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북한의 특수관계 추적: 핵과 미사일 협력 내막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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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이란-북한의 核거래(월간조선 2006년 11월호)
 
     
  이란과 북한의 核유착
 
  유엔 안보리의 제재대상이 된 이란과 북한은 「核쌍둥이」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 방식에 의한 핵폭탄 제조를 시도하고 있다. 북한은 플루토늄彈(탄)을 만들어 실험을 했다. 두 나라 모두 테러지원 국가로 지정되어 있고, 세계 도처의 각종 테러활동에 개입해 왔다. 이란의 대통령 마흐무드 아하마디네자드는 金正日처럼 공식석상에서 노타이 차림이다. 미국을 향한 두 사람의 毒說(독설)은 비슷하다.
  물론 두 나라는 부시 행정부에 의해 「惡(악)의 축」으로 지명된 관계이다. 두 나라는 고립될수록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이란은 지난 7월5일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할 때 그 현장에 참관단을 보냈다. 북한 核실험 장소에 이란 참관단이 와서 실험을 지켜봤을 것이란 첩보도 있다. 북한은 이란에 스커드와 노동미사일을 팔고, 기술을 넘겨주고, 미사일 공장까지 지어 주었다. 이란은 북한에 돈과 기름을 대주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북한은 이란에 무기를 많이 팔았다.
  이 두 나라의 협력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요사이 부쩍 많이 나오고 있다. 요컨대 미사일 개발에 협력한 두 나라가 핵무기 개발에 있어서도 협력할지 모른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23일자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紙는 「이란은 북한의 核전략을 연구하고 있는가?」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美 로드아일랜드州 뉴포트에 있는 해군대학의 북한전문가 조나단 폴락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두 나라는 서로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트를 서로 비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非확산담당 美 국무부 차관보였던 로버트 아이언혼(워싱턴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씨는 『두 나라는 경쟁적으로 세계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고 했다.
  『이란의 아하마디네자드 대통령과 강경파들은 북한이 난관을 헤쳐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굴복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두 나라는 미국이 정권교체를 원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미국과 직접 담판을 원하고 있는 점에서도 같다. 물론 미국은 6者회담 같은 국제적 틀을 통한 대화에만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나 다른 점은 이란은 북한처럼 철저히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은 전략물자인 기름을 수입해야 하는데 이란이 상당량을 공급하고 있다. 이란과 북한의 밀착관계가 核기술의 상호이전으로 진전되는 것은 미국과 세계의 악몽이다. 예컨대 북한의 核폭탄 설계도나 核실험 자료, 더 나아가서 核폭탄이나 核물질이 이란으로 넘어간다면?
 
  악몽
 
  이란과 북한이 核기술과 核물질과 核폭탄을 주고 받고 이 두 「惡의 축」을 중심으로 테러단체가 연결되어 드디어 미국 도시에 대한 核테러가 벌어진다면? 미국이 이 두 나라에 대해서 갖고 있는 최종적인 걱정이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核무장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對北정책과는 별도로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과 이란이 核보유국이 되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기 때문에 核무장한 두 나라와 공존하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결코 親北的(친북적)이거나 유화론자들이 아니다. 예컨대 北核(북핵) 문제에 대해서 누구보다 실무경험이 깊은 클린턴 정부 1期 때의 국방장관 윌리엄 J. 페리는 지난여름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준비할 때 「미국은 미사일 발사대를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기고를 한 적이 있다. 페리는 북한과 이란의 核무장을 막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난 5월24일 워싱턴에서 「국가정책센터」 주최로 열린 행사 때 페리 前 장관은 「이란과 북한, 그리고 核확산의 도전」이란 제목으로 연설했다.
 
  미국 도시에 대한 核테러 가능성
 
  이 연설에서 페리 前 장관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안보상의 위기는 테러리스트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미국의 도시들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10년 안에 미국의 한 도시에서 테러집단에 의해서 핵폭탄이 터질 가능성을 50대 50으로 본 것은 너무 낙관적이다. 나는 그보다 더 빨리 核테러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임기 중에 核물질이나 核폭탄이 테러집단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核감축 프로그램에 의해서 약 1만 개의 核폭탄이 미국과 러시아에서 해체되었다. 페리 前 장관은 『북한의 절망적인 경제상황으로 볼 때 그들은 핵폭탄이나 핵물질을 테러단체에 판매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페리 前 장관은 부시 행정부의 對北·對이란 정책이 실패하여 두 나라뿐 아니라 일본·한국·이집트·사우디·터키 같은 나라들이 核개발 경쟁을 하게 되고, 이런 核확산의 결과로 미국의 도시가 核테러를 당할지 모르는 위기가 현실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에 대해 몇 가지 정책건의를 했다.
  〈1. 외교정책을 수정하라. 직접대화와 병행하여 더 효과적인 압박수단을 강구하라.
  2. 군사공격으로 핵시설을 파괴한다는 계획과 정권교체 정책을 폐기하라.
  3. 핵무장한 북한 이란과 공존하면서 안보를 유지할 수 있는 대응책을 강구하라〉
  그는 북한의 核시설에 대한 공격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
  『재처리시설과 원자로를 없앨 순 있지만 플루토늄이나 핵폭탄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가령 플루토늄과 핵폭탄을 군사공격으로 제거한다고 해도 더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 제2차 한국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다. 그 피해 규모는 1차 한국전쟁을 능가할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전쟁에 반대하고 있다.
  핵무장한 북한에 대해서 미사일 방어망을 만드는 것은 좋은데, 반드시 구멍이 생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핵폭탄을 누구한테 팔고 그들이 핵폭탄을 미사일이 아니라 트럭이나 화물선에 실을 때 대책이 있는가이다.
  美·蘇(미·소) 냉전 때처럼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북한의 對美 공격을 단념시킬 수는 있으나 과연 그들이 핵폭탄 파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미국 도시에서 核테러가 일어나면 북한에 대한 보복공격을 할 것이라고 선언할 수는 있으나 문제의 핵폭탄이 북한제임을 증명할 방법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매력적인 대책이 남아 있지 않다. 중국과 한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력수단을 쓰지 않으려고 하므로 더욱 그렇다』
  페리 前 장관은 이란에 대해서 미국이나 유럽이 아무리 노력해도 核무장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란의 核시설을 공격하는 것도 한두 번으로 되지 않고 기필코 긴 전쟁으로 연결될 것이다. 유럽지역에 미사일 방어망을 설치할 수는 있지만 이란의 경우 가장 큰 위험은 그들이 핵물질이나 핵폭탄을 테러집단에 넘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단독으로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하는 것은 미국에 의한 공격보다 더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이 독단적으로 이란을 공격해도 이슬람 사람들은 미국이 시켰다고 볼 것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처럼 깨끗하게 군사적으로 마무리할 실력이 없어 부작용이 더 커진다. 페리 前 장관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걱정했다.
  페리 前 장관은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완전한 실패」이므로 새로운 전략을 고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나라에 대한 정권교체 전략을 포기하는 대신에 직접 대화를 시작하고 동시에 유엔헌장 제7조에 의한 對北 국제봉쇄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안보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란과 북한이 만든 核폭탄과 核물질이 테러집단에 넘어가 이것이 미국 영토로 반입되어 어느 도시 전체를 파괴하게 되는 核테러의 가능성이다. 그들은 특히 북한의 과거 행태로 보아서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하면 核폭탄을 테러집단에 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이런 끔찍한 가능성에 대해서 『그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다. 앞으로 틀림없이 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라고 단언하는 사람을 만났다.
 
  이란-이라크戰에 북한군 대거 참전
 
  북한군에서 고위 軍務員(군무원)으로 일한 이 탈북자는 1986년 이란에 가서 약 6개월간 미사일 기지 공사에 참여한 고위급 과학자였다. 그를 편의상 K씨라고 부른다. K씨는 놀라운 증언을 했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북한군 장교들이 수천 명 참전하여 이란혁명수비대의 지휘관으로 戰線(전선)에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戰勢(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라크는 독가스를 썼는데, 이때 북한군 장교들이 많이 戰死했다고 K씨는 말했다. 북한장교 戰死者는 수백 명에 이른다고 했다.
  『테헤란 북쪽에 이란-이라크 전쟁 희생자 묘역이 있습니다. 거기에 전사한 북한군 장교들이 묻혔습니다. 저도 가서 꽃을 바친 적이 있어요. 북한군 전사자 이름이 아랍어로 쓰인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란 사람들은 聖戰(성전)에서 죽었다고 해서 북한 군인들을 이슬람 교도처럼 대우해 주었어요. 이란 정부에선 전사자 1인당 1만 달러 이상 보상해 주었습니다만, 북한 당국에서 다 가로채고 유족에겐 1000달러만 주었습니다. 그래도 고맙다고 했어요. 평양에 돌아온 뒤 참전 북한군 장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란-북한은 오랜 혈명관계입니다. 이 점을 알아야 왜 지난 7월 미사일 발사장에 이란 참관단이 와 있었는지, 왜 북한의 핵실험 자료가 이란에 넘어갈 것이 틀림없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북한은 핵기술뿐 아니라 플루토늄이나 핵폭탄까지 이란에 팔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돈줄이 막히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북한이 이란을 통해서 핵물질을 테러단체에 팔아 넘기면 원래 소스가 어디인지 알아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K씨에 따르면 북한군 장교들은 교관이나 고문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중대장·대대장 역할을 맡아 實戰(실전)을 지휘했다고 한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란은 축출된 팔레비 왕이 만든 정규군을 믿지 않고, 이란 혁명의 정치적 主力인 혁명수비대를 일선에 투입했다.
  혁명수비대는 혁명의 열정과 순교 정신은 강했지만, 전투에 있어선 아마추어였다. 더구나 무장이 부족했다. 이란-북한의 혈맹관계는 북한이 각종 무기를 세트로 팔아 혁명수비대를 무장시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K씨는 이 부문의 전문가이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란은 소총에서 미사일까지 북한제 무기로 싸웠다고 보면 됩니다. 군복을 빼고는 전부 북한제 무기로 무장했습니다. 사단·군단 전체를 무장해 주는 식으로 북한이 통째로 무기를 공급했습니다. 소총·장갑차·자주포·방사포·지뢰·기관총, 스커드미사일과 고속정·잠수정까지 팔았습니다.
  이란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미국과 소련에서 무기를 사 올 수 없었습니다. 중국산 무기는 구할 수 있었으나, 다루기가 간단하고 값이 싼 북한산이 혁명수비대 수준에 맞다고 판단했어요. 사막에서 막 싸우는 데는 정교하고 복잡한 무기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지요. 무기를 팔았으니 북한으로선 무기 다루는 법을 가르쳐야 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實戰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혁명수비대로선 反혁명적인 이란 정규군 장교보다는 북한군 장교들을 더 믿었지요』
  K씨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이란-이라크 전쟁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라크의 誤判
 
  1980년 9월 이라크가 샤트엘아랍 水路(수로)를 건너 이란을 기습공격하면서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은 8년을 끌다가 1988년 8월에 끝났다. 이 전쟁으로 이란은 약 100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라크는 약 40만 명의 戰死傷者를 냈다. 희생자 수에서 20세기에 일어난 10大 전쟁 안에 들어간다.
  6·25 남침 전쟁처럼 이 전쟁은 무승부로 끝났다. 이라크 독재자 후세인은 1979년의 호메이니 혁명에 의해서 혼란상태로 들어간 이란을 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誤判(오판)했다. 국제정세도 이라크에 유리했다. 미국과 소련뿐 아니라 中東의 아랍국가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혁명 열기가 자기 나라에 번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사우디·쿠웨이트 등 아랍 産油國(산유국)들이 이라크를 물질적·금전적으로 지원했다. 이라크는 이란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이 아랍국가들의 대리전을 한 셈이다. 소련도 호메이니가 집권한 이후 공산당을 탄압하는 것을 보고는 이라크에 무기를 파는 등 여러 모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소련제 무기가 이라크 군대를 무장시켰다.
  이란은 팔레비 시절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었으나, 혁명을 거치면서 지휘관들이 숙청되고 미국제 무기의 부품 공급이 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 군대는 기습을 당하고도 잘 버티었다. 1982년부터 이란은 失地(실지)를 수복하고 이라크 영토內로 진격했다.
 
  약 30억 달러어치의 북한 무기 수입
 
  이라크 남부 바스라와 파오 섬 근방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독일 접경지대에서 계속된 것과 같은 陣地戰(진지전)이었다. 쌍방 戰死者가 하루 1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 이번엔 이라크가 잘 버티었다. 수세에 몰린 이라크는 테헤란을 스커드미사일로 공격하고, 폭격기로 공습하고, 나중엔 독가스를 썼다. 전투는 페르시아 만의 유조선과 原油터미널 공격戰으로 확대되었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이란에 무기를 판 나라는 시리아·리비아·중국·북한이었다. 이 가운데 북한이 가장 많은 무기를 팔았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북한은 권총에서 스커드미사일까지 약 3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이란에 판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대 한국에 월남전 特需(특수)가 있었던 것처럼 1980년대 북한엔 이란 特需가 있었다. 이 가운데 스커드 미사일 거래는 지금껏 이란과 북한을 잇고 있고 한국과 미국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1985년 이란 대통령 라프산자니는 북한을 방문해 무기판매에 대한 합의를 보았다. 이란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돈을 대고, 북한은 이란에 미사일과 제조기술을 팔고 공장까지 지어 주기로 했다. 이라크는 이란의 테헤란 등 여러 도시로 소련제 스커드미사일을 쏘아 대어 이라크 주민 약 2000명이 죽었다. 이란도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존 미사일 재고량을 다 쏘아 버린 이란은 북한과 밀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기수출 大國 북한
 
  1987년 7월부터 북한제 스커드미사일이 이란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북한은 스커드미사일을 만들자마자 북한군에 배치하기도 전에 이란으로 수출했다. 7개월 사이에 약 100基의 북한제 스커드가 이란에 들어왔다. 이 스커드는 모두 이라크의 도시를 향해 발사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뒤 이란은 북한으로부터 스커드B뿐 아니라 사정거리가 500km인 개량형 스커드C도 수입하기 시작했다. 북한으로부터 설계도까지 얻고 기술지도를 받아 이란은 자체 제작에 들어갔다. 이란은 북한이 개발한 사정거리 1000km의 노동미사일을 수입한 뒤 공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東西냉전 시절, 內戰이나 국지적 분쟁상태가 계속된 아프리카·中東·中南美·東南아시아 국가에 있어서 북한은 미국·소련에 이은 제3의 무기판매 국가였다. 북한은 이들 지역에 무기를 팔고 장교들을 보내 현지 군대를 훈련시켰으며, 요원들을 북한으로 불러와 훈련시켰다.
  1990년까지 북한은 62개국에 대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아프리카 25개국, 中南美 19개국, 아시아 9개국, 東南아시아 7개국, 유럽 2개국이었다. 延 5000명의 외국 군사요원들이 북한에서 훈련을 받았다. 약 7000명의 북한 군사고문단 요원들이 47개국에 파견되어 훈련을 시켰다.
  1980년대,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경우 북한은 對테러 부대인 제5여단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켰다. 북한은 약 1800만 달러어치의 장비를 이 나라에 팔았다.
  1970년대 브라질·볼리비아·칠레·과테말라·멕시코·페루·베네수엘라·니카라과·아르헨티나의 叛軍들에게 북한은 군사원조와 무기판매를 열심히 했다. 이 나라들에 파견된 북한 군인들이 실제 전투에 참여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감시망 피하는 데 大家
 
  「1973년 제4차 中東전쟁 때 북한 조종사들이 이집트의 전투기를 몰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1977년 리비아-이집트 전투 때는 북한 군인들이 리비아軍의 탱크를 몰았다고 한다. 미국 정보 당국에 따르면 1979년에 북한은 100여 명의 군인을 리비아로 파견해 소련제 전투기 조종사들을 훈련시켰고, 實戰 근무를 했다고 한다.
  미국의 군비통제국은 「1978~1987년 사이 북한은 中東·아프리카·中南美의 30개국에 약 39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팔았다」고 추정했다. 스커드·탱크·고속함·對전차미사일·장갑차·자주포·장거리 야포 등이었다. 39억 달러어치 중 약 71%인 28억 달러는 이란으로 판 것이었다.
  고위 탈북자 K씨는 『실제 수출액은 이보다 훨씬 많은 약 5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문제는 이 돈이 국가경영에 쓰이지 않고 金正日의 비자금 계좌로 빠진 점이다. 1982년 북한의 무기수출액은 전체 수출액의 약 38%였다. 이 시기 북한은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약 28억 달러의 무기를 수입했다. 금액 면에서 북한은 純무기수출국이었던 셈이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분쟁지역이 줄어들고 공산권이 붕괴되면서 북한의 무기수출이 저조해졌으나, 2001년의 경우 약 6억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요즘도 북한은 분쟁지역에 대한 무기수출을 계속하고 있다. 수십 년간 축적된 이 방면의 경험 때문에 북한은 미국의 감시망을 피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북한의 무기공장과 과학자들은 세계의 비밀무기거래상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이 이런 네트워크가 북한의 核기술·核물질, 심지어는 核폭탄까지 거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란과 북한은 비정규전과 테러 부문의 大家이다. 두 나라는 세계의 테러, 범죄단체에 대한 노하우와 정보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인프라를 갖고 있다. 이란과 북한이 核무기를 개발하고 核물질을 얻게 되면, 이런 테러 네트워크와 접속되어 核테러를 유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두 나라가 核기술 교류에서도 血盟정신을 발휘한다면 세계가 떨게 된다. 한국은 對이란 정책을 再검토해야 할 것이다.
 
  북한군 장교들, 독가스에 많이 희생돼
 
  탈북자 K씨는 이란으로 파견된 북한군인들은 전원이 장교들이었다고 증언했다. 초기엔 각급 軍官(군관·장교)학교 교관들이 차출되어 이란으로 보내졌다. 나중엔 평양방어사령부에서 뽑혀 온 장교들이 많았고, 동해안의 해군 제2전대 소속 장교들이 왔다고 한다. 공군은 참전하지 않았다. 북한과 이란은 고속정에 放射砲(방사포)를 실어 이라크軍을 공격했다. K씨의 증언 중 흥미로운 것은 북한군 장교들이 이라크軍의 독가스에 많이 희생당했다는 주장이다.
  요사이 재판을 받고 있는 후세인이 이라크 북쪽의 쿠르드族을 상대로 독가스를 사용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후세인의 이라크 군대가 이란-이라크 전쟁 중 이란軍을 상대로도 독가스 작전을 했다는 사실은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
  당시 미국과 유럽·중동 産油國(산유국)들이 이라크를 지원했기 때문에 이란에 유리한 기사는 크게 취급되지 못한 점도 있다. 미국 언론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국제사건은 묻혀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1984년 이란은 약 50만 명의 혁명수비대와 의용군을 동원해 이라크의 제2도시 바스라에 접근했다. 이란군은 重火器(중화기)가 부족해 人海(인해)전술을 썼다. 한 동구권 기자는 이란이 수천 명의 소년들을 20명 단위로 묶어서 전선에 투입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공격용 헬기·탱크로 중무장한 이라크 군대가 이란의 공격을 저지한 뒤 처음으로 이란은 정규군을 투입했다.
  이쯤 숫자에서 밀리던 이라크軍은 독가스를 쓰기 시작했다. 독가스탄을 탱크·헬기·전투기 등에 싣고 이란軍의 집결지와 포병기지를 주로 공격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었다. 이라크軍은 나중엔 독가스 전술을 공격전술의 필수 부분으로 이용했다.
  1986년 당시 유엔 사무총장 자비엘 페레즈 쿠엘라氏는 이라크가 독가스를 사용했음을 인정했다. 유엔은 네 명의 化學戰(화학전) 전문가를 이란으로 보내 현장 조사를 했다. 유엔의 보고서는 「이라크가 신경계통을 마비시키는 가스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유럽 병원들로 이송된 이란 환자들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1986년 제네바에서 열린 군축회의에 참석한 영국 대표는 『이라크의 독가스 사용으로 약 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라크가 쿠르드族을 상대로 독가스를 쓴 것은 1988년 3월이다. 즉, 유엔이 「이라크의 독가스 사용은 1925년의 제네바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한 뒤에도 후세인은 反인류적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다는 이야기이다. 후세인은 金正日처럼 그 자신이 대량살상무기였던 셈이다.
  이란-이라크戰 참전 탈북자 K씨는 『이란軍을 지휘했던 북한군 장교들은 이란군의 전투능력을 아주 낮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북한군 실력이면 1개 사단으로 해치울 작전을 1개 군단으로도 쩔쩔 매더란 것이다. 이런 수준의 군대였던 만큼 단순하고 값싼 북한제 무기가 적합했다. 북한군은 모스크바-아제르바이잔-이란을 잇는 철도로 투입되었다고 한다. 북한군 장교들은 혁명수비대 兵營에서 머물렀으므로 일반 이란인들에겐 노출되지 않았으나 이란주재 북한대사관에 가면 장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핵실험 자료와 핵폭탄 설계도를 팔 것』
 
  K씨는 북한이 核실험을 했으니 核폭탄 설계도와 실험자료는 반드시 이란으로 팔리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함께 피를 흘려 싸웠다는 血盟관계로 인해 이란-북한 관계는 북한-파키스탄 관계 이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란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돈을 대주고 나온 제품은 그들이 사갑니다. 북한은 이란의 기름을 헐값에 공급받습니다. 이런 전략적 상호의존성에 기초하고 있는 두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고립되자 더 친밀해졌습니다. 서로 감출 것이 없는 관계라고나 할까요. 이란-북한의 협력은 서로가 생존의 문제입니다』
  K씨는 對北 금융제재나 유엔의 경제제재가 북한체제에 타격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과대평가해선 실수한다는 견해였다. 그는 『북한체제는 원래 이런 악조건下에서 견디어 왔고 생존의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다. 문서로 對北제재를 결의하는 것과 그것이 지켜지는 것은 별개라는 것이다.
  다만, 對北 금융제재는 金正日 정권의 지배층 사이에서 不信과 불안을 키우고 있어 그에겐 1990년대의 大饑饉(대기근) 사태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미사일 발사 실험과 핵실험은 흔들리는 지배층에 대해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목적을 주로 하고 있다.
  K씨는 『그런 시위가 일반 주민들에겐 먹히겠지만 지배층 인사들에겐 역효과를 볼 것이다』고 했다. 북한의 黨·軍 간부들은 외부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므로 金正日의 쇼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껴안고 죽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 金正日이 이란을 비상구로 삼고 탈출을 시도한다면 지구의 재앙이 된다.●
 
[ 2020-01-13, 08: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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