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잃으면 죽음이 온다
반공자유-교양영어(20): On Liberty(Excerpt)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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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자유를 잃으면 반드시 죽음이 온다

1. 자유의 탄생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영국이나 네덜란드, 프랑스와 독일 등 서방의 선진국들은 예나 지금이나 지속적으로 부유하고 러시아나 루마니아, 터키나 중국 등 동부유럽과 유라시아의 나라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난한가? (서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가 경제학의 지속적인 논쟁거리가 되어있다. 천연자원이나 우호적인 기후는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될 뿐이다. 반대로 건강한 정치제도와 지속적인 법치가 부유한 나라를 만드는 근본적인 요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이런 선진적 지표는 20여 개 정도의 서구에서만 진화되었는가? 중국이나 러시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민주적인 정치제도와 법치가 서구만큼 진화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서구보다는 항상 잘살지 못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푸트남(Robert Putnam) 교수는 선진적 지표(법치와 민주제도)의 형성과 진화에 기여한 결정적인 성분(ingredient)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하였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구성원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 즉 타인에게 느끼는 친밀감(affinity)을 가리킨다. 친족이든 아니든 어떠한 형태의 연줄(권력 배경, 혈연, 학연, 지연 등)도 없는 사람에게도 차별 없이 동일하게 느끼는 친밀감이 사회적 자본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각종 연줄로 묶여 있는 사회에서는 민주정치와 법치의 바탕이 되는, 보다 객관적이고 자유로운 판단이나 자율적인 의사결정이 어렵게 되거나 왜곡되기 쉽다. 전체주의국가에서처럼 아예 불가능할 때도 많다.

사회적 자본의 형성에는 수백 년이 걸린다. 푸트남은 이탈리아의 지방자치연구를 통해서 전제군주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던 남부지역은 사회적 신뢰수준이 낮고 상대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일한 시기에 시민들이 도시국가를 세우고 함께 뭉쳐서 통상과 자주국방을 하며 번영하였던 북부의 자치지역은 선진적 지표가 매우 높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부유하고 국가경영도 잘하고 있다. 푸트남 교수의 연구는 독재국가의 타율적인 사회에서는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 구조적으로 미약하게 되며, 이런 사회에서는 민주적 정치제도나 법치의 진화를 기대할 수 없고 따라서 부유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민주제도나 법치가 확고부동한 전통이 되지 못한 나라는 전술한 바와 같이 언제나 가난할 수밖에 없다. 일시적으로 부유하게 되더라도 다시 가난으로 돌아가기 쉽다.

요약하면 개인의 자유가 국가권력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제한되는 사회에서는 민주정치와 법치의 진화가 느리거나 불가능하게 된다. 자유가 없으면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거의 불가능하고 가난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목숨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멀리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오늘날 자유가 전혀 없는 전체주의 독재국가 북한이 이를 입증한다. 완전통제 국가 북한에서는 대량 餓死(아사)와 공개처형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헨리 패트릭의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는 절규는 불변의 진리라고 하겠다. 자유를 잃으면 반드시 죽음이 온다. 자유가 우리의 생명을 지켜준다.


2.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극악한 독재국가 북한에 비해서 한국은 26배나 부유하다. 이는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자유가 우리를 富饒(부요)하게 만든 것이다. 북한은 자유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밉살스러운’ 깡패 거지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빨갱이 악령이 나라를 점거하고 나라를 북한식 전체주의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어도 제대로 저항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자유가 왜 소중한지를, 왜 자유를 잃거나 빼앗기면 목숨까지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심지어 ‘배운 지식인’조차 자유에 대한 개념 자체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건국 후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사상史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John Stuart Mill의 ‘자유론(On Liberty)’을 발췌 소개하고자 한다.


20. On Liberty(Excerpt)
- J.S. Mill

20-1-137
The struggle between Liberty and Authority is the most conspicuous feature in the portions of history with which we are earliest familiar, particularly in that of Greece, Rome, and England. But in old times this contest was between subjects, or some classes of subjects, and the Government. By liberty, was meant protection against the tyranny of political rulers. The rulers were conceived (except in some of the popular governments of Greece) as in a necessarily antagonistic position to the people whom they ruled. They consisted of a governing One, or a governing tribe or caste, who derived their authority from inheritance or conquest, who, at all events, did not hold it at the pleasure of the governed, and whose supremacy men did not venture, perhaps did not desire, to contest, whatever precautions might be taken against its oppressive exercise.(p.5)

*

The notion that the people have no need to limit their power over themselves might seem axiomatic, when popular government was a thing only dreamed about, or read of as having existed at some distant period of the past. Neither was that notion necessarily disturbed by such temporary aberrations as those of French Revolution, the worst of which were the work of a usurping few, and which, in any case,, belonged, not to the permanent working of popular institutions, but to a sudden and convulsive outbreak against monarchical and aristocratic despotism.(p.7)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의 부분에서, 특히 그리스, 로마, 잉글랜드의 역사에서 자유와 권력(지배권) 사이의 투쟁이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옛 시대에서는 이러한 투쟁은 백성 또는 특정 계급의 백성과 정부 사이의 투쟁이었다. 자유라는 것은 정치적 통치자의 폭정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하였다. 통치자는 (고대 그리스의 인기 있었던 일부 지배자를 제외하고) 그들이 다스리는 민중과 반드시 적대적인 자리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통치자들은 한 명의 지배자 혹은 지배부족 또는 지배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의 권력은 세습이나 정복으로부터 유래된 것이었으며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被治者(피치자)의 만족을 위해서 권력을 유지하지 않았고 백성들은 권력의 압제적인 행사에 대항하기 위해서 어떠한 경계조치를 한다 하더라도 통치자의 지배권에는 도전하지도 않았고 아마도 도전할 욕망도 없었을 것이다.(p.5)

*

민중의 정부가 꿈에서나 가능한 것이거나 먼 과거에 책에서나 읽었던 것이라면 민중은 자신들의 권력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개념(notion)은 公理(공리)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개념(무제한적 민중권력 개념)은 프랑스 혁명 같은 일시적인 탈선행위 때문에 반드시 침해당할 필요는 없으며, 최악의 탈선은 봉기하는 소수 민중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고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민중제도의 불변적 기능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군주와 귀족계급의 압제에 대한 발작적이고 돌발적인 하나의 난동이기 때문이다.(p.7)
 

20-2-138
It is not by wearing down into uniformity all that is individual in themselves, but by cultivating it and calling it forth, within the limits imposed by the rights and interests of others, that human beings become a noble and beautiful object of contemplation; and as the works partake the character of those who do them, by the same process human life also becomes rich, diversified, and animating, furnishing more abundant ailment to high thoughts and elevating feelings, and strengthening the tie which binds every individual to the race, by making the race infinitely better worth belonging to. In proportion to the development of his individuality, each person becomes more valuable to himself, and is therefore capable of being more valuable to others. There is a great fullness of life about his own existence, and when there is more life in the units there is more in the mass which is composed of them.* It is essential that different persons should be allowed to lead different lives. In proportion as this latitude has been exercised in any age, has that age been noteworthy to posterity. Even despotism does not produce its worst effects, so long as individuality exists under it; and whatever crushes individuality is despotism, by whatever name it may be called, and whether it professes to be enforcing the will of God or the injunction of men. (p.70-71)

인간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생각의 존재가 되는 것은 개인이 가진 모든 것을 마멸시켜서 전체와 균일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고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개인이 자신의 타고난 특질을 마음껏 배양하고 고양시키는 데에 있다. 개인이 노력해서 이룩한 모든 결과물에는 개인의 특성을 어느 정도 들어 있게 되는 것처럼 동일한 과정에 의해서 인간의 삶은 풍부해지고 다양화되며, 활력을 갖게 되고 고매한 사상에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하게 되며, 또 정서를 고양시키게 되며, 종족(인간집단)을 소속할만한 가치가 있고 무한히 더 좋게 만들어 줌에 의해서 종족에다 모든 개인을 묶어주는 연대의식(tie) 강화시켜 준다. 개성의 발달에 비례해서 개인은 더욱더 많은 자긍심과 성취감을 가지게 되고 이것은 타인에게도 더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개인 자신의 존재에 관해서도 삶에 대한 충족감이 있게 된다. 개인 단위의 삶이 충만하게 되면 개인으로 이루어진 사회대중의 삶도 더 충만하게 될 것이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삶을 영위하도록 허용해야 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런 개인의 자유(latitude)가 허용되는 정도에 비례해서 각 시대의 가치는 후대에 의해서 주목받게 될 것이다. 전제 정치의 치하에서도 (under it) 개성이 존재하는 한 전제정치도 최악의 결과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그 명칭이 무엇이건 간에 개성을 말살하는 체제는―神(신)의 뜻을 집행하든 인간의 명령을 집행하든―독재이다.


20-3-139
Having said that Individuality is the same thing with development, and that it is only the cultivation of individuality which produces, or can produce, well-developed human beings, I might here close the argument: for what more or better can be said of any condition of human affairs, than that it brings human beings themselves nearer to the best thing they can be? or what worse can be said of any obstruction to good, than that it prevents this? Doubtless, however, these considerations will not suffice to convince those who most need convincing; and it is necessary further to show that these developed human beings are of some use to the underdeveloped―to point out to those who do not desire liberty, and would not avail themselves of it, that they may be in some intelligible manner rewarded for allowing other people to make use of it without hinderance.

In the first place, then, I would suggest that they might possibly learn something from them. It will not be denied by anybody that originality is a valuable element in human affairs. There is always need of persons not only to discover new truths, and point out when what were once truth are true no longer, but also commence new practices, and set the example of more enlightened conduct, and better taste and sense in human life. This cannot well be gainsaid by anybody who does not believe that the world has already attained perfection in all its ways and practices. (p.71)

개성은 발전과 동일한 것이며 충분히 발달된 인간을 생산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개성의 배양뿐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 주장을 종결해도 될 것 같다:왜냐하면 인간을 그들에게 가능한(they can be) 최선의 상태(thing)에 더 가깝게 혹은 더 좋게 데리고 가는(bring) 것보다도 인간사의 조건에 대해서 무슨 더 좋은 것 또는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혹은 이것을 막는 것보다도 善(선)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데 무슨 더 나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의심할 바 없이, 설득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고려(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선진 인간들(developed)은 후진 인간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더 필요하다―자유를 바라지도 않고 자유를 이용할 뜻이 없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알기 쉬운(intelligible) 방법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줄 필요가 있다.

그러면 첫째로 그들은 선진인간들로부터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제안하고 싶다. 인간의 일에 있어서 독창성이 가치 있는 요소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고, 한때는 진리였다가 지금은 더이상 진리가 아닐 때 이를 지적해 줄 뿐 아니라 또한 새로운 慣行(관행)을 시작하고 더 계몽된 행

위의 例(예)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보다 더 좋은 취향과 감각을 세우는 사람들이 항상 필요하다. 이것은 세상은 그것의 모든 수단과 관행에 있어서 이미 완벽을 달성했다고는 믿지 않는 그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반박될 수 없다. (세상이 완벽하다고는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이 사실을 반박할 수 없다.)
 

20-4-140
It is true that this benefit is not capable of being rendered by everybody alike: there are but few persons, in comparison with the whole of mankind, whose experiments, if adopted by others, would be likely to be any improvement on established practice. But these few are the salt of the earth; without them, human life would become a stagnant pool. Not only is it they who introduce good things which did not before exist; it is they who keep the life in those which already existed. If there were nothing new to be done, would human intellect cease to be necessary? Would it be a reason why those who do the old things should forget why they are done, and do them like cattle, not like human beings? There is only too great a tendency in the best beliefs and practices to degenerate into the mechanical; and unless there were a succession of persons whose ever-recurring originality prevents the grounds of those beliefs and practices from becoming merely traditional, such dead matter would not resist the smallest shock from anything really alive, and there would be no reason why civilization should not die out, as in the Byzantine Empire. Persons of genius, it is true, are, and are always likely to be, a small minority; but in order to have them, it is necessary to preserve the soil in which they grow. Genius can only breathe freely in an atmosphere of freedom. Persons of genius are, ex vi termini, more individual than any other people―less capable, consequently, of fitting themselves, without hurtful compression, into any of the small number of moulds which society provides in order to save its members the trouble of forming their own character.(p.71-72)

이 혜택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실험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채택이 된다면 기존의 관행에 조금이라도 개선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인류 전체와 비교하면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수들이 세상의 소금이다; 그들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흐르지 않는 웅덩이와 같을 것이다. 以前(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좋은 것들(things)을 도입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일 뿐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사람도 그들이다. 새로이 해야 될 것이 없다면 인간의 知性(지성)은 필요성이 끝나게 될 것인가? 그것이(새로이 해야 될 것이 없는 것) 옛것(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들이 그것들이 왜 그렇게 해지는지를 잊어버리고 그것들을 인간이 아니고 가축처럼 하는 이유일까? 최선의 신념과 관행에도 기계적으로 퇴락하는 경향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항상 새로이 태어나는 독창성으로 그런 신념과 관행이 단지 전통적인 것이 되는 것을 계속해서 막아줄 사람들이 없으면 그런 죽은 물질(전통)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으로부터의 최소한의 충격에도 저항하지 못할 것이며 비잔틴 제국에서처럼 문명이 사멸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천재는 소수이고 항상 그럴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천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천재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만 호흡할 수 있다. 천재는 정의하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개인적이다―천재는, 사회가 그 구성원들이 그들 자신의 특성(character)을 스스로 형성하는 수고를 모면해 주기 위해서 제공하는 소수의 틀[(鑄型(주형)] 중의 어느 하나에, 고통스런 압축이 없이는 (고통이 없이는) 맞추는 능력이 더 부족하다 (보통사람보다는).


20-5-141
It does seem, however, that when the opinions of masses of merely average men are everywhere become or becoming the dominant power, the counterpoise and corrective to that tendency would be the more and more pronounced individuality of those who stand on the higher eminences of thought. It is in these circumstances most especially, that exceptional individuals, instead of being deterred, should be encouraged in acting differently from the mass. In other times there was no advantage in their doing so, unless they acted not only differently, but better. In this age, the mere example of non-conformity, the mere refusal to bend the knee to custom, is itself a service. Precisely because the tyranny of opinion is such as to make eccentricity a reproach, it is desirable, in order to break through that tyranny, that people should be eccentric. Eccentricity has always abounded when and where strength of character has abounded; and the amount of eccentricity in a society has generally been proportional to the amount of genius, mental vigour, and moral courage which it contained. That so few now dare to be eccentric, marks the chief danger of the time.

I have said that it is important to give the freest scope possible to uncustomary things, in order that it may in time appear which of these are fit to be converted into customs. (p.74)

그러나 단지 평균인으로 구성된 대중의 의견이 어디에서나 지배적인 권력이 되거나 되고 있을 때는 그런 경향에 균형추나 교정자가 되는 것은 생각이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더욱더 명백한 개성인 것처럼 보인다. 특별한 개인이 대중과는 다르게 활동함에 있어서 沮止(저지)당하는 대신 격려를 받아야 하는 것은 특별히 바로 이런 환경에서다. 다른 때에는 그들이 다르게 행동할 뿐 아니라 더 훌륭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 이 시대에는 단순한 불순종(대중의 생각에 대한), 관습에 무릎 꿇는 것을 단순히 거부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공헌(service)이 된다. 정확히 말해서 여론(opinion)의 폭정이 奇行(기행)을 불명예로 만들만큼 심하기 때문에 이 폭정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기행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성(character)의 힘이 풍부할 때와 풍부한 곳에서 항상 기행이 풍부하였다; 그리고 어떤 사회의 기행의 양은 그 사회가 함유하고 있는 천재와 정신력과 도덕적 용기의 양과 비례해 왔다. 너무나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감히 畸人(기인)적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은 시대의 위험을 표시하고 있다.

나는 非관습적인 것들 중 어느 것이 때가 되면 관습으로 전환하는 데 적합한지가 밝혀지도록 하기 위해서 비관습적인 것들에게 가장 풍부한(free) 餘地(여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었다.


20-6-142
But independence of action, and disregard of custom, are not solely deserving of encouragement for the chance they afford that better modes of action, and customs more worthy of general adoption, may be struck out; nor is it only persons of decided mental superiority who have a just claim to carry on their lives in their own way. There is no reason that all human existence should be constructed on some one or some small number of patterns. If a person possesses any tolerable amount of common sense and experience, his own mode of laying out his existence is the best, not because it is best in itself, but because it is his own mode. Human beings are not like sheep; and even sheep are not undistinguishably alike. A man cannot get a coat or a pair of boots to fit him, unless they are made to his measure, or he has a whole warehouseful to choose from: and is it easier to fit him with a life than with a coat, or are human beings more like one another in their whole physical and spiritual conformation than in the shape of their feet? If it were only that people have diversities of taste, that is reason enough for not attempting to shape them all after one model. But different persons also require different conditions for their spiritual development; and can no more exist healthily in the same moral, than all the variety of plants can in the same physical, atmosphere and climate. (p.75)

행동의 독립과 관습을 무시하는 것은 보다 더 좋은 행동양식과 사회 전반적(general)으로 채택할만한 가치가 더 많은 관습이 개척(strike out)될 수 있는 기회[그것들(독립과 무시)이 제공하는]를 위해서 유일하게 장려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혹은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결정적으로 우월한 정신능력을 가진 사람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의 생존이 어떤 개인 또는 소수의 모형(patterns)에 따라 구축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만약 한 개인이 용인 가능한 양의 상식과 경험을 소유하고 있다면 자신의 생존을 펼치는 자신의 방식(mode)이, 그것이 그 자체로서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방식이기 때문에, 최선의 방식이 된다. 인간존재는 양떼와는 다르다. 그리고 양들도 구별 못 할 만큼 똑같지는 않다. 어떤 한 사람은 양복이나 신발이 그의 치수에 맞추어서 만들어지거나 골라야 할 옷이나 신발이 창고 하나 가득히 되지 않으면 그에게 맞는 것을 구할 수가 없다. 삶을 그에게 맞추는 것이 신발보다 더 쉬울 것인가 아니면 인간은 신발의 형태보다는 전체 육체적 정신적 구조에 있어서 상호간에 더 비슷한가? 사람들이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모든 인간을 하나의 틀에 맞추어서 만들려는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각각 다른 사람들은 정신적 발달을 위한 각각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동일한 도덕적 조건에서 살 수 없는 것은 모든 종류의 식물들이 동일한 자연적 (physical) 환경(atmosphere)과 기후에서 살 수 없는 것과 같다.


20-7-143
The same things which are helps to one person towards the cultivation of his higher nature, are hindrances to another. The same mode of life is a healthy excitement to one, keeping all his faculties of action and enjoyment in their best order, while to another it is a distracting burthen, which suspends or crushes all internal life. Such are differences among human beings in their sources of pleasure, their susceptibilities of pain, and the operation on them of different physical and moral agencies, that unless there is corresponding diversity in their modes of life, they neither obtain their fare share of happiness, nor grow up to the mental, moral and aesthetic stature of which their nature is capable. Why should then tolerance, as far as the public sentiment is concerned, extend only to tastes and modes of life which extort acquiescence by the multitude of their adherents? Nowhere (except in some monastic institutions) is diversity of taste entirely unrecognized; a person may, without blame, either like or dislike rowing, or music, or athletic exercises, or chess, or cards, or study. because both those who like each of these things, and those who dislike them, are too numerous to be put down. But the man, and still more the woman, who can be accused either of doing 'What nobody does', or of not doing 'what everybody does', is the subject of as much depreciatory remark as if he or she had committed some grave moral delinquency. (p.75-76)

보다 높은 품성의 배양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방해가 된다. 동일한 삶의 양식이 한 사람에게는 그의 행동과 기쁨의 모든 기능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해 주면서 건강한 자극(excitement)이 되는 반면 또 하나의 다른 사람에게는 그의 내면의 삶을 정지시키거나 분쇄하는 심란한 짐이 될 수도 있다. 快樂(쾌락)의 원천, 고통의 감수성, 그리고 그들에 대한 신체적 도덕적 기관의 작용에 있어서 인간들 사이의 차이가 너무나 심해서 그들의 삶의 양식에 있어서 이에 상응하는 다양성이 없으면 그들은 그들에게 해당되는 공정한 몫의 행복을 획득할 수 없고 그들의 본성이 부여할 수 있는 정신적 도덕적 美學(미학)적 키(stature; 달성, 성장)까지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公衆(공중)의 정서가 관련되는 한 관용(tolerance)은 다수의 지지자들이 黙認(묵인)을 강요하는 취향과 삶의 양식에만 베풀어(extend)져야 하는가? 어디에도 (몇몇 수도원을 제외하고) 취향의 다양성이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없다 (어디에 가도 취향의 다양성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고 배 젓기를, 음악을, 운동을, 체스를, 화투를, 공부를 좋아할 수도 있고 안 좋아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 중의 각각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것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기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한다’고 해서 혹은 ‘모두가 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해서 남자 더욱이 여자가 아직도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마치 그나 그 여자가 심각한(grave) 도덕적 비행을 범한 것과 똑같은 정도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8-144
The despotism of custom is everywhere the standing hinderance to human advancement, being in unceasing antagonism to that disposition to aim at something better than customary, which is called, according to circumstances, the spirit of liberty, or that of progress or improvement. The spirit of improvement is not always a spirit of liberty, for it may aim at forcing improvements on an unwilling people; and the spirit of liberty, in so far as it resists such attempts, may ally itself locally and temporarily with the opponents of improvement; but the only unfailing and permanent source of improvement is liberty, since by it there are as many possible independent centres of improvement as there are individuals. The progressive principle, however, in either shape, whether as the love of liberty or of improvement, is antagonistic to the sway of Custom, involving at least emancipation from that yoke; and the contest between the two constitutes the chief interest of the history of mankind. The greater part of the world has, properly speaking, no history, because the Despotism of Custom is complete. This is the case over the whole East. Custom is there, in all things, the final appeal; justice and right mean conformity to custom; the argument of custom no one, unless some tyrant intoxicated with power, thinks of resisting. And we see the result. Those nations must once have had originality; they did not start out of the ground, lettered, and versed in many of the arts of life; they made themselves all this, and were then the greatest and most powerful nations of the world. What are they now? The subjects of dependants of tribes whose forefathers wandered in the forests when theirs had magnificent palaces and gorgeous temples, but over whom custom exercised only a divided rule with liberty and progress. A people, it appears, may be progressive for a certain length of time, and then stops: when does it stop? When it ceases to possess individuality.*(p.78)

관습의 독재는 상황논리(circumstances)에 의하면 자유의 정신 또는 진보 혹은 개량의 정신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존 관습보다 더 좋은 것을 지향하는, 경향에 항상 적대적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인류의 발전에 상시적 장애가 되고 있다. 개량의 정신이 항상 자유의 정신은 아니다. 그것이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개량을 강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의 정신은 그런 시도(개량)에 저항을 하는 한 개량의 반대자들과 지역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스스로 동맹을 맺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에 의해서 개인의 수만큼 독립적인 개량의 중심인물(centers)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unfailing)이고 영원한 개량의 유일한 원천은 자유이다. 그러나 진보의 원칙은, 자유에 대한 사랑이든 진보에 대한 사랑이든, 어느 형식이든 최소한도 관습의 束縛(속박; yoke)으로부터 해방을 포함해서 관습의 지배에 적대적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쟁투는 인류 역사의 주된 관심을 구성하고 있다. 관습의 독재가 완벽하기 때문에 세계의 보다 더 많은 부분은, 적당히 말해서, 역사가 전혀 없다. 이것은 동양전체에 해당되는 경우이다. 그곳에서는 관습은 모든 분야에서 최종적인 호소(appeal; 힘, 항고)이다. 정의와 正道(정도; right)는 관습과의 일치를 의미한다; 권력에 도취된 독재자(전제군주)가 아니라면 누구도 관습의 주장에 저항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보게 된다. 그런 나라들은 한때는 독창성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나라들은 삶의 분야(arts: 예술과 기술)에서 문자로 기록이 되고 詩文(시문)이 있어서 맨땅에서 시작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만들었고 그때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지금 그들은 어떤가? 그들의 조상들이 웅장한 宮闕(궁궐)과 눈부신 사원을 가지고 있을 때에 조상이 숲속을 헤매고 다녔지만 관습이 자유와 진보와 함께 부분적으로만 지배(exercised)하였던 부족의 후손들의 백성(이 되어 있다.)〱동양이 서양의 지배를 받고 있다〉 하나의 민족은 어느 기간 동안 진보적이다가 그리고는 중단되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 멈추는가? 그 민족이 개성(개인의 자유)을 가지기를 중단할 때이다.

 
20-9-145
It is individuality that we war against: we should think we had done wonders if we had made ourselves all alike; forgetting that the unlikeness of one person to another is generally the first thing which draws the attention of either to the imperfection of his own type, and the superiority of another, or the possibility, by combining the advantages of both, of producing something better than either. We have a warning example in China― a nation of much talent, and, in some respects, even wisdom, owing to the rare good fortune of having been provided at an early period with a particularly good set of customs, the work, in some measure, of men to whom even the most enlightened European must accord, under some limitations, the title of sages and philosophers. They are remarkable, too, in the excellence of their apparatus for impressing, as far as possible, the best wisdom they possess upon every mind in the community, and securing that those who have appropriated most of it shall occupy the posts of honor and power. Surely the people who did this have discovered the secret of human progressiveness, and must have kept themselves steadily at the head of the movement of the world. On the contrary they have become stationary―have remained so for thousands of years; and if they are ever to be farther improved, it must be by foreigners. (p.79-80)

우리가 전쟁하는 상대는 바로 개성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것은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의 불완전성과 타인의 우수성에, 혹은 兩者(양자)의 장점을 결합하여 어느 쪽 하나 보다 더 좋은 것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에, 각자의 관심을 끌도록 해주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모두 똑같이 만든다면 우리는 놀라운 일을 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중국에서 하나의 경고적인 사례를 가지고 있다― 가장 개명된 유럽인들도, 어느 정도의 한계를 두고, 賢者(현자)와 철학자의 칭호를 바쳐야 될 사람들의 업적(work)인 (어느 정도), 특별히 훌륭한 한 묶음의 관습들을 역사의 초기에 부여받는 특별히 稀貴(희귀)한 행운 덕택에 많은 재능과 어떤 점에서는 지혜의 나라인(중국에서 경고해 주는 사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최고의 지혜를 공동체의 모든 사람의 정신(mind)에 가능한 한 깊이 刻印(각인)시키고 그 지혜의 대부분을 專用(전용)하는 者(자)들로 하여금 권력과 명예의 직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그들의 기구(제도)의 탁월함에 있어서 비상하다. 확실히 이렇게 하였던 사람들은 인간의 진보성의 비밀을 발견하였었고 지속적으로 세계운동의 선두에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와 반대로 그들은 정체해 왔다―수천 년 동안 그렇게 정체해 있었다. 만약에 그들이 한 번이라도 개선하려면 그것은 외국인들에 의해서 해야만 한다.


20-10-146
They have succeeded beyond all hope in what English philanthropists are so industriously working at―in making a people all alike, all governing their thoughts and conduct by the same maxims and rules; and these are the fruits. The modern regime of public opinion is, in unorganized form, what the Chinese educational and political systems are in an organized; and unless individuality shall be able successfully to assert itself against its yoke, Europe, notwithstanding its noble antecedents and its professed Christianity, will tend to become another China.

What is it that has hitherto preserved Europe from this lot? What has made the European family of nations an improving, instead of a stationary portion of mankind? Not any superior excellence in them, which, when it exists, exists as the effect, not as the cause; but their remarkable diversity of character and culture. Individuals, classes, nations, have been extremely unlike one another: they have struck out a great variety of paths, each leading to something valuable; and although at every period those who travelled in different paths have been intolerant of one another, and each would have thought it an excellent thing if all the rest could have been compelled to travel his road, their attempts to thwart each other's development have rarely had any permanent success, and each has in time endured to receive the good which the others have offered. Europe is, in my judgement, wholly indebted to this plurality of paths for its progressive and many-sided development. But it already begins to possess this benefit in a considerably less degree. (p.80-81)

그들은 지금까지 영국 박애주의자들이 그토록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는 모든 희망이상으로 성공해 왔다.―모든 인민을 똑같이 만드는 데 있어서, 동일한 교훈과 규칙에 의해서 인민의 사상과 행동을 지배함에 있어서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것들이 그 열매이다. 공중여론의 조직화 되지 않은 현대적 제도는 중국의 조직화된 교육과 정치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개성이 여론의 멍에에 대항해서 자신의 입장을 성공적으로 주장할 수 없으면 유럽은 고귀한 前例(전례; 역사)와 에도 불구하고 공인된 기독교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중국이 되는 추세에 들어설 것이다.

유럽을 이런 운명으로부터 지금까지 지켜준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유럽의 국가 가족을 인류의 停滯(정체)하는 부분이 아니고 발전하는 부분으로 만들었는가? (그것은)그들 속에 있는 어떠한 뛰어난 우수성이 아니고 (그런 우수성(it)이 존재할 때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서 존재한다) 그들의 성품과 문화의 놀라운 다양성이다. 개인과 계급과 국민이 서로서로 지극히 다르다. 유럽인들은 대단히 다양한 길들을 뻗어 내렸고(strike out) 이 길들은 각각 뭔가 가치 있는 것으로 이끌어 갔다; 그리고 비록 모든 시대마다 각자 다른 길로 갔던 사람들이 서로를 용납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각자는 나머지 사람들을 자기가 가는 길로 가도록 강요할 수 있었다면 대단히 좋았을 것(excellent)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지만 각자의 발전을 좌절시키려는 시도는 영원한 성공을 거둔 적은 거의 없었고 시간이 가면서 각자는 다른 사람들이 제안하는 좋은 것을 용납하였다. 나의 판단으로는 유럽은 유럽의 진보적이고 다방면의 발전을 이 길의 다수성에 전적으로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이미 상당히 더 적은 정도로 이 혜택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다.
 

20-11-147
It is decidedly advancing towards the Chinese ideal of making all people alike. M. de Tocqueville, in his last important work, remarks how much more the Frenchmen of the present day resemble one another than did those even of the last generation. The same remark might be made of Englishmen in a far greater degree. In a passage already quoted from Wilhelm von Humboldt, he points out two things as necessary conditions of human development, because necessary to render people unlike one another; namely, freedom, and variety of situations.

The second of these two conditions is in this country every day diminishing. The circumstances which surround different classes and individuals, and shape their characters, are daily becoming more assimilated. Formerly, different ranks, different neighborhoods, different trades and professions lived in what might be called different worlds; at present, to a greater degree in the same. Comparatively speaking, they now read the same things, listen to the same things, see the same things, go to the same places, have their hopes and fears directed to the same objects, have the same rights and liberties, and the same means of asserting them. Great as are the differences of position which remain, they are nothing to those which have ceased. And the assimilation is still proceeding. All the political changes of the age promote it, since they all tend to raise the low and to lower the high.* (p.81)

유럽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만드는 중국적 이상을 향해 결정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M. de Tocqueville은 그의 마지막 저서에서 오늘날의 프랑스인들이 심지어 지난 세대의 프랑스인들 보다 얼마나 많이 더 서로 비슷한지를 논하고 있다. 동일한 논평을 훨씬 더 심한 정도로 영국인에 대해서 할 수 있겠다. 이미 Wilhelm von Humboldt로 인용한 구절에서 그는 사람들을 상호 다르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계발의 필요조건으로서 두 가지, 즉 자유와 상황(환경)의 다양성을 지적한다.

이 나라에서는 이들 조건 중에서 두 번째가 매일 감소하고 있다. 상이한 계급과 개인들을 둘러싸고 그들의 인격(특성)을 형성하고 있는 환경들이 매일 더욱더 同化(동화)되고 있다. 以前(이전)에는 다른 계급, 다른 이웃, 다른 직업과 전문직은 所謂(소위) 다른 세계에 살았었다. 현재는 전보다도 더 큰 정도까지 동일한 세계에 살고 있다. 비교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지금 같은 것들을 읽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장소에 가고, 같은 대상에 그들의 희망과 공포가 향하게 하고, 같은 권리와 같은 자유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같은 수단을 가지고 있다. 남아있는 자리(부분)의 다양성(differences)은 크지만 그것들은 이미 사라진 다양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동화작용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낮은 것은 높이려 하고 높은 것은 더 낮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시대의 모든 정치적 변화가 그것(동화작용)을 증진시키고 있다.
 

20-12-148
A more powerful agency than even all these, in bringing about a general similarity among mankind, is the complete establishment, in this and other free countries, of the ascendancy of public opinion in the State. As the various social eminences which enabled persons entrenched on them to disregard the opinion of the multitude, gradually become levelled; as the very idea of resisting the will of public, when it is positively known that they have a will, disappears more and more from the minds of practical politicians; there ceases to be any social support for nonconformity― any substantive power in society, which, itself opposed to the ascendancy of numbers, is interested in taking under its protection opinions and tendencies at variance with those of the public.

The combination of all these causes forms so great a mass of influences hostile to Individuality that it is not easy to see how it can stand its ground. It will do so with increasing difficulty, unless the intelligent part of the public can be made to feel its value―to see that it is good there should be differences, even though not for the better, even though, as it may appear to them, some should be for worse. If the claims of Individuality are ever to be asserted, the time is now, while much is still wanting to complete the enforced assimilation. It is only in the earlier stages that any stand can be successfully made against the encroachment. The demand that all other people shall resemble ourselves grows by what it feeds on. If resistance waits till life is reduced nearly to one uniform type, all deviation from that type will come to be considered impious, immoral, even monstrous and contrary to nature. Mankind speedily become unable to conceive diversity, when they have been for some time unaccustomed to see it.*(p.81-82)

사람들 가운데서 전체적으로 유사함을 일으키는 데에 이 모든 것들보다도 더 강력한 힘(agency)은, 이 나라와 다른 자유국가에서, 국가적으로 대중여론이 지배권을 완전히 확립한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집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다양한 사회적으로 탁월한 것들이(eminences) 점점 평준화됨에 따라서, 公衆(공중)의 여론에 저항한다는 바로 그 생각이, 대중이 하나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알려 지면서, 현실 정치인의 마음으로부터 더욱 더 사라짐에 따라서, 非추종(불일치)에 대한 모든 사회적 지지는 중단되게 된다―사회의 모든 실질적 권력(지배세력)은, 스스로 대중(numbers)의 지배권에 반대하기 때문에, 대중의 의견과 성향과 충돌(variance)하는 것은 자신의 보호(관리)하에 두는 데에 관심을 가진다.

이 모든 원인들의 결합이 개성에 적대적인 매우 많은 양의 영향력을 형성하기 때문에 개성이 어떻게 立地(입지)할 수 있을지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대중들 가운데서 이해력이 있는 분들이 개성의 가치를 알 수 있도록 하지 못하면 그렇게 하는 것(입지를 굳히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다―비록 더 좋아지지는 않을지라도, 심지어 대중들에게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더 나빠지더라도, 다른 것(differences)이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도록 하지 못한다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개성을 조금이라도 주장하기를 원한다면 강제 동화작용을 완성하기에는 아직 많은 것이 부족(wanting)한,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다. 侵害(침해)에 대항해서 어떠한 저항(stand)이라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초기 단계일 뿐이다. 모든 사람은 우리를 닮아야 한다는 주장(demand)은 스스로의 말(주장)을 먹고 자란다. 삶이 거의 단 한 가지 同形(동형)으로 축소될 때까지 저항이 기다린다면 그 동형(type)으로부터 逸脫(일탈)하는 모든 것은 不敬(불경)하고, 부도덕하고, 심지어 극악무도하고, 자연에 反(반)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어느 기간 동안 다양성에 익숙하지 못하게 될 때, 인간은 신속하게 다양성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20-13-149
The objection to government interference, when it is not such as to involve infringement of liberty, may be of three kinds.

The first is when the thing to be done is likely to be better done by individuals than by the government. Speaking generally, there is no one so fit to conduct any business, or to determine how or by whom it shall be conducted, as those who are personally interested in it. This principle condemns the interference, once so common, of the legislature, or the officers of government, with the ordinary processes of industry. But this part of the subject has been sufficiently enlarged upon by political economists, and is not particularly related to the principles of this Essay.

The second objection is more nearly allied to our subject. In many cases, though individuals may not do the particular things so well, on the average, as the officers of government, it is nevertheless desirable that it should be done by them, rather than by the government, as a means to their own mental education―a mode of strengthening of their active faculties, exercising their judgement, and giving them a familiar knowledge of the subjects with which they are thus left to deal. This is a principal, though not the sole, recommendation of jury trial (in cases not political); of free and popular local and municipal institutions; of the conduct of industrial and philanthropic enterprises by voluntary associations.(p. 121-122)

정부 간섭에 대한 반대는, 그것이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포함하지 않을 때는, 세 가지 종류가 될 것이다.

첫 번째는 해야 될 일(과업)이 정부에 의해서보다는 개인에 의해서 해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을 때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혹은 그 일을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직접 관심을 가진 사람보다도 더 적절한 사람은 없다. 이 원칙은, 한때는 너무나 흔하였던, 기업(산업)의 일반적 수행과정에 입법부나 정부관리의 간섭을 비난한다. 그러나 이 주제(개인의 자유 보장)의 이 부분은 정치경제학자들에 의해서 충분히 詳論(상론: enlarge)되어 왔고 그래서 이 Essay(논문) 특별히 관련되지는 않는다.

두 번째 반대는 우리의 주제와 더 가까이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비록 개인들이 특정 업무를 평균적으로 정부 관리만큼 능숙하게 하지 못하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신교육을 위수한 수단으로서 그 업무가 개인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것은) 그들의 활동능력을 강화시키고, 그들의 판단력을 훈련시키고, 이렇게 해서 그들이 취급하게 되는 주제에 대한 친밀한 지식을 주게 되는 방법이다. 이것은 비록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배심원 재판의 권장(정치적이 아닌 사건에서)이고, 자유롭고 대중적인 지역 및 지방자치 기관에 대한 권장이고, 자발적 結社(결사)에 의한 산업과 박애주의 기업의 운영(conduct)에 대한 권장이다.

 
20-14-150

These are not questions of liberty, and are connected with that subject only by remote tendencies; but they are questions of development. It belongs to a different occasion from the present to dwell on these things as parts of national education; as being, in truth, the peculiar training of a citizen, the practical part of the political education of a free people, taking them out of the narrow circle of personal and family selfishness, and accustoming them to the comprehension of joint interests, the management of joint concerns―habituating them to act from public or semi-public motives, and guide their conducts by aims which unite instead of isolating them from one another. Without these habits and powers, a free constitution can neither be worked nor preserved; as is exemplified by the too-often transitory nature of political freedom in countries where it does not rest upon a sufficient base of local liberties. The management of purely local business by the localities, and of the great enterprises of industry by the union of those who voluntarily supply the pecuniary means, is further recommended by all the advantages which have been set forth in this Essay as belonging to individuality of development, and diversity of modes of action. Government operations tend to be everywhere alike. With individuals and voluntary associations, on the contrary, there are varied experiments, and endless diversity of experience. What the State can usefully do, is to make itself a central depository, and active circulator and diffuser, of the experience resulting from many trials. Its business is to enable each experimentalist to benefit by the experiments of others; instead of tolerating no experiments but its own.

이것들은 자유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자유하고는 먼 성질에 의해서만 그 주제(자유)와 연결되어 있지만 이것들은 발전에 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이런 것들을 국민교육의 일부로서 숙고하기 위한, 현재하고는, 다른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진실로 자유민에 대한 정치교육의 실천적 부분인 특별 시민훈련이 되고, 그들(시민)을 개인과 가족 이기심의 좁은 테두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 그래서 그들을 공동관심사의 운영과 같은 공동이익의 이해에 익숙하게 하는 것―그들을 공적인 또는 半(반) 공적인 동기로부터 행동하고, 상호 고립하는 것 대신 단결시켜주는 목표에 의해서 그들의 행동을 이끌어가는 것을 습관화하도록 하는 것 같은 (국민교육의 일부로서 숙고해야 될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습과 능력(powers)이 없이는 자유헌법은 기능을 할 수 없고 보존될 수도 없다. 이런 현상은 지방 자치권(liberties)의 충분한 기반이 없는 나라에서 정치적 자유가 너무 자주 일시적인 현상(nature)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例證(예증) 된다. 순수하게 지역적인 사업은 所在地(소재지)에 의해서, 거대한 산업체는 금전상의 자금을 자원해서 공급하는 사람들의 조합에 의해서 경영하는 것이, 本 Essay에서 개성의 발전과 행동양식의 다양성에 속하는 것으로 언급한 모든 이점에 의해서 더욱더 많이 권장된다. 정부의 운영방식은 어디에나 똑같은 경향이 있다. 반대로 개인이나 자발적 회사에는 다양한 실험활동이 있어서 경험의 끝없는 다양성이 있다. 국가가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많은 실험의 결과에서 나오는 경험의 중앙 창고가 되고 전달자가 되고 유포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의 일은 각각의 실험자들이 타인의 실험에 의해서 이득을 보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의 실험 외에는 어떤 실험도 용납하지 않는 것 대신에.


20-15-151
The third, and most cogent reason for restricting the interference of government, is the great evil of unnecessarily adding to its power. Every function superadded to those already exercised by the government, causes its influence over hope and fears to be more widely diffused, and converts, more and more, the active and ambitious part of the public into hangers-on of the government, or of some party which aims at becoming the government. If the roads, the railways, the banks, the insurance offices, the great joint-stock companies, the universities, and the public charities, were all of them branches of the government; if, in addition, the municipal corporations and local boards, with all that now devolves on them, became departments of the central administration; if the employés of all these different enterprises were appointed and paid by the government, and looked to the government for every rise in life; not all the freedom of the press and popular constitution of the legislature would make this or any other country free otherwise than in name. And the evil would be greater, the more efficiently and scientifically the administrative machinery was constructed―the more skilful the governments for obtaining the best qualified hands and heads with which to work it.

정부의 간섭을 제한하는 세 번째 그리고 가장 강력한 이유는 정부의 권력을 불필요하게 증가시키는 커다란 악이다. 정부에 의해서 이미 집행되고 있는 것(those; 정부기능)에 첨가되는 모든 기능은 정부의 영향력이 희망과 공포에 대한 정부의 기능이 더 너 널리 확산되게 하는 원인이 되고, 대중 가운데 적극적이고 야망이 있는 사람들(part)을 정부의 食客(식객)으로, 혹은 정부가 되는 것(권력을 잡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는 몇몇 사람들의 식객으로 전환시킨다. 만약 도로, 철도, 은행, 보험회사, 대규모 주식회사, 대학, 공공자선 단체가 모두 정부의 하부기관(branches)이 된다면, 게다가 지금 그들에게 移讓(이양)된 모든 권한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나 지방기관(boards)이 중앙행정부의 부서가 된다면, 이 다양한 기업체들의 종업원들이 정부에 의해서 임명되고 보수를 받는다면, 생활의 모든 개선을 위해 정부만 바라다본다면, 언론과 대중 입법기관의 모든 자유는 이 나라나 다른 어떤 나라도 명목상(in name)외에는 자유롭게 하지 못할 것이다. 악이 크면 클수록 더 능률적이고 더 과학적인 행정기관이 구축될 것이다―정부기관을 운영할 최고로 자질을 갖춘 사람들(hands and heads)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부는 더욱 더 기술적이 될 것이다.

[ 2020-11-17, 12: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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