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의 독백: 사느냐 죽느냐
반공자유-교양영어(15): Hamlet's soliloquy Act Ⅲ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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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3막과 4막에서 햄릿이 연인 오필리아에게 수녀원에나 가라고 몰아붙이는 수녀원 장면에서 궁내대신 폴로니어스의 살해와 햄릿과 레어티즈의 결투에 이르는 장면까지 계략과 음모와 은폐와 假裝(가장)의 상황이 연속되면서 드라마의 위기는 최고점을 향해 나아간다. 이 과정은 햄릿이 처한 운명의 急轉(급전)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덴마크의 왕자이며 왕위 계승권자인 햄릿은 모든 사람의 눈에 왕국을 위협하는 위험한 인물로 비치게 되며 햄릿의 父王을 죽인 클로디어스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햄릿을 제거하려 한다. 이 불안한 동요의 기간에 햄릿의 내면의식은 좌절의 행로를 밟는다. 햄릿은 가치와 思惟(사유)가 혼란 상태에 빠지고 모든 계획이 무위로 끝나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것이다.

햄릿의 내면의식의 진로에 초점을 맞추어야 제3독백(사느냐 죽느냐)을 완벽하게 조망하게 될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독백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삶에 대한 불만과 疎遠(소원)이다. 유령의 폭로, 햄릿의 대학 친구들인 코넬리어스와 길든스턴의 이중성, 그를 도와주지 못하는 오필리아의 無力(무력), 그 자신이 경험하는 불안과 긴장-이것들은 햄릿의 삶을 지치게 하고 죽음의 잠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만큼 그를 우울하게 한다.

독백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懷疑(회의)와 죽음과 삶의 선택에 대한 저울질, 인간의 삶에 대한 애착과 동정심의 발로-이러한 것들은 비극적 주인공의 특징적인 고뇌의 결과이다. 고통의 인내와 역경의 甘受(감수)는 헤큐바(트로이王 Priam의 아내)에 상응하고 苦海(고해)에 대항해 무기를 들고 그것을 끝장내는 것은 피루스(Pyrrhus, 아킬레스의 아들)와 일치한다.

햄릿은 양심 때문에 복수를 지연시키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 비겁한 인간이라며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한다. 생각이 깊으면 경거망동을 경계한다. 햄릿의 창백한 사념은 행위를 제약하고 행위의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지나친 배려로 인해 행동이 불가능해지는 것-햄릿은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출구를 찾을 수 없다. 그는 어떠한 가치에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자유와 가치는 그를 사로잡는 덫이 되고 망상이 된다. “사느냐 죽느냐”는 절대적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햄릿의 정신적 방황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방황은 생각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경험하게 된다. 3막이 가리키는 것은 인간정신의 한계에 대한 깊은 인식이다. 3막은 지식과 지식의 혼돈 및 정열과 행위의 무익함을 유례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표출하고 있다.

정열은 영혼의 발전소이고 모든 행동의 발전기이다. 그러나 정열의 통제는 말과 행동의 선결조건이다. 정열에 대한 절제가 없으면 인간은 정열의 노예가 된다. 아버지의 복수라는 피하지 못할 운명과 마주한 햄릿이 친구 호레이쇼의 냉철함을 칭송하는 것은 극기주의적인 냉정함에 대한 그의 갈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햄릿은 정열에 대한 통제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15-1-84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by opposing end them. To die, to sleep―
No more―and by a sleep to say we end
The heartache, and the thousand natural shocks
That flesh is heir to! 'Tis a consummation
Devoutly to be wished. To die, to sleep―
To sleep―perchance to dream: ay, there's the rub,
For in that sleep of death what dreams may come
When we have shuffled off this mortal coil,
Must give us pause. There's the respect
That makes calamity of so long life:
For who would bear the whips and scorns of time,
The oppressor's wrong, the proud man's contumely,
The pangs of despised love, the law's delay,
The insolence of office, and the spurns
That patient merit of the' unworthy takes,
When he himself might his quietus make
With a bare bodkin? Who would fardels bear,
To grunt and sweat under a weary life,
But that the dread of something after death,
The undiscovered country, from whose bourn
No traveler returns, puzzles the will,
And makes us rather bear those ills we have,
Than fly to others that we know not of?
Thus conscience does make cowards of us all,
And thus the native hue of resolution
Is sicklied o'er with the pale cast of thought,
And enterprises of great pitch and moment,
With this regard their currents turn awry,
And lose the name of action.―Soft you now,
The fair Ophelia!―Nymph, in thy orisons
Be all my sins remembered.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rub impediment. coil a ring of rope(here the flesh encircling the soul). respect consideration. makes calamity of so long life (1) makes calamity so long-lived (2)makes living so long a calamity. quietus full discharge (a legal term). bodkin dagger. fardels burdens. bourn region. conscience self-consciousness, introspection. cast color. pitch height. regard consideration. orisons prayers.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군.
가혹한 운명의 화살과 돌팔매의 고통을 그대로 당하는 것과
고뇌의 바다에 맞서서 무기를 들고 싸워 고뇌에 종말을 가져오는 것 중
어느 것이 정신적으로 더 고귀할까? 죽는 것, 그것은 잠드는 것-
그것뿐이야. 잠이 들어 육신이 물려받는 마음의 고통과 수많은 생득적인 비탄을 끝장내는 것, 그것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삶의 극치이지. 죽는 것, 그것은 잠드는 것-잠자는 것, 그것은 아마도 꿈꾸는 것, 오! 여기에 꿈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구나. 죽음의 잠 속에서 이승의 번뇌를 영원히 벗어났을 때 우리가 무슨 꿈을 꿀지 알 수 없으며 이것이 우리에게 망설임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苦海(고해)의 긴 삶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세월의 채찍과 조소를 견딜 것이며,
압제자의 횡포와 오만한 자의 멸시,
버림받은 사랑의 비통함과, 재판의 지연,
관리의 오만, 소인 잡배들의 불손,
누가 이것들을 견디려 하겠는가?
한 자루의 단도로써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데 말이다.
어떤 여행자도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미지의 나라인 죽음의 세계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음의 의지가 흔들려서 알지도 못하는 저승으로 날아가느니 차라리 이승의 재앙을 견디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 고달픈 인생에서 짐을 지고 투덜거리고 땀 흘리려 하겠는가?
그래서 양심은 우리 모두를 비겁한 사람으로 만들며,
그래서 처음 각오할 때의 생생하던 결의의 색채는
생각의 창백한 그늘 때문에 병색이 되고
크고 중요하던 일도 이로 인해서 흐름이 뒤틀려서
마침내 실행의 명분을 잃고 마는 것이다. 쉿! 아름다운 오필리아! 숲의 요정이여 기도하거들랑, 나의 모든 죄도 기억하소서.》


[ 2020-10-13, 10: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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