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들은 대체로 미국 민주당을 공화당보다 더 싫어해왔나?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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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의 당선은 세계에선 대체로 호평이다. 그가 추구한 '미국 우선주의' 노선이 미국의 지도적 역할을 포기하고 동맹국을 무시하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은이나 푸틴은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낸다.
  
   한국인들, 특히 우파성향 사람들은 미국의 공화당을 민주당보다 좋아하는 경향이 강했다. 黨名부터 민주당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의 민주당과 같은 성향이라는 선입견을 준다. 그래서 민주당을 좌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주당 대통령 트루먼이 공화당원인 맥아더 사령관을 해임한 것도 비판 대상이다. 그리하여 북진통일을 방해했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려 했고, 박정희를 인권문제로 괴롭혔으며, 이게 위대한 박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흑인들을 싫어하는 한국인들은 흑인 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을 것이고 이것도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이 되었을 수 있다.
  
   이번 트럼프-바이든 대결에선 4-1의 비율로 바이든 당선을 원하는 한국인들이 많았다. 2018년 평창 올림픽까지는 트럼프가 김정은을 잡아죽일 기세로 몰아붙여 기대감을 높여놓았는데, '비핵화 쇼'에 빠지면서 김정은과 실없이 수작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한 여론이 그렇게 바뀐 것이다.
  
   지난 150년 정도의 한미관계사를 훑어보면 민주당 정권이 오히려 한국의 독립, 건국, 호국, 경제발전을 더 밀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결정적 기여를 한 우드로 윌슨, 트루먼, 존슨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다. 일본의 조선병합을 묵인하고, 1949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던 사람, 1970년에 주한미군 7사단을 뺀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이었다. 한국은 민주당 대통령과 대체로 잘 지냈다. 여기서 미국 대통령과 한국의 인연을 정리해본다.
  
   *1905년 공화당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테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가 만나 필리핀을 미국이, 조선반도를 일본이 통치하는 것을 서로 양해한다는 합의를 했다. 이미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귀착되어 미국 포츠머스에서 강화회담이 예정되어 있던 시점이었다.
   *1905년 8월5일, 서른 살의 이승만(李承晩)은 미국 감리교 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당시 미 국무장관의 소개장을 가지고, 롱아일랜드에서 휴양 중이던 루스벨트 대통령을 찾아가 만나 재미(在美)한인들의 청원서를 전달했다. 조미(朝美)조약 상의 거중조정 조항에 근거, 조선의 독립을 미국이 보장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효과는 없었지만 미래의 한국 대통령이 현직 미국 대통령을 만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승만은 생애를 통하여 네 미국 대통령을 직접 상대하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트루먼, 아이젠하워. 이 네 대통령은 미국 역대 대통령 랭킹에서 톱 텐에 드는 위인들이다.
   *1918년 1월, 민주당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질서 재편을 위한 14개조 구상을 발표한다. 그 전해 유럽전쟁에 참전을 결단하였던 윌슨은 프린스턴 대학 총장 시절 박사과정 유학생이던 이승만을 총애하였다. 14개조 중 민족자결의 원칙이 이듬해 삼일운동의 한 동기로 작용하였다. 삼일운동으로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여기엔 이승만이 윌슨을 잘 안다는 평판이 큰 힘이 되었다.
   *1943년, 카이로 선언.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민주당 대통령,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총통, 영국의 처칠 수상은 카이로에서 만나 전후(戰後) 아시아 질서의 재편을 논의하였는데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합의한다.
   *1947년, 민주당 트루먼 대통령은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 자유를 위협하는 국제 공산세력과의 대결을 선언한다. 이 노선은 이승만을 뒷받침하여 그가 주도한, 유엔 감시하 총선거에 의한 대한민국 건국이 가능해졌다.
   *1949년 6월, 아이젠하워 육군참모총장의 건의에 따라 주한미군이 철수한다.
   *1950년 6월, 트루먼은 남침 소식을 듣자마자 파병을 결심한다.
   *1953년,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에 반대하는 이승만을 제거할 궁리도 하지만 결국은 그를 달래기 위하여 한미동맹의 기초가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합의한다.
   *1961년, 민주당 케네디 대통령은 방미(訪美)한 박정희(朴正熙) 의장을 만나 군사혁명을 추인하고, 경제개발 지원을 약속했다. 박정희는 월남 참전 의사를 밝힌다.
   *1963~1969년 민주당 존슨 대통령 시절 한국은 2개 사단 총 5만 명(연인원으론 30만)을 월남에 파병하여 한미관계는 밀월기를 맞는다.
   *1969년, 월남전에서 발을 빼려 했던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은 괌 독트린을 발표, 아시아에 대한 개입 축소를 밝히고 이듬해 주한미군 7사단을 철수한다.
   *1977년, 민주당 카터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의 인권탄압을 빌미로 삼아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다가 군부의 저항을 받고 포기한다. 이로 인한 한미갈등은 10·26 사건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1981년,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을 초청, 대소(對蘇) 포위망 강화를 위한 포석에 들어간다. 레이건은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하여는 전두환 정부를 지원하고 민주화 운동도 응원한다.
   *1992년, 공화당 부시 대통령의 지원 하에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외교의 결정판인 한중(韓中)수교를 이룬다.
   *1994년, 민주당 클린턴 정부는 북핵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구상도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소극적이었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에 이용되어 핵개발 시간을 주고 말았다.
   *2000년, 김대중-김정일의 6·15 선언 이후 공화당 부시 행정부는 과속접근을 견제하였고 2005년엔 김정일의 비자금을 노린 금융제재로 압박했다. 이에 반발한 김정은이 2006년 10월 핵실험을 했지만 부시는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져 북핵문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부시는 이명박 정부를 지원했고 한국이 G20 회의의 일원이 되도록 도왔다.
   *2008년 이후 8년간 민주당의 오바마 정부는 북핵문제에 대하여 ‘전략적 인내’란 명분으로 현상유지를 꾀했지만 북한은 핵능력을 키우는 데 성공, 2013년 이후엔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과는 사이가 좋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친중반일(親中反日)로 기운다고 판단, 바이든 부통령을 보내 경고사인을 보내기도 하였다.
   *2017년 이후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엔 대북(對北)강경 노선을 취하다가 문재인-김정은의 비핵화 쇼에 이용당했다. 얻는 것이 없이 김정은의 위상을 올려주고 한미군사훈련을 중단시켰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의 역사적, 전략적 성격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이렇게 일별해보면 한국은 미국이 민주당 정부일 때 오히려 관계가 좋았다. 민주당 대통령들이 대체로 자유지향적 국제주의자(liberal internationalist)의 성향이었던 덕분이다. 독립운동, 건국, 공산화 저지에는 민주당 대통령들의 결단이 결정적이었다.
  
  
[ 2020-11-22, 18: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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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메아리     2020-11-23 오전 11:32
맨위의 사진은 트루만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사진인데 어디서 만났다는 사진 설명이없으니 알수가 없으나 혹시 6,25동란때 찍은사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혹시 6,25 동란중 웨이크도에서 만난사진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보통 전쟁중에는 왕도 장수를 않바꾼다고 했는데 트루만은 헌국동란중 사령관 맥아더를 왜 바꾸었을까 한번 생각해봤다 다만 트루만이 왜 맥아더를 해임했을까를 당시를 살아온 사람으로써 신문보도등을 본 기억으로 동란중 대통령과 맥아도 원수가 태평양상 웨이크도 에서 만나기로햇는데 시건방진 맥아더가 대통령이 먼저내려 자기를 마중하게하기 위하여 섬에 먼저 도착했으나 상륙하지않고 공중에서 선회하며 시간을 보냇다는 기사를 본기억이생각난다 내가 대통령이라도 이런 건방진 장군은 해임하는게 당연하지 않았을까 또 맥아더는 대통령에 출마할 꿈에 젖어있었고 투르만정도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실 트루만은 고교밖에 나오지않은 입지전적인물이다 그러니 맥아더는 대통령을 무시하기가 일수였다 않그랫으면 당시 한국 통일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당시 맥아더는 중공의 의용군 전쟁개입을 막기위하여대통령에게 남만주일대에 원자폭탄 투하를 건의했으나 묵살되엿다 당시 원자탄은 미국만이 갖이고 있었기때문이다 남만주지방에 원자탄 몇발 투하했으면 뙤놈 몇백만은 죽엇겠지만 대한민국 통일도 됬을것이다 그리고 대만으로 쫏겨갔든 중국 국민당정부의장개석 총통도 북경에 복귀했을것이다 맥어더의 시건방과 투루만의 나약함이 그때 통일이 됬어야 했을터인데 70년간우리는 공산위협속에서 지금도 떨고있지 않았을터이고 손문의 사상을 이은 장개석의 국민당정부가 지속되였다면 지금의중공도 북괘도 존재 없었을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주셨으나 모두 다 주시지는 않으셨다 나머지는 우라가 쟁취하자 가자 자유민주주의 통일로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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