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밥상을 뺏기는 노인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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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대 노부부가 힘이 빠진 표정으로 법정 앞 복도의 벽 아래 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동생이 형의 이름으로 빚을 가득 지고 사라져 버렸다. 그 부인이 내게 간절한 어조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부 모두 초등학교 선생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했어요. 그런데 시동생이라는 사람 보증을 서 줬다가 부부가 받은 퇴직금을 날렸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또 시동생이 형의 이름으로 빚을 지고 갔네요. 남편이나 저나 둘 다 칠십이 넘은 노인이고 몸이 아파요. 시동생 때문에 우리 부부가 더 이상 살아갈 생활비도 없어요.”
  
  그들 부부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평생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저축을 해도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노후 파산을 면하지 못한다. 옆에 있던 병색이 가득한 남편이 아내의 말이 못마땅한지 한마디 한다.
  
  “그래도 동생인데 어떻게 합니까? 고통을 나눠야죠.”
  나는 뭐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하다가 한마디 내보냈다.
  “그렇게 하는 게 인간인 거죠.”
  
  그들 노부부는 삶의 가파른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채권자는 구십대 노인이었다.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이 ‘부우’하고 떨렸다.화면에 이름이 없는 번호가 떴다. 전화를 받아 보니 졸업하고 몇십 년 보지 못했던 고교 동창이었다. 저녁 무렵 사무실을 찾아온 그 친구가 낭패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평생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노후에 우리 부부가 살아갈 돈을 은행에 두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옛날 회사 동료가 찾아와 한 달에 4% 이자가 나오는 좋은 사업이 있다는 거야.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3천만 원을 줘 봤지. 이자가 또박또박 입금되는 거야. 그 친구가 몇 달 후에 오더니 이번에는 한 달에 5% 먹을 수 있는 물량이 나왔다면서 어떠냐고 하더라구. 재벌그룹 방직회사에서 원사를 생산하는데 검사에서 불량으로 판정된 물건을 받아 업체에 넘기면 이익이 쏠쏠하다는 거야. 은행예금에서 2억 원을 빼줬지. 이번에도 정확히 이자가 나왔어. 그 친구가 몇 달 후에 다시 오더니 이번에는 수익률 7%짜리 사업이 생겼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은행에 맡겨두었던 돈을 다 빼서 5억 원을 줬지. 그랬더니 그 재벌그룹 방직회사에서 원사생산을 중단했다면서 돈을 안 줘.”
  
  오랫동안 변호사를 해왔던 직감으로 그 친구는 사기를 당한 것 같았다. 아마도 그 돈을 다시는 찾기 힘들 것 같았다. 법으로 해도 그들은 이미 재산을 빼돌렸을 게 틀림없다. 동물의 왕국처럼 인간세계에도 먹이사슬이 있는 것 같다. 잡아 먹히는 양 같은 존재도 있고 여우나 하이에나 같은 부류가 있다. 그들을 잡아먹는 또 다른 포식자들도 있었다. 돈 있는 노인들은 잡아 먹히는 존재였다. 젊은 시절 땀을 흘리고 성실하게 살았어도 늙어가면서 약해진다. 더러 부모한테 빌붙어 사는 기생충 같은 자식들도 많았다. 약자를 위한 사회적 보호망이 더 촘촘해 져야 할 것 같다.
  
  성경 속의 솔로몬 왕은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까지 법으로 정해놨다. 로마의 집정관들은 남의 땅에 들어가서 도토리를 몇 번까지 주워와도 되는지도 규정으로 만들었다.
  
  심신이 미약한 노인들의 마지막 재산을 지켜주는 법의 마지막 배려가 필요하다. 우선 형사나 검사 같은 법의 집행자의 마음이 담긴 직무집행이 있어야 한다. 파산과 면책을 담당하는 판사가 사정을 알고 신속히 처리해 주어야 한다. 쌀과 돈을 주는 것만이 복지가 아니다. 성의 있는 법적인 처리도 따뜻한 복지일 것 같다.
  
[ 2019-10-02, 17: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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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0-02 오후 7:27
"그래도 동생인데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하는것 아닌가요??? 따뜻한 글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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