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義(정의)의 칼, 正義의 힘, 正義의 폭력
[實錄연재] 하나님은 아신다, 그러나 기다리신다 (마지막회)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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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注―‘김기철 씨는 왜 요절했나’는 1981~1982년에 걸쳐 월간 〈마당〉에 연재 후, 1987년 한길사에서 나온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에 포함되었다가 2011년 조갑제닷컴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현재는 절판)되었다. 조갑제 기자가 가장 애착 가는 기사로 꼽은 이 글을 조갑제닷컴에 재연재한다.
 
‘김기철 씨는 왜 요절했나’ 4장 공소시효 끝나다 ⑥

  
  
  15년의 대차대조표
   양심과 확신과 집념이란 이름의 폭력

  
   요절, 병신, 그리고 몰락

  
   우리는 이제 하나의 결산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정대범 씨와 김금식 씨를 찾아냄으로써 1967년 10월17일에서 1982년 10월17일 사이, 만 15년을 단위로 한 대차대조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먼저 借邊(차변) 쪽에 선 사람들의 현주소를 보자. 김태현 씨는 검찰 요직을 두루 거친 뒤 부산지검장을 끝으로 1980년에 검찰을 떠나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홍조근정훈장도 받았다. 적어도 그에게는 근하 사건 재판극에서의 패배가 큰 상처는 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김 검사 팀의 다른 두 검사―정경식 씨는 1982년 10월 현재 현직 부장검사로 있으며 이원형 씨는 국회의원으로 있다.
   전경렬 씨를 다루었던 당시 부산시경의 한일민 주임이나 천현준 주임은 경찰을 떠나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貸邊(대변) 쪽에 선 사람들의 근황을 본다. 초대 ‘진범’ 전경렬 씨는 경찰에서 풀려난 뒤에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병동과 암자를 오가다가 지금은 결혼하여 부산에서 봉급생활자가 되어 있다. 지금도 약을 계속 먹고 있으며 정신이 온전치는 못하다.
   김기철 씨는 출소 뒤 고문의 후유증으로 廢人(폐인)과 같은 생활을 하다가 1980년 3월, 42세의 총각으로 요절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충격을 받고 드러누웠다가 무죄 확정을 몇 달 남겨두고 숨졌다. ‘무죄인으로서의 아들’을 끝내 못 보고. 기철 씨의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입을 굳게 닫고 말 없는 사람이 되어 혼자 살아가다가 지난해 죽었다.
  
   최형욱 씨는 출소 뒤에도 자신을 보는 이웃의 눈초리를 견디지 못하고 대구, 서울로 옮겨 다니며 어려운 생활을 했다. 지금은 서울 오류동에서 음식점을 열고 있으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정대범 씨는 失意(실의)를 딛고 용접공 생활을 하고 있으나 수사와 교도소 생활의 후유증으로 몸이 성치 못하다. 그의 어머니는 그 사건으로 심장병을 얻었고 할머니는 충격을 받고 일찍 죽었으며 집안 살림은 몰락했다.
   김금식 씨는 큰 상처를 입지 않았으며 그럭저럭 살고 있다.
  
   교도관 네 명은 無罪(무죄) 확정 뒤 모두 복직, 여광석 씨는 어느 교도소의 과장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 교도관들이 다른 억울한 피고인들보다도 회복이 빨랐고 그렇게 큰 상처를 받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신분이 법의 보호를 받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근하 군의 아버지 김용선 씨는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결국 경찰과 검찰의 무지막지한 수사는 세 사람의 생명을 일찍 앗아갔고 네 집안을 몰락시켰으며 다섯 사람에게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후유증을 선사한 셈이다.
  
   양심살인
  
   근하 사건의 수사와 재판은 완벽한 드라마였다. 각본을 쓰고 스스로 주연까지 한 김금식 씨는 극적 요소로 충만한 법정 드라마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어린이를 살해한 잔혹한 惡人(악인)이 있었다. 그를 뒤쫓는 집념의 형사와 머리 좋은 검사, 그들을 뒤쫓는 맹렬 기자들이 있었다. 검사의 수족같이 움직이면서도 자기 나름대로의 창작도 할 줄 아는 구영근 씨가 있었다. 김기철 씨와 같은 굳센 순덕이가 있었다.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철없는 청년도 있었다. “공산당과 관련되었지?” 하니까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술술 자백한 교도관도 있었다.
  
   正義(정의)의 편에 선 변호사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연출한 김금식 씨가 있었다. 더구나 이 드라마의 勝者(승자)는 힘센 수사기관도, 지능지수가 높은 검사도 아니었다.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한 前科者(전과자)가 최후의 勝者(승자)였다. 그것은 또 역전승이었다. 이 드라마는 법정에서 무죄 확정판결이 떨어진 것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이 사회의 의혹에 찬 눈초리에 짓눌려 으깨어져버린 김기철 씨의 비극이 있었다. 그것과 싸워가며 벅찬 삶을 지탱하고 있는 정대범 씨와 전경렬 씨의 휴먼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는 지금도 끝난 것이 아닐지 모른다. 김금식 씨의 말대로 공소시효가 완성된 뒤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이 한 번 더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근하 사건은 클라이맥스를 남겨놓은 미완성 드라마인가?
  
   이런 완벽한 드라마를 다시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무리한 작업일 것 같았다. 실제 사건이 어떤 연극보다도 더 극적이었을 때 연극은 필요 없다는 점에 귀착하기 때문이다.
   윤대성 씨가 각본을 쓴 <신화 1900>(실험극장 공연, 김동훈 연출)은 이런 부담을 안고 대한민국 연극제의 무대에 올랐다. 소재를 제공한 사람의 의무감으로서 나는 연극을 보았다.
  
   정신병동 안의 사이코 드라마, 곧 ‘劇中劇(극중극)’의 형식을 빌린 이 연극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진행되어가는 듯했다. 줄거리는 다 아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무대와 관중들의 호흡이 어떻게 맞아떨어지는가에 더 관심이 많았다. 문예회관 극장의 상하층을 꽉 메운 관객들은 대체로 연출가의 의도대로 감정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막판에 가서 김기창(김기철이 모델)에게 무죄가 선고될 때는 관객석에서 줄곧 유지되던 긴장감이 勸善懲惡(권선징악)의 당위성을 재확인하는 형식으로 스르르 풀어지고 있었다. 이때 무대에서는 작가와 의사가 사이코 드라마식의 재판극이 가져온 치료 효과를 자화자찬들 하고 있다. 그 자리에 남자 간호원이 와서 묻는다.
  
   “김기창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의사는 김기창이 자살한 것으로 알아듣고는 “왜 혼자 내버려두었어?”라면서 남자 간호원을 질책한다.
   목을 맨 김기창의 시체 그림자가 무대의 벽에 나타난다. 그 아래서 남자 간호원은 열변을 토하기 시작한다.
   “자살한 게 아닙니다. 제가 死刑(사형)을 집행했습니다. 김기창에게 내린 무죄 판결은 잘못되었어요. 그는 범인임에 틀림없어요. 저는 양심을 걸고 선언합니다. 그는 살인범이에요. 살인범은 죽여야 합니다.”
  
   마지막의 이 급격한 전환에 관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과 기가 차다는 반응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이 終章(종장)의 클라이맥스가 <신화 1900>을 르포 기사의 복제품이 아닌 하나의 創作(창작)으로 승화시켰다고 믿고 있다. 르포 기사가 끝나는 데서 예술로의 전환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남자 간호원은 극 중 재판극을 줄곧 지켜보면서 절로 하나의 확신에 도달한 것이었다. 정신병자들이 무죄라고 선고한 기창을 그는 범인이라고 굳게 믿고 양심과 이름 아래서 처형한 것이다.
  
   이 남자 간호원은 많은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 근하 사건 피고인들이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자 “그래도 저들이 진범이다”라고 저주한 검사들은 남자 간호원과 같은 그런 양심과 확신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무죄 판결을 받고 나온 김기철 씨를 보고 ‘그래도 저 친구가 범인이 아닐까? 재판이 잘못된 게 아닐까? 증거가 없어 살아난 게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 우리 사회의 수 많은 눈들이 法定(법정)이 살려준 기철 씨를 12년간의 고문 끝에 처형해버린 것이 아닐까? 物證(물증)은 없지만 기자의 양심과 확신에 따라 전경렬 씨를 진범이라고 보도한 언론이 또한 남자 간호원과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더 확대해서 보면 양심과 확신과 집념이란 이름 아래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죽어갔던가?
   중세의 종교재판에서 로베스피에르,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양심과 확신 없이 칼을 뽑았던 인물이 있기나 했던가? 기철 씨를 죽게 한 것도 양심과 확신과 집념이 아니었던가? 집념이란 무엇인가? 양심과 확신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김태현 검사는 흔히 집념의 화신이라고 일컬어졌다. 그 결과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황덕수 씨의 출현은 나에게 쇼크였다. 그는 감히 ‘그들은 무고한 희생물이었다’는 나의 생각을 돌려놓으려 했다. 그의 설득에 흔들려 ‘혹시 내가 잘못 판단한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생길 때도 있었다. 정대범 씨와 김금식 씨를 기어코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한 데는 이런 나의 의문을 풀어야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다행히 황 씨는 정 씨를 만나 의구심을 풀었고 나는 김금식 씨를 만나 이 조작극에 대한 지식을 더욱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황 씨나 나처럼 의문을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입증해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김기철 씨는 비록 無罪(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실(결벽)을 입증하는 데서는 실패했고 그래서 격리 칩거 생활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이 세상에선 진실이란 말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이란 정말 무엇인가?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것만이 진실일 것이다. 그런 진실이라야 主觀(주관)을 떠나 이 사회에서 유통되는 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기철 씨의 죽음은 법정의 진실(무죄 판결)과 사회의 진실(결벽 입증)은 별개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1981년에 쓴 기사의 제목을 ‘하느님은 아신다, 그러나 기다리신다’라고 붙인 것도 진실의 인식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한계 능력을 가리키고자 한 것이었다. 진실을 말하기는 쉽지만 이 세상에서 그걸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언제까지 신화시대에 살아야 하나?
  
   칼과 저울로 상징되는 법은 어차피 폭력이다. 그러나 저울이 있기에 그것은 형평의 원칙이 적용되는, 그래서 正義(정의)의 칼, 正義의 힘, 곧 正義의 폭력이다. 폭력의 행사를 규제하고 정당화하는 이 저울, 곧 형평과 절차가 빠져 달아난 법은 이미 법이 아니다. 파괴력을 가진 힘 그 자체, 곧 폭력일 뿐이다.
  
   검찰이 김기철 씨 등에게 적용한 힘이 어떤 종류의 법이었는지는 自明(자명)하다. 구영근 씨나 황덕수 씨 같은 민간인이 검사의 후광을 믿고 수사를 했다. 검사는 필요할 땐 언제든지 누구라도 잡아넣을 수 있음을 최형욱 씨나 김기철 씨의 경우에서 입증했다. 증인과 物證(물증)도 필요할 때 얼마든지 ‘만들어재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고문은 자백을 받아내는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쓰였고 자백을 거부한 사람은 평생 동안의 후유증으로 보상받았다.
  
   형사소송법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절차가 무시되는 법은 협박과 공갈과 어떻게 다른가? 이 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었던 정대범 씨 등의 피고인들과 그 가족은 그 쓰라린 체험에서 법과 言論(언론)을 불신하는 지혜를 터득했다.
   윤 노파, 박상은 양 피살 사건 등 최근에 문제가 된 강력사건의 수사 결과를 그들은 처음부터 냉소적으로 받아들인 점에서 공통성을 갖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하룻밤이라도 자고 나온 사람이 그 다음부터는 경찰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리라.
  
   이 재판극에서 가해자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은 그 뒤에도 거의 잘 되었고 피해자 역할을 떠맡았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주눅이 든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 피해자들 중 어느 누구도 개인적인 복수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사건의 잔혹성과 조작성에 비추어 하나의 기적이며 그것은 그들의 유순한 성품을 엿보게 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아마도 피해자들이 그런 모욕과 고통을 검사나 법이란 제도가 아니라 깡패나 친구로부터 직접 당했다면 거기엔 보복이 있었을 것이다. ‘무슨 유감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범인을 잡으려다가 보니…’라는 이해심과 상대가 법이란 막강한 힘의 보호막 뒤에 있는 사람들이란 두려움이 그런 개인적 보복을 불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운명의 날, 1982년 10월17일이 오면 근하 사건은 神話(신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로 향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자백이 증거의 여왕’이던 시절의 神話(신화)가 化石(화석)이 되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본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神話(신화) 시대를 호흡해야 할 것인가? 이 글은 그런 의문부호로 쓴 것이다.
  
  (끝)
[ 2020-07-30, 10: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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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건     2020-07-30 오후 3:45
결국 경찰과 검찰의 무지막지한 수사는 세 사람의 생명을 일찍 앗아갔고 네 집안을 몰락시켰으며 다섯 사람에게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후유증을 선사한 셈이다.,,,
이 재판극에서 가해자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은 그 뒤에도 거의 잘 되었고 피해자 역할을 떠맡았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주눅이 든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 피해자들 중 어느 누구도 개인적인 복수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사건의 잔혹성과 조작성에 비추어 하나의 기적이며 그것은 그들의 유순한 성품을 엿보게 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아마도 피해자들이 그런 모욕과 고통을 검사나 법이란 제도가 아니라 깡패나 친구로부터 직접 당했다면 거기엔 보복이 있었을 것이다. ‘무슨 유감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범인을 잡으려다가 보니…’라는 이해심과 상대가 법이란 막강한 힘의 보호막 뒤에 있는 사람들이란 두려움이 그런 개인적 보복을 불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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