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무대 오마하 비치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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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65일 밤 영국을 출발한 미군 82 공정 사단은 6일 새벽 노르망디 지역에 낙하하였다. 해안에 상륙하는 부대를 엄호하기 위해서였다. F 중대는 코텐틴 반도의 Ste Mere Eglise('Church of St. Mary') 교회 부근에 떨어졌다. 36명은 교회 광장에 낙하, 포로가 되거나 사살되었다. 당시 부근의 民家(민가)에 불이 나 독일군은 낙하하는 부대원들을 조준 사살했다. 존 스틸 이등병의 낙하산은 교회의 첨탑에 걸렸다. 그는 두 시간 매달려 아래에서 동료들이 도륙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결국 그도 독일군에 의하여 끌려 내려와 포로가 되는데 곧 탈출
, 부대로 귀환하였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 ‘THE LONGEST DAY'에 소개되었다. 7년 전 여름 이 마을을 찾았다. 스틸 일병의 모형이 낙하산을 메고 교회 첨탑에 걸린 채였다. 교회 안 스테인드글라스도 공수부대를 마리아가 지켜보는 장면이었다. 관광 명소가 되어 있었다. 맞은편엔 맛 있는 카페와 공수부대 기념관이 있다. 존 스틸은 동성 훈장을 받았다. 그는 1969년에 57세로 사망하였다.

美 82공정사단의 사단장은 매튜 리지웨이 소장이었다. 그도 부대원들과 낙하, 33일간 작전을 지휘하였다. 이 기간 이 사단의 전사자와 부상자는 5245명이었다. 리지웨이는 1950년 12월 말, 한국전에 등장한다.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한 뒤 수원까지 밀려내려오고, 워커 美8군 사령관이 교통사고로 죽자, 후임으로 부임, 전열을 수습, 반격에 나서 51년 3월 서울을 재탈환하고 전선을 38도선까지 밀어올렸다. 중국이 맥아더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군인이다.

John Steele returns to St Mere Eglise in 1964. He died in 1969 at the age of 57years

 

 노르망디 상륙작전 20년 뒤인 1964년에 교회를 방문한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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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격전지 오마하 비치의 미군 공동 묘지. 약 9400명의 戰死者(전사자) 무덤이 있다. 별표는 유태인이란 표시이다.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이 지휘한 'OVERLOAD'라는 암호명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첫날인 1944년 6월6일에 상륙한 병력은 15만6000명, 동원된 배는 7000척, 수병은 19만 5,000명이었다. 상륙한 연합군의 총병력은 133만 명, 방어전을 편 독일군은 38만 명이었다. 약 한 달 사이 쌍방이 각 12만 정도의 戰死傷者(전사상자)를 냈다.

 

[ 2020-08-01, 23: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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