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한국 최고 진중(陣中)가요
김장실의 트로트 이야기(8)전우야 잘 자라(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 19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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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이 38선 일대에 포격을 가하면서 기습남침을 하였다. 장비, 화력, 훈련 등 모든 면에서 북한군은 한국군을 압도하였다. 개전(開戰)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적군에게 내어주고 한 달을 넘긴 시점에는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다.
  
  그해 7월부터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낙동강을 경계로 한 방어선을 고수하면서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었다. 9월15일 맥아더 유엔사령관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두면서 9월28일 서울을 수복하고, 10월1일 38선을 돌파하였으며, 10월19일에는 평양도 해방하였고, 11월에는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파죽지세로 적진을 돌파하였다.
  
  다급해진 김일성의 요청으로 10월19일 한반도에 진입한 중공군 수십만 명의 공세로 무방비 상태인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를 거듭하였다. 1950년 12월 말에는 흥남철수를 한 데 이어, 1951년 서울을 다시 버리는 1·4 후퇴를 하였다. 그 후 반격을 개시하여 1951년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하면서 현재의 휴전선 근처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1953년 7월27일에 휴전협정을 체결하였다.
  
  6·25 전쟁 기간 중 이처럼 처참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면서 국민들과 군인들의 사기를 앙양(昻揚)하거나 그들의 쓰라린 마음을 달래는 진중(陣中)가요가 많이 나왔다. 신세영이 부른 <전선야곡>, 금사향의 <님 계신 전선>, 심연옥의 <아내의 노래>, 현인의 <전우야 잘 자거라>와 <굳세어라 금순아>,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이 그 시절에 나온 진중가요들이다. 그 중에서 6·25 전쟁 초반에 나와서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군인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즐겨 불렀던 대표적인 군가(軍歌)이자 국민가요가 바로 <전우야 잘 자거라>이다.
  
  9·28 수복 이후 명동을 걸어다니다 우연히 만난 유호와 박시춘이 너무 기쁜 나머지 그곳에서 시작한 술자리를 박시춘의 집으로 가서 계속하게 되었다. 이 때 박시춘은 “우린 살았다. 북진통일이 임박했으니 군인들의 사기를 돋우는 노래를 만들자”고 유호에게 제의하였다. 의기투합한 그들은 1절은 낙동강, 2절은 추풍령, 3절은 한강과 서울 수복, 4절은 삼팔선으로 정하고 유호가 작사를 하면 박시춘이 기타로 퉁겨 가며 밤새 작곡을 하였다. 특히,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나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라는 가사는 전쟁에서 희생된 전우의 모습이 상기되며, 전쟁의 비극성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수작(秀作)이다.
  
  이 노래가 만들어지자 육군 군예대 제 2중대 책임자인 박시춘은 군 위문 공연 등을 통해 널리 알렸다. 특히, 국방부 정훈국은 전군(全軍)에 악보를 뿌려 이 노래의 대중적 보급에 기여하였다. 그런데 한창 인기를 끌던 이 노래가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구절이 군의 사기를 꺾고, 불길하다는 우려가 제기되어 1·4 후퇴쯤 잠시 금지가요가 되었다가 휴전 이후 다시 복권된 적이 있다.
  
  이 노래는 남녀노소 누구나 다 즐겨 부르는 우리나라 최고의 진중가요이다. 그러다 보니 전쟁 중은 물론 전쟁이 끝난 한참 뒤에도 반공 분위기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특히, 연례적으로 개최되는 6·25 전쟁 기념일이나 국군의 날 행사 때에는 이 노래가 자주 가창되었고, 또 방송도 많이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1990년대 초반까지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여학생들이 이 노래를 하면서 거리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노래를 작사한 유호는 1921년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본명은 유해준이다. 경복고와 일본 제국미술학교 도안공예과 2년을 수료한 그는 경향신문 문화부장을 지낸 언론인이자 소설가이며 극작가이다. 그는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이별의 부산 정거장>, <맨발의 청춘>, <떠날 때는 말없이>, <님은 먼 곳에>, <종점>, <진짜 사나이>, <좋아서 만났지요> 등 수많은 인기곡을 작사하였다.
  
  작곡가 박시춘은 1914년 경남 밀양 출신으로 본명은 박순동이다. 그는 <애수의 소야곡>, <신라의 달밤>,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 3000여 곡을 작곡한 일제 강점기 이후 해방 전후 10년까지 한국 대중가요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1981년 가을 한국인이 좋아하는 노래 100곡의 선정을 위한 MBC의 ‘한국가요 대조사’에서 그가 작곡한 노래가 10곡이 선정될 정도로 대단한 역량을 가진 작곡가이다.
  
  가수 현인은 1919년 부산 출신으로 경복고와 일본 우에노음악학교 출신이다. 그는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전우야 잘 자거라>, <서울야곡>, <럭키 서울>, <베사메무쵸> 등 여러 인기곡이 있다. 그의 업적을 기려 부산 송도에서는 매년 현인가요제를 개최하며, 부산 영도다리를 건너 위치한 영도경찰서 바로 옆 도로변에 현인 노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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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우야 잘 자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흘러가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구(赤狗)를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느냐 우리는 전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 2021-02-25, 10: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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