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행위라니, DJ가 절대군주인가?

배진영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넌센스 -
  
  지난 15일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는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과 관련해 '통치권 차원의 일이었다면 '통치행위'였다고 대국민선언을 하든지 고백을 하든지 하고 덮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는 '통치행위가 사법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법학통론에도 나오는 상식'이라는 말도 덧봍였다.
  
  그때 필자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DJ나 노무현 당선자와 그 주변 사람들, 혹은 그들의 언행, 이념에 대한 好, 不好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의 얘기가 '넌센스'였기 때문이다.
  
  - 통치행위론은 절대군주의 절대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론 -
  
  대체 '통치행위'라는 것이 무엇인가?
  
  < 고전적인 헌법이론에서는 '통치행위'를 '최고통치권자가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에 의하여 행하는 정치적 결단'으로 간주, 법적인 기속을 받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후에 그것을 사법적인 심사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없다고 인식해 왔다.
  
  절대군주의 절대권력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개발된 이러한 '통치행위'이론은 군주통치 시대가 지난 후에도 오랫동안 학설과 실무에서 원용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일부 권위주의적인 나라에서나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대다수의 자유민주주의 헌법국가에서 이러한 이론은 이미 舊시대의 진부한 헌법이론으로서 페기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는 '통치행위'라는 개념을 인정한 적이 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김영삼 대통령이 1993년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 위해서 발동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헌법적인 심사의 대상으로 삼아 통치행위 이론을 배격했다 (憲裁決 1996.2.29 93 헌마 186). 2002년 9월 헌법재판소 창설 14주년 기념사에서 윤영철 헌법재판소장도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 행해지는 통치행위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된다'고 강조함으로써 앞으로도 통치행위 이론을 받아들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허영 전 연세대 교수, 월간조선 2002년11월호)
  
  한 마디로 '통치행위'이론이란 근대 입헌주의 초기의 왕당파 이론가들이나, 권위주의 정권의 어용학자들, 혹은 그들의 세례를 받은 지난 시대의 헌법학자들,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 주변에 기생하는 정치인-관료-법조인들이나 할 소리인 것이다.
  그런데 젊은 시절을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고, 이제 '모든 성역과 금기의 타파'를 외치는 노무현 당선자의 비서실장 내정자가 자신있게 '법학통론에도 나오는 상식'이라며 '통치행위' 이론을 내세워 김대중 대통령의 잘못을 덮으려 들었으니, 실소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긴 1970, 80년대의 법학통론 책이라면 통치행위 긍정설이 학계의 다수설로 소개되어 있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때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었고, 그런 주장을 펴는 헌법학자들은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독일이나 일본 법학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필자는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의 발언을 반박하는 글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결국 월간조선 2002년 11월호에 실린 허영 교수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참고 말았다.
  
  - '통치행위론'의 뒤로 숨어버린 민주투사, DJ-
  
  그런데, 1월30일 DJ는 이종남 감사원장에게서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 지원 의혹’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고 받은 뒤 “현대상선의 일부 자금이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앞으로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힌 것으로 보도되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대북 뒷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아오던 DJ는 그러한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게 되자 보름 전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가 설파했던 '통치행위론'의 뒤로 숨어버린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일부 정치인, 검찰 일각,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통치행위론'을 내세운 DJ를 비호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DJ의 가신출신인 김모 의원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여야를 떠나 국익 차원에서 모든 문제를 봐야하며 이를 정치 쟁점화하거나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서는 안된다'고 말해 DJ의 발언에 동조했다.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박모 의원도 '현대의 대북진출은 개인기업 차원이지만 남북관계라는 특수성을 감안한 국민적 사업이라는 측면이 강한 만큼 김 대통령의 언급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민주당 내 '개혁세력'의 일원으로 알려진 이모 의원도 '국민의 의혹이 없도록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지원이 사실이라면 사법처리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 국내 통신사에서는 통치행위 이론에 대해 '우리나라의 학계에선 통치행위의 관념을 부정하는 견해가 없지는 않지만 통치행위를 긍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판례의 경우도 내재적 한계설의 입장에서 통치행위를 긍정하고 있다' 고 하여, 헌법학계의 다수설과 헌법재판소의 결정례(판례)와는 정반대의 보도를 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DJ가 사실상 ‘통치행위’라고 밝힌 만큼 수사를 종결하는 방안 등 여러 가능성을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대북 뒷거래, 남북관계 이유로 면책 안돼-
  
  DJ등의 주장은 '설사 대북 뒷거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남북관게의 개선과 민족통일을 위해서였다면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통치행위 이론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절대군주의 절대권력을 옹호하는 이론으로 출발하여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나 통용되던 이론으로 오늘날에는 이를 배격하는 것이 학설과 판례의 흐름이다.
  
  설사 통치행위 이론을 인정할 경우에도 DJ등이 내세우는 '남북관계 개선'이 과연 대북 뒷거래를 정당화시킬 만큼 공익적 가치가 높은 것인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 허영 전 연세대 교수는 월간조선 2002년 11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리고 북한에게 4억 달러를 제공하기 위한 절차와 방법이 우리 헌법상의 경제원리에 위배되고 관련 私기업의 기업활동의 자유와 재산권을 제한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제한을 통해서 이룩한 公益의 실현이 월등하게 큰 경우에는 정당화할 수도 있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法益의 균형성을 따져 보아야 한다.
  
  북한에게 건네진 4억 달러가 남북 頂上회담을 성사시키고, 금강산 관광사업과 경의선·동해선 철로연결사업을 가능하게 하고, 중단되었던 이산가족 상봉을 다시 이루게 했다는 점 등은 公益的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도 개인적인 영광인 동시에 국가적인 경사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면에 4억 달러 뒷돈 거래의 약점 때문에 정부가 북한에게 발목을 잡혀 그 후의 南北협의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면 분명히 國益이라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국군포로와 拉北어부, 그리고 脫北 주민의 지위에 관해 당연히 해야 할 인도주의적인 요구를 하지 못하고, 西海교전사태와 같은 북한의 무력 도발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한 대응을 할 수 없어 우리 국군이 희생된 것이 모두 뒷돈 거래의 멍에 때문이었다면 4억 달러 뒷거래로 인한 國益의 손상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나아가 4억 달러 뒷거래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북한의 일방적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면 평가는 더욱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체면과 위신이 크게 실추되어 우리의 국제적인 위상과 국가 信認度(신인도)가 많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런 모든 점을 종합해 볼 때 4억 달러 뒷거래로 이룩한 公益的 성과가 國益의 부정적인 손실을 압도할 만큼 값진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4억 달러 뒷거래는 기본권 제한과 헌법상의 기본원리의 위배를 정당화할 만큼 公益의 실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하기 어렵다>
  
  - 통치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사법부 -
  
  DJ는 스스로 앞장서서 대북 뒷거래는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펼치고, 정치권과 검찰 일각에서 그러한 주장에 맞장구를 치고 나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잘못이다.
  
  왜냐하면 통치행위 이론을 긍정하는 경우에도 '국가원수나 행정부의 특정한 정치적 행위가 과연 통치행위에 해당하는 것인가의 여부와 그것이 통치행위로서의 요건을 구비하고 있는가의 여부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헌법학게의 통설이기 때문이다.
  
  즉 6-15정상회담 등과 관련하여 불법한 대북뒷거래가 있었다면, 검찰은 철저한 조사를 거쳐 관련자들을 법에 따라 기소해야 한다. 대북 뒷거래가 성질상 '통치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사법적 심사(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곤란한지, 혹은 대북뒷거래가 불법한 것이었다 해도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한 점을 참작할 지 등을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법부의 몫인 것이다.
  
  대북 뒷거래의 최고책임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DJ가 스스로 통치행위 이론에 기대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적절치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에 대한 면죄부를 발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민주공화국의 통치권자는 누구인가 -
  
  DJ는 '남북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국가 최우선의 과제라고 생각해 왔다'면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장차의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남북한 관계의 특수한 처지는 통치권자인 제게 수많은 결단을 요구해 왔다'는 말로 국민들의 이해를 구했다.
  
  정책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헌법 제69조에 규정된 대통령 취임 선서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설사 '햇볕정책'으로 '남북간의 대화와 협력'에 진전이 있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는 대통령의 다른 책무들은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했는가?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규정한 헌법을 그는 준수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 '南의 연합제안'과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한 6-15 공동선언 제2항이 해 줄 것이다.
  
  그는 과연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작년 6월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여섯 명의 해군장병들이 해 줄 것이다.
  
  그는 헌법과 판례에 의할 때 우리 '국민'인 북한 동포들과 탈북자들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지금도 중국땅을 떠돌고 있는 20만 탈북자들과, 특별독재대상구역에 갇힌 10만 명의 정치범들, 억압받고 굶주리는 2000만 북한 동포들이 해 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그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을 진정 마음에 새기고 있다면, 국민들을 상대로 자기자신을 '통치권자'라고 칭할 수 있었을까?
  DJ가 스스로를 '통치권자'로 칭하는 순간, 그는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그의 일생 전부를 스스로 부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공화국'의 '통치권자'는 '국민'이지, 대통령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 헌법'이야말로 '국민적 합의' -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상속-증여세 포괄주의 도입을 주장하면서 '헌법해석을 바꿔서라도' , '헌법을 한번 손 보자는 것이 국민적 합의'라고 주장했었다.
  DJ는 통치행위 이론을 들고 나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면죄부를 발부하면서 참람되게도 '통치권자'를 자처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대통령직 인수'라는 범위를 넘어 행정부를 질타하고 교도하더니, 이미 사법부에서 위법결정을 내린 시민단체의 낙선낙천을 허용하겠다는 얘기까지 내놨다.
  
  그들은 혹시 '햇볕정책'이나 '개혁' 혹은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면 헌법이나 법률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비롯한 수많은 가치들을 하나의 정치적 장식물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대한민국 헌법'이야말로 '국민적 합의'이며, 대통령 취임선서야말로 '최대의 공약'이자, '정책'이라는 것을 혹시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상적인 입헌민주주의 국가에서 '충성'과 '반역'의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되는 것은 바로 '헌법'이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맹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시 정권에 가담했던 자들이 나중에 반역자로 몰린 것은 그들이 '헌법'에 대해 적대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합의에 의해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지도 벌써 15년.
  이제는 좀더 성숙해졌을 때도 됐으련만, 우리는 여전히 '편가름'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익과 좌익, 보수와 진보, 개혁 대 수구.....
  누군가 '당신은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의 편이다'라고.....
  
출처 :
[ 2003-01-31, 03: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