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美 번역가 “JTBC 김용장 군사정보관 소동은 한국 언론 최악의 오보사건”
“단순 언어전문가로 정보보고 못해…침묵하는 JTBC 프로 존재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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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스포트라이트 5월 16일 방송에서 소개된 김용장씨의 표창장. 그의 직책이 언어전문가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JTBC 유튜브 캡처)

 

재미(在美) 번역가인 설갑수씨는 JTBC 등의 김용장 보도 사건이 최악의 오보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2일 ‘레디앙’에 기고한 <군사정보관 김용장 소동, 한국 언론 최악 오보사건>이라는 글(http://www.redian.org/archive/139060)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김용장씨는 1980년 광주사태 당시 미 육군 501 정보여단 군사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는 3월 JTBC 인터뷰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5월에는 한국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980년) 5월 21일 광주를 방문해 비밀회의를 갖고 ‘사살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이미 여러 차례 국가기관의 조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졌음에도 올해 5월 또 다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설갑수씨는 김용장씨의 신원에 대해 처음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다. 그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통해서 김용장씨는 군사정보요원이 아니라 한국어 전문가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런 그가 김용장 소동이 벌어진 2019년 한 해가 끝나는 시점에 그의 취재기와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을 레디앙을 통해 2일 소개한 것이다.

INSCOM “민간인 언어전문가나 통역은 군사정보관으로 활용될 수 없다”

그는 김용장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그가 소속됐다고 주장한 부대의 상부기관인 미 육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과 국방정보국(DIA)에 정보 공개 요구(FOIA)를 신청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INSCOM에 김용장의 고용기록을 묻는 정보공개 요청을 보냈다. 사실, FOIA 중 가장 빈번한 종류가 민간인이 전직 정보요원의 고용기록을 묻는 것이다. 사기와 이력 과장 같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미국 정보기관은 적어도 퇴직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직원들의 고용 여부만은 확인해 주고 있다. 물론 정식직원에게만 해당되는 제도이다.

예상대로, INSCOM은 신속히 답변을 보내왔다. 5월 20일 서신에서 김용장의 고용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밝혔다. 결국 김용장은 현지 고용 군속에 불과했던 것이다. INSCOM 공보국에 80년 당시, 정보-언어 사이의 보직 이동이나 겸직이 가능한지, 민간인 군속이 MIS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공식입장만 들으면 됐다. 그 내용을 정리하여 공보국에 이메일로 보냈다.

그 이메일을 보내자마자,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이 왔다. INSCOM 정보공개 디렉터 마이클 히튼(Michael Heaton)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며, 비보도를 전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을 했다. 서로 하고픈 질문을 했고, 각자 할 수 있는 대답만 했다. 통화 말미에, 공보국이 내가 보낸 문의에 신속히 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히튼은 모든 INSCOM의 언론 발표는 정보공개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되도록 빨리 처리해 줄 것을 약속했다.

은퇴 후, 정보관련 서적을 몇 권 집필한 웨인 홀 사령관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를 해 취재 이유를 설명하고, 질문을 이메일로 보내겠으니, 답변해 달라고 부탁했다. 80-90년대 거쳐 팽창을 거듭한 501정보단은 정보여단이 됐고, 주변 정보 연대를 포함한 수천명의 인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가 김용장을 기억할 가능성은 없었다. 이메일 답변이 오지 않아, 전화를 다시 걸었다. 역시 그는 스스로 준 표창장조차 기억할 수 없다고 말했다. 501여단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당신 부하들의 명예가 걸린 일이니, 일반적 질문만 대답해 달라’라고 읍소하며, 랭귀지 스페셜리스트와 MIS 보직 이동과 가능성을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비로소 입을 열어, ‘두 보직의 차이를 잠시 설명하다, 곧 멈췄다. 말해서는 자신에게 득이 될게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나는 “보직 이동과 겸직이 가능한가? 그것만 확인해 달라”라고 재차 물었다. 그는 픽 웃으며, “이미 설명했다. 이런 일로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INSCOM 공보국에서 언어 통역과 군사정보는 분야와 보직이 다를 뿐만 아니라, “민간인 언어전문가나 통역은 군사정보관으로 활용되거나 임명될 수 없다. 그들은 정보전문가로서 훈련받거나 고용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왔다.>

설갑수의 전화에 짜증낸 김용장

설갑수씨는 김용장씨 본인의 주장을 듣기 위해 5월 31일 전화통화를 하게 됐다고 했다. 설 씨는 ”김용장은 미국 국적을 한 번도 취득한 적이 없고, 90년대 말 이민 간 뉴질랜드에서 그 곳 국적을 취득한 것과, 민간인 군속으로 광주 기지에서 계속 근무했다고 밝혔다”고 했다. 이어 “김용장이 민간인 직원이었다면, 퇴직 후 평생 연금을 받아야 했다”며 “그러나 전화 통화에서 그는 계약직 군속답게 일시불 퇴직금을 받았고, 연금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줬다”고 했다. 설 씨는 김용장에게 DIA의 <정보보고서 교본>을 기반으로 몇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김 씨는 대답 대신 짜증을 냈고 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사무실 코드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설갑수씨는 이런 내용을 6월 2일 경향신문에 두 번째로 기고한 글을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이에 5·18 처벌농성단 대변인인 김용만씨는 6월 9일자 경향신문에 ‘설갑수는 5·18에 대해 전두환과 미국의 대변인을 하려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김용만씨는 김용장씨를 군사정보관으로 부르지 않고 ‘501정보여단’ 소속이라고만 표현했다. 설갑수씨는 김용만씨에게 전화를 걸어 김용장이 군사정보관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김용만씨는 그것을 자기 실력으로 알 수는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JTBC 취재의 문제점

설갑수씨는 김용장씨의 신분이 군사정보관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의 취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올해 초 5·18기념재단 비상임 연구자 최용주씨는 설갑수씨에게 JTBC 취재진과 함께 미국에 가니 동행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당시 취재 목적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태평양담당 도널드 그레그와 5·18 당시 주한미대사관 무관이자 DIA 요원 제임스 영을 만나 김용장씨의 주장을 크로스체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JTBC는 그레그를 인터뷰하지 않았다고 한다. 설갑수씨는 “그레그를 꼭 인터뷰를 해야 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아시아 책임자 그레그가 그런 민감한 보고가 지역에서 접수되면, 제일 먼저 열람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문지기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5·18 연구자 최용주와 JTBC취재진이 모를 리 없다. 더군다나, 그레그는 80년 당시, 백악관의 5·18 정보 취합과 분위기를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인사다”라고 했다.

최용주씨는 설갑수씨에게, 그레그가 CIA 출신이자 1980년 당시 무력진압을 지지한 미국의 안보 관리를 인터뷰하는 것을 취재진이 부담스러워해 인터뷰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설갑수씨는 최용주씨를 통해 김용장은 제임스 영을 알고 있다고 JTBC에 밝혔으나 김용장의 사진을 본 제임스 영은 그를 모른다고 대답했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그리고는 이를 경향신문 기고문을 통해 폭로했다. 최용주씨는 “제임스 영이 김용장을 모르겠다고 한 사실을 기고문에 왜 썼느냐”며 설갑수씨에게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런 소동이 일어난 후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5월 17일 방송에서 제임스 영의 발언을 애매모호하게 내보냈다. 그날 방영분의 자막과 나레이션만 보면 제임스 영이 김용장을 안다고 했는지 모른다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설갑수씨는 기사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은 실수를 하고, 언론은 오보를 한다. 그러나 실수가 의도된 것이라면, 오보가 기획된 것이라면 책임져야 할 잘못인 것이다. 그 잘못이 한 나라의 현대사 중 가장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이라면, 그 책임은 중대하다 아니할 수 없다. 사과와 해명이 없다면,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시사프로그램으로서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고, 이와 연관한 5·18 연구자는 광주항쟁의 모든 공식적 연구에서 영원히 배제되어야 한다.>

한편 5·18기념재단과 광주전남기자협회는 5·18 언론상 취재 보도 부문 수상작으로 JTBC의 ‘5·18  진상규명’ 연속보도 등을 선정한 바 있다. 관련 기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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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의 ‘김용장 보도’에 언론상을 준 5·18 재단은 실수한 것 아닌가?
여전히 남아 있는 신분 관련 의문…“의문은 해소됐다”는 재단

5·18 기념재단과 광주전남기자협회는 5·18언론상 취재 보도 부문 수상작으로 JTBC의 ‘5·18 진상규명’ 연속보도 등을 선정했다. 이 재단은 심사평에서 JTBC 보도와 관련, “5·18 당시 미501여단 한국인 정보요원 김용장씨의 증언을 이끌어내 5·18 진상규명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시킨 점이 심사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이 재단은 “김용장씨의 미군부대 정보요원 신분에 대한 일각의 의문제기에 대해서는 5·18 재단에서 정보요원 입증자료와 관련자 증언을 확보해 의문이 해소됐음을 밝혀둔다”고 덧붙였다. <조갑제닷컴>은 5·18 재단에, ‘의문을 해소한 자료와 증언이 무엇이었느냐’고 질문했으나 31일 현재까지 답변을 듣지 못했다. 김용장씨의 신분에 관한 논란은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입증자료가 언론을 통해 공개돼 의문이 해소된 적도 없다. 오히려 김용장씨의 신분이 ‘정보요원’이 아니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언론에 소개됐다.

5·18 재단은 심사평 마지막 부분에서 “2020년 5·18 40주년에는 언론인들이 보수세력의 5·18조작, 왜곡의 위장막을 거둬내고, 5·18진실의 문을 더욱 활짝 열어 제쳐주길 소망하고 기대한다”고 했다. 이 재단은 ‘진실의 문’을 언급했는데 JTBC 보도를 통해 세상에 등장한 김용장씨의 신분에는 의문이 아직 많이 남았다. 김용장씨에 대한 의혹이 아직 풀리지 않은 이유를 차례로 소개한다.

1. 在美 번역가의 취재로 밝혀지는 김용장의 신분

김용장씨는 3월 JTBC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고 5월에는 한국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980년) 5월 21일 광주를 방문해 비밀회의를 갖고 ‘사살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이미 여러 차례 국가기관의 조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1980년 당시 미 육군 501 정보여단 군사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한 김용장씨의 실제 직책이 정보요원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가 군사정보요원이 아닌 Language Specialist, 즉 한국어 전문가(통역가)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용장씨가 언론에 공개한 501 정보여단으로부터 받은 ‘상장’에 적시돼 있다.

차례로 설명하기에 앞서 요약을 하면, 그가 ‘미군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증거로 제시한 ‘상장’ 등은 오히려 그가 정보원이 아니라 통역 등 언어전문가로 활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군사정보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민간인 언어전문가가 정보를 보고할 수는 없다. 즉, 통역 업무를 비롯해 정보원을 만나 정보를 수집할 수는 있었겠지만 직접 보고하는 정보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용장씨의 신분에 처음 증거를 갖고 의문을 제기한 것은 설갑수라는 번역가이다. 그는 황석영 등이 쓴 5·18 관련 책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영문판을 번역한 사람이다. 그는 김씨의 기자회견 후인 5월 16일 <’미 육군 정보요원’ 김용장이 답해야 할 의문들>이라는 경향신문 기고문을 통해 김씨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설갑수씨가 집중적을 의문을 제기한 부분은 김용장씨의 당시 신분이었다. 김용장씨의 주장 이외에는 증거가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김용장이 501그룹 시절 받은 포상은 그가 501그룹 종사자였음을 증명할 뿐 광주에서 군사정보 전문가로 일했다는 증거는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공개된 501부대의 두 상급기관, 육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와 국방정보국(DIA) 문건에서 광주 근무 ‘한국인 정보전문가’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김씨의 증언의 정확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김용장씨는 앞서 소개한 기자회견에서 “1980년 광주에 CIA나 국무부 직원은 없었다”고 한 바 있다. 설갑수씨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실시, “CIA 요원 상주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광주에는 국무부 소속 미 문화원들이 있었고 미국의 5·18 초기 정보는 문화원 직원들의 작품이었으며 20년 넘게 광주의 미 육군정보 요원이 이들의 존재를 모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설갑수씨는 INSCOM의 1980년 연례보고를 검토, 당시 501 그룹에는 미군 194명, 직접 고용한 민간인은 두 명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 중 하나가 김용장이었을까”라며 “그러한 특기자가 굳이 광주 공군기지에 20년간 배치됐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설갑수씨는 6월2일 <5·18의 ‘꿈 같은 증인’ 김용장은 ‘미 육군 군사정보관’이 아니었다>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고문을 통해 김용장씨의 직책과 관련된 후속취재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미군 당국에 정보요청을 하는 등의 취재를 통해 “그가 501 군사정보단의 군사정보관(Military Intelligence Specialist)로 근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설갑수씨에 따르면, 김용장씨는 9급 통역으로 501 정보단에 1974년 입단했고, 90년대 중반 통역관(Language Specialist)을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설갑수씨는 “이 기간 그는 비공식 정보원으로서 광주 주변의 첩보를 수집해 보고할 수도 있었으나 그가 속했다던 501 정보단의 524 임시대대-미 육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국방정보국(DIA) 계통을 거치는 공식 보고서를 직접 작성할 위치나 권한은 없었다”라고 했다.

설씨는 또한 김용장씨가 501 정보단 직책을 맡았다는 것을 물증으로 증명한 적이 없었다고도 지적했다. 20년 동안 501 정보단에서 일했다는 근속표창만을 제시했을 뿐 어떠한 직책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가 공개한 부대 표창 중 하나에는 그가 ‘민간인 통역관’이었다는 설명도 담겨 있다.

그가 공개한 표창은 ‘COMMANDER’S AWARD FOR CIVILIAN SERVICE’이다. ‘민간근무자에 대한 사령관 표창’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그가 받은 상장 내용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1995년 3월 1일부터 1996년 3월 31일까지 501정보여단에서 언어전문가로서 이례적으로 우수한 근무를 해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문에서도 볼 수 있듯 그는 그가 소개한 ‘MILITARY INTELLIGENCE SPECIALIST’가 아니라 ‘LANGUAGE SPECIALIST’로 근무했다.

INSCOM 공보국은 이와 관련된 설갑수씨의 질문에, “민간인 언어전문가나 통역은 군사정보관으로 활용되거나 임명될 수 없다”며 “그들은 정보전문가로서 훈련받거나 고용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용장씨 퇴직 직전 501 부대장이었던 퇴역 장성 H씨 역시 김용장씨를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H 장군은 ‘민간인 통역이 군사정보직으로 갈아타거나 겸직할 수 있느냐’는 설갑수씨의 질문에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자고 했다고 한다.

2. 아이러니한 한겨레의 특종

설갑수씨의 기고문이 공개된 이후인 6월 5일 한겨레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단독] “김용장씨, 미 육군 방첩부대 501정보여단 재직 맞다”’는 제하의 기사이다. 한겨레는 5·18 당시 케이-57 기지(공군 제1전투비행단)에 재직했던 전 군 정보요원 ‘ㄱ’씨를 인용, “김씨가 군사정보관은 아니었지만 통역관 호칭으로 첩보를 수집하는 등 활동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그는 “501정보여단 광주파견대에 근무했던 그(김용장)는 통역사였지만 득문 내용을 미군 정보관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기관 방문 때 정보관들과 동행해 통역했으며 각종 정보도 수집했다”고 했다. 이어 “김씨가 공식 보고서를 쓸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기사는 한겨레의 말처럼 특종이다. 그러나 진짜 특종인 팩트는 ‘김용장씨는 미군 정보여단에서 재직한 게 맞다’가 아니라 ‘군사정보관은 아니었지만…’이 아닐까?

김용장씨는 당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501정보여단에서 정보 수집 및 보고 활동을 하는 군사정보관(Military Inteligence Specialist, MIS)으로 재직했다”고 거듭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501정보여단에서 근무했던 직원 중 미국인 일반 정보요원은 ‘스페셜 에이전트’로 불렀지만 한국인 근무자들의 직합은 통역, 번역관(Interpreter/Translator), 군사정보관(MIS), 언어관(Linguist) 등으로 시기에 따라 달리 불렸다”며 “한국인 근무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함은 군사정보관이었고 이 직함도 요청하면 언제든지 바꿔준다”고 했다.

앞서 설명했듯 군사정보관과 통역 및 번역, 즉 언어전문가는 차이가 크다. 그런데 이런 직책이 계속 바뀔 수 있다는 게 김용장씨의 주장이다. 설갑수씨가 인터뷰한 501 부대장 H 장군은 ‘민간인 통역이 군사정보직으로 갈아타거나 겸직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3. 김용장은 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나?

김용장씨는 한겨레에 “통역 및 번역관의 직함이 적힌 표창장과 군사정보관이라고 적힌 신분증도 찾아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런 인터뷰가 나간 지 한 달 반이 지난 현재, 이런 신분증이 언론에 공개된 적은 없다. 5·18 재단에 이런 신분증을 확인한 것인지 문의했지만 아직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김용장씨는 ‘언어전문가’, ‘미스터 김용장’으로 소개된 상장과 표창장은 모두 제시했는데 가장 무게감이 있는 ‘군사정보관’이라는 직함이 적힌 어떤 것도 공개하지 않았다. 의문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다.

한편, 당시 한국군 505보안부대에서 근무했다는 허장환씨는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김용장씨와 함께 참석했다. 그도 광주에 전두환 장군이 왔었다는 주장을 했다. 그는 설갑수씨의 두 번째 경향신문 기고문이 게재된 후인 6월 13일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썼다. ‘김용장 선배가 연락을 피한다’는 취지였다. 그는 김용장씨의 신분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 분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관련 글에 있는 오타 등을 수정하지 않은 채 전문 소개한다.

<근간에 즈음 하여 Facebook 상 에 글을 올리는게 조심 스러워 진다
고약한 심성을 가진 자들이 아무렇치도 않게 기고문에 대한 험집내기를 능사로 하고 시사성을 노린 언론은 이를 기사의 호재로 하여 독자들을 현혹 시키는 다시 말해 혹세 무민 함을 주저치 않는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하지만 음해를 당하는 당사자는 작난삼아 던지는 돌 맹이 에 목숨을 잃는 개구리 격이다
진실과 거짓이다 라 는 공방을 떠나
국군 아저씨들의 행열 을 보고 손을 흔드는 개울에 서 멱을 감고 놀던 어린 초등 학생들 에게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한 5,18당시 시 외각 으로 철수 하던 공수 부대원 들의 행위는 변명 의 여지가 없는 말 그대로 만행이다
진실과 거짓 또는 당위성을 논할 여지가 없지 않은가 !
이러한 5,18의 실상을 증언 하기 위해 머나먼 태평양 피지에 에서 노구를 이끌고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떠나버린 조국에 날아와서 증언 대에 서서 39 년 동안 무겁게 마음 속 에 자리 잡고 있던 십자가를 내려 놓으며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증언 하는 김 용장 씨를 ~~
가짜니 통역관에 지나지 않는 존재 감 없는 하짠은 사람 이니 하며 애써 그날의 증언 자체를 평가 절하 하고 있다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라 아니 할수없다
입을 섞어 상대 할수없는 축생보다 못한 쓰레기 중에 상 급 쓰레기 들 이고 상판에 가래침을 벳어주고 싶은 속물 들이다
피지에 돌아간 김용장 선배는 요즘 내가 전화 를 해도 받질 않는다
당분간은 서로 연락 하지 말고 지내자고 한다
우리가 해야할 모든 역활은 마음의 십자가를 내려 놓는 그순간 다 끝난 것 이라고 한다
정말 씁쓸한 마음 이 든다
나역시 아무도 만나기도 싫다
사람 만나는게 두렵고 말 하는게 불편 스럽다
당분간 Sns 접속도 삼가 해야 할것 같다
노을이 짙게 드리우는 화천 북한강 강 언덕에 팔 베게를 하고 누워 그 간의 힘들었던 순간 순간을 떨쳐 버리련다.>

[ 2019-07-31, 16:42 ]

[ 2019-12-03, 17: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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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ho     2019-12-10 오후 8:50
경상도인 삼성 이병철(이희건)회장이 창업하여 사돈인 전라도인 홍진기에게 넘겨준 중앙일보,동양방송,JTBC를 그 아들인 홍석현(손자 홍정도)이가 좌익들에게 무슨 약점이 잡혔는지 몰라도 자본주의의 단물만 빨아먹는 대표적 강남좌파가 되어 대한민국과 삼성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으니 무덤에 계시는 이병철 회장이 그 배은망덕에 눈을 감지 못하실 것이다.
   이중건     2019-12-05 오후 10:29
그대로 믿고 의심도 없었는데 - 참 세월은 지나고 봐야 하고 사람도 지내고 봐야 한다. 진실만이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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