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만 명 구원...서독의 도덕적 결단이 이뤄낸 통일
2019년 여름 함흥 지역 굶주리는 꽃제비를 찾아 도울 수 없다

金成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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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될 때까지 서독이 끝까지 동독을 지원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독일은 한국과 다르다. 서독은 오직 동독 붕괴를 위한 지원만 했었다. 이른바 3불(不) 원칙이다. 동독이 원치 않으면 주지 않았고, 투명성(透明性) 없이는 주지 않았고, 변화(變化)하지 않으면 주지 않았다. 한국의 인도적 지원처럼 무조건·무작정·무차별적 지원은 없었다.
  
  한국은 98년 ~ 2007년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69억5천만 달러, 당시 국제 곡물가격(옥수수 기준)으로 환산하면 북한의 부족한 식량을 40년 이상 살 수 있는 금품을 줬었다. 매년 북한이 국제기구 등에 요청하는 부족분이 100만t이고 이를 사는데 1억5천만 달러 가량이 드니, 69억5천만 달러면 46년치 이상의 식량을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 천문학적 금품을 주고도 정치범은커녕 국군포로·납북자 한 명도 데려오지 못했다. 개혁 개방도, 인권 개선도 이루지 못했다. 북한주민은 한국의 TV 시청은 물론 왕래도 못한다.
  
  서독의 ‘동방정책’은 단순한 화해·협력 정책이 아니다. 공산주의 동독의 변화(變化)가 전제돼 있었다. 동독 정권과 주민을 나눴다. 그를 통한 ‘인권 개선’과 ‘개혁·개방’이 목표였다. 돈을 주고 자유를 사 오는 서독의 프라이카우프(Freikauf)는 절정판이었다. 62년~89년 사이 동독이 억류한 정치범 3만4천여 명과 가족 25만 명, 총 28만4천여 명을 서독으로 데려왔다. 무려 28만여 명이 자유를 얻었다(통일연구원 통계).
  
  독일의 통일은 서독의 이 도덕적 결단에 대한 하늘이 내린 상급과 같았다. 분단 기간, 동독주민은 서독 TV를 시청하고 왕래하며 통일을 꿈꿨다. 동독 영토 한 가운데 위치한 서베를린은 서독을 알리는 창구가 됐었다.
  
  서독의 지원은 투명성(透明性)을 지켰다. 서독이 원하는 시기, 원하는 대상, 원하는 품목을 줄 수 있었다. 한국은 완전히 다르다. 2019년 여름 함흥 지역 굶주리는 꽃제비를 찾아 도울 수 없다. 모든 지원은 북한당국으로 집결된다. 돌고 돌아 깔때기처럼 북한정권·북한체제로 흘러간다. 그런데 인도적이라니.
  
  [북한주민 계속 죽게 하는 인간적 지원]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좋은 건 아니다. 소위 인도적 지원, 인간적 지원은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얼어 죽는 주민을 살리지 못한다. 군(軍)과 당(黨) 즉 북한정권 특권층과 관리층이 독식한다. 결과적으로 삼대(三代)세습·주체(主體)정권·우상(偶像)체제 시스템을 유지·연장·강화한다. 북한주민을 계속 맞아 죽고 얼어 죽게 만든다. 북한에서 죽는 사람을 막으려면 ‘정치범수용소 해체 운동’부터 해야 옳다.
  
  소위 인도적 지원, 인간적 지원이 굶주린 사람에 일부 간다 해도 결과는 똑같다. 체제지원·정권지원이 된다. 군(軍)과 당(黨)이 먹고 남은 일부는 충성도(忠誠度)에 따라 일반 주민에 나눠진다. ‘장군님 하사품’이다. 한국에서 온 물품인 걸 알아도 장군님 은덕(恩德)과 무용에 감동한 남한의 진상품 정도로 선전된다. 역시 북한의 주민이 아닌 정권을 살린다.
  
출처 : http://libertyherald.co.kr/
[ 2019-05-15, 01: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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