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역사를 바꾼 사진 한 장
북한-시리아 핵개발을 끝장낸 모사드의 컴퓨터 해킹과 폭격작전의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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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역사를 바꾼 사진 한 장
  
  *북한-시리아 핵개발을 끝장낸 모사드의 컴퓨터 해킹과 폭격작전의 전모
  
  *오스트리아 빈의 한 호텔, 시리아 원자력위원장 방에 침투한 모사드 요원들은 순식간에 노트북을 해킹하고 자료를 빼냈다. 여기서 결정적 사진이 발견되었다.
  
  *폭격을 말리는 미국과 강행한 이스라엘, 양국 수뇌부의 숨막히는 갈등과 긴장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金永男(조갑제닷컴 기자)
  
  
  
  
  크리스토퍼 힐이 김계관 面前에 꺼내든 사진
  
  
  2007년 9월6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핵시설을 폭격한 며칠 후, 크리스토퍼 힐 美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겸 6자회담 특별대표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副相)을 만나 사진 한 장을 들이밀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입수한 사진이었다. 힐 차관보의 회고록 ‘미국 외교의 최전선(Outpost)’에 따르면 그는 김계관에게 “내가 이 사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겠느냐”며 “당신네 사람이 시리아에 가서 원자로를 짓는 것을 도와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 사람(注: 전치부)은 영변시설의 책임자 아닌가? 이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김계관은 “사진들은 모두 가짜고 다 포토샵(조작)됐다”고 했다. 힐은 “이 정도라면 포토샵 작업을 너무 많이 해야 하지 않았겠느냐”고 비웃었다. 힐은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김계관이 시리아 핵시설 프로젝트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여부는 불확실했다고 썼다. 그는 “어떤 비밀도 미국으로부터 숨길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힐 차관보는 전치부가 이날 이후 나타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시리아와 북한이 핵협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은 가격만 적절하면 친할머니도 팔아넘길 것”이라는 말을 해온 사람이다. 힐은 김계관을 만나 사진을 들이밀고 창피를 줬지만 이후 시리아 핵시설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천영우 당시 6자회담 수석대표도 힐이 자신에게 이 사진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스라엘 모사드는 한국 국정원을 찾아와 사진을 공유하고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북한과 시리아의 비밀 핵시설 건설을 막아 세계사를 바꾼 이 사진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모사드의 해킹 공작
  
  2007년 3월 초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무지개 부대(Keschet Branch) 소속 요원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특수 공작 임무에 나섰다. 이 부대는 대부분 이스라엘 방위군(IDF) 특수군 출신으로 해외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데 특화된 조직이다. 대개 두 개의 팀으로 나뉘어 작전을 수행한다. 한 팀은 특정 거주지에 침투해 공작을 수행하는 조, 다른 한 팀은 밖에서 작전상황을 엄호하는 조이다.
  
  모사드 요원들이 침투한 오스트리아 빈의 호텔방은 이브라힘 오트만 시리아 원자력위원장이 머문 곳이었다. 요원들은 오트만의 노트북을 해킹하고 자료를 다운로드했다. "트로이 목마" 바이러스를 심어 모사드가 언제든 이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오트만의 컴퓨터에는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저장돼 있었다. 요원들은 순식간에 호텔방을 빠져 나왔다. 오트만은 모사드 요원들이 침입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작전 종료 몇 분 후, 빼낸 자료들은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모사드 본부로 전송되기 시작했다. 작전은 성공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은 심어놓은 바이러스를 통하여 시리아의 가장 중요한 컴퓨터에 입력되는 자료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게 됐다.
  
  이 비화(秘話)는 이스라엘 언론 예루살렘포스트의 야코브 카츠 편집장이 최근 출간한 ‘그림자 공격(Shadow Strike)’이란 책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 2007년 9월 6일 시리아 북동부 데이르알조르 지역에 있는 알 키바르 핵시설을 폭격하기까지의 비화를 상세히 다뤘다. 저자는 이스라엘 및 미국 당국자들을 인터뷰하고 새롭게 공개된 정부문서 등을 바탕으로 썼다. 당시 시리아는 북한의 도움으로 핵시설을 건설, 비밀 핵개발에 나서고 있었다. 만약 시리아가 핵개발에 성공했다면 세계사는 다르게 흘러갔을 수 있다. 한국인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을 흐름을 뒤집은 것은 모사드의 ‘컴퓨터 해킹’ 공작이었다.
  
  파키스탄 칸 박사 추적 중 시리아 시설 포착
  
  시리아가 비밀리에 핵개발에 나서고 있다는 정보를 처음 입수한 기관은 모사드가 아닌 이스라엘 군정보국(아만, Aman)이었다. 아만은 2006년 중반 시리아가 불법 비밀 핵개발에 나서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시리아가 핵개발에 나설 가능성은 당시만 해도 희박한 것으로 보였다. 아만의 야단 국장은 2016년 11월 존 네그로폰테 미 국가정보국장(DNI)을 만난 자리에서 시리아의 핵시설이 존재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네그로폰테는 미국 정보기관은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시리아의 경우 영국 써리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를 따고 미국 원자력학회(ANS) 회원으로 활동한 오트만 외에는 고급 핵 과학자도 없었다. 갖고 있는 것은 소형 연구용 원자로로 중국이 1990년대에 지어준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2003년 카다피의 리비아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다고 밝힌 이후 시리아를 주시하고 있었다. 리비아가 핵개발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이스라엘은 큰 충격을 받았고, 중동 지역의 핵확산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이 리비아의 핵개발에 관계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칸 박사가 방문했던 여러 나라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시리아가 등장하였다. 칸 박사는 북한의 핵개발을 도운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만은 위성 추적을 통해 시리아 북동부 유프라테스강 인근 지역에서 건설되는 건물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아만은 이 건물의 정확한 목적은 알아낼 수 없었다. 쓰레기 처리시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근처에는 텐트도 보였다. 나중에 모사드가 알아낸 것이지만 이 텐트는 북한인 근로자들의 숙소로 사용됐다.
  
  야모스 야단 아만 국장은 관련 정보를 입수한 뒤 메이어 다간 모사드 국장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했다. 아만은 모사드보다 규모면에서 훨씬 큰 조직이었지만 해외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역할은 모사드 몫이었다. 아만은 팔레스타인 등 인근 지역에서만 정보 수집 활동을 했다.
  
  다간 모사드 국장은 처음에는 야단 아만 국장의 협조 요청을 거절했다. 인력을 이란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며 과거 오트만 시리아 원자력위원장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으나 특이 사항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간은 결국에는 야단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다간은 시리아의 핵개발보다는 오트만을 통해 이란의 핵시설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모사드는 오스트리아 빈 공작에 앞서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의 승인을 받았다. 이런 해외 작전은 대개 총리의 승인이 필요하다. 작전이 실패, 혹은 발각될 경우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메르트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 빈 호텔 해킹 공작을 승인했다.
  
  모사드는 오트만의 컴퓨터에서 추출된 자료 분석을 아만에 맡겼다. 모사드가 왜 이를 직접 시행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지만 이에 따라 시간이 지연됐다. 2주 후인 2007년 3월 중순, 아만이 분석한 자료가 모사드에 전달됐다. 모사드 요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미국에 ‘시리아 핵시설’ 정보 공유
  
  다간 국장은 바로 올메르트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은 자주 만나는 사이였지만 통화 및 약속 장소 합의는 비서실장급을 통해 이뤄졌다. 다간은 올메르트에게 “긴급하게 만나야겠습니다”라고 했고 올메르트는 “알았다”고 했다. 다간은 올메르트를 만나 공작을 통해 입수한 시리아 핵시설 관련 자료를 내어놓았다. 아만은 이 무렵 위성사진을 통해 시리아가 갱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 건물이 원자로이며 냉각기능이 필요할 것이란 추정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올메르트 총리의 생각은 확고했다. 시리아의 핵무기는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위협이고 제거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올메르트는 원자로가 가동되기 전에 파괴해야 한다고 다간에게 말했다.
  
  2007년 4월 중순 올메르트 총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다간 모사드 국장이 긴급한 사안으로 미국을 방문할 테니 직접 만나달라고 요청했다. 백악관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전화였다. 이스라엘은 가까운 동맹이지만 한 나라의 정보기관 수장이 다른 나라의 대통령을 독대하는 일은 통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딕 체니 부통령을 필두로 한 핵심 당국자들이 먼저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다간은 백악관에서 체니 등과 만났다. 그는 “시리아가 핵시설을 만들고 있다”며 “시리아가 핵무기를 갖기 위한 핵 프로그램을 보유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나섰다. 다간은 책상 위로 여러 장의 컬러 사진을 꺼내 올렸다. 건물이 건설되는 사진이기는 했지만 사진만으로는 핵시설로 단정하기 어려웠다. 다간은 “이는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가스냉각 흑연감속로”라며 “북한 영변 핵시설 것을 거의 똑같이 복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체니 부통령과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앨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부보좌관 등은 할 말을 잃었다.
  
  다간은 결정적인 사진을 꺼내 보였다. 아시아계 남성 한 명이 파란색 운동복을 입고 있는 사진이었다. 다간은 이 사람 옆에 있는 사람은 오트만 시리아 원자력위원장이라고 설명했다. 다간이 꺼낸 다음 사진에도 등장한 이 아시아계 남성은 추리닝이 아닌 정장을 입고 있었다. 북한과의 6자회담 과정에서 촬영된 사진이었다. 다간은 이 남성이 영변 핵시설의 책임자인 ‘전치부’라고 했다. 시리아 원자력위원장 컴퓨터를 해킹해 얻은 특급 정보였다.
  
  CIA의 고민
  
  체니 부통령은 오랫동안 시리아와 북한간의 커넥션을 주시해왔다. 그는 2001년부터 북한과 같은 악당 국가들이 핵기술을 암시장에 팔아 넘길 수 있다는 주장을 해왔다. 전치부 역시 미국 정보당국의 감시 대상에 들어 있었다. 체니는 과거 여러 차례 정보당국자들에게 북한과 시리아 사이에 핵 협력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항상 ‘아니다’라는 답변을 들어왔다. 체니가 갖고 있던 심증은 이스라엘의 정보로 뒷받침되었다. 북한은 핵기술을 공유하는 수준이 아니라 원자폭탄용 원자로까지 지어주고 있다니!
  
  마이클 해이든 CIA 국장은 다간 모사드 국장을 만난 뒤 정보가 확실한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간이 제시한 증거의 신빙성은 충분해 보였으나 미국 정부가 실제 작전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정보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해이든은 다간으로부터 정보를 전달받기 몇 년 전, 위성사진을 통해 유프라테스강 인근에서 건물이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적이 있었다. 미 정보당국은 이 건물을 ‘불가사의(enigmatic)’한 곳으로 분류했다. 중요한 것 같지만 확실한 목적을 알지 못할 때 이렇게 분류한다. 다간이 전달한 사진들을 통해 이 시설의 목적이 명확해진 것이다.
  
  해이든은 이스라엘이 전달한 사진 등 모든 증거를 면밀히 검토했다. 한 장을 제외한 모든 사진들은 조작 없는 원본, 즉 제대로 찍힌 사진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장의 사진에서만 트럭 옆 부분에 적힌 글자가 지워져 있었다. 미국은 시리아나 이스라엘 중 한 곳이 트럭 옆에 적힌 문구를 숨기기 위해 이 부분을 지운 것으로 봤다. 해이든은 훗날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든 증거들을 면밀히 검토했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불신했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어떤 의혹 혹은 음모론이 불거져도 미국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해이든은 이스라엘이 정보를 전달한 이유는 CIA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내다봤다. 모사드의 정보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재원(財源)과 인력 면에서는 CIA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역내(域內) 정보를 수집하는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여러 국가가 연루된 사건의 퍼즐을 맞추는 데는 앞설 수밖에 없다.
  
  ‘정보 유출을 막아라’
  
  해이든은 이스라엘이 전달한 정보와 자체적으로 검증한 자료들을 가지고 백악관으로 가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에게 보고했다. 해이든은 오랫동안 시리아가 핵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고 의심해온 체니에게 “당신이 맞았습니다, 부통령님”이라고 했다고 한다.
  
  조용히 해이든의 보고를 들은 부시는 두 가지 지시사항을 내렸다. 이 시설이 원자로가 맞는지를 뒷받침할 추가 증거를 확보할 것과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확실한 것이 없으면 전쟁은 없다(No core, no war)’는 신중한 정책을 펴고 있었다.
  
  며칠 뒤 부시 대통령은 올메르트 총리와 전화통화를 했다. 올메르트는 “이 지역을 폭격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부시는 올메르트에게 이 문제를 제기해준 것에 감사한다면서도 인내심을 가져줄 것을 요구했다. 부시는 “정보를 검토할 시간을 달라. 그런 다음 답변을 주겠다”라고 했다. 올메르트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부시가 빠른 결단을 내릴 것과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후 미 행정부 고위 관료들은 특별팀을 구성해 정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장차관급을 포함한 극소수만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부시는 이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정보가 새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관리들을 압박했다. “이 건에 대해 무엇이라도 외부로 유출된다면 당신들 모두를 해임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는 민간 핵 과학자를 불러 기밀 유지 약속 서명을 받은 뒤 사진에 나온 건물이 핵시설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미 의회 핵심 관계자들과는 일부 내용을 공유했다. ‘미 의회는 국가안보상의 핵심 정보활동에 대하여는 사전 통보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딜레마에 빠진 미국
  
  시리아에 핵시설이 건설되고 있다는 첩보가 거의 사실로 확인되자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게 됐다. 매파와 비둘기파로 갈라지던 시기였다. 미국은 당시 이라크와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해외용병들이 시리아를 통해 이라크로 유입되고 있었다. 만약 미국이 시리아의 핵시설을 폭격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외교적으로 협조를 얻어낼 수 없다는 의견과 시리아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정보당국은 이르면 8월 원자로에 연료봉이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8월 이후 공격을 가한다면 핵폐기물이 유프라테스강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경고 없이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을 한 적이 없다는 전례도 문제였다. 외교적으로 문제 해결을 먼저 해봐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부분이었다. 북한은 미국 등과의 6자회담을 진행하며 핵폐기에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시리아에 핵시설을 건설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시리아 핵시설 파괴가 북한의 비핵화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이를 물거품으로 만들지 불확실했다. 미국 국민들은 중동의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보 수집 능력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첩보가 확실하다고 해도 중동 국가와 또 한 차례 전쟁하는 것에는 반발심이 컸다.
  
  부시 행정부 고위 관리들은 세 가지 대응방안을 내놨다. 시리아 핵시설을 미국이 직접 공격하는 것, 이스라엘이 공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그리고 시리아의 핵시설 건설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보하는 방안이었다.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6월17일 오후 6시,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결정짓는 회의가 열렸다. 부시 행정부의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해이든 CIA 국장,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앨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副보좌관, 제임스 제프리 국무부 근동(近東)담당 부차관보 등이 참석했다. 해이든은 지금까지 취합한 정보 사안을 회의 참석자들에게 공유했다. 그는 “이 시설은 핵시설이 확실하다. 북한과 시리아는 핵문제에 대해 10년가량 협력해왔다. 이는 핵무기 프로그램의 일부로, 북한이 지었다”고 했다.
  
  해이든은 시리아에 어떤 조치를 취하는 데 문제가 하나 있다고 했다.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재처리시설이나 ‘무기화’를 담당할 기술진들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만들어 이를 실전에 사용할 탄도미사일 등의 무기 프로그램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해이든은 “아직 무기화하려는 정황을 찾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low confidence)”고 했다.
  
  미국의 정책은 사실상 공격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이라크 전쟁이 잘못된 정보 판단에 따라 시작됐다는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정도의 정보만을 믿고 다시 전쟁을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해이든의 분석 결과가 결국에는 대중에 공개될 텐데 완벽한 정보가 없었음에도 공격을 가했다는 비난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舌戰
  
  부시 행정부 수뇌부 회의에서는 IAEA와 유엔을 통한 외교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게이츠 국방장관은 “미국인들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 주권국가를 향해 기습 공격을 한 전례는 없다. 우리는 진주만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체니 부통령은 미국이 공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동과 전세계를 더욱 안전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미국이 핵 비확산에 매우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사담 후세인을 잡은 후 무아마르 카다피는 핵물질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리비아의 원심분리기와 우라늄을 모두 미국이 확보해 보관 중이다”라며 “사담에게 무력을 사용한 직접적인 결과”라고 강조했다. 체니 부통령은 “핵시설이나 기술을 확산한다면 공격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란과 북한 등 불법무기 개발에 나서는 불량국가들에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참모진의 설전(舌戰)을 들은 부시 대통령은, 서둘러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고 싶어 했다. 마침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가 며칠 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올메르트 총리를 ‘내 친구(my buddy)’라고 칭하는 등 가까운 관계였다.
  
  6월 19일 올메르트 총리가 워싱턴에 도착했다. 미-이스라엘 정상은 대외적으로는 팔레스타인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양 정상의 회담을 취재한 기자들의 질문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집중됐다. 기자들이 떠나자 올메르트 총리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면 빨리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부시는 올메르트를 데리고 백악관 내 관저로 향했다. 부시 대통령은 특별한 지도자가 방문하면 대화가 녹음되지 않는 관저로 안내했다.
  
  설득에 나선 올메르트 총리
  
  부시는 올메르트에게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하는 데 몇 가지 우려가 있다고 했다. 원자로를 짓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무기화하려 한다는 정보가 없다는 것이었다. 핵무기를 운반할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증거도 없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시리아의 과학연구소에서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하는 연구진이 존재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시리아의 핵시설은 중동과 세계에 위협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내 기억이 맞다면 인류 역사상 원자폭탄은 두 도시에 각각 한 차례씩 사용됐다. 미국이 그렇게 했는데, 미사일을 사용했나? 비행기에서 폭탄을 떨어뜨렸다. (시리아랑) 뭐가 다른가”라고 압박했다. 올메르트는 시리아 전투기 35대가 출동했는데 이 중 2대에 핵무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했다. 이스라엘 공군은 비행기 요격 기술이 좋지만 35대 중 일부는 영공을 침투할 것이고, 그중 핵무기를 탑재한 비행기가 하나는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시리아 전투기가 출동하면 1분 안에 이스라엘 영공에 도착한다. 시리아는 미사일이 필요 없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미국이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하면 이란에도 확실한 경고를 전달할 수 있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조치라고 했다.
  
  부시는 즉답을 할 수 없었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만 했다. 이날 저녁 올메르트 총리는 체니 부통령과 만찬을 가졌다. 체니는 올메르트에게 이스라엘이 아닌 미국이 시리아의 핵시설을 파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체니가 같은 편이라는 생각에 안심했지만 라이스 국무장관과 게이츠 국방장관,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체니의 의견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것을 알았다. 올메르트는, 결정은 부시 대통령이 내리겠지만 군사작전에 반대하는 참모진의 의견이 예상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고 귀국길에 올랐다.
  
  손발이 묶인 부시
  
  올메르트가 떠난 며칠 후 부시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다시 참모진과 회의를 가졌다. 게이츠와 라이스 등은 유엔을 통해 아사드 정권을 압박하는 외교적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군사옵션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게이츠는 한 발 더 나아가 올메르트가 미국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싫다는 발언도 했다. 게이츠는 부시를 계속 압박했다. 그는 미국이 외교적 해결법을 선택했는데, 이스라엘이 따르지 않는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올메르트에게 명확히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가 핵시설을 공격당해도 보복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 했으나 참모진 대다수는 이를 믿지 않았다. 게이츠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하면 시리아와 전쟁에 빠지게 될 것이고 미국과 중동 전체가 말려들 수도 있다고 했다.
  
  체니는 이란과 북한 등을 동시에 압박할 수 있는 군사옵션만이 해결방안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체니의 주장이 끝나자 부시는 “이 시설을 폭격해야 한다는 부통령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 있는가”라고 물었다. 어느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부시는 IAEA와 유엔에 시리아 핵시설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결정했다. 부시는 미국의 결정에 따른 이스라엘의 반응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이 미국이 이끄는 외교적 해법에 동참할 것이라고 했다. 체니는,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힌 올메르트는 실제로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라이스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게이츠 장관은 며칠 뒤 부시를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미국의 동의 없이 어떤 행동에 나서지 않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올메르트 “이스라엘 안보의 책임은 내 어깨에 달렸다”
  
  부시 대통령은 7월 13일 오전 8시(이스라엘 현지 시각 오후 3시) 올메르트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시는 “우리 정보당국이 무기프로그램이라는 확신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한 주권국가를 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IAEA에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부시는 시리아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했다. 의회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정보 출처를 밝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미국이 이스라엘 때문에 또 다른 국가를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전국에서 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악화를 부르고, 중동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의 역량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부시는 올메르트에게 “상황이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느냐”며 이스라엘에서 라이스 국무장관이 올메르트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시리아 핵시설을 국제사회에 폭로하자고 했다. 듣고만 있었던 올메르트 총리가 입을 열었다.
  
  “대통령 각하. 각하의 논리와 생각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제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할 겁니다. 제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저는 원자로 시설을 폭파시킬 겁니다. 이 문제는 이스라엘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입니다. 당신 앞에서 정직하고 진심의 마음을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귀하의 전략은 저를 매우 거슬리게(very disturbing) 합니다.”
  
  올메르트의 폭탄 발언에 부시는 물론 통화를 듣고 있던 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부보좌관은 깜짝 놀랐다. 부시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통화 말미에 “마음대로 해라. 당신들의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라고 했다.
  
  올메르트는 부시에게 마지막 부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부터 이 문제가 새나가지 않게 해달라”며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이점(利點)은 시리아가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니 아무도 이 문제를 떠들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 부시는 “입 단추를 꽉 잠그고 있겠네, 친구”라고 했다. 전화가 끝난 뒤 부시는 “(올메르트는)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다”라며 “아무것도 유출돼서는 안 된다. 모두 그냥 입 닥치고 있어라”라고 말했다.
  
  
  
  게이츠 국방장관의 불만
  
  
  
  다음 날 게이츠 장관은 화가 나 대통령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올메르트가 미국의 도움을 청해놓고서 미국이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하는 방안이 아니면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인질이 돼버렸다고 했다. 그는 부시가 올메르트가 독자적 공격에 나서지 않도록 확실한 경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부시는 올메르트에게 경고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부시는 올메르트의 ‘변함없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도 했다.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은 몇 년 후 부시의 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올메르트는 부시가 좋아하는 지도자상을 보여줬다. 올메르트는 (시리아 핵시설이)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인의 현존하는 위협이라고 말했다. 이런 위협을 제거하는 일을 다른 사람 손에 맡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게 이스라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미국이라도 말이다. 부시의 결정은 그가 이런 모습을 존중한다는 뜻에서 나왔다.>
  
  이제 미국 행정부는 이스라엘이 언제 공격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자로가 가동되기 전이라는 점은 명확했다. 원자로의 외부 공사는 마무리됐고 냉각 시설은 최종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공격까지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구역’
  
  
  
  올메르트 총리는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가 있은 며칠 후 각료회의를 소집해 “미국인들은 행동에 나서지 않겠다는 답변을 줬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정부는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한다고 했을 때 시리아가 어떻게 나설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올메르트에 비판적이었던 에후드 바락 국방장관은 여러 시나리오에 대한 분석이 확실해질 때까지는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폭격한다는 것은 거기에서 끝나는 군사작전이 아닌 국제정치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군정보국 아만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아만의 연구부서를 이끌던 요시 바이다츠 장군은 ‘사실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구역(Deniability Zone)’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한 뒤 침묵하고 원자로에 대한 문제를 시리아에 직접 제기하지 않는다면 시리아도 보복에 나서지 않고 침묵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시리아 지도자 아사드로 하여금 원자로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자는 게 바이다츠의 전략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침묵하면 아사드도 침묵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전략이 나오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시리아 내부에서 핵시설이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이스라엘 군정보당국은 시리아의 핵심 군 장성들도 핵시설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확인했다. 아사드는 각료와 군부에 핵시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 비밀리에 추진하는 것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이란과 러시아도 이 시설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스라엘 군부가 작전 계획을 수립하는 사이 치피 리브니 외무장관은 공격 이후의 외교적 대응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공격 후 각국에서 ‘이스라엘이 가담한 것 아니냐’고 문의할 경우에 대비한 답변서를 만들었다. “우려해주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시리아에는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공식 대응을 삼가기로 했다. 다른 전화 통화가 예정돼 있어 이만 끊어야 할 것 같다. 우리 쪽에서 곧 찾아가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겠다.”
  
  리브니 장관은 법률전문가들을 소집,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에도 대비했다. 법률전문가들은 유엔안보리에 제출할 결의안을 미리 작성했다. 결의안에는 사건 경위와 이스라엘의 행동은 정당방위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리아가 비확산조약을 어기고 불법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을 전세계가 규탄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모사드와 아만은 심리학자와 정신분석가들을 불러 아사드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 토의했다. 가비 아슈케나지 이스라엘 방위군 참모총장은 아사드가 보복에 나설 가능성은 50%로 내다봤다. 보복 여부는 이스라엘 정부와 정치인들이 모두 침묵을 지키는지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는 각료회의에서 “침묵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발발하게 될 전쟁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며 “우리는 아사드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딜레마는 몇 달간 지속됐다. 원자로를 폭격하면 시리아와의 참혹한 전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고민, 폭격하지 않는다면 적국(敵國)이 핵무기를 갖게 된다는 고민이었다. 정책 결정권자로서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시간에 쫓기는 이스라엘
  
  9월 5일 올메르트 총리는 시리아 관련 마지막 각료회의를 소집했다. 원자로 건설이 거의 완료된 것으로 보이는 위성사진이 새로 입수됐다. 유프라테스강에서 원자로를 향하는 곳에 냉각 시스템을 위한 수로(水路)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군정보국은 원자로 가동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일부 기자들에게서 ‘이스라엘이 시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루머를 확인해달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은 미국 신문사 소속이었는데, 외국계 기자는 이스라엘의 군(軍) 검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군부는 작전계획이 유출되기 시작했다는 우려를 갖게 됐다. 작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각료들은 오전 10시부터 회의를 시작했다. 총리실은 ‘각료회의는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하마스의 공격을 막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냈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군정보당국은 시리아 핵시설 공격으로 인해 발생할 여러 시나리오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아슈케나지 방위군 참모총장은 공격의 세부 내용은 자신이 결정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스라엘 공군은 여전히 최종 작전계획을 짜고 있는 상황이었다. 각료회의에 참석한 장관 중 한 명만을 제외하고는 원자로 공격에 찬성했다. 공식적인 각료회의는 오후 3시에 끝났지만 올메르트와 바락, 리브니 세 명은 다시 모여 회의를 계속했다. 야슈케나지 참모총장과 야단 아만 국장, 다간 모사드 국장이 한 명씩 차례로 회의에 들어가 각자의 의견을 말했다.
  
  “오늘밤 공격해야”
  
  야단은 대규모 공격을 가하면 아사드가 침묵할 수 없으니 제한적 공격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야단은 전투기 몇 대만 투입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다간은 전투기로 공습하는 방안이 좋을 것 같다는 짧은 의견만 남겼다. 정보수장들이 떠나고 아슈케나지 참모총장이 들어왔다. 올메르트 총리는 어떤 방식의 공격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아슈케나지는 “오늘밤 공격해야 한다”라며 “작전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고 육군은 공격 이후 발생할 일들에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리브니 외무장관은 공격이 이렇게 빨리 진행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올메르트와 바락은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각료회의 투표가 끝났기 때문에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리브니는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했다. 올메르트 총리는 “지금 당장 해야 한다”며 “(결정권자인) 우리 셋이 투표를 하는데 2대 1의 결과가 나왔다는 역사를 만들지 말자”고 했다. 리브니는 손을 들었다.
  
  올메르트와 리브니, 바락은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방위군의 지하 전술통제실에서 작전 진행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올메르트는 잠깐 집에 들러 샤워를 하고 두 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가 밤 10시 30분에 일어나 통제실로 향했다.
  
  ‘임무 완수’
  
  10시 30분쯤 이스라엘 남부에서 F-15 네 대, 네게브 사막에서 F-16 네 대가 출격했다. 여덟 대의 전투기에는 20톤 상당의 폭탄이 실려 있었다. 조종사들은 시리아의 방공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200피트 이하로 아주 낮게 날았다. 통신이 새나갈 수 있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시리아의 저항은 없었다. 시리아는 전투기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자정을 갓 넘긴 시점 전투기들은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20톤 상당의 폭탄이 핵시설에 투하됐다. 모든 상황은 카메라에 담겼다. 조종사들은 비행기에 달린 열감지 카메라를 통해 건물이 제대로 파괴됐는지 확인했다. 작전 지휘관 조종사는 ‘애리조나’라고 무전을 보냈다. ‘임무 완수’라는 암호였다.
  
  군 수뇌부는 조종사들이 안전하게 돌아올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시리아가 눈치챈 이상 조종사들이 저고도 비행을 할 이유는 없었다. 고도를 높이고 고속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터키 쪽 국경으로 향한 뒤 안전한 서쪽으로 비행했다. 시리아는 몇 발의 미사일을 쐈지만 아무 것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작전 시작 4시간이 안 된 새벽 2시쯤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안전하게 기지로 복귀했다.
  
  작전 종료 몇 시간 후 이스라엘 군부는 ‘사실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구역(Deniability Zone)’ 전략이 먹혀 들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리아 군대는 동원되지 않았고 미사일도 발사대에 올려지지 않았다. 시리아 국영 사나 통신은 정오쯤 짧은 보도를 내보냈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전날 밤 시리아 영공을 침입했으나 시리아 방공부대가 이들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사막 지역에 약간의 폭탄을 투하했지만 인명 및 자산피해는 없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올메르트 총리는 호주를 방문하고 있던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메르트는 간단히 안부를 물은 뒤 “우리가 싫어하던 것 기억하느냐”고 했다. 부시는 “그렇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이제 더 이상 그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부시는 신중하게 “오 매우 흥미롭다”며 “어떤 대응이 뒤따르거나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있느냐”고 했다. 올메르트는 “아니다. 현재로선 대응이 있을 것이라는 신호가 없다”고 했다. 부시는 “알았다”며 “만약 대응이 있다면 미국 전체가 귀하의 뒤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믿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올메르트는 부시의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며칠 뒤 부시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부시는 “내 친구 에후드(올메르트)!”라고 소리쳤다. 그는 호주에서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스라엘이 제대로 된 일을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後記
  
  이스라엘이 시리아 핵시설 폭격을 공식 인정하고 당시 작전 영상을 공개한 것은 11년이 지난 2018년 3월이었다. 벤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적들이 핵무장을 하는 것을 막는다는 이스라엘의 정책은 계속 유효하다”고 했다. 시리아는 원자로를 건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시리아 핵시설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수괴였던 아부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최근 미군 특수부대의 습격 작전으로 사망하자 다시 화제가 됐다. IS는 핵시설이 건설되던 데이르알조르 지역을 3년간 점령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이 없었다면 IS가 핵무기를 손에 얻는 핵재앙이 펼쳐졌을 수도 있었다. IS가 핵을 가졌다면 미국도 알 바그다디 습격 작전 같은 것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습격 작전은 고사하고 IS의 요구에 국제사회가 끌려 다니게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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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스 기사>
  
  
  모사드의 평양공작 내막
  
  이스라엘 “시리아에 미사일 공급 중단하라”…북한 “10년간 석유 지원해주면 중단”
  
  
  
  
  
  1990년대 초 이스라엘은 북한이 시리아의 스커드 미사일 제조공장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시리아의 독재자였던 하페즈 알 아사드는 1974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다. 이후 북한은 시리아에 무기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나라가 됐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나 화학무기를 탑재할 수 있고 이스라엘을 사정권에 두는 스커드 미사일을 두려워했는데, 북한이 미사일 제조공장 건설까지 돕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이스라엘 모사드의 차장 이프라임 할레비(이후 국장 역임)는 유럽에 있는 인맥을 통해 북한 고위층과 접촉했다. 1992년 9월 라빈 수상을 만나 직접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양국(兩國)의 미사일 협력을 막는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고위 간부를 시리아와 협력하고 있는 북한에 보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라빈 수상은 허락했다. 할레비는 베를린에서 모사드 요원 한 명과 함께 북한이 제공한 항공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북한 항공기의 승객은 둘뿐이었다. 모스크바에 기착한 항공기는 빈 좌석에 상자들을 실은 뒤 다시 출발했다. 항공기는 시베리아 한가운데에 위치한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에 기착, 북한 광산노동자들을 태운 후 다시 이륙해 10시간 후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까지 가는 데 48시간이나 걸렸다.
  
  할레비는 3일간 평양에 체류하면서 북한 노동당 간부 및 외무성 관계자들을 만났다. 할레비는 “당신들이 시리아에 제공하는 스커드 미사일이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북한 측은 할레비 차장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며 시리아와의 관계를 부인했다. 할레비가 북한의 태도를 지적하며 평양을 떠나겠다고 하자 북한은 ‘솔직한 대화를 하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다음 날 아침, 북한 측은 시리아와 관계를 갖고 있으며 시리아에 미사일 기술을 비롯한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할레비는 무기 공급 중단 대가로 무엇을 원하느냐고 했다. 북한은 향후 10년간 2000만 주민이 사용할 석유를 공급해달라고 했다. 할레비는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다”면서도 “상부에 보고해보겠다”고 했다.
  
  할레비는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항공기 내에서 이스라엘 외무부 국장인 에이탄 벤추르를 만났다. 벤추르 역시 북한과의 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행정부간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북한의 금광 재개발 문제로 방문했던 벤추르는 북한이 개발 자금과 기술을 필요로 하며, 이스라엘 외무부는 자금 마련을 위해 기업인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을 지원함으로써 북한이 시리아와 이란과 맺고 있는 관계를 재고하도록 할 수 있다고 했다.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은 할레비와 벤추르를 불러 보고를 받았다. 벤추르는 평양 방문이 긍정적이었다며 금광 공동개발사업이 결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할레비는 회의적으로 봤다. 북한과 시리아 간의 미사일 거래로 얻는 이익이 금광개발에서 나올 이익보다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할레비는 북한이 미국에 적대세력이고 이스라엘은 미국의 우방이므로 복잡한 외교 문제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페레스는 할레비와 벤추르를 미 국무부에 파견, 관계자들과 협의하도록 했다. 귀국한 벤추르는 미국은 이스라엘이 북한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을 그렇게 반기지는 않았으나 ‘공식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할레비는 전혀 다른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이스라엘이 미국의 등 뒤에서 미국 국익과 직결된 영역에서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며 “미국은 미국의 허가를 우선 받지 않는 이상 북한과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을 원한다”고 했다.
  
  상반된 보고를 받은 페레스 장관은 1993년 6월 오스트리아 빈으로 직접 가 새롭게 임명된 워렌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을 만났다. 그는 할레비의 말이 맞다고 했다. 할레비와 벤추르가 추진하던 일들은 모두 무산됐지만, 이 공작은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미사일 공급라인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 2020-01-13, 07: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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