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스탈린의 첩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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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사이 문재인 정권이 하는 일을 보노라면 머지 않아 김일성 세력의 抗日운동을 부각시켜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과 함께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겠다'는 말이 꺼림칙하다.
  그런데 김일성은 항일활동을 한 적은 있지만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싸운 적은 없다. 그는 중국공산당과 소련공산당을 위하여 복무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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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은 소련 비밀경찰(NKVD)의 요원이었다!"
  
  KGB 고위 간부의 증언. 김일성의 정체를 잘 아는 KGB는 그를 '배신감과 경멸감으로 대하였다'. 베리아가 그를 소련의 하수인으로 선택, 스탈린의 재가를 받았다는 추가 자료도 러시아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사실은 한국 역사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다.
  
  趙甲濟, 趙成豪
  
  만약 이승만이 CIA의 요원으로 복무중 미국 정부에 의하여 뽑혀 미국을 위하여 일하기 위하여 한국에 돌아와 미국이 시키는대로 대한민국을 세웠다고 해도 한국의 교과서들은 이 사실을 싣지 않았을까?
  
  
   한국 현대사의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사건은 김일성이 소련군 대위 복장을 하고 북한에 나타나 소련군의 괴뢰로 복무하면서 북한정권을 만들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을, 한국의 반역적 역사 교과서는 철저히 숨겼다. 오히려 그의 항일운동을 과장하고, '연해주에서 항일유격대를 이끌었다'는 날조까지 하였다(김일성은 연해주에서 소련군 장교로 근무하였으므로 유격대를 지휘할 수도, 항일활동을 할 수도 없었다).
  
   올레그 고르디에프스키(Oleg Gordievsky. 77세)는 서방세계가 포섭한 가장 고위직 소련 정보기관원이었다. KGB 요원이던 그는 1968년 소련군이 체코를 침공,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본 뒤 실망하여 영국 정보기관에 협력하기 시작, 12년간 최고급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1982년부터 3년간은 런던 주재 소련 KGB 책임자였다. 고르디에프스키는, 고르바초프가 안드로포프 및 체르넨코 서기장의 연속 사망 이후 권좌에 오르기 한참 전에 그의 집권을 예측하는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NATO가 ‘에이블 아처 83’이라는 군사훈련을 하였을 때 소련 지도부가 이를 핵공격으로 오해한 사실도 알려주었다. 1986년 중반에 영국으로 탈출한 그는 영국 정부의 보호 아래 공개적 활동을 하고 있다. 여러 권의 책을 썼다.
  
   크리스토퍼 M 앤드루와 함께 쓴, <본부로부터의 지시문 추가: KGB의 세계적 활동에 대한 최고 기밀 파일>(More 'Instructions from the Centre': Top Secret Files on KGB Global Operations, 1975-1985) 이란 책 78페이지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본부가 정보활동을 하기 힘든 세 공산국가는 알바니아, 중국, 북한이었다. 김일성이 다스리는 新스탈린 경찰국가의 치밀한 보안은 평양의 KGB 지부의 활동을 북경처럼 어렵게 만들었다. 1970년대 김일성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강화하자 모스크바는 경계심을 갖고 관찰을 하였다. 1973년 소련은 북한에 대한 무기 수송을 중단시켰으므로 중국은 주된 무기 공급국이 되었다. 2년 뒤 김일성은 북경과 부카레스트를 방문하면서 모스크바를 빠뜨렸다. KGB는 이런 김일성을 배신감과 경멸감으로 대하였다. 김일성은 영명한 빨치산 작전으로 1945년 8월에 그의 조국을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킨 저항전쟁의 영웅으로 행세하였다. KGB 본부는, 그러나, 김이 1945년 8월엔 한반도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북한지역이 소련군에 의하여 해방되고 있을 때 김은 러시아에서 赤軍의 대위 겸 NKVD(KGB의 前身)의 요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While Korea was being liberated by Soviet troops, Kim had been serving in Russia as both a lieutenant in the Red Army and an agent of the NKVD(the predecessor of the KGB).>
  
   KGB의 고위 간부에 의한 이 증언은 충격적이고 신빙성이 높다. 김일성이 소련 장교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비밀경찰 요원이었고 그가 소련군의 괴뢰로 선택되는 데도 베리아의 역할이 컸다는 주장이 러시아에서 나온다.
  
   1940년 만주에서 소련의 연해주로 피신한 김일성은 88여단에 편입된다. 88여단은 소련군 소속이 아니라 악명 높은 소련의 비밀경찰 두목 베리아가 지휘하던 내무인민위원회(NKVD) 소속 부대였다. 일본이 항복한 이후 소련은 북한에서 소련의 이익을 위하여 복무할 조선인을 찾고 있다가 김일성에 착안하였다. 소련군 극동군 제2방면군 사령부가 1945년 8월 말이나 9월 초에 김일성을 불러 심사한 기록이 남아 있다. 사령관 푸르카예프 대장과 군사위원 쉬킨이 김일성과 나눴다는 대화록은 소련 국방부 戰史 연구소에서 근무한 가브릴 코로트코프가 쓴 <스탈린과 김일성>에 나온다.
  
   -당신은 조선인인가?
   -예
   -당신은 평양 남쪽 지방에서 태어났나?
   -예
   -당원인가?
   -예, 그렇습니다.
   -가족사항은?
   -기혼이며,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은 赤軍에서 계속 근무하길 원하는가?
   -예,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북한에 일하러 가라고 제안한다면?
   -세계혁명 과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면 항상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주 훌륭한 대답이었소.
   (김학준 ‘북한의 역사’ 1권에서 재인용, 서울대학교출판부)
  
   코로트코프의 책에 따르면 극동군총사령부가 김일성을 추천한 서류는 베리아에게 올라갔다고 한다. 베리아는 “좋다”고 말한 뒤 스탈린에게 보고하였다. 스탈린은 김에 대한 보고서에서 <의지가 있으며 명예를 존중하고 군사업무를 알고 좋아하며 부하를 통솔할 능력을 갖추고 있음>이란 평가에 만족하였다고 한다.
  
   <1945년 9월19일 김일성 일행을 태운 (소련 군함) 푸카초프 호가 원산항에 도착하였다. 김일성은 소련군 대위 복장을 하고 있었고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악수를 하면서 "김성주입니다"라고 인사하였다. 그의 왼쪽 가슴에는 赤旗훈장이 달려 있었다.>(孫世一, '이승만과 김구', 제6권)
  
   소련비밀경찰의 조선인 요원이 스탈린의 노리개로 간택되어 한반도에 등장한 날, 민족의 재앙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정권의 수립도 스탈린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 감독한 것이다. 6.25 남침도 스탈린의 지원과 계획 아래서 이뤄졌다. 김일성의 본질을 잘 아는 건국 세대는 북한정권을 괴뢰, 또는 北傀(북괴)라고 불렀다. 李承晩은 김일성이란 이름을 거의 입에 담은 적이 없다. 김일성을 조종하는 이가 스탈린이라고 믿었으므로 김일성을 비판해야 할 때는 스탈린을 상대로 했다.
  
   반면 이승만은 美 국무부의 親蘇派로부터 견제를 받아 해방을 맞았는데도 귀국이 늦어졌다. 한국의 민심이 이승만을 갈구하는 것을 눈치 챈 미 군정 당국의 요청으로 귀국이 이뤄졌다. 김일성은 소련에 업혀서 북한에 들어오고, 이승만은 진짜 민중이 불러들인 차이가 있다. 김일성은 10대 중반부터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중국공산당에 들어가 만주에서 抗日빨치산 활동을 하였으나 日軍에 쫓기다가 1940년엔 소련 지역으로 넘어가 88여단 소속 소련군 장교가 되었다. 그는 조선과 너무 오래 멀어져 있었다. 소련군과 중국공산당을 위하여 복무하느라고 愛族 애국심도 잊었을 것이다. 그가 스탈린에 의하여 선택이 되고 소련군에 업혀서 들어왔을 때는 의식구조가 이방인이었다. 김일성이 우상숭배와 주체사상이란 변태적인 통치술을 내세우게 된 것도 자신의 출신이 소련의 괴뢰였음을 숨기려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승만이 美 CIA 비밀요원으로 복무중 미국 정부에 뽑혀 한국에 돌아와 미국이 시키는대로 대한민국을 세웠다고 해도 한국의 교과서들은 이 사실을 싣지 않았을까?
  
   김일성이 소련군의 대위였다는 치명적 사실을 학생들에게 숨긴 교과서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을 위하여 복무한다고 간주해야 안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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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교과서는 이스라엘 교과서가 히틀러를 가르치듯이 김일성의 악행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사실대로 공정하게 써야 하고 과장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좌편향 교과서는 북한 교과서의 영향을 받아 김일성에게 불리한 점은 덮고 그의 우상화에 동참하고 있다. 보천보 습격 사건을 일제히 실으면서 '보천보 전투'라고 과장하고, 김일성이 소련 정보원(NKVD 요원) 역할을 충직히 하던 시절 항일 유격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소련은 독일군 하고 싸우는 데도 힘이 부쳐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더구나 두 나라는 불가침 조약을 맺은 상태였다. 소련의 이런 외교 정책을 무시하고, 일개 정보원이 항일유격대를 이끌고 일본과 싸웠다는 동아출판 교과서의 記述은 소설 수준이다.
  
   김일성 북한 해방 작전에 대하여 現行 북한 중학교 4학년용 '혁명력사 1' 교과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최후결전의 돌파구를 열어놓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
   34(1945)년 8월9일 조선인민혁명군 전 부대에 총공격명령을 내
   리시였다.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일제
   히 조국에로의 진격을 개시하였다. 간백산 밀영에 집결되여 있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작전계획에 예견된 도시와 마을들을 련속 해방하면서 공격을 확대해
   나갔다.
   두만강 연안에 집결하였던 부대들은 놈들이 《난공불락의 방어
   선》이라고 장담하던 국경요새를 순식간에 돌파하고 경원, 경흥일대
   를 해방한 다음 웅기일대로 공격해나갔다. 한편 바다로 진격한 부대들은 웅기에 상륙한 다음 청진방향으로 진격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국내에 파견되여 활동하던 소부대들과 정치공작
   원들은 인민무장대들과 무장봉기조직들, 광범한 인민들을 전인민적
   항쟁에로 불러일으켰다. 라진인민무장대는 놈들이 오래동안 품들여 건설해놓은 해군기
   지가 있는 라진을 해방하기 위한 전투를 벌렸다.
   전국 도처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진격에 합세하여 무장항쟁을 일으켰다. 청진, 길주, 성진(김책)지구의 무장대들은 적 패잔병들을 소탕하고 공장들을 틀어쥐였으며 경찰기관들을 짓부시였다.
   안팎에서 얻어맞고 녹아난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작
   전이 개시된 지 1주일만인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간악한 일제의 식민지통치는 무너지고 우리 나라는
   해방되였으며 항일무장투쟁은 드디여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은 강대한 일제
   와 맞서 싸워 이긴 간고하고도 장기적인 혁명투쟁이였다.>
  
   물론 이건 소설이다. 하지만 좌편향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의 영웅이고, 연해주에 가서도 항일유격대를 이끌었다고 믿고서는 소설을 사실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 2019-03-10, 16: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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