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의 40대 이미자 인터뷰 추억
김종필 총리가 아코디언으로 반주를 해주었다고 한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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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40년 전에 부산에서 鎭海로 가는 시외버스 속에서 가수 李美子를 만났다. 해저석유 시추를 취재하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운전기사가 李美子의 가요 메들리 테이프를 틀어놓았던 것이다. 의자를 뒤로 젖혀놓고 반쯤 누워 차창밖으로 지나치는 늦가을 경치들을 감상하면서 듣는 흘러간 옛노래들은 감미롭기도, 처연하기도, 아련하기도, 그리고 신나기도 하였다. 한 시간만에 진해에 도착했는데 테이프는 끝나지 않았다. 내리기가 싫었다. 그 뒤 5년이 흘렀다. 나는 月刊朝鮮 1985년8월호에 「40대 旗手論」을 쓰면서 李美子씨를 인터뷰했다. 강남구 청담동 빌라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는 목을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요. 가만 놔두어도 變聲이 안되고 키도 아직 그대로예요』
  『지금까지 한1천5백 곡을 취입했어요. 많이 할 때는 하루에 신곡만 열다섯 곡을 녹음했으니까요. 다방에서 제가 부른 노래가 나오면 얼굴이 화끈거려 나와버립니다』
  『노래 연습은 많이 하지 않습니다. 너무 하면 순수성이 사라집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李美子씨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수줍어하는 듯했다. 그때 마흔네 살이던 李美子씨는 무대가 아닌 私席에선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자리에서 노래를 권하면 화가 난다는 것이다.
   이 무렵 人名사전을 찾아보았더니 李美子씨 이름은 없었다. 중앙부처 국장급 인사, 신문사 논설위원들, 소설가들의 이름은 다 실려 있는데 稀代의 가수 李美子가 한국인 인명사전에서 빠지다니, 은근히 화가 났다. 마침 그때 한국일보에서 광복 40년 특집으로 지난 40년을 빛낸 100대 인물을 뽑았는데 李美子가 들어 있었다.
   문화 예술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가수에 대한 부러움과 열등감이 깔려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가수가, 무대에 올라 수천, 수만, 많을 때는 수십만 관중 앞에서 熱唱하고 터져나오는 박수와 환호를 현장에서 받아낼 때의 그 생생한 쾌감과 환희를 영화배우나 화가는 직접 느낄 수가 없지 않은가. 노래처럼 감정과 기분을 넓고도 쉽게 전염시키는 예술은 달리 없을 것이다. 李美子씨 덕분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슬퍼했으며 신났고, 행복했던가.
   月刊朝鮮은 李美子씨가 노래 30년 기념 공연을 할 때나, 40년 기념 공연을 할 때 기사를 썼다. 무슨 계기만 있으면 李美子씨를 기사로 다뤘다. 「의사들이 말하는 李美子 목소리의 비결」「설문조사: 한국의 歷代 최고의 가수」등등.
   17년 전 11월에 月刊朝鮮 직원 20여 명은 관광 버스를 한 대 빌어 충남 홍성으로 야유회를 떠났다. 운전기사가 노래 테이프를 하나 트는데 천박한 노래였다. 뒷자리의 젊은 직원들이 당장 그만두라고 불평을 했다. 버스가 서해 대교 밑에 있는 오션 파크 휴게소에 도착하여 쉴 때 나는 「이미자 공연 실황」테이프를 한 장 샀다.
  「노래는 나의 인생」「황혼의 블루스」「삼백리 한려수도」「눈물이 진주라면」「흑산도 아가씨」「황포돛대」「울어라 열풍아」「칠갑산」「여로」순서로 노래가 흘러나오니 버스 안이 조용해졌다. 저마다의 감수성과 상상력으로써 李美子의 노래를 받아들이고 있었고 저마다의 기분을 내고 있었다. 李美子의 위대성은 어려운 노래도 편하게 부르고 듣는 사람들도 편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16년 전 李美子씨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노래한다는 것은 뼈에다가 살을 붙이는 것과 같은데, 너무 힘을 주면 살이 곱게 붙지 않고 군더더기같이 붙는답니다』
   홍성에서 돌아올 때도 李美子를 틀었으니 이날 우리는 세 번씩 같은 노래를 들었다. 50대에서 20대에 걸친 버스 속의 관중들은 만족했다. 李美子 노래엔 男女老少가 없다는 것이 實證된 것이다. 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멀리서 서해 대교의 장관이 보였다. 푸른 조명과 빛기둥으로 채색된 기나긴 다리를 차창 바깥으로 바라보면서 李美子가 노래를 불렀다.
   <1.옛날에 이 길은/꽃가마 타고/말탄 님 따라서/시집 가던 길/여기든가 저기든가/복사꽃 곱게/피어 있던 길/한 세상 다하여/돌아가는 길/저무는 하늘가에/노을이 섧구나
   2. 옛날에 이 길은/새색시 적에/서방님 따라서/나들이 가던 길/어디선가 저만치서/뻐꾹새 구슬피/울어대던 길/한 세상 다하여/돌아가는 길/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한 여인의 인생을 노래 하나로 녹인 문학이다. '아씨'의 가사는 동명의 방송극 작가 임희재 씨의 작품이다. 그 순간 나는 역시 한국인이구나, 그래서 행복하고, 李美子씨로 해서 더 행복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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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8월호 인터뷰(월간조선)
  
  
  『내 노래 듣기가 쑥스러워요』
  
   취입한 노래가 1천5백이나 되어 자기 노래를 자기가 들어도 모를 때가 많다는 李美子씨(44)지만 무대 이외에선 한번도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단다. 私席에서 『노래 한 번 불러 보라』는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난다고 한다. 李美子씨는 또 자기 노래를 듣는 게 쑥스럽다고 했다. 다방 같은 데 들어가면 그를 알아보고 그의 노래를 틀어주는 수가 있는데, 얼굴이 확 달아올라 나와버린다는 것이다.
   『남과 함께 들을 때는 그렇지만, 나 혼자 들을 때는 괜찮아요』
   李美子씨는 목소리에 대한 건강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 음식을 조심하는 것도 아니고, 보약을 먹지도 않는다. 목청을 혹사했다 싶으면 2~3일 쉰다. 그러면 원상 회복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노래 연습도 많이 안하는 편이다. 『너무 많이 연습하면 노래에 순수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노래한다는 것은 뼈에다가 살을 붙이는 것과 같은 일인데, 너무 힘을 주면 살이 곱게 붙지 않고 군더더기같이 붙는답니다』
  
   스스로의 점검에 따르면 李美子씨의 목소리는 옛날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올라가게 돼 있는 키 음이 오히려 내려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당 기간 안심해도 좋다는 얘기가 된다. 그는 假聲으로 부르는 노래가 싫다고 했다. 배속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불러야 몸과 노래가 하나가 되는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李美子씨는 요즈음 假聲으로 부르는 가수가 인기를 얻고 있는 풍토가 못마땅한 듯했다. 그저 쉽게 부르고 쉽게 듣는 것만이 좋다면 작곡가나 가수가 고민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그는 답답해 했다.
   李美子씨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대중가요에 대한 한국인의 허위 의식인 듯했다.
   『술자리에서 흥겨울 때는 누구나 「두만강 푸른 물에…」나 「타향살이」를 부르지 팝송을 부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서도 「뽕짝」은 저질이고 서양식 노래는 좋다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많은 데 화가 나요. 팝송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제대로 알고 불러야지…』
  
   나이를 모르는 목소리
  
   한국의 40대 가운데 가장 지명도가 높을 것 같은 李美子씨는 전 공화당 총재 金鍾泌씨를 존경한다. 총리시절 공관에서 파티를 할 때 李美子씨가 초대되어 갔다. 「흑산도 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을 불렀는데, 金총리가 아코디언을 들고 나와서 「기가 막힌」 반주를 해주더라는 것이다. 『대중가요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은 분이었다』면서 李美子씨는 金鍾泌씨로부터 선물받은 金씨의 그림을 자랑했다.
   李美子씨는 가끔 『나는 지나간 가수』라는 섭섭한 표현을 했다. 너무 오래 불렀고, 개성이 너무 뚜렷하여 요즈음 세태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절정기를 70년대 초로 보는 듯했다. 극장 쇼 무대에서처럼 가수가 청중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노래 부를 수 있는 「문화」가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李美子씨는 『제가 데뷰할 때는 지방 공연을 많이 다녔는데, 제가 노래하면 동료 가수들도 무대 앞으로 나와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목소리가 천부적이었다는 얘기다. 문학에서 문장의 미학을 중시하듯 李美子씨는 가창력이 가수의 기본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가창력이 뛰어난 후배 가수로 그는 양희은을 꼽았다. 『가수로서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 과연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최상급의 칭송을 했다.
   70년대의 상징적 가수인 양희은씨는 그런 상징성이 자신에게 부담이 된다는 투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노래는 여러 사람이 흥겹게 부를 수 있는 노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양희은씨는『길을 가다가 나의 노래를 합창하는 자리가 있으면 고마워서 찾아가 따라 불러주고 싶다』고도 했다.
   「모두가 흥겹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한국가요사상 가장 많이 불렀을 李美子씨는 노래 부를 때는 자신의 감정을 냉정하게 통제하는 편인 듯했다. 남을 감동시키려면 자신은 냉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고 할까.
   李美子씨는 일본에서 우리나라 가수들이 인기가 높은 것은, 일본 가수들은 假聲으로 부르는데 우리 쪽은 혼신의 힘으로 열심히 부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李美子씨는 『50대 분 들이 내 노래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 방송 금지가요가 된 「동백 아가씨」를 가장 아낀다고 했다.
  
   우리나라 40대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이 먹어보이는 이는 대우 회장 金宇中씨(49)와 李美子씨일 것이다. 두 사람이 40대라고 하면 『언제부터 李美子, 김우중인데』하고 놀라는 이들이 많다. 40대의 두 슈퍼스타의 성취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가 되겠다. 세월은 흘러도 변하지 않는 목소리 李美子씨에겐 나이나 세대론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 2020-09-12, 20: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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