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부활’: 괴물에서 인간으로
반공자유-교양영어(19): Resurrection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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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부활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젊을 때 Dmitri Nekhlyudov 공작은 부유한 이모의 하녀 Maslova를 유혹하여 임신을 시키고는 떠나가 버렸다. 쫓겨난 Maslova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사회 밑바닥을 전전하다가 창녀로까지 전락한다. 수년의 세월이 흐른 후 Nekhlyudov는 법정에서 배심원으로서 살인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그녀를 만난다. Nekhlyudov는 그녀를 구출하고 속죄하기를 원한다. 그는 Maslova를 따라 부패한 법원과 관공서로, 더러운 교도소로, 마침내 황량한 시베리아까지 Maslova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가며 그녀의 구출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체험적으로 목격하게 된다. 법원 서기의 무심한 실수로 Maslova의 형기가 15년 연장된다. 재판관이나 검사는 Maslova의 범죄의 사실 확인이나 검증의 노력도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유죄 선고한다. Maslova가 항의를 해도 무심하게 확정된 판결은 변하지 않는다. 공작인 Nekhlyudov가 Maslova를 구하기 위해 만나는 장군도, 교도소장도, 경찰서장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톨스토이는 이들이 문화와 제도에 의해서 타인의 고통이나 억울함에 돌처럼 무심한 괴물로 변형된 것으로 간주한다. 정부의 관리이든, 교회의 성직자이든, 시장의 상인이든, 거리의 거지이든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문화와 제도와 전통에 의해서 타고난 인간성을 상실하고 괴물로 변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대의 러시아뿐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정도는 다르지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증오하고 착취하고 오만하고 잔인하면서도 죄의식이나 도덕의식이 거의 사라진 짐승이 되는 것이다. 훌륭한 문화와 좋은 제도를 가진 ‘문명국’에 살아가면서도 사람들은 괴물이 되는 것이다.

Nekhlyudov 공작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부유한 지식인이고 예술가이고 군의 장교였지만 Maslova의 육신과 영혼을 파멸시키면서도 제도와 문화가 만든 괴물로 변형되어 있었다. 적어도 Maslova를 법정에서 재회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 소설 “부활”은 Nekhlyudov 공작이 Maslova를 구출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도덕적으로 부활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Nekhlyudov의 영혼은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괴물에서 인간애의 化身(화신)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19. Leo Tolstoy: Resurrection

19-1-115
Ten years after having completed Anna Karenina and beginning A Confession, a work which inaugurated a period of intense involvement in social, moral and religious issues, Tolstoy set out to write what was to become another ten years later(1899) his last novel, Resurrection. The first impulse to return to novel form came with a story he heard from his lawyer friend Koni in 1887. An orphan girl, brought up by a wealthy lady, was seduced and abandoned by a visiting relative of her benefactor. Upon hearing her pregnancy, the lady drove the girl from her house. The girl who was forced to prostitution, was subsequently charged with stealing money in a brothel and brought to trial. One of the members of the jury turned out to be her seducer who, his conscience now awakened, offered to marry her, but her death from typhoid made this impossible.

This tale moved Tolstoy because it resonated with his own past sexual indiscretions, the liaison with a peasant girl which he explored in 1889 in his story The Devil and his seduction of Gasha, his aunt's maid, who was then driven out of the house and came to grief. Psychologically Resurrection began with the author's guilt, the nobleman's repentance of his sexual violence of an innocent peasant woman. His first plan to write the 'Koni tale' in 1890 focused on that guilt, his subsequent many failed attempts to write the novel continued to pursue that theme, and the final novel thrusts Prince Nekhlyudov into a quest for redemption from his original sin with Katusa Maslova.

 
19. 톨스토이: 부활

Anna Karenina(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하고 10년 후에 그리고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이슈에 적극 참여의 시기를 연 작품인 A Confession(참회록)을 시작하면서 Tolstoy는 또 10년 뒤에 (1899) 그의 마지막 소설이 될 “부활”의 집필에 착수하였다. 소설형식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첫 충동은 1887년 그의 변호사 친구인 Koni로부터 들은 어떤 이야기와 함께 왔다. 부유한 귀부인에 의해서 양육된 한 고아 소녀가 그녀의 은인(부인)을 방문한 친척에 의해서 유혹되고 버림받았다. 소녀의 임신을 알게 된 부인은 그녀를 집에서 쫓아내버렸다. 강압에 의해 매춘을 하게 된 그녀는 그 후에 遊廓(유곽)에서 돈을 훔친 죄로 고발당하여 재판을 받게 되었다. 배심원 중의 한 명이 그녀를 유혹했던 사람인 것으로 판명되고 그 배심원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awakened) 그녀와 결혼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장티푸스로 인한 그녀의 죽음이 이것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이 이야기는 Tolstoy 자신의 과거 성적 무분별 행위들, 즉 그가 1889년 그의 소설 “악마”에서 탐사하였던 빈농 딸과의 私通(사통; 비밀 연애)과 이모의 하녀인 Gasha를 유혹한 것, 그래서 그녀가 주인집(house)에서 쫓겨나서 고난을 당하게 된(came to grief) 그런 무분별한 행위들을 상기시켜주었기 [resonated; 共鳴(공명)하다] 때문에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심리적으로 “부활”은 순결한 빈농의 여인을 성적으로 폭행한 것에 대한 귀족(Tolstoy)의 懺悔(참회)인, 저자의 죄의식 때문에 시작되었다. 1890년 ‘Koni 이야기’를 쓰려던 첫 계획은 그 죄에 초점을 두었고 그 소설을 쓰려는 그 다음의 많은 실패한 시도는 그 주제를 계속 추구하였고 그리고 완성된(final) 소설은 Nekhlyudov 公爵(공작:Prince)을 Katusa Maslova와의 원죄로부터의 구원의 추구에 매진하도록 한다.


19-2-116
Resurrection is more informed by Tolstoy‘s social, moral, and religious views than any of his other fictional works. Of course, War and Piece has its embedded essays on the theory of history, and Prince Andrew is brought to discover many of Tolstoy's cherished ideas. Likewise, Anna Karenina uses an auto-psychological hero, Levin, to embody much of Tolstoy's own belief system, but Resurrection is dominated by the fixed world-view of Leo Tolstoy, which is expressed in the author's design and shared through the narrative's point of view.

This world-view is shaped by one central concept which first surfaced in Tolstoy's essays on education in the 1860s and then, especially in the Resurrection decade, came to dominate his social and political thought. This concept, nasilie, which can be translated as 'coercion' and 'violence' and ranges from the physical to the spiritual, assumes, in the manner of Tolstoy's adolescent idol Rousseau, a fundamental innocence and goodness of human beings which is distorted by culture and social institutions. Tolstoy's harsh view of educated society as both selfish and hypocritical rests on his belief that the educational system does violence to the innocent by inculcating them with false ideas. Secular society, shaped by these ideas, upholds a perverted notion of human relationships grounded in a glorification of power and dominated by a politics of sexuality which is debasing to women.

“부활”에는 그의 다른 어떤 소설 작품보다도 Tolstoy의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관점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들어가 있다. 물론 “전쟁과 평화”는 역사이론에 대한 內包(내포) 에세이를 가지고 있고 Andrew 공작은 Tolstoy가 소중히 여기는 많은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안나 카레니나”는 Tolstoy 자신의 신앙체계의 많은 것을 化身(화신)하기 위하여 自意識(자의식)적 주인공 Levin을 이용하지만 “부활”에는 Leo Tolstoy의 확고한(fixed) 세계관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 세계관은 저자의 構想(구상:design)으로 표현되고 소설의 이야기 (narrative)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다(shared).

이 세계관은 1860년대에 Tolstoy의 교육에 관한 그의 에세이에 처음으로 드러났다가 그 다음에 특히 “부활”을 쓰는 10년 동안에 그의 사회적 정치적 사상을 지배하게 된 하나의 중심적 개념에 의해 형태를 갖추게 된다. ‘강압’과 ‘폭력’으로 번역될 수 있고 육체적(강압과 폭력)으로부터 정신적인 데까지 범위를 가진 nasilie라는 이 개념은 Tolstoy의 청년시대의 우상이었던 Rousseau의 방식에 따라 문화와 사회적 제도에 의해서 왜곡되어 버린 인간존재의 근본적 순결과 선을 假裝(가장)한다(assume). 교육받은 사회(지식층)에 대해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라는 Tolstoy의 가혹한 평가(view)는 교육제도가 순결한 사람들(the innocent)에게 거짓 사상을 주입시켜 그들을 (그들의 순결을) 파괴시켰다( do violence ...to)는 그의 믿음에 의존한다. 이런 거짓 사상에 의해 형성된 세속사회는 권력의 찬양에 바탕을 두고 여성을 비하하는 성의 정치에 의해서 주도되는 비뚤어진 인간관계를 지지하고 있다.
 

19-3-117
The art of this secular society 'infects' it with these ideals. The government of this society is the institutional embodiment of the fundamental coercion/violence; it is held together by the basic instrument of nasilie, the military, which itself is a system that turns innocent drafted men into monstrous beasts. The non-military institution that most embodies this nasilie is the legal system with its courts and penal institutions. The Church, which should uphold the basic teachings of Christ, in fact mocks them by condoning war and the military, by supporting the legal system, penal incarceration, and capital punishment and by itself befuddling the minds of the people through intoxicating liturgies and pompous ceremonies. Society can be redeemed from this order of nasilie only when all acknowledge their involvement in it and agree to stop hating, torturing, enslaving, fornicating, and killing. It is this world-view that controls Resurrection.*

What makes Resurrection unique is that it combines this anatomy of society with a story of moral awakening and spiritual growth toward freedom from the secular ideals and toward the possibility of a new life. To the hero's journey through the different social layers and institutions of contemporary Russia, Tolstoy adds a sequence of moments of inner assessment and self-recollection which in fact comprises the process of 'resurrection'.

이런 세속사회의 作爲(작위)가 이런 사상들로 사회를 ‘감염’시키고 있다. 이런 사회의 정부는 근본적 강압/폭력의 제도적 化身(화신)이다; 그것(정부)은 nasilie의 기본 도구인 군대에 의해서 공고하게 뭉쳐지고 군대 그 자체가 순수한 징집병사들을 무도한 짐승으로 변화시키는 제도이다. 이런 nasilie를 가장 많이 화신하는 非군사제도는 법원과 형벌기관을 가지고 있는 사법기관이다. Christ의 기본적 가르침을 받들어야 하는 교회는 전쟁과 군대를 黙過(묵과)함에 의해서, 법률기관과 형벌구금과 사형을 지지함에 의해서, 교회 그 자체로서 도취적인 예배식과 화려한 儀式(의식)에 의해서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Christ의 가르침(them)을 조롱하고 있다. 사회는 모든 사람이 이 nasilie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증오하고 괴롭히고 노예를 만들고 私通(사통)하고 죽이는 것을 멈출 때만이 이런 nasilie의 지배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부활”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세계관이다.

“부활”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이런 사회 해부를 도덕적 각성과 세속적 이상으로부터 자유를 향하고 그리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으로 향하는 정신적 성장의 이야기와 결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당대 러시아의 다양한 사회적 계층과 기관들을 통한 주인공의 旅路(여로)에다 Tolstoy는 사실상 ‘부활’의 과정을 포함하는 一連(일련)의 내적 평가와 자기 회상의 순간들을 보태고 있다.


19-4-118
The hero is often shown literally at the moment of awakening from sleep to some new awareness or through a process of remembrance coming to some new insight while on a journey home. With this double focus, both outward and inward, Tolstoy is able to show his hero in a process of examining his relationship to government institutions, the issues of land-ownership, the problems of the peasantry, and attitudes to sexuality and family life. Through these repeated examinations Nekhlyudov discovers his own moral feelings in these realms, which clears the path for his moral 'resurrection'

This peculiar plot of resurrection thus reworks the typical nineteenth-century story of lost illusions that we find in novelists like Balzac and Dickens. In the blending of the structures of anatomy and awakening, Tolstoy's last novel resembles most Dostoevsky's first major fiction, Memoirs From the House of the Dead(1862), which combines an anatomy of prison life with the story of the narrator's awakening from moral blindness and isolation to spiritual insight and love. In Tolstoy's novel we are first introduced to Russian life in prison, which then functions as the major metaphor for all Russian life. Both works tell the story of the hero's discovery of confinement and the quest for freedom, and both include numerous vignettes of people characteristic of the society but incidental to the story.*

주인공은 종종 문자 그대로 잠에서 깨어나서 어떤 새로운 깨달음(awareness)에 도달하거나 귀가하는 동안에 回想(회상)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순간에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런 내적 또는 외적 2중 초점을 이용하여 Tolstoy는 주인공이 정부 기관과의 관계, 토지소유권 이슈, 빈농의 문제, 남녀구별과 가정생활에 관한 태도를 점검하는 과정에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이런 반복되는 점검을 통해서 Nekhlyudov는 이런 領域(영역) 안에서 자신의 도덕적 감정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도덕적 ‘부활’로 가는 그의 길을 열어준다.

이리하여 이 특이한 부활의 이야기(plot)는 우리가 Balzac과 Dickens 같은 소설가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19세기의 전형적인 잃어버린 환상의 이야기를 재생한다. 해부와 각성의 구조를 혼합함에 있어서 Tolstoy의 마지막 소설(“부활”)은 Dostoevsky의 첫 주요 소설인 “死者(사자)의 집에서 온 회상록”과 닮아 있는데 이 소설은 감옥의 해부와 도덕적 무분별과 고립으로부터 정신적 통찰과 사랑의 깨달음으로 가는 내레이터의 이야기를 결합하고 있다. Tolstoy의 소설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러시아의 감옥생활로 안내되고 그다음에 이것은 모든 러시아인들의 삶에 대한 중요한 隱喩(은유)로서 작용한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의 구속에 대한 발견과 자유에 대한 탐구를 말하고 있고 사회(러시아)의 특징을 나타내지만 소설에는 부수적인 많은 揷話(삽화: 사람들에 관한)를 내포하고 있다.

 
19-5-119
Tolstoy's novel is also unique in that it is surrounded by a peculiar set of frames. It opens with a picture of burgeoning spring set in contrast to our disfigurement of nature and misuse of each other:

〱The sun shone warm, the air was balmy, the grass, where it did not get scraped away, revived and sprang up everywhere: between the paving stones as well as on the narrow strips of lawn on the boulevards. The birches, the poplars, and the wild cherry trees were unfolding their gummy and fragrant leaves, the bursting buds were swelling on the lime trees; crows, sparrows, and pigeons, filled with the joy of spring, were getting their nests ready; the flies were buzzing along the walls warmed by the sunshine. All were glad: the plants, the birds, and the insects, and the children. But men, grown-up men and women, did not leave off cheating and tormenting themselves and each other. It was not this spring morning men thought sacred and worthy of consideration, not the beauty of God's world, given for a joy to all creatures― this beauty which inclines the heart to peace, to harmony, and to love― but only their own devices for enslaving one another.(1.i)〉

This image of nature, demonstrating 'the fact that men and animals received the grace and gladness of spring', sets out the narrator's absolute truth ignored or forgotten by all the characters in the tale.

Tolstoy의 소설은 특이한 구조의 세트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서 또한 독특하다. 소설은 인간들의 자연 훼손과 인간 상호간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새싹이 돋아나는 봄의 장면과 함께 시작 된다:

〱태양은 따뜻하게 빛나고 공기는 향기로웠고 풀은 벗겨지지 않은 곳에서는 재생하여 어디에서나 솟아났다: 대로 위에 있는 좁은 잔디길 위에는 물론 鋪石(포석)사이에도. 자작나무와 백양나무와 야생 체리나무들이 그들의 탄력 있고 향기로운 잎을 펼치고 있었고 터져 나오고 있는 새싹들은 라임나무 위에서 부어오르고 있었다. 까마귀와 참새와 비둘기들은 봄기운이 가득차서 둥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파리들은 햇볕으로 따스해진 벽을 따라 윙윙거리고 있었다. 만물이 기뻐하고 있었다: 식물도 새도 벌레들도 아이들도. 그러나 인간들은, 성인 남자와 여자들은, 속이고 자신과 서로서로를 괴롭히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이 봄날 아침에 사람들은 신성하고 가치 있는 생각(consideration)을 생각하지 않았고 모든 창조물에게 기쁨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세계의 아름다움―마음을 평화와 조화와 사랑으로 기울게 하는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았고 서로서로를 노예로 만드는 방책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자연의 이미지는 ‘사람과 동물들이 봄의 은총과 기쁨을 받았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에 의해 무시되거나 잊혀진 내레이터의 절대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다.


19-6-120
The novel thus opens with a picture of resurrection in nature, seen only by the narrator and it is to this resurrection― the experience of the biblical joy and gladness, which Tolstoy equated with the experience of the will of God, and the inner sense of peace, harmony, and love which marks the 'beauty of God's world'― that the characters are called. Throughout the novel nature is invested with moral meaning, positive as here or in Nekhlyudov's epiphanic moments of moral resolve, or negative, as in the seduction scene or the prisoner's march through Moscow. Nekhlyudov's story is told as the gradual awakening to the meaning of the intial image of nature and thus as a discovery of the narrator's absolute truth.

This opening revelatory frame is itself surrounded by another, represented by the quotations from the Gospels in the epigraphs and in the final chapter of the work. These quotations comprise another level of absolute truth. The epigraphs stress three major truths: the necessary admission of guilt by all, the need for continual forgiveness by all for all, and the possibility of self-control and self-perfection for all. It is these truths that Nekhlyudov learns through his experience and finally is able to articulate through his reading from the Gospels in the last chapter. This closing frame clearly marks Nekhlyudov's discovery of the narrator's absolute truth, and parallels the narratological strategy of Nekhlyudov's gradual adoption of the narrator's language.

이렇게 소설은 내레이터에게만 보이는 자연 속 부활의 그림으로 시작되고 등장인물들이 초청받는 것은 이 부활―聖書(성서)적 환희와 기쁨의 경험이며 이것을 Tolstoy는 神의 의지에 대한 경험, 그리고 ‘神의 세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평화와 조화와 사랑의 내적의미와 동등하게 생각하였다―에로이다. 소설 전체를 통해서 자연에게, 여기 혹은 Nekhlyudov의 도덕적 결의의 순간(직관적 통찰의 순간)에서처럼 긍정적이거나, 혹은 유혹의 장면이나 죄수들의 Moscow 통과 행진에서처럼 부정적인, 도덕적 의미가 주어진다. Nekhlyudov의 이야기는 자연에 대한 첫 이미지의 의미에 대한 점진적 각성과 그래서 내레이터의 절대적 진리에 대한 발견으로서 말해진다.

이 서두의 啓示的(계시적) 프레임은 그 자체가 책머리의 題辭(제사: epigraph)와 소설의 마지막 章(장)에 있는 복음서 인용구에 의해서 표시되는 또 하나의 프레임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다. 이들 인용구들은 또 다른 수준의 진리를 포함한다. 그 題辭는 세 개의 중요한 진리를 강조한다. 즉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반드시 인정하는 것,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용서의 필요성, 그리고 모든 사람의 자제력과 자기완성의 가능성이다. Nekhlyudov가 그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복음서 독파를 통해서 그가 명료하게 표현(articulate)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진리들이다. 이 마지막 프레임은 내레이터의 절대적 진리에 대한 Nekhlyudov의 발견을 명시하고 있으며 내레이터의 언어에 대한 Nekhlyudov의 점진적 채택전략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19-7-121
The revelatory frames, the world of nature and the Gospels, reveal the way to the realization of human potential so hidden from the denizens of the prison of Russia. The reader of this novel, therefore, knows from the beginning what Nekhlyudov learns only by the end.

Resurrection also deviates from the conventions of the Western novel in its treatment of the plot of desire. War and Peace and Anna Karenina had, of course, both reworked the basic story of romance which underlies so much Western fiction; in Tolstoy's version of the plot of desire, the story, whether of Prince Andrew's and Pierre's relationship with Natasha or Levin's with Kitty was used to tell a tale of metaphysical and religious quest in which the heroine is invested with the desired moral and spiritual qualities which the hero seeks. Resurrection reworks the tradition differently. It reduces the plot of desire to a past idyllic event, the summer romance of Prince Nekhlyudov and Katusha which later culminates in their symbolic wedding at the Easter service, marked by the shared kiss of peace. This union is then coercively consummated, and these two facts, the idyllic union and its forced consummation, although long forgotten, underlie the subsequent lives of the hero and heroine. The plot of desire is then replayed in the novel as a story of the resurrection of the original romance, first of the forced consummation and its dreadful consequence for the heroine, and only later of the idyllic union of love both once shared and now, in the end, rediscovered in a new form. This story of recovery of an original romance provides Tolstoy with a vehicle to tell a theological tale wherein the quest for the redemption of an orignal sin results in the uncovering and release of an original love, a genuine resurrection.

자연세계와 복음서라는 계시적 프레임은 러시아 감옥의 공민들(죄수들)에게는 숨겨져 있던 잠재능력을 실현하는 길을 밝혀준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독자는 Nekhlyudov가 끝에 가서야 배우게 되는 것을 처음부터 알게 된다.

“부활”은 또한 욕망의 이야기(plot)를 처리함에 있어서 西歐(서구)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는 물론 둘 다 너무나 많은 서구픽션(소설)의 기저를 이루는 로맨스(romance)에 관한 기본 이야기를 재생했었다; 욕망의 이야기 Tolstoy판에서는 Natasha와 Andrew 공작 및 Pierre의 이야기이든 Levin과 Kitty의 이야기이든 그 이야기(story)는 형이상학적 그리고 종교적 탐구여행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는데, 그 탐구여행에서 여주인공은 주인공이 추구하는 도덕적 정신적 자질(주인공이 바라는)을 부여받고 있다. “부활”은 그 전통을 다르게 재생한다. “부활”은 욕망의 이야기를 Nekhlyudov 공작과 Katusha의 여름날의 연애인, 과거에 있었던 목가적 사건으로 축소하고 있으며 그 연애는 부활절 예배에서 상징적 결혼으로 정점에 달하며 이것은 화평의 공동키스로 표시된다. 이 결합은 그러고 나서 강압적인 동침의 결말을 가져오고, 목가적 결합과 강압적 동침결말이라는 두 사실은 비록 오랫동안 망각되고 있었지만 남녀 주인공의 그다음 삶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그후 욕망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최초 로맨스의 부활에 대한 스토리로 재연되는 데, 첫 번째 스토리는 강요된 동침과 그것이 여주인공에게 가져온 무서운 결과에 대한 것이고 후에 옛날에 공유하였고 지금 종말에 와서 새로운 형태로 재발견되는 목가적 사랑의 결합에 관한 것(스토리)이다. 최초 사랑의 회복에 대한 이 스토리는 Tolstoy에게 원죄의 救贖(구속 redemption:죄를 용서받는 것)을 위한 탐구여행이 최초 로맨스의 폭로와 구출 즉 순수한 부활의 결과를 가져오는 신학적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전달 매체를 제공한다.
 

19-8-122
The story of Prince Nekhlyudov opens with his awakening to the recollection of his call to jury duty. At court he learns that the case involves a prostitute being tried for murder. She takes the stand and says her name is 'Love', but Nekhlyudv knows that this 'Love' is in reality his long-forgotten, beloved Katusha, whom, in a panic he now recalls he had violated, paid off, and abandoned. Resurrection thus opens, in a fashion characteristic of Tolstoy's emblematic realism, with Prince Nekhlyudov, a failed artist, being called to judge a 'Love' he has brought to ruin. But the panic recollection is told in an extended flashback from the vintage-point of the narrator's absolute truth, which marks the distance between the memory and Nekhlyudov's willingness to acknowledge the significance and consequence of the past.

〱He felt himself in the position of a puppy, when its master, taking it by the scruff of the neck, rubs its nose in the mess it has made. The puppy wines, draws back, and wants to get away as far as possible from the effects of its misdeed, but the pitiless master does not let go. And so Nekhlyudov, feeling all the repulsiveness of what he had done, felt also the powerful hand of the Master, but he did not yet understand the whole significance of his action and would not recognize the Master's hand. (Ⅰ.ⅹⅹⅱ)〉

Nekhlyudv 공작의 이야기는 배심원 임무에 대한 환기로서 시작된다. 법정에서 그는 재판사건은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 매춘부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피고석에 서서 그녀의 이름은 ‘Love’라고 말하지만 Nekhlyudv는 이 ‘Love’는 실제로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랑하는 Katusha라는 것을 알고 지금 恐慌(공황)상태에 빠져 그가 그녀를 능욕하고 돈을 주고 버렸었다는 것을 회상하게 된다. “부활”은 이렇게 해서 실패한 화가인 Nekhlyudov 공작이 그가 파멸시킨 ‘Love’를 재판하도록 호출받으면서 Tolstoy의 상징적 사실주의의 특징이 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공황적 회상은 내레이터의 절대적 진리의 시점으로부터 광범위한 플래시백으로 말해지고 이것은 기억과 과거의 의미와 결과를 자인하려는 Nekhlyudov의 자발적 의도 사이의 거리를 표시한다.

〱그는 강아지의 주인이 강아지의 목덜미를 잡고 그놈의 코를 그놈이 금방 싼 똥에 비벼댈 때의 강아지의 처지에 있다고 느꼈다. 강아지는 낑낑대고 뒤로 빼고 나쁜 짓의 결과물(똥)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도망가기를 원하지만 무자비한 주인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Nekhlyudov는 그가 과거에 한 것에 대한 모든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행동의 전체적인 의미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주인의 손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19-9-123
The Master's hand is ultimately recognized only at the very end when, in reading the Gospels, Nekhlyudov discovers that 'the Master's will is expressed' in the Sermon on the Mount. The intervening story represents the struggle within Nekhlyudov between his 'animal self' and his 'spiritual self', between that aspect of his being represented by his physical, bodily needs, his socially acquired structure of desires, and his self-centered way of seeing the world and that aspect of his being which is morally grounded and rationally ordered, selflessly open to others and their plight, and receptive to the call of the Divine. Throughout the novel the narrator speaks of these two modes of being, and often moments are marked, as here, by animal similes which tell of psychological or moral state of the character. Each stage in the unfolding drama of resurrection is understood as a tearing away of the 'crust of animality' from the ever-present, if forgotten,'divine self'.

The first major moment of resurrection occurs when Nekhlyudov finally acknowledges the past event. Maslova has been unfairly judged by the jury and mistakenly sentenced by the court, and Nekhlyudov, to avoid dealing with his own present responsibility for this new injustice, goes off to dinner at the Korchagin's, the home of his fiancee Missy. But now Nekhlyudov sees anew Missy's father, who is 'chewing carefully with his false teeth and lifting his bloodshot eyes':

주인의 손은 Nekhlyudov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山上垂訓(산상수훈)에서 ‘주인의 뜻’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할 때인 (소설의) 맨 끝부분에서야 궁극적으로 인식된다. 그 사이에 끼인 스토리는 Nekhlyudov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의 ‘동물적 자아’와 ‘정신적 자아’ 사이에 놓여 있는 갈등과, 그의 육체적 신체적 욕구, 그의 사회적으로 취득된 욕망의 구조, 그의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의해서 대표되는 그의 존재 (his being)에 대한 관점(aspect)과 도덕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고, 이성적으로 질서가 잡혀있으며 神의 召命(소명)에 응하는 자기 존재에 대한 관점 사이에 놓여있는 갈등을 나타내고 있다. 소설 전체를 통해서 내레이터는 이 두 형태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종종 여기에서처럼 인물의 심리적 또는 도덕적 상태를 말해주는 동물적 直喩(직유)에 의해 이런 순간들이 표시된다. 부활을 表明(표명)하는 드라마의 각각의 단계는 비록 잊혀졌지만 항상 존재하는 ‘神적인 자아’로부터 ‘동물적인 껍질’을 떼어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Nekhlyudov가 마침내 과거의 사건을 인정할 때에 첫 중요한 부활의 순간이 일어난다. Maslova는 배심원들에 의해 부당하게 판결을 받고 법정에 의해 잘못되게 선고를 받으며, Nekhlyudov는 이 새로운 不義(불의)의 처리에 있어서 현재의 자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그의 약혼녀 Missy(아가씨)의 집인 Korchagin의 저택으로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간다. 그러나 이제 Nekhlyudov는 ‘義齒(의치)로 음식을 조심스럽게 씹고 충혈된 눈을 들고 있는’ Missy의 아버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19-10-124
〱Though Nekhlyudov knew Korchagin very well, and had often seen him at dinner, today this red face with the sensual, smacking lips, the fat neck above the napkin stuck into his waistcoat, and the whole overfed military figure, struck him very disagreeably. Nekhlyudov involuntarily remembered what he knew of the cruelty of this man, who, when in command, used to have men flogged, and even hanged, without rhyme or reason, simply because he was rich and had no need to curry favor.(Ⅰ.ⅹⅹⅴⅰ)〉

Korchagin's 'animal self', represented in a typical Tolstoyan close-up, now reveals his social role, as a man of wealth and station who uses his power over others to the point of cruelty. In a manner characteristic of the novel, the physical details are used not so much to depict Korchagin as to suggest the moral qualities (flabbiness, self-indulgence) of a cruel, rich man.

Nekhlyudov's insight into the immorality of Korchagin's social position is followed by other insights into the moral failings of his fiancee and his own mother, recently dead. Everything seems 'shameful and horrid, horrid and shameful'. Then suddenly he recalls Maslova and, recollecting the days of yore, 'a breath of that freshness, youth and fullness of life seemed to touch him'. The remembrance of things past restores his memory of self: 'then he was free and fearless, and innumerable possibilities lay ready to open before him; now he felt himself caught in the meshes of a stupid, empty, valueless, frivolous life.'

〱Nekhlyudov는 Korchagin을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가끔씩 그를 만찬에서 본적이 있었지만, 육감적이고 입맛을 다시는 입술을 가진 붉은 얼굴과 양복조끼에 박혀있는 냅킨위의 살찐 목과 전체적으로 영양 과잉의 군인 모습이 그에게 매우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Nekhlyudov는 자기도 모르게(involuntarily) 이 사람의 잔인성에 대해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게 되었으며 그는 사령관이었을 때 그가 단지 부유하고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without rhyme or reason) 병사들을 매질하고 심지어 교수형에 처하곤 하였었다.〉

전형적인 Tolstoy적 클로즈업으로 묘사된 Korchagin의 ‘동물적 자아’는 이제 잔인한 정도까지 권력을 행사하는 富(부)와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서 그의 사회적 역할을 나타내고 있다. 이 소설(‘부활’)에 특징이 되는 방법으로 신체적인 세부사항이 한 잔인하고 부유한 남자의 도덕적 자질(뚱뚱한 군살, 방종)을 암시할 만큼 Korchagin을 묘사하기 위해 너무나 많이 이용되고 있다.

Korchagin의 사회적 지위의 부도덕성에 대한 Nekhlyudov의 통찰은 그의 약혼녀와 최근에 별세한 그의 어머니의 도덕적 결점(failings)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모든 것이 ‘창피하고 징글맞고(horrid), 징글맞고 창피하다’. 그때 그는 갑자기 Maslova를 회상하고 옛날의 날들을 하나씩 불러일으킬 때에 ‘그 신선함과 삶의 젊음과 충만함의 숨결이 그를 어루만지는 것(touch) 같았다’. 지난 일들을 추억하는 것이 그 자신에 대한 추억을 復古(복고)시킨다: ‘그때 그는 자유로웠고 두려움이 없었으며, 무수한 가능성이 그의 앞에 준비된 채 놓여있었다; 지금은 그는 자신이 어리석고 공허하고 무가치하고 경박한 삶의 그물에 걸려 있다고 느꼈다’.
 

19-11-125
He wants simultaneously to extricate himself from his present mess and 'atone for his sin against Katusha'. Realizing that he is a 'scoundrel' he begins a 'cleansing of his soul' which consists in clearing out 'all the rubbish that had accumulated in his soul and caused the cessation of true life'. This leads to a resolution: ‘I will see her, and ask her to forgive me. …and marry her if necessary’. He lifts his eyes and prays the prayer Tolstoy often repeated in his own diaries: 'Lord, help me, teach me, come, enter within me, and purify me of all this abomination.' The narrator interprets for us: 'the God within him had awakened in his consciousness.' With tears in his eyes Nekhlyudov goes to the window and looks out on the garden; in the expanse of nature he finds the 'meaning' of what 'was going on in his soul', and pronounces it 'delightful. This first scene of moral resurrection is paradigmatic of all Nekhlyudov's major moments of awakening. An encounter, perhaps by chance, with a figure he either has not known or not recently seen, awakens him from a former blindness, and this allows him to see some truth about them which then reveals a truth about himself; armed with these truths he resolves to reorder his life, often finding confirmation of this moment in an expanse of nature which represents the absolute truth embodied in the revelatory opening frame.

그는 동시에 현재의 혼돈으로부터 탈출하여 ‘Katusha에 대한 그의 죄를 贖罪(속죄)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악당’이라는 것을 깨닫자 그는 ‘그의 영혼을 청소하기’ 시작하며 이 청소는 ‘그동안 그의 영혼 속에 축적되어 진실한 삶을 중단시키는 원인이 되었던’ 모든 쓰레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결심으로 이끌어낸다: ‘나는 그녀를 만나서 나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겠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녀와 결혼 하겠다’. 그는 눈을 들고 Tolstoy가 자신의 일기에서 종종 반복하였던 기도를 한다: ‘주님, 저를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오십시오, 저 안에 들어오십시오, 그래서 저로부터 모든 가증스러운 것을 떼어 내어 저를 淨化(정화)시켜주십시오’. 내레이터는 우리를 위해서 해석을 해준다: ‘그의 내면에 있는 神性(신성)이 그의 의식 속에서 깨어났었던 것이다’.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Nekhlyudov는 창가로 가서 밖의 정원을 바라본다: 자연의 넓게 퍼진 공간(expanse)에서 그는 ‘그의 영혼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기쁘다‘라고 선언한다. 도덕적 부활의 이 첫 장면은 Nekhlyudov의 모든 주요한 각성의 순간을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가 알지 못하거나 최근에 만나지 못한 한 인물과의 만남은, 아마도 우연한 만남은, 그를 이전의 맹목(무지)으로부터 일깨워 주게 되고 이것이 그로 하여금 그들(그와 그 인물)에 관한 어떤 진실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그러면 그 진실은 그 자신(Nekhlyudov)에 관한 진실을 계시해준다. 이런 진실로 무장을 해서 그는 그의 삶을 다시 정리하기로 결심하게 되고 이런 순간의 확인을 종종 소설 첫머리(opening)의 啓示的(계시적) 프레임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던 절대진리를 상징하는(represent) 자연의 넓게 퍼진 공간에서 발견하게 된다.


19-12-126
The climatic moment of resurrection follows this same pattern. Nekhlyudov is preparing to follow Maslova to Siberia. His sister and brother-in-law stop in to see him, and all of Nekhlyudov's animosity toward his brother-in-law flares up again, culminating in a verbal battle and barbed insults to his sister's husband (Ⅱ.xxxi-xxxiii). Nekhlyudov's moral regeneration is measured by the fact that he awakens the next morning aware of his mistreatment of his brother-in-law and with a resolve to make amends. But right now he must follow his path of salvation by accompanying Maslova on the 'procession' out of Moscow. The July heat is stifling and the suffering of the prisoners is overwhelming. Several die on the way, and the recollection of the 'beautiful face' of one so murdered reveals the truth:

〱No one is guilty, and yet the men have been murdered by these people who are not guilty of their death. All this comes from the fact that all these people―governors, inspectors, police officers and policemen―consider that there are circumstances when human relations are not necessary between human beings. . . If once we admit―be it only for an hour or in some exceptional case―that anything can be more important than a feeling of love for our fellows [chelovekoliubie], then there is no crime which we may not commit with easy minds, free from feelings of guilt.(Ⅱ. lx)〉*

“부활”의 최고 순간은 이와 똑같은 패턴을 따른다. Nekhlyudov는 시베리아까지 Maslova를 따라갈 준비를 한다. 그의 누나와 매형이 그를 보기 위해 들리고 그러자 매형에 대한 그의 증오심이 다시 타오르고 결국 언쟁과 매형에 대한 가시 돋친 모욕에까지 이르게 된다. Nekhlyudov의 도덕적 재생은 다음 날 아침 그가 매형에 대한 학대를 의식하고 고쳐야겠다고 결심하는 사실에 의해서 판단할 수 있다(measured). 그러나 지금 당장 그는 Moscow 밖으로 나가는 ‘행렬(유형수들의)’ 속에 있는 Maslova를 동반함에 의해서 구원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7월의 열기는 숨을 막히게 하고 있었고 죄수들의 고통은 불가항력적이었다. 도중에 몇 명의 죄수들이 죽고 그렇게 살해된 한 죄수(one)의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회상이 진실을 계시한다:

〱아무도 죄가 없다. 그런데도 그 남자들(죄수들)은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죄가 없는 이 사람들(호송병 등 관계당국자)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이 모든 것은 이 모든 사람들은―교도소장(governors), 검찰관들, 경찰관들―인간들 간에 인간적인 관계가 필요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우리가 일단 ―한 시간 동안이든 어떤 특별한 경우에든―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같은 인간들(our fellows)에 대한 사랑의 감정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인정하게 되면 그때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범하지 못할 범죄는 없다.〉
 

19-13-127
In this revelatory moment Nekhlyudov sees that these people are 'as impermeable to the feelings of humanity, as this paved earth is impermeable to the rain', because they are officials of the state, which, like Tolstoy, he has recognized as the major instrument of violence. Such people fail to understand the 'fundamental law of human life' is 'mutual love', and as a result, Nekhlyudov now understands, they end up harming others and ultimately themselves. This insight then allows Nekhlyudov to reassess his own behaviour: 'only let yourself deal with a man without love, as I did yesterday with my brother-in-law, and there are no limits to the suffering you will bring on yourself, as all my life proves.'

The issue is not simply some past sin against 'Love', but his failure to love right now. The quest to redeem his past sin will no more lead to salvation than Kiesewetter's belief in Christ's blood shed once in the past and for all could be an adequate doctrine of redemption (Ⅱ. xvii). Nekhlyudov thus recovers at this climactic moment Tolstoy's theology of salvation, clarified while he was writing this novel, a doctrine grounded not in the past events, but in the present moment: 'The time is right now, this minute, the person is the one with whom you are dealing right now, and the task is to save your soul, i.e. to do the task of love'(liii. 199; 1898).

이 계시적 순간에 Nekhlyudov는 이 사람들은(they) 그가 Tolstoy처럼 폭력의 중요한 도구라고 인식하게 된 국가의 관리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이곳 포장된 땅에 빗물이 스며들 수 없듯이 인간의 감정이 스며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사람들(관리들)은 ‘인생의 기본 법칙’은 ‘상호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 결과 다른 사람들과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Nekhlyudov는 이제 이해하게 된다. 그러자 이런 통찰은 Nekhlyudov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재평가도록 한다: ‘어제 내가 매형에게 한 것처럼 사랑이 없이 사람을 취급하도록 너 자신에게 허용해라. 그러면 내 전 생애가 증명하듯이 너희가 너 자신에게 초래할 고통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Love'에 대한 과거의 어떤 죄만이 아니고 지금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his failure to love). 그의 과거의 죄를 구속받기 위한 탐구여행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은 마치 과거에 인류 모두를 위해서 한 번 흘렸던 Christ의 피에 대한 Kiesewetter의 믿음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해서 Nekhlyudov는 이 정점의 순간에 Tolstoy의 구원의 신학을, 그가 이 소설을 쓸 동안에 명료화된, 과거의 일에서가 아니고 현재의 순간에 바탕을 둔, 敎理(교리)를 발견하게 된다: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이 순간 그 사람은 당신이 지금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임무는 당신의 영혼을 구하는 것, 즉 사랑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19-14-128
Once Nekhlyudov learns this Tolstoyan truth, he is free to leave his past and move on. Part Two ends, and the journey to Siberia and a 'new life' begins.

As in War and Peace and Anna Karenina, so in Resurrection the hero's psychological development moves through a series of revelatory moments followed by periods of correction and clarification. What serves to correct and clarify Nekhlyudov's moments of resurrection are his encounter with the realities of life, often his meetings with Maslova. The resolve and subsequent experience of 'peace' and 'joy' recorded in his diary (Ⅰ.xxxvi) after the first moment of resurrection, for example, are quickly dispelled in the first 'interview' with Maslova when, learning that she does not share his guilt over the past, he pronounces her a 'dead woman'. Indeed for Maslova the significant event is not the scene of the coerced consummation, but a night some months later when Nekhlyudov passed through without stopping by and she, now pregnant, rushes to find him at the railway station, only to see his car pull away from her forever.

〱He whom she had loved and who had loved her―yes, she knew that―had thrown her away after having enjoyed her; had abused her love. Yet he was the best of all the people. …From that day the change which brought her where she now was began to operate in her soul. Beginning from that dreadful night she ceased to believe in God and in goodness.(Ⅰ.xxxvii)〉

Nekhlyudov가 일단 Tolstoy의 이 진리를 터득하였을 때 그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2부는 끝나고 Siberia로의 旅路(여로)와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에서처럼 “부활”에서도 주인공의 심리적 발전은 일련의 계시적 순간을 통과하면서 그 뒤를 교정과 明瞭化(명료화)의 시기가 後續(후속)된다. Nekhlyudov의 부활의 순간을 교정하고 명료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serve) 것은 삶의 현실과 마주치는 것, 종종 Maslova와 대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부활의 첫 순간 후에 그의 일기에 기록된 결심과 그다음의 ‘평화’와 ‘기쁨’의 경험은 Maslova와의 첫 ‘회견’에서 사라지는데 이것은 그가 Maslova는 과거에 대한 그의 죄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Maslova는 ‘죽은 여인’이라고 선언할 때이다. 진실로 Maslova로서는 중요한 사건은 강압적 동침의 장면이 아니고 수개월 후 어느 날 밤에 Nekhlyudov가 그녀에게 만나지 않고 지나가 버렸고 당시 임신 중이던 그녀는 정거장으로 그를 만나러 달려가지만 그가 탄 열차는 그녀로부터 영원히 떠나가 버린다.

〱그녀가 사랑했었고 그녀를 사랑하였던 그는 ―그렇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그녀를 즐긴 후에 그녀를 버렸었다. 그녀의 사랑을 악용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날부터 그녀를 지금의 위치까지 데리고 온 변화가 그녀의 영혼 속에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무서운 날로부터 시작해서 神과 선을 믿는 것을 중단하였다.〉
 

19-15-129
The pain of this abandonment is so great that Maslova cannot even allow herself to remember that dreadful night which brought her to her present psychological state:

〱Everybody lived for himself alone, for his pleasure, and all the talk about God and righteousness was deception. And if sometimes doubts arouse in her mind, and she wondered why everything was so badly arranged in the world that all hurt each other and made everyone suffer, she thought it best not to dwell on it; and if she felt melancholy she could smoke or drink, or, best of all, have a love affair with some man, and it would pass.〉

Maslova thus lives in a characteristic Tolstoyan state of forgetting. She suppresses the memory of her best self and the ideal relationship of love she knows from her past, and with them the voice of conscience. To accomplish this she uses narcotics and sex to dull her 'reasonable consciousness', in the manner Tolstoy described in his essay written just before his work on this novel, 'Why Do Men Stupefy Themselves?' (1890). Maslova needs her cynical world-view grounded in a loss of faith and marked by her estranged experience of the divine liturgy, in order to justify to herself her present reality and to hide from herself her past pain. The present persona of 'Love' masks the tormented reality of the abandoned Katusha, and Nekhlyudov's resolve to marry 'Love' will not redeem his sin against this abandoned Katusha.*

이 버림받음의 고통은 너무나 커서 Maslova는 심지어 그녀의 현재의 심리상태를 가져온 그 무서운 밤을 기억하도록 자신에게 허용할 수가 없다:

〱모든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만,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살았고 神과 善(선)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사기였다. 그리고 때때로 그녀의 마음속에 의구심이 일어나고 왜 세상의 모든 일이 너무나 나쁘게 배열되어 있어서 모든 사람이 서로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모든 사람을 고통받게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면 그녀는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다; 우울함이 느껴지면 그녀는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실 수 있었고 혹은 가장 좋은 것은 어떤 남자와 연애를 하는 것이었고 그러면 우울함이 지나가곤 하였었다. 〉

Maslova는 이렇게 Tolstoy의 특징적인 망각의 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가장 선한 부분(best self)과 그녀의 과거로부터 그녀가 알고 있는 이상적인 사랑의 관계에 대한 추억을 억누르고 그것들(가장 선한 자아와 사랑의 추억)과 함께 양심의 소리도 억누른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녀는 그녀의 ‘합리적인 의식’을 둔화시키기 위해서 Tolstoy가 이 소설(“부활”)에 대한 작업을 하기 바로 직전에 쓴 ‘인간들은 왜 스스로를 마비시키는가?’라는 에세이에서 묘사한 방법대로, 마약과 섹스를 사용한다. Maslova는 그녀 자신에게 현재의 자신의 실체를 정당화시키고 자신으로부터 과거의 고통을 숨기기 위하여, 신앙의 상실에 바탕을 두고, 신성한 예배의식의 경험(예배참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으로 (estranged) 표시되는, 냉소적인 세계관이 필요하다. ‘Love’의 현재의 인물은 버림받은 Katusha의 고통스런(tormented) 실재를 가리고 있으며 그래서 ‘Love’와 결혼하려는 Nekhlyudov의 결심은 버림받은 Katusha에 대한 그의 죄를 救贖(구속)하지는 못할 것이다.

 
19-16-130
Each time Nekhlyudov visits Maslova in prison he misreads her actions and words because of his self-centered failure to grasp her psychology. And Maslova, enraged by the memories of the abandonment his presence recalls, defensively sees through the surface of his intentions to marry her. In their second 'interview' at a moment critical for the whole novel she shouts out an interpretation of his plan to redeem his sin: 'I am a convict and you are a prince, and you've no business here. …You want to save yourself through me. …You've got pleasure out of me in this life, and want to save yourself through me in the life to come. You are disgusting to me―your spectacles and the whole of your dirty fat mug. Go, go!' Although Nekhlyudov never fully frees himself from his narcissistic quest for atonement, from this moment on a major shift does occur, as he begins to see Maslova less from the point of view of his sin than of her pain.

The significance of this moment is marked by its intertextual relationship with the Prolog, an important work of medieval Russian literature consisting of saints' lives and teachings arranged according to the church calendar. In a letter written in 1892 Tolstoy recalled from the Prolog a story of a monk who takes in a wounded beggar and cares for him. The beggar only gets more and more annoyed until one day he bursts out in anger: 'I cannot stand your face, leave me. I hate you because I see that what you do you are not doing for me, that you do not love me, but you want to save yourself through me. Take me back to the street, it was easier for me there than here accepting your services'.

Nekhlyudov가 감옥에 있는 Maslova를 방문할 때마다 그는 그녀의 심리파악(자기 중심적 생각에서 나온)에 실패하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과 말을 오판하게 된다. 그리고 Nekhlyudov의 출현이 상기시키는 버림받음의 기억에 의해서 격노해진 Maslova는 그녀와 결혼하려는 그의 의도의 표면을 방어적으로 꿰뚫어 본다. 소설 전체에서 결정적인 순간인 두 번째 만남에서 죄를 구속하려는 그의 계획에 대한 그녀의 해석을 큰 소리로 말한다: ‘나는 죄수이고 당신은 공작이에요. 그래서 당신은 여기에서 아무런 할 일이 없어요. …당신은 나를 이용해서 자신을 구원하기를 원해요. …당신은 이승에서(in this life) 나로부터 쾌락을 얻었어요. 그리고는 나를 통해서 다가올 내세에서 구원받기를 원해요. 당신은 나를 역겹게 하고 있어요.―당신의 안경과 당신의 더러운 살찐 얼굴 전체가 (역겨워요). 가세요, 가!’ 비록 Nekhlyudov는 구원을 위한 자기중심적인 탐구여행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가 자신의 죄의 시각에서보다는 그녀의 고통의 시각으로 더 많이 보게 됨에 따라 이 순간부터 계속해서(on)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 순간의 중요성은 Prolog[序幕(서막)]과의 텍스트 상호간 관계에 의해서 표시되며 Prolog는 聖者傳(성자전)과 敎會曆(교회력)에 따라 배열된 교훈으로 구성된 중세 러시아문학의 중요한 작품이다. 1892년에 쓴 한 편지에서 Tolstoy는 Prolog로부터 어떤 부상당한 거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돌보는 어떤 수도사의 이야기를 회상하였다. 그 거지는 더욱 더 화만 내다가 마침내 어느 날 화가 폭발하였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를 놓아 주세요. 나는 당신이 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나를 통해서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증오합니다. 거리로 도로 데려다 주시오. 여기서 당신의 보살핌을 받는 것보다는 나로서는 거기가 더 편하였습니다’.

 
19-17-131
The parallel with this central passage in the novel is striking, and Tolstoy's interpretation of the Prolog story makes his intention clear, for he reads it as a parable of 'our' relationship to the 'people' through whom 'we want to save ourselves' and 'whom we do not simply love'.

By echoing this story in the novel, Tolstoy underlines not only the theological theme of love and salvation, but also the social issue of the 'people' which dominated the second half of the nineteenth century of Russia. The institution of selfdom had been abolished in 1861, but the reality of virtually bipartite society composed of aristocracy and an intelligentsia on the one hand and a vast uneducated and impoverished peasant population on the other persisted. Guilt-sticken in their isolation from the masses, the aristocracy and intelligentsia both idolized the 'people' as the true bearers of the Russian faith (Dostoevsky) or latter-day Rousseauan noble savages(Tolstoy), and condescended to them in movements to educate or modernize them. From the 1880s on this social and economic imbalance fostered a revolutionary response which, through the years, grew into the movements which resulted in the revolutions of the early twentieth century. Tolstoy himself had, even in the 1860s, set up a school for the peasants at Yasnaya Polyana, his family estate, and later, in the 1870s, when the 'movement to the people' was in full swing, he composed primers for their education. His own guilt-ridden identification with the peasantry is marked by donning their garb and participating in their mowing. He often portrayed his heroes in moments of encounter with peasants, usually marked by a failure of communication.

소설에서(소설의 흐름과) 이 구절과의 대비가 놀랍고 Prolog 스토리에 대한 Tolstoy의 해석은 그의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Prolog를 ‘우리가 그들(민중)을 통해서 구원받기를 원하고’ 그리고 ‘우리가 단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민중)’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관한 寓話(우화)로서 그것을 해석(reads)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이 스토리를 반영함으로서 Tolstoy는 사랑과 구원의 주제뿐 아니라 19세기 러시아의 후반부를 주도하였던 ‘민중’의 사회적 이슈도 강조하고 있다. 농노제도는 1861년에 폐지되었지만 한 쪽의 귀족 및 지식인들(intelligentsia)과 다른 쪽의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에 찌든 농민들로 구성된 사실상 양분된 사회라는 사실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다.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죄의식에 꽂힌 귀족과 인텔리 계급은 모두(both) ‘민중’을 러시아 신앙의 진정한 보유자로(Dostoevsky) 혹은 현대의 루소적(Rousseauan) 고귀한 야만인(Tolstoy)으로 우상화하였고 민중을 교육시키고 현대화하는 운동에서 민중들에게 허리를 굽혔다. 1880년대부터 계속해서 이 사회적 경제적 불균형(불평등)은 혁명적 반응을 양성하였고 이것은 세월이 가면서 20세기 초 혁명(공산주의 혁명)의 결과를 가져온 운동으로 성장하였다. Tolstoy 자신도 심지어 1860년대에 그의 가족 소유지(estate)인 Yasnaya Polyana에 농민학교를 세웠으며 그 후 1870년대 ‘민중으로 가는 운동’(브나로드운동)이 한 창 진행 중일 때 농민을 위한 초보독본을 쓰기도 하였다. 소농들과 죄의식이 실려 있는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그가 그들의 옷을 입고 풀베기에 참여하는 것에 의해서 표시된다. 그는 종종 의사소통의 실패의 순간에 있으면서 소농들과 만나는 주인공들을 묘사하였다.

 
19-18-132
In Resurrection Nekhlyudov is presented in a characteristic state of guilt over his inheritance of land, his ownership of which he considers to be the cause of the peasants' poverty. This 'sin' against the people he early tries on to correct, but fails. The novel uses the story of Maslova in its stead, as the emblem of the hero's sin against the 'people'. Therefore, once Nekhlyudov moves beyond his obsession with his past sexual sin against Maslova and connects with her present pain, he is able to see other, more immediate causes of her suffering and to feel compassion for those who suffer like her but not because of him. The inter-textual reference to the story from the Prolog marks this moment. Immediately after it, Nekhlyudov begins his double journey into the world of officials who oppress Maslova and the world of the prisoners, the 'people' like her who are oppressed by the officials.

Nekhlyudov's journeys enable Tolstoy to create a gallery of portraits of oppressors and oppressed and thereby express his attitude to many of the major social issues of his day. The oppressors are generally represented in a negative light without shading or nuance. The 'old General of repute' in whose hands the fate of the prisoners rests, for example, is characterized by the 'profusion of Orders' he received for his successful military career, during which, among many exploits, 'a number of Russian peasants , with cropped hair, dressed in uniforms and armed with guns and bayonets, had killed at his command more than a thousand men who were defending their liberty, their homes, and their families' (Ⅱ.xix).

“부활”에서 Nekhlyudov는 자신의 토지상속에 대해서 특별한 죄의식 상태에 빠져있는 것으로 제시되는데 그는 그의 토지소유를 가난한 농민들의 빈곤의 원인이라고 간주한다. 민중에 대한 이 ‘죄’를 그는 바르게 잡으려고 계속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소설은 토지대신 ‘인민’에 대한 주인공의 죄의 상징으로서 Maslova의 스토리를 이용한다. 그러므로 Nekhlyudov가 일단 그의 과거 Maslova에 대한 성적인 죄에 대한 강박관념을 초월하여 그녀의 현재의 고통과 연계될 때 그는 그녀의 고난의 다른, 직접적인 원인을 볼 수 있게 되고 자기 때문이 아니고 그녀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Prolog에 대한 텍스트간 언급은 이 순간을 표시하고 있다. 그 후 즉시 Nekhlyudov는 Maslova를 억압하고 있는 관리들의 세계와 그녀처럼 관리들에 의해서 압제당하고 있는 ‘인민’들인 죄수들의 세계로 二重(이중) 탐구여행을 시작한다.

Nekhlyudov의 탐구여행은 압제자와 피압박자들의 초상화 화랑을 만들고 그래서 당대의 많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의 태도를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압제자들은 일반적으로 描影(묘영, shading)이나 陰影(음영)이 없이 그려져 있다(represented). 예를 들어서 그의 손안에 죄수들의 운명이 달려있는 ‘평판 높은 老(노) 장군’은 그의 성공적인 군대 경력으로 받은 ‘많은 훈장’으로 특징되고, 그 군 복무 동안의 많은 공적 중에도 ‘짧은 머리를 하고 군복을 입고 대포와 소총으로 무장한 러시아의 많은 농민들(징집된 농민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자유와 가정과 가족을 방어하고 있던 천 명 이상의 남자들을 죽였다’도 있었다.


19-19-133
Now a weak old man, his duty is
〱to keep political prisoners―men and women―in solitary confinement in such a way that half of them perished within ten years: some going out of their minds, some dying of consumption, some committing suicide by starving themselves, cutting their veins with bits of glass, hanging themselves, or burning themselves to death.〉

The old man accomplishes this task by strict observation of 'all the regulations which were prescribed 'from above'', to which he 'ascribed a special importance, considering that everything else in the world might be changed' except them. Nekhlyudov's petitions to him, needless to say, go unheard; he closes his eyes and takes a rest for thinking.*

One of the most compelling issues of the last decade of the century was the growth in revolutionary activity. Tolstoy's interest in this important social tendency motivated his decision to have Maslova sent to Siberia along with the political prisoners, thus allowing him to place her among typical revolutionaries, whose portraits are more nuanced than those of the oppressors. One such, Nabatov, a peasant, advances in school but refuses to attend the university, so that he can 'go to the people', bringing his brethren the enlightenment he believes they need. Arrested many times, he never grows embittered, continues his activities wherever he is, and believes in a revolution which will not 'break down the whole edifice', but only 'alter the inner walls of the beautiful, strong, colossal old structure he loved so dearly' (Ⅲ.xii).

이제 허약한 노인인 그의 의무는
〱정치범들을―남자와 여자―10년 이내에 그들 중 절반은 죽는 그런 방식으로 독방 감금하는 것이었다: 죄수들 일부는 정신이 나가고, 일부는 폐결핵으로 죽고, 일부는 단식함으로서 자살을 하고, 일부는 유리조각으로 정맥을 자르고, 일부는 목을 매고, 일부는 분신자살하였다.〉

노인은 “‘상부로부터 지시받은 모든 규정’”의 엄격한 준수에 의해서 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 규정이 없으면(without them)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규정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였다.’ 말할 필요조차 없이 그에게 낸 Nekhlyudov의 청원은 들려지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생각을 위해서 휴식을 취한다. 세기(19)의 마지막 10년 동안 가장 강압적인 이슈 중의 하나는 혁명활동의 성장이었다. 이 중요한 사회적 趨勢(추세)에 대한 Tolstoy의 관심이 Maslova를 정치범들과 함께 시베리아로 보내는 그의 결정의 동기가 되었고 이렇게 해서 Tolstoy로 하여금 그녀를 전형적인 혁명가들 가운데에 두도록 하였으며 혁명가들에 대한 그림(portraits)에는 압제자에 대한 그림보다는 陰影(음영)의 차이가 더 심하였다. 농민 출신의 그런 인물인 Nabatov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동포들에게 그들이 필요하다고 그가 믿는 계몽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학교 성적이 우수하지만 대학에 다니기를 거부한다. 여러 번 체포되었었지만 한 번도 비통해한 적이 없고 어디에 가든 활동을 계속하고 ‘건물 전체는 무너뜨리지’는 않고 ‘그가 끔찍이도 사랑하는 아름답고 튼튼하고 거대하고 오래된 구조물의 내부 벽만’을 변경시키기는 혁명을 믿는다.
 

19-20-134
His religion focuses not on metaphysical questions like the existence of God ,but on the moral issues of how best to live, buttressed by a firm belief that, just as in the animal and vegetable world nothing ceases to exist but continually changes its form, so also will it be with man. Thus Tolstoy endeavours to create a rounded and believable, if idealized, figure, even as he takes pains to balance this positive image of a peasant revolutionary by a negative one. Markel Kondratyev, a factory worker who had a sense of being wronged from the age of 15, discovers the possibility of freedom from his oppression through the acquisition of knowledge; he reads Marx, vehemently rejects and ridicules all religion, and with his mentor Novodvorov believes in seizing power from the government and then exercising it for the 'people' (Ⅲ. xiv) Through these portraits Tolstoy conveys his sympathy for the revolutionary movements as well as his concern that they too may lead to nasilie.*

In the novel Maslova, who is 'Love', is finally brought into close association with two emblematic figures, Mary Pavlovna and Simpson, both upper-class revolutionaries, sympathetic with the people, who embody Tolstoyan sexual views. Mary Pavlovna, Maslova's best friend, was repelled by sexual love, not like Maslova who had 'experienced all its horrors', but because, never having experienced it, ‘she looked on it as something incomprehensible… repugnant and offensive to human dignity.’ (Ⅲ.iii)

그의 종교는 神의 존재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아니고 동물과 식물의 세계에서 어떤 것도 생존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형태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처럼 인간의 세계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에 의해서 支持(지지)받으며 어떻게 하면 가장 훌륭하게 살 수 있는가 라는 도덕적 이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해서 Tolstoy는 한 농민 혁명가의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정적인 것에 의해서 균형을 잡으려고 하면서도 이상화되었더라도 원만하고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창조하려고 노력한다. 15세 때부터 학대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공장 노동자인 Markel Kondratyev는 지식의 습득을 통해서 압제로부터 해방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는 Marx를 읽고 모든 종교를 맹렬하게 배척하고 조롱하며 그의 스승 Novodvorov와 함께 정부로부터 권력을 탈취하여 ‘인민’을 위해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인물들의 그림을 통해서 Tolstoy는 혁명운동(they)이 nasilie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함께 혁명운동에 대한 공감을 전달한다.

소설에서 ‘Love’인 Maslova는 마침내 인민들에게 동정적이고, 상류계급 출신 혁명가들인 Mary Pavlovna와 Simpson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며 이 둘은 Tolstoy의 성적 견해를 화신하고 있다. Maslova의 가장 친한 친구인 Mary Pavlovna는 ‘性的(성적)인 사랑의 모든 嫌惡(혐오)’를 경험하였던 Maslova와는 다르게 성적 사랑에 의해서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것은 성적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으면서도 ‘그녀는 성적 사랑을 이해할 수 없고… 혐오감을 일으키고 인간의 존엄성에 공격적인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19-21-135

Mary, on the other hand, knows another kind of love: 'the interest of her whole life lay in searching for opportunities to serve others just as sportsman searches for game. And the sport had become the habit, the business of her life, and she did it all so naturally that those who knew her were no longer grateful, but simply expected it of her.' Mary thus embodies the 'task of life' as Tolstoy had come to understand it: 'the task of life is to work out in oneself a conscious love which of itself is transformed into an unconscious love' (liv. 128; 1902), a task which is in reality the creation of the 'habit' of love (liii. 220; 1890)

Simonson is in love with Maslova, and they intend to marry. But Simonson believes that 'procreation is a lower function of man', so that, since he has devoted himself to 'the higher function' which is 'to serve already existing lives', the marriage will be platonic (Ⅲ.iv). Unlike Mary Pavlovna, however, Simonson's devotion to service is built on a whole theory of life. 'Everything in the universe lives, nothing is dead, and all the objects we consider lifeless, or inorganic' are but parts of an enormous organic body which we cannot compass. The task of man, as part of that huge organism, is to sustain its life and that of all its living parts. This view, which echoes a position held by Tolstoy since the 1870s, leads Simonson to a Tolstoyan condemnation of destruction of life, wars, capital punishment, and even the killing of animals. Like his creator, he is a vegetarian and does not wear animal skins. Like Mary Pavlona, therefore, Simonson embodies ideals toward which Tolstoy felt called, but himself had difficulty approaching. Maslova's marriage to him marks her realization of those ideals which Nekhlyudov, in his renewed interest in marriage and a family at the end, has, like his creator, not yet reached.

한편으로는 Mary는 다른 종류의 사랑을 알고 있다: ‘그녀의 평생의 관심은 스포츠맨이 게임을 추구하듯이 타인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스포츠는 습관이 되어 버렸고 그녀 삶의 생업이 되었으며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였기 때문에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더 이상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단순히 그녀에게서 그것을 기대할 뿐이었다.’ Mary는 이렇게 해서 Tolstoy가 이해하게 된 것처럼 ‘生의 과업’을 化身(화신)하고 있다: ‘생의 과업’은 자신 속에서 스스로 무의식적 사랑으로 변형하는 의식 있는 사랑을 성취해 내는 것이며 이것은 실제로 사랑의 ‘습관’을 창조하는 과업이다.

Simonson이 Maslova를 사랑하게 되고 그들은 결혼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Simonson은 ‘生殖(생식)은 인간의 하등 기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생명(인간)들에게 봉사하는 것’인 ‘고등 기능’에 지금까지 헌신해 왔기 때문에 결혼은 플라토닉(정신적인)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Mary Pavlovna와는 달리 Simonson의 봉사에 대한 헌신은 전체적인 생명의 이론에 구축되어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살아 있으며 어떤 것도 죽은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이 없거나 비유기적이라고 간주하는 모든 사물‘은 단지 우리가 이해할(compass) 수 없는 거대한 유기체의 부분일 뿐이다. 그 거대한 유기체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의 과업은 그 유기체의 생명과 그 유기체의 살아 있는 부분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관점은, 1870년대 이후로 Tolstoy에 의해서 견지되고 있던 입장을 反響(반향)하고 있는데, Simonson을 생명의 파괴, 전쟁, 사형제도, 심지어 동물의 살해에 대한 Tolstoy적인 비난으로 이끈다. 그는 그의 창조자(Tolstoy)처럼 채식주의자이고 동물가죽옷을 입지 않는다. 그러므로 Mary Pavlona처럼 Simonson은 Tolstoy가 소명의식을 느꼈던 이상을 화신하고 있지만 자신이 직접 (그 이상에) 접근하는 데는 어려움을 가졌었다. Maslova의 결혼은 Nekhlyudov가 결국 결혼과 가족에 대한 새로운 관심 속에서 그의 창조자(Tolstoy)처럼 아직은 도달하지 못한 그런 이상에 대한 그녀의 깨달음을 표시한다.

 
19-22-136
The novel closes with a rapid series of revelatory encounters which prepare Nekhlyudov for his final insight and his 'new life'. After the culminating realization of the ultimate meaning of the Russian prison experience based on so much exposure to the prisoners and their imprisoners (Ⅲ. xix), Nekhlyudov dines with a general and his family, only to discover that he still enjoys the company of cultured people and the joys of family life. His last ‘interview’ with Maslova finally clarifies their relationship: she is marrying Simonson for Nekhlyudov's sake, to release him from his pursuit of redemption. (Ⅲ.xxvii). This desire and freedom to create a new life is tempered by the finality of death which Nekhlyudov confronts with the sight of Kriltsov's dead body (Ⅲ.xxvii). The most significant of these encounters, however, is the emblematic meeting with a 'dishevelled old man' (Ⅲ.xxi). Like Levin and his conversation with Platon at the end of Anna Karenina, or Pierre and his meeting up with Bazdeev the mason and Platon Karataev in War and Peace, Nekhlyudov at this culminating moment chances upon a passer-by who bodies forth a truth necessary to him at this juncture in life. With no name, no age, no parents, no place, no country, or no passport, this 'Man', born of 'God the Father and Mother Earth', has no destination, except 'where God may lead me' and does not believe in God as ordinarily understood, but only in himself, understood as the one spirit in him as in all. This emblematic 'Man' reveals to Nekhlyudov his true identity and vocation, thus motivating his return to the Gospels which closes the novel and the new task of life which awaits him after it. Resurrection ends, thus, as do both War and Peace and Anna Karenina, with the hero's firm resolve for his life now understood as a life in God. It is this resolve that Tolstoy too in the end shares with his heroes.

소설은 Nekhlyudov에게 그의 마지막 통찰과 ‘새로운 삶’을 준비시키는 일련의 신속하고 啓示的(계시적)인 마주침(encounters)과 함께 끝난다. 죄수와 투옥시키는 자들에 대한 매우 많은 폭로에 바탕을 둔 러시아 감옥경험의 궁극적인 의미를 최종적으로 깨달은 후에 Nekhlyudov는 어떤 장군과 그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는 세련된 사람들과의 친교와 가족생활의 즐거움을 여전히 즐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Maslova와의 마지막 ‘회견’은 마침내 그들의 관계를 명료화한다: 그녀는 Nekhlyudov를 위해서, 구원의 추구로부터 그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Simonson과 결혼하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는 이 욕망과 자유는 Nekhlyudov가 Kriltsov의 屍身(시신)을 보면서 직면하게 되는 죽음의 절대성(finality:최종적인 것)에 의해서 완화된다. 그러나 이들 마주침(encounters) 중에서도 가장 의미 깊은 것은 ‘헝클어진 머리칼을 한 노인’과의 상징적인 만남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끝에서 Levin과 Platon과의 대화처럼 혹은 “전쟁과 평화”에서 Pierre와 石手(석수) Bazdeev 그리고 Platon Karataev사이의 대화처럼 Nekhlyudov는 이 최후의 순간에 인생의 이 중대한 시점(juncture)에서 그에게 필수적인 진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body forth) 어떤 통행인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름도 나이도 부모도 주소도 나라도 여권도 없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땅’으로부터 태어난 이 ‘Man’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주시는 곳’ 외에는 목적지도 없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서의 神은 믿지 않고 자신만을 믿으며 그것은 (자신은) 만물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靈(영)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 상징적인 ‘Man’은 Nekhlyudov에게 Nekhlyudov의 참된 정체와 그의 과업을 계시해주고 그래서 소설의 끝이 되는 복음서로 돌아가서 그 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삶의 과업에 대한 동기를 제공한다. “부활”은 이렇게 해서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에서처럼 이제 하나님 가운데에서의 삶으로 이해되는 삶을 위한 주인공의 확고한 결심과 함께 끝난다. Tolstoy도 결국 주인공들과 공유하는 것은 바로 이 결심이다.


 

출처 : Oxford's World Classics
[ 2020-11-11, 10: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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