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시간 생방송’ 신화(神話) 만든 KBS ’이산가족 찾습니다’의 타이틀곡
김장실의 트로트 이야기(9)잃어버린 30년(박건호 작사, 남국인 작곡, 설운도 노래, 1983년)

김장실(前 국회의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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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배, 해방, 6·25 전쟁, 대중적 빈곤으로 점철된 한국의 근현대사는 많은 한국인에게 크나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과정에서 국민들 개개인이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가족 간의 생이별, 즉 이산가족의 대량 발생이다.
  
  해방 이후 원한의 38선이 생겨 국토가 분단되자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넘어왔다. 6·25 전쟁 전까지 이렇게 넘어온 사람은 70여만 명이나 된다. 또한 해방공간에서 자신의 이념 성향에 따라 북으로 넘어간 사회주의자들이 약 3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또한 전쟁 중 북에서 남으로 온 사람은 100만 명이나 되며, 북으로 납북이나 월북한 사람이 약 40만 명 된다고 한다. 그 이후 북에서 중국 등을 통해 남한으로 온 탈북민이 3만 명이 넘는다. 이렇게 정다운 고향과 가족을 두고 헤어진 사람들이 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의 가족을 평균 5인으로 하면 1000만 이산가족이 생긴 것으로 추산된다.
  
  2005년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남한에 있는 이산가족은 모두 71만 명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1988년~2011년 3월31일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등록한 사람은 12만 8532명이라고 한다.
  
  6·25 전쟁 이후 남북대결이 고조됨에 따라 남북 간에 흩어진 이산가족을 만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70년 동서(東西) 해빙무드에 따라 1971년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남북 이산가족 찾는 회담‘을 제의하자 북한이 응해 1972년 8월30일 제1회 남북적십자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그 이후 이 사업은 중단되다가 1985년 서울·평양 간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 행사의 하나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있었다. 2000년 이후에는 남북정상회담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몇 차례 상봉이 있었다. 2009년 추석, 2010년 10월 상봉행사 이후 북핵(北核) 개발, 박왕자 사건으로 중단되다가 2014년, 2015년, 21018년에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한 차례씩 있은 이후에는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에 따라 이산가족들은 남북 간에 흩어진 가족의 생사(生死)와 안부를 가슴에 담은 채 살아가야 했었다.
  
  KBS는 휴전협정 30주년을 기념하여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특별생방송을 1983년 6월3일 밤 10시15분부터 95분 간 방영하였는데, 시청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에 따라 1983년 11월14일 새벽 4시까지 138일 동안 453시간 45분 동안 24시간 생방송으로 계속 진행하였다. 이 방송을 통해 10만952건의 신청이 있었고, 5만3536건이 소개되었으며, 1만189건의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KBS 본관과 여의도광장에는 자신이 찾는 가족에 관한 정보를 담은 벽보를 붙이는 등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3.9%가 새벽 1시까지 시청했으며, 88.8%가 눈물을 흘린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전 세계 25개국 기자들이 KBS 본관 중앙홀에 상주하여 기사를 송고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골드머큐리상을 수상하였다.
  
  바로 이 때 1982년 KBS <신인탄생>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우승을 한 설운도는 1983년 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의 <아버님께>라는 곡의 취입을 완료한 상태였다. KBS의 이산가족 방송을 본 그의 매니저인 안태섭은 설운도와 함께 7월1일 새벽에 작사가 박건호에게 가서 <아버님께>라는 곡을 보여주며 이 분위기에 맞는 작사를 부탁하였다. 박건호는 그날 아침에 <아버님께>라는 곡에서 정은이가 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를 살린 <잃어버린 30년>으로 제목이 바뀐 가사를 완료하였다. 안태섭과 설운도는 안양의 오아시스레코드사에 가서 그날 오후 3시에 레코드 취입을 완료하였다. 한편 오아시스레코드사의 손진석 사장은 KBS에 부탁하여 이 노래가 그날 저녁 이산가족방송 배경음악으로 나올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 설운도는 그 당시 가사를 익히지 못해 오아시스레코드사 관계자가 든 널빤지에 쓴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래를 그는 KBS홀에서 하루에 열 번, 4개월간 일천 번 넘게 부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여세를 타고 <잃어버린 30년>은 한국 음반 역사에서 발매된 지 최단기간에 히트한 곡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노래로 1983년 연말 KBS 7대 가수로 선정되었다. 또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헤어졌던 어머니와 동생을 10년 만에 만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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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30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삼십 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몸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메이게 불러봅니다
  
  내일일까 모레일까 기다린 것이
  눈물 맺힌 삼십 년 세월
  고향 잃은 이 신세를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남매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메이게 불러봅니다
  
  
  
[ 2021-02-27, 09: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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