한 분만 '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안도라에 갔다 오면 일단 그 비용을 뺄 만큼 으시댈 수 있습니다. 저는 월간조선-한진관광 공동 주최 단체 여행에 동행하여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거쳐 안도라로 향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관광버스를 빌어 타고 한 네 시간 정도 피레네 산맥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길을 따라 달리는 기분과 주변 경치는 거창했습니다. 피레네 산맥을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종단하는 이 길은 2800 미터 고개를 넘어가는 도로입니다. 터널과 굴곡이 많지만 잘 관리되고 있어 위험하지 않습니다.
  
  한 네 시간 달려 도착한 안도라는 주변이 3000미터 되는 連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발달한 작은 나라입니다. 안도라의 넓이는 약500평방킬로미터이고 수도인 안도라 라 벨라는 해발 1029미터에 계곡을 따라 생긴 쇼핑 거리입니다.
  
  서울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山中국가는 인구가 약6만 명입니다. 관광객들이 연간 약800만 명이나 찾아옵니다. 주로 면세품을 사려는 프랑스, 스페인 사람들입니다. 이곳 사람들의 공용어는 바르셀로나가 속한 카타루니아語입니다.
  
  안도라의 역사는 오래 됩니다. 서기 803년 프랑크의 샬레망 大帝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이 지역을 탈환했습니다. 그는 이 안도라 계곡 땅을 카타루니아의 귀족에게 떼어주었고 나중에 관할권은 주교에게 넘어갔습니다.
  
  13세기에 프랑스의 귀족도 안도라의 소유권을 주장하여 분쟁의 해결책으로 스페인의 주교와 프랑스의 귀족이 안도라를 공동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산중도시국가는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993년에 주민 투표에 의하여 의회가 설립되면서 안도라는 독립민주국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안도라는 유엔 회원국이고 유럽의회의 회원이지만 유럽공동체의 정회원은 아닙니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 안도라는 늦가을 기분이었습니다. 기온은 서늘하고 하늘은 맑고 공기는 투명했습니다. 장난감 도시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중심 거리 주변은 상점가인데 쇼핑 객들이 붐볐습니다. 안도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유럽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이 안도라 주변은 유럽에서 제일 가는 스키장이 많이 모여 있고 호수도 수십 개나 됩니다. 등산이라기 보다는 하이킹을 하기 좋은 곳입니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꼭대기까지 도로가 나 있기 때문입니다. 돌산이 많아 꼭 달나라 표면 같습니다.
  
  안도라 중심 거리를 흐르고 있는 계곡물을 따라 한 10분 거슬러 걸어올라가면 칼데아라는 유럽에서 가장 큰 온천 시설이 있습니다. 이곳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거대한 접시 모양의 욕탕에서 뚱보 남녀들이 바글바글 하는 것이 꼭 조개탕을 끓이는 듯했습니다(실례의 표현이지만).
  
  점심을 먹고 우리 일행이 탄 버스는 뱀길 같이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피레네 산맥의 능선(해발 2800미터)을 넘어 프랑스로 들어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하늘길을 오르는 듯했습니다. 피레네 산맥을 버스로 넘어가면서 눈 아래로 펼쳐지는 계곡과 산기슭과 봉우리들을 감상하는 맛은 하나의 황홀경이었습니다. 프랑스의 항공산업 중심도시 툴루스까지 약 네 시간이 걸렸습니다. 울산바위 같은 암벽과 한계령 같은 고개, 천불동 같은 계곡, 그랜드 캐년 같은 협곡을 수십개나 지났습니다.
  
  평지에 당도하니 어두워졌습니다.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부르는 노래방. 두 시간 동안 동요에서 마이 웨이까지 버스 안을 물결친 잔잔한 노래들은 피레네를 넘어온 감동을 가라앉히고 있었습니다.
  
  
출처 :
[ 2003-01-24, 23: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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