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집회 참관기: ‘분노한 시민들의 즐거운 집회’
親朴 非朴도, 영남 호남도 없이 反문재인으로 뭉쳤다

金永男(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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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집회에 참석했다. 12시 30분쯤 세종문화회관 쪽에 도착했는데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모였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이 주최하는 행사 무대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과거 토요일마다 열리는 집회에도 여러 차례 가봤지만 이번처럼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 봤다. 전희경 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집회에는 아이 5명을 키우는 여성과 대학생들이 연단에 올라 연설을 했다. 이후 나경원 원내대표와 황교안 당대표가 차례로 연설했다. 아이 5명을 키우는 여성 연설 말고는 별 감동이 없었다.

황교안 대표의 연설이 끝난 뒤인 약 2시 30분, 나는 잠시 사무실에 들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종문화회관 옆 외교부 쪽에서 서대문 방향을 향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는데 걸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내가 걷는 게 아니라 뒤에서 떠밀려서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이동했다. 집회장소에서 동화면세점 인근까지 가는데 20분 넘게 걸렸다. 과거 촛불집회도 구경을 하기 위해 여러 차례 가봤다. 당시에도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도(人道)에서는 이동할 수 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세종대로는 가득 메웠지만 인도에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무실에 들른 뒤 청와대로 행진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3시쯤 청와대를 향했다. 큰길이 혼잡할 것 같아 세종문화회관 뒷문 쪽 길로 걸었다. 경복궁역에 도착하니 ‘조국 사퇴’ 등 플래카드를 든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걷고 있었다. 보통 행진이 시작되면 스피커를 튼 행사차량 뒤로 사람들이 따르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걷고 있었다. 교통경찰에게 물어보니 아직 행진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한다. 보통 청와대 행진을 하면 통인시장이 있는 큰 골목을 지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 골목을 통해 청와대로 갔다. 청와대 인근에 도착하니 한 좌파 유튜버가 집회를 하고 있었다. 시위에 나온 사람들을 조롱하는 말이 대다수였다. 그는 “바보래요 바보래요~, 박근혜는 범죄자래요~” 등을 외쳤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이 발생하는 걸 봤다. 그때 청와대에 모였던 사람들은 ‘왜 이렇게 행진 대열이 안 오지’라고 서로 물었다.

행진 대열이 하도 오지 않아 다시 경복궁역 방향으로 돌아갔다. 큰길에 나와보니 행진은 광화문 바로 옆 좁은 골목길에서 진행됐다. 이들은 ‘문재인 하야, 조국 구속’ 등 구호를 외쳤다. 끝없는 인파가 좁은 골목길에 쏟아졌다. 세종대로 왕복 약 10차선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왕복 4차선 골목길에 몰려드니 다들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아빠가 조국이 아니어서 미안해’라는 플래카드를 든 아저씨 부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청와대 앞 상황을 본 뒤 다시 돌아가는데 이번에도 인파에 갇혀 내 발로 걷는 게 아니라 밀려 걷게 됐다. JTBC는 여기자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그 골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성추행범으로 신고를 당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 인근에서 경복궁이 있는 큰길로 나오는데 또 20분 정도가 걸렸다. 나왔는데 행진 대열이 끊이질 않았다. 시청역에서부터 올라온 후발대였다. 이들은 골목길이 가득 차서인지 통인시장 골목을 통해 청와대로 행진했다.

광화문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데 거의 대부분이 시위 참가자였다. 가족끼리 온 사람, 친구들끼리 온 사람 등 다양했다. 한 테이블에는 중년 남성 8명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술도 마시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나라를 걱정해 모인 것이지만 시위는 일종의 동창회 같은 역할도 하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은 뒤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있는 주점가를 걸어봤다. 좁은 골목길에 있는 주점가인데 사람들이 거리에 의자를 갖고 나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러 가게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었는데 밖에 나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골목이 가득 찼다. 한 테이블에 있던 아저씨가 “문재인 개XX”라고 건배사를 하자 옆 가게에 있던 사람들이 그 아저씨한테 가서 술 한 잔을 권했다. 박수갈채도 나왔다. 이 사람들에게 집회는 끝난 것 같지 않았다. 이들은 문재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같이 술친구가 된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이 노는 걸 몇 분 지켜보는데 경찰차가 나타났다. 아마 가게 밖에서 영업을 한 것 때문인 것 같다. 경찰이 밖에서 마시는 아저씨들한테 가게로 들어가라고 하자 한 아저씨는 “현행범 문재인을 체포해야지 뭐하고 있는 거냐”고 했다. 옆에서 마시던 다른 가게 아저씨들도 모두 일어서서 경찰에 항의했다. 경찰 아저씨는 웃으면서 그 아저씨들을 잘 달랬다.

저녁 8시 정도였는데 세종대로 쪽에서 큰 스피커 소리가 들려 다시 나가봤다. 어느 쪽 집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양양가’를 트는 것으로 봤을 때는 우리공화당 쪽이었던 것 같다. 이들은 JTBC 취재차량을 에워싸고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뉴스룸 생방송에 맞춰 기자가 차량 위에 올라가 리포트를 했다. 시위대는 ‘내려와’ ‘꺼져라’ ‘손석희, 개XX’ 등을 외쳤다.

약 8시간 정도 집회 현장에 나가보고 난 뒤의 느낌은 사람들이 분노에 차 집회에 참석했지만 모두 즐거워 보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었지만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만다는 것에 대해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또 하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된 구호나 얘기가 거의 없었다.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발언도 없었다. 최소한 내가 직접 본 현장에는 친박도 비박도, 영남도 호남도 없었다. 그냥 문재인이 싫어서 다 모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공화당도 평소 집회에서는 ‘탄핵 5적’ 등등을 주로 외쳤지만 이날 청와대로 행진하는 과정에서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 2019-10-04, 16: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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