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연재(1) 김재규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의 애잔한 삶과 죽음!
10·26 사건에 휘말린 한 청빈한 군인의 24時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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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에 연루되어 사형된 박흥주(朴興柱) 대령은 김재규(金載圭)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관이었다. 둘의 운명적인 만남은 포병소위로 임관한 朴 소위가 군번에 따라 6사단으로 배치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6사단 사단장은 金載圭였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육군사관학교 생도 18기로 들어갔다. 졸업 후 제6사단의 포병대대에 배속됐다. 이곳에서 브리핑 솜씨가 사단장 김재규의 눈에 띄어 그의 전속부관으로 발탁된 것은 1964년 8월이었다. 6사단 포병사령관 박재종 대령이 그에게 차를 보내 “사단장이 부르니 가 보라”고 했다. 사단장실에 갔더니 김재규 사단장은 이름을 물어보고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말했다.
  “자네 오늘부터 내 부관 좀 하게.”
  박흥주는 누가 자신을 추천한 것이 아니고 며칠 전에 화력시범을 할 때 브리핑, 시범, 통제를 담당한 자신을 사단장이 잘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김재규의 제6사단은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폭력화되어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1964년 6·3사태) 계엄부대로 서울에 출동했다가 본대로 돌아와 있었다.
  
  박흥주는 1966년 1월에 김재규가 6관구 사령관으로 옮길 때도 같이 따라가서 여섯 달 동안 전속부관으로 근무했다. 그는 월남전선을 지원하여 1966년 10월부터 2년간 派越 9사단(백마부대) 52포병 제3포대 전포대장으로 근무했다. 귀국한 뒤에는 21사단 제1포대장을 거쳐 육군 보안사령부 서울지구대(506부대)에 있으면서 3년 6개월간 수경사 파견대 조장, 영등포 팀장, 漢水이북 對共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때도 보안사령관은 김재규였다. 그가 육군본부 교육참모부 장교로 근무 중이던 1978년 4월 정보부장 수행 비서관으로 다시 불려온 것이 김재규와의 네 번째 인연이었다. 비서로 있던 1978년 12월 朴興柱는 대령으로 진급했다.
  10·26 당시 그의 생활수준은 자필진술서에 따르면 ‘시가 1,500만 원짜리인 대지 20평, 건평 18평의 슬라브 집과 약 400만 원어치의 부동산에 약 40만 원의 월급으로 중하류’였다.
  
  朴 대령은 金載圭의 그림자나 다름없었다. 金載圭의 돈독한 신임을 얻고 있었다. 막강하다면 막강한 자리였으나 늘 군대로 돌아기를 바랐다. 1979년 5월 아들을 낳고 나서였다. 朴 대령은 아내 金妙春 씨에게 “군인은 軍으로 돌아가서 지휘봉을 흔들면서 지휘를 하고 정치는 정치가가 해야 해. 나도 이제 연대장으로 나가야겠어” 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金 씨는 그 말을 듣고 “여보, 그렇지만 전방에 가면 호롱불 켜고, 장작 때고 살아야 하잖아요. 귀한 아들을 얻었는데 산골에 가면 아이 목욕도 못 시키고 어떻게 해요?” 하며 아들이 조금 큰 다음에 나가면 어떻겠느냐고 하자, 朴 대령은 “나는 007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정말 싫어. 야전에 나가 지휘를 하고 싶어”라고 했다고 한다.
  
  朴 대령은 연대장으로 나가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비추었지만 金載圭는 ‘몇달만 참으라’고 만류했다. 그 몇달이 결국 10·26까지 이어져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 사라졌다.
  
  金載圭는 朴正熙 대통령을 암살하기로 마음 먹고 거사 30분 전에 朴 대령과 수행과장 朴善浩를 불러 경호원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두 부하는 엉겁결에 이 명령을 수행하게 되는데, 김재규가 朴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사살한 뒤 두서 없이 행동하는 바람에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체포된다. 이날 박흥주 대령의 動線을 추적했다(박정희 傳記 제13권, 2000년 7월호 월간조선 박흥주 대령 미망인 인터뷰에서 발췌).
  
  
  *10월26일 아침 출근길
  
  그날 아침, 출근길에 나선 朴興柱(박흥주) 대령은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대문까지 배웅 나온 아내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그 전날 밤 늦게 귀가한 朴 대령은 초등학교 5학년인 큰딸 혜영이가 10월27일부터 반에서 사명대사 연극연습을 하게 되었다며 선조임금役(역)을 맡았으니 왕관을 만들어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은종이, 마분지와 풀로 얼기설기 만들다 만 왕관을 갖다 놓고 칭얼대는 딸의 부탁에 확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혜영이가 잠이 들고 난 후 마음을 바꾸어 왕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잠을 자지 않고 왕관을 만드느라 朴대령은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뜬 큰딸은 머리맡에 놓여 있는 근사한 종이 왕관을 보고, 반아이들에게 자랑할 생각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朴 대령의 출근 모습은 평소와 다른 점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10월26일 오후
  
  오후 4시경, 박흥주 대령은 정보부장 승용차의 앞자리에 타고 뒷자리에 탄 김재규를 수행, 남산의 부장실을 출발, 20분 뒤에 궁정동의 정보부 안가에 도착했다. 부장 차가 궁정동 본관에 당도하니 朴善浩가 기다리고 있다가 차에서 내리는 부장에게 귓속말로 무어라고 보고를 했다. 박 대령은 ‘아, 오늘 행사가 있구나’ 하고 직감했다. 박 대령은 부장의 서류가방을 들고 윤병서 비서와 함께 2층 부장 집무실로 따라 올라갔다. 박 대령은 오후 3시경에 부장이 이발을 할 수 있도록 이발사를 불러 두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김재규는 “오늘 각하께서 일찍 오시면 곤란하니 내일 이발을 하도록 하지”라고 했다.
  
  오후 4시 40분경 김재규는 1층 尹炳書 의전비서의 방에 있던 박흥주 대령을 인터폰으로 찾았다. 金 부장이 박 대령에게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 대”라고 지시하는 말을 곁에서 들은 윤 비서가 재빨리 일반전화로 鄭昇和 총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 직전 김재규는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는 만찬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래놓고 육군참모총장을 초대한 것은 거사에 이용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殺意의 탄생이다.
  
  朴興柱 대령이 1층 사무실에서 부장 친척들의 여권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오후 5시쯤 윤 비서가 2층에서 내려오더니 “부장님이 조끼와 줄무늬 있는 양복을 보내라고 하신다”고 했다. 박 대령은 부장공관으로 연락을 취했다. 이 양복바지에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라이터를 넣는 작은 호주머니를 유달리 크게 만든 바지였다. 작은 권총이 들어갈 정도였다. 한 20분이 지나서 다시 인터폰을 받으니 부장이었다.
  “오늘 손님이 오시는데 식사 3인분을 준비해 주게. 저녁 6시 30분에 손님들이 올 걸세.”
   이날 오후에 박흥주 대령은 짬을 내어 부장 경호차를 타고 광화문 에스콰이어 양화점에 갔다. 평소 무좀으로 고생하던 그는 여기서 검은색 구두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김재규의 암살 명령 하달
  
  저녁 7시 무렵, 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은 본관 1층 부속실에서 오전에 하던 여권 서류정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박 대령은 김재규가 정승화 총장을 만난 뒤 2층으로 올라가서 권총을 꺼내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내려올 때까지도 서류정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본관 정문에서 인터폰으로 “부장이 나가십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현관 문밖으로 나가서 부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김재규는 본관을 나오더니 박흥주 대령에게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舊館 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의전과장이자 궁정동 안가 관리인 박선호는 본관 현관을 걸어 내려오는 김재규, 박흥주 두 사람을 만나자 플래시를 비추면서 부장 곁을 따라갔다. 박흥주는 뒤에 처졌다. 구관으로 통하는 쪽문에 거의 다 가더니 김재규는 돌아서서 박 대령을 향해서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세 사람은 구관 잔디밭에 들어섰다. 김재규가 말했다.
  “둘 다 이리 와.”
  어두운 가을밤 찬 공기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됐다. 박흥주가 보니 김 부장은 ‘`酒氣가 어리고 긴장된 표정’이었다. 김재규는 상의를 들어올리고 오른쪽 바지 호주머니를 툭툭 치면서 흥분된 말투로 말했다. 박선호가 보니 호주머니가 불룩했다. 박 대령의 시야에는 호주머니에 있는 권총이 살짝 들어왔다.
  “자네들 어떻게 생각하나. 나라가 잘못되면 자네들과 나는 죽는 거야. 오늘 저녁에 내가 해치운다.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들을 처치하라. 육군총장과 2차장보도 와 있다. 너희들 각오는 다 되어 있겠지.”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박선호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박흥주의 표정을 슬쩍 보았다. 박흥주는 ‘느닷없는 이야기에 입만 벌리고 듣는 수밖에 없었다’(합수부 진술서)면서도 “예” 하고 대답했다. 침통한 표정이었다. 김재규는 본관 쪽을 가리키면서 “이미 총장, 차장보도 와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박선호가 입을 김 부장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각하까집니까?”
  김재규는 고개를 끄떡하면서 “응” 했다. 박선호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거짓말을 했다.
  “오늘 저녁은 좋지 않습니다. 경호원이 일곱 명(실제론 차 실장 포함 여섯 명)이나 됩니다. 다음에 하지요.”
  “안 돼. 오늘 처치하지 않으면 보안이 누설되어서 안 돼. 똑똑한 놈 세 명만 골라 나를 지원해. 다 해치워.”
  박선호가 주춤하는 기색을 보이자 김 부장은 다시 밀어붙였다.
  “믿을 만한 놈 세 놈 있겠지.”
  박선호는 엉겁결에 “예, 있습니다”라고 답했다(군검찰 진술).
  “좋습니다. 그러시면 30분의 여유를 주십시오.”
  “안 돼. 너무 늦어.”
  “30분이 필요합니다. 30분 전에는 절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알았어.”
  
  김재규는 박흥주 대령을 향해서 느닷없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라고 중얼거리더니 권총이 든 호주머니를 탁 쳤다. 그러고는 두 말 없이 나동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박선호는 플래시를 비추면서 부장을 따라서 나동 현관까지 수행했다. 이들의 수작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던 본관정문 초소 근무자 이말윤에 따르면 이 세 사람들이 붙어 서서 대화한 시간은 1분쯤이었다고 한다. 이 짧은 시간에 무슨 진지한 논의가 있을 수 없었다. 김 부장의 일방적인, 저돌적인 통고가 있을 뿐이었다. 그는 엄청난 계획을 던져 놓고는 그냥 만찬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계획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열쇠는 이제 김재규의 손을 떠나 두 朴 씨 손에 넘어온 셈이었다. 나중에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수사관 앞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박흥주는 당시의 기분을 이런 줄거리로 설명했다.
  
  “부장이 ‘오늘 해치운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부장과 박선호 과장 사이의 대화 내용과 그 뒤에 계속되는 말을 듣고 보니 대통령 각하와 경호실장은 자기가 살해할 테니 경호관들은 박선호와 제가 처치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김 부장의 말을 듣고 정신이 없을 정도로 놀랐습니다. 헤어져서 제 사무실로 오면서도, 부장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하면서 각오가 서서 들어갔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골똘히 했습니다. 저는 이미 호신용 25구경 베레타 권총을 오른쪽 허리에 차고 있었으나 너무 작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본관 주차장에 가서 부장 차에 두고 내렸던 저의 휴대용 가방을 열고 독일제 9연발 권총을 꺼내어 일곱 발을 장전한 다음 왼쪽 허리에 찼습니다. 이 총은 1978년 4월 1일 수행비서관으로 부임하면서 정보부에서 지급받은 것이었지만 너무 무거워서 차고 다니지 않고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러고는 1층 부속실에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육군총장과 정보부 2차장보도 와 있다. 준비도 다 되어 있다고 한다. 부장은 한국에서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는 분이다. 부장은 나도 모르게 이미 모든 준비와 계획을 다 해 놓고 있다가 오늘 기회를 포착하게 되자 갑자기 명령하는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는 저의 마음 한구석에 언제 그런 준비를 했을까 하는 의심도 생겼으며 착잡한 심경이었습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갔습니다. 내가 김 부장과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면 이런 일도 없는 것인데……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정동 본관 1층 부속실에서 생각에 잠긴 박흥주 대령이 초조해 보였던 모양인지 옆에 있던 윤병서 비서가 물었다.
  “과장님 왜 담배만 피우세요?”
  “아무것도 아냐.”
  
  
  (계속)
  
[ 2020-10-12, 23: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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