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타계한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의 《보수의 유언》
"보수는 변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때에 따라 발전과 전환을 해서 변하면서 살아 간다"

배진영(월간조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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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1918~2019)가 11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101세. 재임 중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등으로 이웃 나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나카소네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본 보수정치인의 대부(代父)였다.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후 28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일관되게 ‘전후(戰後)정치의 총결산’, 즉 개헌, 자주국방, 교육기본법개정 등을 통한 ‘맥아더 점령통치의 유산’을 정리하자며 일본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젊은 시절에는 ‘헌법개정의 노래’라는 것을 직접 짓기도 했다.
  
  자민당이 민주당에게 정권을 빼앗긴 직후인 2010년 나카소네는 《보수의 유언》이라는 책을 지었다. 이 책에서 나카소네는 ‘일본의 보수정치는 무엇인가’ ‘보수정치의 원류인 자민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나카소네는 보수주의의 본질과 관련해 ‘불역(不易)과 유행’을 강조한다. ‘변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때에 따라 발전과 전환을 해서 변하면서 살아 간다’는 의미다. 여기서 ‘불역’의 중심에는 천황제와 일본의 여러 전통과 가치가 포함된다. 또 나카소네는 “보수라고 하는 단어는 감각적으로는 온고지신(溫故知新)과 거의 비슷할지 모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에너지의 양(量)이 더 풍부하다는 점”라면서 보수주의 안에 내포된 개혁성을 역설한다.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고 했던 보수주의의 비조(鼻祖) 에드먼드 버크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보수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나카소네는 2010년 총선 패배 후 자민당 일각에서 나왔던 당명 변경 논의에 대해 호통을 친다.
  
  “당명을 바꾸자는 극히 일천한 논의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매우 단순하고 안일한 생각이다. 선거에서 한 번 대패한 정도로 당의 이름을 변경하려고 하는 나약한 근성은 잘못된 것이다. 당에 대한 자부심을 망각한 채 이름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문제다. 자민당은 보수정당이다. 역사와 문화, 전통을 계승해가는 입장에 있다. 창당 정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이 자신감 없는 행동은 용납할 수가 없다.”
  
  나카소네의 호통은,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 싶으면 당의 이름을 바꾸면서 국민들을 속이려 드는 한국정치인들에게도 유효하다.
  
  나카소네는 정치인의 자질로서 철학과 비전을 강조한다. 그는 리더의 자질로 통찰력, 설득력, 결합력, 인간적 매력을 강조한다. 그는 “이와 같은 위기에 맞설 수 있는 책임 있는 정치인은, 정책을 말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철학과 열정이다”라면서 “정치는 열정이자 감격”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나카소네는 철학도 열정도 없이 포퓰리즘에 호소하는 오늘날 정치인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그는 지금의 정치인들에 대해 “갓 대학을 졸업한 초보 의사처럼 눈앞의 임상적인 문제에 대한 대응밖에 모른다”면서 “심하게는 고이즈미 전 총리처럼 즉흥적으로 느끼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는 ‘순간 터치형’의 정치인들도 있다. 이것은 일본인의 정신을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초보 의사 같은 정치인’도 ‘순간 터치형 정치인’도 남의 얘기 같지 않다.“국가 비전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대중이 받아들이는 것만 하고 있는 포퓰리즘으로는 결국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지적도 많이 공감이 간다.
  
  2010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패해 야당이 된 자민당 정치인들에게, 나카소네는 젊은 시절 자신의 야당생활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충고한다.
  
  “야당시대는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다. 여당 시대에 몸에 밴 호사를 떨쳐버리고 신체를 연마하는 시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정치인이 됐는가를 생각하고, 국가비전을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황금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해야 한다. 꽃이 피어나지 않는 겨울이야말로 땅에 생명의 씨를 뿌리고 토대를 단단하게 구축해야 한다.”
  
  마치 지금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자유한국당에 주는 듯한 충고다. 실제로 야당 의원 시절, 나카소네는 원자력 관련 입법과 예산 확충에 전력을 기울였다. ‘청년장교’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젊은 정치인 시절부터 나카소네는 ‘패전의 원인은 과학기술분야에서 뒤진 데 있다’고 생각하고 과학기술문제에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야당 의원 시절 원자력문제에 천착했다. 오늘날 일본이 원자력 강국이 된 데는 나카소네의 공로가 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카소네가 제시하는 ‘성공하는 정치인이 9가지 조건’도 흥미롭다.
  1. 철학과 열정
  2. 굳건한 역사의식
  3. 강한 의지와 사명감
  4. 냉철한 이성과 치밀한 추진력
  5. 따뜻한 인간미
  6. 낙천적인 사고와 순발력
  7. 전통에 대한 자부심
  8. 인적 네트워크
  9. 원대한 비전
  
  《보수의 유언》을 읽다보면 ‘이것이 보수주의 정치인이구나’ ‘이런 사람이 진정 국가의 원로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작은 책이지만 묵직한 울림이 있다. 2차 대전 이후 일본 정치, 특히 보수정치의 흐름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해 주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것은 ‘과거사’에 대한 인식의 한계였다. 이 책에서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나 중국침략에 대한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나카소네는 정치인에게 철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의지와 주관적 판단이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행동하라”는 칸트의 정언적 명령을 끌어온다. 그는 “스스로의 행동을 규율할 때 처음부터 타고난 도덕률이 존재하며, 나도 그것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과거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배와 전쟁범죄, 전범(戰犯)들에 대한 국가적 추모, 그리고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 없이 넘어가려는 행태들이 과연 칸트의 도덕률이나 보편적 법칙에 부합하는 것일까?
  
  나카소네는 맥아더 유산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교육기본법 개정을 주장하면서 거기에 담겨야 할 내용의 하나로 ‘인류주의’를 꼽는다. “개인의 존중과 함께 인류 전체의 행복과 공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바로 이웃나라에게 입힌 상처를 끝내 외면하면서 외치는 ‘인류 전체의 행복과 공생’은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일본 현대 정치의 흐름, 일본 보수정치인들의 의식과 아베 신조 정권의 우경화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들의 한계까지 포함해서…
  
  
[ 2019-12-01, 09: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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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idn     2019-12-02 오전 10:23
정의롭고 멋진 정치가로 볼 수는 없고
그저 술수에 밝은 일본형 정치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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