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8군 사령부(하) - 용산 합중국의 내막(4)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장관들의 3분의 1이 군 출신
  
  김광웅(金光雄)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통치엘리트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군부 엘리트의 영향력이 강화된 것, 다른 하나는 경상도 출신의 엘리트가 지배적인 위치에 서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한국 민군 관료 엘리트의 이데올로기와 정치]). 군사정권 치하이던 제 6∼12대 국회에서 군 출신 의원 수는 전체의 15·8%였다. 상임위원장의 41·8%가 군 출신 의원이었다. 요직일수록 군 출신이 많았다는 얘기다. 특히 국방위원장의 전부, 내무위원장의 75%가 군 출신이었다. 지난 64년∼86년 사이의 장관들 4백65명 가운데 33·3%인 1백55명이 군 출신이었다. 같은 기간의 차관들 4백3명 가운데 18·1%인 73명이 군 출신이었다. 같은 기간의 중앙정부 청장들 2백54명 가운데 39%인 99명이 군 출신이었다.
  
  이 기간의 장·차관 및 청장들의 지역배경을 본다. 장관들의 31·3%, 차관들의 35·6, 청장들의 39·4%가 경상도 출신이었다. 전라도 출신은 장관들의 13·1, 차관들의 9·2, 청장들의 13·3%였다. 전국 인구중 경상도 출신이 약35%, 전라도 출신이 약 25%인 것과 비교해 보면 관료엘리트 가운데 경상도 출신은 인구비례보다 약간 높게, 전라도 출신은 훨씬 낮게 나타나고 있다. 연세대 안용식(安龍植)교수가 지난해에 26개 정부투자기관의 임원 1백6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에 따르면 군인출신은 21%로서 공무원(28·1%), 교수(22·2%)에 이어 세 번째였다. 그러나 이사장 25명중 9명, 사장 26명 중 10명, 감사 26명 중 12명이 군 출신들로서 수뇌부에선 군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 대학교수는 {사회가 전문화되고 있는데 군 출신이 기업체를 경영하는 것은 교수가 사단장이 되는 것만큼 무리가 많은 인사다}고 말했다.
  
   영관급 전역자 실직률 43%
  
  이런 통계만 보면 군 전체가 특권계급, 특혜 계층화한 것 같지만 또 다른 통계도 있다. 현 국방장관 오자복(吳滋福)씨가 지난 82년에 쓴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논문 [육군 장교 경력관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육군장교들의 직업의식 조사에서 11%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44%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의 만족도에 있어서도 33%만이 뚜렷하게 [만족하고 있다]는 대답을 했을 뿐이었다. 吳씨가 이 논문에서 공개한 대령 이하의 전역한 직업 군인 출신들의 실업률(1980년 현재)을 보면 대령 전역자 35·2%, 중령 43·4%, 소령 40·4% 등 평균 43·4%였다. 영관급 전역자는 거의가 40∼50대 초반인데, 자녀들에 대한 교육비가 한창 많이 들어갈 때이므로 생계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고 한다.
  
  육사 15기의 경우 장교 예편자들 중 약20%가 무직, 10%는 생계 곤란자로 파악되고 있다. 吳씨의 논문에 실린 1975년 현재 예비역 장성들의 취업상황은 5백98명 중 정계가 8·7%, 외교관 2·3%, 관계 4·2%, 국영기업체 7·4%, 일반기업체 33·3%, 교육계 4%, 금융 및 사회단체 7%, 자유업 8·7%, 해외 1·5%, 무직 22·3 %였다. 정부는 그 동안 장성 전역자들의 취업과 생계대책에 주로 신경을 써 국민들에게는 군인들에 대한 처우가 전체적으로 좋아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제5공화국에 들어와서는 군인공제회가 미 취업 장성들에게 월 수십만 원씩의 생계 보조비를 주고 있어 너무 장성중심의 대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현역 군인들이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처우상의 문제라기보다는 국민과 사회의 시각에 대한 [섭섭함]이었다. 야당과 언론은 [일부 정치장교 집단]이란 단서를 달아가면서 순수한 대부분의 장교들을 비난의 대상에서 빼놓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이런 차별화 노력은 별 무효과인 듯했다.
  
  우선 정치 장교와 순수장교가 확연하게 구별되지 않는 것이었다. 육군참모총장 박희도(朴熙道) 대장의 경우, 야당과 언론의 시작은 그가 12·12 사태 때 제1공수 여단을 지휘, 행주대교를 넘어 육본과 국방부를 점령했고, 김대중(金大中)씨에 대한 비토발언을 한 점들을 들어 정치 장교로 구분하고 있지만 많은 현역장교들은 월남전과 미루나무사건 때의 영웅적 행동과 꾸밈없고 직선적인 성격을 들어 [가장 순수한 군인, 그래서 정치 장교로 오해받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다. 많은 현역장교들은 일부 정치장교들에 대한 비난까지도 군 전체에 대한 것으로 단순화하여 보는 듯하였다.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있었던 자극적인 군대 비판에 대해서는 자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한 현역대장은 정치인들과 기자가 있는 사석에서, 어느 야당 후보가 유세장에 군화를 들고 나와 군을 모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서슴없이 {소리 안 나는 총이 있다면 당장 쏴 죽여버리고 싶더라}고 얘기했다.
  
  [현역은 증언 못한다]
  
  어느 국영기업체의 임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던 한 예비역 대령은 지난 12대 국회에서 한 야당의원이 군 출신 인사들의 국영기업체 진출에 대해서 심하게 비판하자 개인적으로 그 의원을 찾아가 이런 식으로 항의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의원님, 우리 군이 어떤 심리인지 아십니까. 아까 하시던 식으로 계속해서 군을 모욕 주고, 사회불안을 선동하시는 것을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혼란이 오면 계엄령이 펴질 것이고 맨 먼저 군인들에게 붙들려 가실 분이 의원님이 될 것입니다. 군인이 어디 종자가 다릅니까. 그렇게 하시면 야당이 집권 못합니다} 광주 사태에서의 군의 책임 문제에 대해서 맡은 장교들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반발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공수부대의 과잉 진압은 인정하면서도 {군대는 경찰과 다르다. 진압이란 임무를 부여받은 이상 그것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하느냐가 문제가 되는데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공수부대의 경우, 전쟁이 나면 적의 후방에 침투, 난폭하게 전투를 벌이도록 끊임없이 훈련을 받고 있는 특수부대인데, 이런 부대를 시위진압에 투입한 것은 잘못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장한 민간인을 군인이 그냥 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하고 적극적으로 군의 진압행위를 옹호하는 장교들이 거의 전부였다. 한 장교는 {이 문제를 자꾸 거론하면 전체 장교집단의 정치권에 대한 반발심만 거세어질 뿐이다. 민주화를 의해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고 말했다.
  
  한 고위장성은 {만약 국회에서 진상조사를 한다면서 광주사태 진압과 관련된 현역 군인을 소환한다면 내 자리를 걸고서라도 이를 저지하겠다. 그렇게 한다면 누가 진압 명령을 따르겠는가}라고 말했다. 한 예비역 장교는 {광주사태가 여태까지도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은 5공화국 정부의 선전활동 미숙 때문이었다.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방어할 것은 방어했어야 했다. 즉, 초기의 과잉진압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시민이 무장한 뒤의 진압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음을 소신 있게 설명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박희도(朴熙道) 육군참모총장은 광주사태 당시 일선 사단장이었다. 그는 사석에서 {우리 사단장들은 광주사태가 대전까지 번져 올라오면 김일성이 오판하여 남침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남북으로 양공 당하기 전에 우리가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로 긴박했었다}고 말했다.
  
   광주사태 잘못 인식 장교 많아
  
  정호용(鄭鎬溶) 전 국방장관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 번 불만을 말한 적이 있었다. {왜 내가 말하는 광주사태는 쓰지 않는가. 쓰면 언론이 욕을 먹기 때문인가. 그때는 지휘계통 선상에 있지도 않은 나와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노(盧)대통령을 왜 자꾸 물고 늘어지는가} 국방부장관 앞으로는 [왜 적극적으로 군을 변론해 주지 않느냐]는 내용의 편지가 장교들로부터 많이 와 있다고 한다. 야당이 광주사태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면 군이 긴장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야당에서는 지휘책임자에 대한 처벌까지는 아직 요구하고 있지 않으나 군에서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지휘관들이 거명 되거나 조사를 받는 등 군의 명령체계가 도전 받을 가능성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군에서는 광주사태의 진압에 관계했던 장병들로부터 수기를 받아 놓았다고 한다. 한 고위 장성은 {그 수기를 읽어보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더군}이라고 했다.
  
  이 장성은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씨가 민화위(民和委)에 서면으로 낸 증언에서 과잉진압을 일부 인정한 것을 들어 못마땅해하기도 하였다. 광주사태에 투입되었던 3개 공수여단의 세 여단장 중 신우식(申佑湜/육사 14기·소장 예편)씨, 최웅(崔雄/육사 12기·중장 예편)씨는 전역했고, 최세창(崔世昌/육사 13기)씨는 현역군인 중 최선임자로서 합참의장이다. 1980년 5월27일에 광주로 진입, 마무리 진압작전을 벌였던 당시 20사단장 박준병(朴俊炳)씨는 새로 민정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전남 지역 계엄 분소장이었던 소준열(蘇俊烈)씨는 최근 재향군인회의 새 회장으로 뽑혔다.
  
  제 5, 6공화국의 핵심에는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정호용(鄭鎬溶/광주사태 당시 특전사령관), 최세창(崔世昌), 박희도(朴熙道), 장기오(張基梧/전 총무처 장관)씨 등 공수단 인맥이 많이 있다. 광주사태에 대한 조사는 공수단을 건드리게 될 것이고 全-盧정권의 본질에 대한 상징적인 공}이 된다는 점에서 정국의 앞날과 민군 관계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기자가 만난 많은 현역장교들의 광주사태 인식은 사실관계부터가 잘못된 부분이 많았다. 과잉진압이 먼저 있었고, 일종의 자위 수단으로서 광주시민이 무장을 했는데, 일부 장교들은 시민들이 무장을 먼저 했기 때문에 그런 식의 과잉 진압이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시위진압에 특수 부대를 투입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공수부대의 입장에서 볼 때 충분한 시위진압 장비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려왔으므로 오히려 이쪽에서 공포에 질려 [겁을 주기 위한] 잔혹한 위력시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장교들도 많았다.
  
   육군 수뇌부의 성격
  
  12·12 사태에 대한 장교들의 시각은 광주사태에 대한 것처럼 획일적이지 않은 듯했다. 모두가 {앞으로는 절대로 없어야 할 사건이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정승화(鄭昇和) 당시 총장이 10·26 사건과 관련하여 의심을 받았고 남자답게 용퇴를 하지 않았던 것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논리로써 변호하려는 장교들이 많았다. 이런 논리는 장교들의 심리상태를 엿보게 하는 좋은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심이 가더라도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등 적법절차를 거쳐서 총장을 연행해야 한다]는 문민우위의 정신과 법치국가의 기본 질서에 대한 존중의 마음은 별로 없고 [나쁜 사람이니까 무리를 해도 다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일차원적인 단순사고 방식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뒤의 수사·재판과정에서 鄭昇和씨에 대한 김재규(金載圭)와의 공모의 혹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 결과적으로는 대부분의 장교들이 그때 갖고 있었던 정보가 왜곡돼 있었음이 밝혀졌었다.
  
  군 정보기관이 핵심정보를 독점하고 이를 활용할 때 군 조직의 특수성으로 해서 장교집단을 잠시나마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주는 현상이었다. 정승화(鄭昇和)씨에 대한 정의감의 발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보편적 가치관이 아니라 파당적 가치관에 불과했었다. 육본의 적법한 명령을 따르다가 부하의 총격을 받은 정병주(鄭柄宙) 당시 특전사령관과 사살된 그의 비서실장 유족에 대해서는 고통만 주었던 12·12 주체 세력은 鄭씨를 연행하다가 총격을 받은 우경윤(禹慶允)씨에게는 갖은 특혜를 줌으로써 정치장교 집단이 말하는 정의감의 정체를 엿보게 했던 것이다.
  
  광주사태 이상으로 군이 민감하게 반응할 부분은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에 대한 비리조사일 것이다. 수도권의 핵심지휘관이 기자에게 밝혔듯이 군의 지휘부에선 이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런 압력이 노태우(盧泰愚)대통령에게도 계속해서 전달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육군을 이끌고 있는 3성 장군 이상의 지휘부는 盧대통령보다는 全 전 대통령과 더 인간적으로 밀접했던 이들이다. 12·12 사태 때 함께 운명을 걸었던 사람, 全장군이 직속 부하로 오랫동안 데리고 다녔던 사람, 하나회 출신, 동향출신 등등 2중, 3중으로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를 갖고 있다. 공과 사의 구별보다는 1차 적인 인간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이들 인맥의 성향으로 볼 때 全斗煥씨에 대한 조사는 [인간적인 의리로서도 있어선 안될 일]이란 시각이 굳어 있는 듯했다.
  
  특히 광주사태 및 전두환(全斗煥)씨의 비리에 대한 진상조사 요구를 평민당 김대중(金大中)총재가 주도할 때 군의 반응은 더욱 예민해질 것이다. 총선 이후에 金大中씨의 태도가 눈에 뜨이게 온건해졌지만 군 수뇌부의 시각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군처럼 일사불란한 명령계통이 유지되는 조직에서는 사령탑의 성향이 그 조직의 행태에 거의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육군의 수뇌부를 이루고 있는 수십 명의 준장·대장 중 20명을 표본 삼아 그 성향을 분석해 본다. 이들 중 한 명만 갑종간부후보 출신이며 나머지는 모두 정규 육사출신이다. 이들 중 5명은 12·12사태 때 全斗煥 합수본부장 편에 서서 병력을 동원했던 장교들이다. 20명중 2명만이 하나회 인맥이 아니다. 출신고 교별로는 경북 고 또는 경북 중 출신이 여섯 명으로 가장 많고, 부산고가 2명, 서울고가 3명 등등이다.
  
  경상도 출신이 10명, 충청도 출신이 6명, 서울 출신이 3명, 전북출신이 1명이다. 육본의 한 대령은 군 인맥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했다. [장교들 사이에서 인맥은 대체로 세 갈래로 형성된다. 하나는 고교동창관계다. 지금 장성급에서 특히 동문이 많은 학교는 경북고, 부산고, 경남고, 대전고, 서울고, 진주고, 김천고, 마산고, 광주고, 원주고, 강릉고, 춘천고, 성남고교 등이다. 두번째로는 동기생 인맥, 세번째로는 같이 근무했던 인맥이다. 경상도 출신 장성이 많은 것은 인구가 워낙 많은데다가 입학생이 특히 많았기 때문이지 지역차별 때문은 아니다. 하나회 인맥에 대해서 과장된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더라} 육군 장교단은 정규 육사, ROTC, 제3사관학교, 갑종간부후보생, 학사장교 출신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숫적으로는 ROTC 출신들이 가장 많으나 장성급 이상에서는 정규 육사출신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 사실상 군부를 이끌어가고 있다. 육사 19기와 같은 해에 임관된 ROTC 제1기에서는 최근에 처음으로 사단장이 배출되었다. 미국에서처럼 앞으로 한국 육군에서도 정규 육사 출신이 아닌 참모총장도 배출되어야 할 것이라고 申大鎭씨는 말했다. {장교 임관은 각기 다른 루트로 되더라도 육군대학을 거치면서 한 덩어리의 조직으로 통합되어 육군대학을 졸업한 장교들부터는 출신을 더 이상 따지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10년 피상 지속될 정치성
  
  오늘날 군부의 수뇌부는 군의 정치화에 관여한 인물들이 많아 민주화나 군정 종식론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다음 육군참모총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14기 李모 대장도 하나회의 핵심 멤버였다. 그 다음 육군참모총장은 16∼18기에서 배출될 것으로 보이는 데 이 그룹에서도 하나회 출신이나 12·12사태와 관계 있는 장성들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정도는 한국 육군이 정치성이 강한 이들 그룹에 의하여 지휘될 것이며 군의 정치개입 습관은 갑자기 죽지 않고 서서히 사라지는 길을 걸어갈 공산이 높다. 군 수뇌부는 {군대가 정치담당 세력의 역할을 할 때는 지났다. 국군의 권위를 회복하는 길은 정치로부터 군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한다. 군에서는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에게 {5공화국 때 떨어진 군의 위신을 6공화국에서 되찾아 달라』고 주문했다는 얘기도 있다. 기자가 따로따로 만난 민정당의 군 관계 전문가와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양 김씨 중에 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정권의 인계인수는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군부는 문민통치의 그늘 아래에 들어오기는 커녕 독립해서 따로 놀았을지 모른다. 군을 잘 아는 하나회 출신의 대통령이 나왔다는 것이 군의 정치적 중립이나 민군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과도기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6공화국 치하에서 군이 대통령의 지휘를 받으면서 점진적으로 민주화해 가야 할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노태우(盧泰愚), 정호용(鄭鎬溶), 김복동(金復東), 오자복(吳滋福)씨 등 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이 군의 역할에 대해서 같은 인식을 하고 있어 앞으로 약간의 진통은 있겠지만, 국군은 정치무대로부터 점점 멀어져 갈 것임에 틀림없다}
  
출처 : 월조
[ 2003-06-30, 14: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