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사 산파 柳炳賢 장군 별세!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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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연합사의 산파 역할을 하였던 柳炳賢 전 합참의장이 21일 별세하였다. 중일전쟁, 한국전, 월남전에 참전한 경력을 가진 그는 한국군의 가장 유능한 지휘관 중 한 분으로 꼽힌다. 월남전 파병 맹호사단장, 농림부 장관, 주미대사,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192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8년 11월 육군 소위(육사 7기)로 임관해 6·25전쟁에 참전했고, 이후 제15보병사단장, 주월맹호사단장, 제5군단장을 거쳤다. 5군단장 재직 시절엔 북한 땅굴 탐지 작전을 지휘해 '제2땅굴'을 발견했다.
   합참 작전본부장으로서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실무를 주도한 뒤 초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이후 제16대 합참의장을 지냈는데, 전두환-레이건 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켰다. 1981년엔 주미 대사로 발탁됐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은 어제 "한·미연합사령부를 대표해 오늘 별세한 류병현 장군의 가족과 지인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며 "류 장군은 1978년 초대 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냈고, 오늘날의 연합사를 있게 한 기반을 다졌다"고 했다.그는 "합참의장과 주미 한국대사를 역임하며 동북아 안보의 주역으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는 데 기여했다"면서 "우리는 모두 류병현 장군을 진정으로 잊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합참장(葬)으로 치러진다. 25일 대전현충원에서 안장식이 거행된다. 유족으로는 부인 양정희씨와 4명의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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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내가 했던 축사를 소개한다.
  
   *2013년 10월24일 전쟁기념관에서 있었던 柳炳賢 장군 회고록 출판 기념회 축사
  
   우리는 오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장면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20대에 중일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으시고, 30代에 농림부 장관을 거쳐, 40代에 맹호사단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하셨으며, 50代에 5군단장으로 북한군의 땅굴작전을 저지하셨고, 합참본부장으로 옮겨서는 對간첩작전을 지휘하는 일방, 韓美(한미)연합사 창설의 실무主役(주역)을 맡으셨고, 합참의장 시절엔 全斗煥(전두환)-레이건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미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던 柳炳賢(류병현) 장군께서 여러 번의 수술과 死境(사경)을 헤매는 투병 속에서도 굴하지 않으시고, 양심상 대필을 하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써 내려간 회고록이 책으로 나온 날, 즉 老兵(노병)이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한 날입니다. 세계사적 전쟁을 세 번이나 치르신 유 장군께서는 살아남은 자, 즉 生殘者(생잔자)의 의무로서 <여러모로 부족한 나에게 40년이나 공직에서 봉사할 기회를 준 나라에 報恩(보은)하기 위하여> 이 회고록을 쓰기로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회고록 원고를 제대로 읽은 것은, 지난 여름 파리로 가는 대한항공 점보기 안에서였습니다. 12시간이 걸리는 비행시간을 활용하려고 원고를 갖고 탔습니다. 柳 장군의 90 평생을 압축적으로 읽었습니다.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고, 명작을 읽는 것처럼 감동적이었습니다. 언론과 정치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참호와 밀림과 상황실에서 오로지 군대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준비하고, 싸우고, 苦心(고심)하였던 참군인이 있었구나 하는 감회와 함께 그런 군사학파 군인들에게 언론이 너무 무관심하였다는 미안감도 우러났습니다.
  
   류병현 장군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가 재발견한 尙武(상무)정신과 자주국방 의지와 군사문화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아마도 또 다른 군사학파 군인으로 분류될 李秉衡(이병형) 장군(1군 사령관 역임)은 <아시아에서 武士가 세운 나라는 선진국이 되고, 선비가 다스린 나라는 식민지가 되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육사 56기 출신으로 한국군 군번 1번인 李亨根(이형근, 육군참모총장 역임) 장군 회고록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1945년 8월15일 일본천황이 항복을 선언한 바로 그날, 일본군 육군대위이던 이형근은, 도쿄에 살던 고종의 아들 영친왕 李垠(이은)공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이은은 이렇게 당부하였다는 것입니다.
  
   "조선과 일본은 다 같은 유교국가이면서도 일본은 尙武(상무)정신을 발전시켜 무사도를 전통으로 삼았는데 조선은 武를 천시하여 文弱(문약)에 빠지고 文尊 武卑(문존무비)라는 폐습을 이어오다가 결국은 武士를 존중하는 일본에 병탄 당하고 말았소. 나는 언젠가는 우리 조상들, 즉 조선王家(왕가)를 대표하여 文弱풍조를 없애지 못하여 亡國(망국)을 초래한 잘못을 우리 동포들 앞에 서 깊이 사과하고 싶었소. 빨리 귀국하여 군대를 만들게."
  
   류병현 장군 회고록엔 국군의 아버지이신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짧지만 인상적인 증언이 몇 군데 나옵니다. 1392년 조선조 개국 이후 사대주의 정책으로 밀려났던 군인을 다시 역사의 중앙무대로 불러들인 분은 위대한 외교 전략가 이승만 대통령과 근대화 혁명가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자유를 富國(부국)강병의 필수 조건으로 이해하였던 두 세계적 지도자와 인연을 맺은 류병현 장군이야말로 좋은 시절을 만난 運(운) 좋은 군인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사엔 두 유형의 군인이 있습니다. 군인을 알아주지 않는 시대에 태어나 비장한 생애를 살고 가신 이순신 型 군인이 있고, 군인을 알아주는 시대에 태어나 통일大業(대업)을 이룬 김유신과 같은 장엄한 생애가 있습니다. 류병현 장군 회고록을 읽으면서 저는 후자에 속하는 분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제목을 정할 때 '한미연합사 창설의 주역'이란 설명을 권하였습니다. 이 회고록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게 있습니다. 결정적 순간에선 결정적 자리에 있는 분의 결정적 행동이 역사를 만들고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합참 본부장으로서 미국 측과 새로운 연합 지휘부 구성을 협상할 때 류병현 장군께서 창의적으로, 주도적으로 NATO 모델을 먼저 제시하여 미국 측이 따라오도록 하였다는 대목에서 저는 대한민국이 柳 장군에게 참으로 큰 신세를 지고 있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이 회고록 출판을 끝낼 무렵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우리 국군이 당면한 현안문제를 놓고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류병현 장군께서는 북한정권이 核미사일을 실전배치하는 것을 절대 금지선으로 설정, 전쟁을 각오하고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북한은 우리가 갖지 못한 무기 두 개를 갖고 있는 바 하나는 전략무기로서의 핵폭탄, 다른 하나는 정치무기로서의 종북세력입니다. 이 두 무기를 결합시키면 대한민국 공산화도 가능하다고 믿기에 학살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드골 대통령은 핵무장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함부르크나 코펜하겐을 구하기 위해 뉴욕이나 시카고가 핵공격을 받는 위험을 질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은, 수년 전에 말하기를, "우리 대통령에게 또 다시 대규모 지상군을 아시아나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파견하라고 건의하는 미래의 국방장관이 있다면 그의 두뇌를 검사해봐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의 지적과 류병현 장군의 경고를 종합하면 장기간의 평화와 번영 속에서 약해져 가는 우리의 尙武정신과 자주국방 의지를 걱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가난과의 싸움에선 이겼으나 풍요와의 싸움에선 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군대를 갖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 축복이고 국가의 행운입니다. 우리 국군은 建國(건국)의 礎石(초석), 호국의 干城(간성), 근대화의 견인차, 민주화의 울타리 役(역)을 수행해 왔습니다. 한국인들이 北核(북핵)과 從北(종북)을 제거하고 자유통일의 관문을 넘어 一流(일류)강대국 건설로 나아가는 길에서도 국군은 든든한 동반자여야 할 것입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모윤숙 선생의 詩를 읊으면서, 초연(硝煙)이 쓸고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윌로 이름 모를 비목, 그래서 꽃 피면 더욱 슬픈 38선의 봄을 삶의 무대로 삼으셨던 戰中(전중)세대, 우리 민족사상 가장 위대한 희생을 한 1920년대의 대표이신 류병현 장군께서는 성공적인 군인의 생애를 정리하는 회고록으로 대한민국에 최후의 신고를 하려고 합니다. "군인의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柳炳賢 장군이 대한민국에 신고합니다.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
  
  
   柳 장군은, <심한 병마에도 불구하고 아흔인 내가 이 글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天運(천운)이었다>고 쓰셨습니다. 대한민국이 류병현 장군 같은 인물을 가진 것도 天運이었다는 생각을 저는 했습니다. 이 회고록을 읽은 문화일보 이용식 논설실장은 어제 칼럼에서 <생의 마지막 에너지까지 조국에 쏟아붓고 있는 老兵에게 이제 대한민국이 존경과 감사의 경례를 올려야 할 차례다>고 썼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美 의회 연설에서 老兵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라고 했지만 저는 류병현 장군께선 사라지시지도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류병현이란 이름 석 자는 이 회고록으로 우리들 가슴 속에, 우리의 역사 속에선 영원히 살아계실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맹호사단장 출신 류병현 장군께, '맹호는 간다'라는 軍歌(군가)의 한 구절을 후배세대의 다짐으로 불러드리려 합니다.
  
  "자유통일 위해서 길러온 힘이기에 조국의 이름으로 어딘들 못 가리까."
  
  회고록 발간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특히 저의 부족한 이야기를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0-05-22, 00:3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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