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군인의 지식인 비판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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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는 1963년에 펴낸《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다가오는, 선거를 통한 민정이양 방식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단 1명의 사망, 단 1명의 부상도 없이 혁명의 全(전) 적대세력을 대등한 위치에 개방하고, 순리와 자유경쟁의 원칙에서 혁명의 결실을 시도한 예가 세계 혁명사의 그 어느 대목에 있는가>
  
   박정희가 이 책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 비판한 것은 민주주의를 실천이 없는 구호로만 외치는 구정치인들의 僞善性(위선성)이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건전한 경제적 토대 위에서 확립될 수 있다. 또 건전한 민주주의는 진실과 정직과 법률 본위의 정치적 토대 위에 설 수 있는 것이로되 우리의 그것은 허위와 과장과 부패, 무능, 독선으로 未備(미비)되어 민주주의의 허점을 역이용해서 왜곡된 ‘위장 민주주의’를 조장해놓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일부 한정된 지식층의 전매특허된 玩賞物(완상물)이거나 직업 정상배의 생활 밑천처럼 되고 국민들에게는 불평의 배출구처럼 誤用(오용)되고 있다>
  
  
   1961년 무렵 군사혁명주체세력들이 자주 인용하던 케네디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문구가 있었다.
  
   '동포 여러분, 여러분의 국가가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기 전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국가에 대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 가를 물어봅시다'.
  
   최고회의 의장 공보비서관 이낙선 중령은 국가개조 사업에 대하여 냉소적이고 방관적인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역할을 자주 맡았다. 그가 '최고회의보(최고 의보)'에 기고한 '행동하는 지식인'이란 글은 군인의 입장에서 쓴 한국 지식인론이다. 이 글에는 군인과 문민지식인의 차이가 잘 나타나 있고 이 차이는 박정희 시대 내내 갈등요인으로 남아 있게 된다.
  
   <행동이 없고 말만의 인간은 정원의 잡초에 불과하다> <구급제로서 5·16 즉 '군인에 의한 국민의 혁명'이 왔다. 그러나(지식인들은) 매그루더 장군의 국군복귀명령과 그린 미 대리대사의 장면 정부지지 성명에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외국인의 명백한 오판에 대해서는, 진실로 이 길이 우리의 살 길이라면 과감히 나서야 할 것이 아닌가. 그 후 인텔리는 통 말이 없다. 행동이 없다. 심지어는 반응도 없다.흡사 인텔리는 다 죽어 사라진 것 같다.
  
   강풍이 스쳐 정국이 무풍의 상태로 안정되니깐 사사건건 냉소적인 논지로 일관하고 군의 실책을 동정으로 카버하는 듯하면서 이면으로 멸시와 야유를 뒤섞어 몽매한 국민에게 이유 없는 반감을 양성케 하고서 정권 이양시기의 단축을 위해 압력을 가한다는 형식으로만 일주하고 혁명과업의 완수에 대하여서는 성의가 보이지 않는다>.
  
   <이조당파의 생리적 후예라는 정통을 잊고 일제의 폭정(포정)에 대한 '민족적 레지스탕스'의 외곽운동으로서의 부정적 태도의 여운이 상금도 불식안된 데다가 근자에는 또 의의와 연혁을 몰각한 피상적 레지스탕스의 풍조에 휩쓸려서 혈기의 장기로서 '이유없는 반항'을 신조로 삼고 현실생활에서 늘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한다. 상대방에 일리가 있다 하여도 다른 비리와 같이 도맷금으로 부정해버린다. 상대방과 공통되는 점에서 서로 타협하고 협조하려고 하기보다는 사소한 상이점을 확대시하여 배격하고 상발하고 있다>.
  
   <인텔리가 가장 애석하고 불행하게 여기는 것은 '한국에 태어난' 그 자체라고들 한다. 이유인즉 변란이 많고 빈곤하며 언제나 일에 얽매어져 부자유스럽고 도저히 행복할 수 있는 희망이 없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출생의 불행'의 관념은 온갖 불만의 해결을 위한 궁극적인 납득제로서 일상생활의 상비약이다>.
  
   이낙선은 지식인들에 비교해서 군인들이 결코 능력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인텔리가 그들의 희박한 지식을 과시할 때 우리 군인은 주견있는 총명으로 답할 것이다. 그들이 기술의 기교를 앞세운다면 우리는 근면한 정열과 상쇄를 꾀할 것이다. 뇌조직의 발달에는 건전한 심신을 대치케 하고 개인적 유능에 의한 공격에 대하여는 단체적 협동력의 위력으로 방패 삼을 것이다. 만약에 인텔리가 그들의 유구한 행정적 경험으로 압박한다면 우리는 짧은 시간내에 고도로 훈련되고 조직화되고 숙련되고 통일 된 기계적인 행정역량으로 반발할 것이다.
  
   영감적인 재치, 임기응변의 요행성 등으로 견준다면 우리는 가상할 수 있는 각종의 상황에 대비하는 '주도한 계획성'과 생각하여 평가하고 다시 숙고하고 또 다시 평가하여 결론짓는 '반복된 연구가 주는 완전성'의 습성화로 대할 것이다. 문제는 애국심의 색채와 강도에 의한 국가적 기여의 다소에 차이를 둘 수밖에 없다>.
  
   <과거에 군은 많은 비난을 받아왔고 따라서 군은 비난받는 데 단련이 되어 있다. 문제는 혁명정부가 군인주동이라는 이유만으로써 유달리 받는 비난에 관한 것이다. 문존무비의 역사적 사조의 철쇄에 얽매여 이유 없이 사람과 군인을 구분하려 든다. 인텔리들이 군인과 민간인이 마치 전혀 색다른 천성을 가진 것인양 양자간에 특수한 문제에 대한 견해가 전혀 다른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은 위험하고 해로운 허위인 것이다. 영어의 인민(People)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Populus'라는 말의 참다운 의미는 고대 로마시대의 무장군이라는 뜻이다.
  
   군을 구성하는 개인은 국민 또는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품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와 인권이라는 정신과 합치되게 무기를 행사하는 방법을 배우는 대학원 과정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비견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지성인의 외침을 들어보자. '자유 - 그것이 그립거든 그 행사에 책임을 느끼는 습성을 확립하자'. 자유 - 그것이 그립거든 빈곤이 주는 고통을 연대적으로 느끼는 박애심과 동포애를 확립하자. 혁명정부의 무위행사는 '누려서는 안될 자유'를 억압하여 '누려야 될 자 유'를 보호 조장하는 경우와 범위에 한정되며 '필요한 최소한'을 벗어날까 항상 신경을 쓰고 있다>.
  
   <밀폐된 연구실에도 세기의 파동은 파급한다. 인텔리들이여! 가슴을 열어 사회와 민족, 그리고 국가를 받아들여라. 기아가 된 사회, 설사 그 가 버림받을 이유가 충만하다 하자. 반부랑자가 된 사회, 걸인과 절도가 된 민족, 빈사의 중태에 빠져 지금 당장에라도 죽을 조국이 길손에 업히어 여러분의 문전에 다달았다>
  
   박정희 의장을 주체로 하는 장교집단의 가장 특이한 점은 민간 지식인들이 해내지 못한 경제발전을 해냈다는 점 일 것이다.
  
   흔히 군인과 사람을 구별하여 군인들을 경멸해온 우리 지식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높은 비판력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추진력이었다고 이낙선은 비판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는 문민 엘리트 집단이 자유당, 민주당 시절에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부흥시키는 데 실패한 것을 '무식한' 군인들은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이낙선은 '진짜 무식하고 무능 한쪽은 말만 앞서고 행동력이 없는 인텔리들, 바로 당신들이요'라고 말 하고 있는 셈이다.
[ 2019-11-30, 22: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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