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8군 사령부(하) - 용산 합중국의 내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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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내버려두어 다오}
  
  관측소에는 전방입소 훈련을 받고 있는 충북대학교 학생 3명도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입소할 때는 놀러 가는 기분으로 왔는데 철책선에서 사병들과 같이 근무하면서 이야기를 해보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걸으면서 존다}는 말의 뜻을 비로소 실감했다는 한 학생은 {역시 서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신(申)중령은 {군복을 입고서는 시위현장 부근을 지나가기가 쑥스럽게 되었으니 이게 무슨 비극이냐}고 애타듯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기자는 전주가 고향인 모 연대장의 숙소에 들렀다. 늦은 밤이었다. 15년간 특전사에 근무한 적이 있다고 하기에 광주사태에 대하여 물었다. {군인은 임무가 부여되면 이를 달성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시위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으면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이런 군대의 논리를 민간인의 관점에서 평가해서는 서로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자기부대의 송중학 중사가 이웃에 사는 중풍 걸린 노인을 부모 대하듯 모시고 있다는 미담을 들려주면서 꼭 기사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미담이 민군 관계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우리 군이 국민의 군대임을 보여주는 사례다}고 했다. 이 연대장에 따르면 공수부대에서는 광주사태 이후에는 부대원들에게, 외출을 할 때는 민간인에게 공손히 대하도록 각별히 교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갑종간부후보생 출신인 연대장은 4년 전에 서울 개포동에 4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샀다고 한다. 월남전에 종군하여 월급을 저축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것이다.
  
  20여년 간 장교생활 끝에 지금 그만둔다면 일시불로 퇴직금을 받을 경우 약 2천7백만 원을 타게 된다고 설명한 그는 20여 년간 셋방살이를 할 때 집주인으로부터 괄시받았던 추억담을 한참 털어놓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장(張)중령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버님께서 저의 셋방에 와보시고 하도 딱하니까 두 아이 가운데 큰놈을 데리고 가셨어요. 한 2년간 키워주셨죠. 제가 전방만 돌아다니는 바람에 2년 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2년만에 아이를 만나러 갔는데, 이놈이 저를 보고, [형!]이라고 하는 거예요, 가슴이 북받치면서… 그래서 당장 큰놈을 데리고 올라왔어요}
  
   정병주(鄭柄宙)씨의 충고
  
  기자는 육군의 지휘부를 장악하고 있는 현역 장성들과 반대편에 섰던 이들도 많이 만나 보았다. 정승화(鄭昇和/전 육군참모총장), 정병주(鄭炳宙/12·12당시 특전사령관·육군 소장 예편), 김진기(金晋基/12·12당시 육군헌병감·준장예편), 강창성(姜昌成/전 육군보안사령관·소장예편)씨 이외에도 하나회를 수사했던 보안사 장교 등등…. 이들의 생각이 현역과 다르리라는 선입감을 갖고 만났다. 그러나 국민과 군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현역장성들과 거의 같았다. 광주사태에 대해서도 그러하였다. 최근의 격동기에서 사나이답게, 그리고 군인답게 깨끗한 처신을 했다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은 鄭炳宙 전 특전사령관이다. 12·12사태 때 그는 육군본부 편에 섰지만 인맥으로 볼 때는 오히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박희도(朴熙道), 최세창(崔世昌), 장기오(張基梧)씨 등 합수본부측 인물들과 더 가까왔다.
  
  특전사령관을 5년간 지내면서 한국의 공수단을 세계적인 규모로 키운 鄭장군은 全, 盧, 朴, 崔, 張씨등을 모두 여단장으로 직접 데리고 있었던 [공수단 인맥의 대부]였다. 12월12일 그 날밤에도 그는 합수본부 측으로부터 합류하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내가 왜 거기(경복궁 내 경비단)에 가요?}라면서 거절했었다. 5·16때도 {육군참모총장 이외의 명령은 들을 수 없다}면서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았다가 육사 9기 동기생 간부들과 함께 주체세력에게 붙들려가 두들겨 맞았다. 그는 12월12일 밤에도 {나는 적법한 명령계통이 있는 곳에 선다}는 소신대로 육군본부 측에 충성하다가 집무실로 쳐들어온 부하들로부터 총을 맞아 부상당했었다.
  
  그의 비서실장 김오랑(金五郞)소령은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었다. 1980년 봄에 강제 전역 당한 그는 전두환(全斗煥)정권 측으로부터 몇 번 모종의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고 은둔생활을 해 왔었다. {하루 세끼 밥 먹고 하늘을 쳐다보다가 땅이 있으니 걷고, 그리고는 잠자고…. 제가 걷기를 무척 좋아해요. 울화가 치밀 때는 술병을 들고 구파발 서오릉 주변을 왼 종일 혼자서 터벅터벅 걷다가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곤 했어요. 그러다가 서울 북쪽의 검문소 앞을 지날 때는 노태우씨가 저곳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하는 생각이 나고… 저는 군대에 있을 때부터 공언을 하고 다녔읍니다. 나는 군복을 벗는 그 순간이 인생 퇴직의 날이다. 나는 절대로 다른 직업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퇴직시기가 너무 빨리 와서 적응하기가 힘들었읍니다}
  
  침묵을 지키던 그가 딱 한번 소신을 밝힌 적이 있었다. 지난 대통령선거기간 중 12·12사태가 쟁점이 되자 김진기(金晉基) 전 육군 헌병감과 함께 기자회견을 자청했었던 것이다. 그 무렵에도 그는 취재기자들에게 {진상은 역사를 위해서 제대로 밝혀져야 하지만 12·12주모자들이 군의 요직에 남아 있으니 될 수 있는 대로 현역을 자극하지 않아야 민주화에도 보탬이 된다. 언론에서 그들을 거명하면 부하통솔이 제대로 되겠는가}라고 간곡한 당부를 하곤 했었다.
  
  이러한 鄭씨의 군과 정치에 대한 생각은 아주 명쾌했다. {군은 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존재이유로 삼고 있는 집단입니다. 죽으러 가라고 명령하면 가야 합니다. 내가 왜 12·12사태 때 그런 태도를 취했는가. 인간관계로 봐서야 전장군 쪽과 가깝지만 엄연히 육군본부의 지휘체계가 살아 있었지 않았읍니까. 명령에 복종하는 군대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민주화와 민군 관계 재정립의 기초입니다. 군인은 명령에 거의 무조건 따르도록 끊임없이 훈련받고 있는, 사고방식이 아주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복잡해진 사회를 끌고 갈 수가 없어요. 나도 아내로부터는, 당신은 가정도 군대식으로 다스린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직업군인은 옷을 벗고 정치를 해도 절대로 그 버릇을 버릴 수가 없읍니다. 군대는 상관이 하고 싶은대로 하게 돼 있는 사회에요. 그런 사고방식을 정치와 경제에 적용해보세요}
  
   장교의 소외감이 반발하면…
  
  정승화(鄭昇和)씨도 {군이 정치를 맡아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 장교들이 명령과 법을 혼동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법 절차가 허용하지 않는 것은 할 수 없다]는 법치국가의 행동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장교들이 많다는 것이다. 명령이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군인이 정권을 잡으면 불가피하게 법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는 지적이었다. 5공화국에서 법이 왜곡된 과정의 근본 요인도 그러한 군인심리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예비역 장성은 {미군들은 불합리한 규정이 있을 경우, 일단 그 규정에 따르면서 개정작업을 벌이는데, 우리 장교들은 개정하기도 전에 아예 규정을 무시해버려 사문화시켜 버리더라}고 했다.
  
  올해부터 폐지된 유신사무관제도를 창안한 것은 1975∼77년 사이 육사교장을 지냈던 정승화(鄭昇和)씨였다. 그는 육사교장시절에 육사에 지원하는 고등학생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성적도 문제였지만 출신가정도 농민, 도시빈민층이 많았다. 자칫하면 소외계층 출신의 집단이 되어 기성 사회를 반항적인 시각으로 볼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鄭씨는 전국의 일류고등학교 교장들을 몇 차례 육군사관학교로 초대했다. 학교를 보여주고는 {우수한 학생들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육사 지원생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승진에서 탈락한 장교들의 사회진출 길을 터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유신사무관제도를 朴대통령에게 건의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鄭씨는 {지금도 유신사무관제도는 필요한 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사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좋게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운영 면에서도 일부 유신사무관을 특별 대우함으로써 기존관료들의 반발을 샀다}고 분석했다. 鄭씨는 {남북 분단 상황에 있는 우리 사회가 군대를 계속해서 매도하기만 하면 장교들의 소외감과 반발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요즈음처럼 자유로운 사회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장교들만큼 고생스런 직업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진보적인 성격의 군부
  
  정(鄭)씨는 지난 대통령선거 기간 중 민주당 후보 김영삼(金泳三)씨에게 {군을 공격할 때는 일부 정치장교들만 표적으로 삼아야지 대다수의 순수한 군인들까지 몰아치면 안 된다}고 여러 번 충고했었다고 한다. 정승화(鄭昇和)씨는 바람직한 민군 관계를 위해서는 앞으로 군 출신들이 야당에도 많이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야당을 보는 군의 시각도 좋아질 것이며, 야당도 군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란 견해다. {야당은 군을 정권의 시녀라고 욕만 퍼붓고, 여당은 권력의 도구로 보면 군이 설자리가 없게 된다. 야당인 들은 군이 여당의 군대로 인식되는 사태를 막아야 할 의무가 있다. 야당은 군 출신들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데 이제는 그가 어디에 속했던가로 평가를 할 시대가 아니다}고 鄭씨는 강조했다. 기자가 지난 84년에 11대 국회의원들 중 군복무 대상자였던 1백85명을 대상으로 군복무 여부를 알아보았더니 약 27%인 50명이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로 나타났었다. 신체상의 결함 등이 군에 가지 않은 이유로 나왔지만 상당수는 고의적인 병역기피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병역기피나 탈세는 선진국에선 공직에 취임할 수 없는 절대적 조건이 되고 있음에 비추어볼 때 한국에서는 [사회에서 존경받는 높은 자리(noblesse)에는 그 만한 의무(oblige)가 따른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이 아직 겉돌고 있고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의 반감으로 해서 더욱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다. 국방 문제에 밝은 민정당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유럽에선 귀족출신, 일본에선 무사계급출신이 장교집단이 되었고 미국에선 상원의원의 추천을 받은 상류층자제가 웨스트 포인트에 들어가고 있다. 한 사회의 지배층이 장교집단의 출신 배경이 되고 있고 따라서 생리적으로 체제 옹호적이다. 우리 나라의 장교집단은 중 하층 출신들로서 체제 옹호적이라기 보다는 권력 지향적이고 때로는 사회주의적인 면까지 보여 준다}
  
   민군(民軍)개선이 최상의 전략강화
  
  정규육사 출신으로서 대령으로 전역한 뒤 이 정권의 핵심에서 일하고 있는 한 고위참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학문적인 기준으로 보면 군대란 조직은 보수적이고 우익적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군대는 오히려 왼편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한국의 군 장교집단을 획일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안보 면에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 경제 부문에 대해서는 매우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5·16 뒤와 1980년에 군부엘리트들이 취한 사회개혁 조치는 그들의 진보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장교집단의 진보성은 이론적인, 또는 철학적인 뒷받침이 없는 다분히 낭만적인 저차원의 개혁주의란 비판도 있다. 자칫하면 국가 사회주의적인 극우로 흐를 위험이 있고, 자본주의의 질서에 편입되어 그 개혁주의가 시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1980년에 등장한 군부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진보적 명분을 내걸었으나 사회개혁에 실패하고만 것도 이념의 빈곤과 함께 기업·관료 등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가 군에 의해서 변혁되기에는 너무나 덩치가 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풀이도 있다.
  
  신대진(申大鎭)씨(52)는 육사15기로 졸업할 때 대표화랑으로 뽑혔고, 장성진급도 동기생 가운데서 가장 먼저 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다. 그는 지난 3월에 1군 부 사령관직을 끝으로 육군소장에서 전역하였다. 같이 진급한 동기생들은 중장으로 승진했는데 申씨가 진급에서 밀려나고 주로 한직에서 근무하게 된 것에 대해서, 그가 정승화(鄭昇和)씨의 처남이라는 점과 관련시켜 설명하는 이들도 많다. 그는 경북 안동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대천 고등학교 출신이다. 5공화국을 움직인 정치군인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申씨도 군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앞에 등장한 현역장성들과 거의 같은 주장을 폈다. 그는 {군대는 국민이란 물에서 노는 물고기다}고 비유하면서 {사기를 먹고사는 군대는 국민이 알아주지 않으면 흥이 나지 않는 법이다}고 했다. 申씨는 {군과 국민을 자꾸만 구별하려는 생각도 문제다. 지금처럼 대중매체가 발달한 상황에서는 군인과 국민의 의식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민군 관계의 밀접함이 전력과 직결된다는 것을 한 공식으로써 설명하기도 했다. 즉, 전쟁수행능력(F)=경제력(M)×동원속도(a)인데 동원속도는 민, 관, 군의 협조체제가 얼마나 자발적이냐에 달려 있고, 이는 곧 민군 사이의 신뢰관계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것이었다. 申씨는 {민군 관계를 개선하는 것 이상의 효율적인 국방력 강화는 없다}고 말했다. 申씨는 또 군내부적으로는 장교와 장교, 장교와 사병 사이의 인간관계가 돈독하게 되어야 전력이 강화된다고 했다. 장교단 내부의 사조직을 추방하고, 구타금지 등을 통한 민주적인 부대운영이 이런 전력 강화에 보탬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군대는 어떤 경우에도 조직을 유지할 수 있어야 힘을 쓸 수 있는 집단입니다. 그 조직력은 인간관계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인간관계도 명령과 같은 공식적인 것이 아닌, 인간적 접촉에 의한 정의 교류에서 우러난 것이라야 위기에 처해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강군은 기합이 아니라 조직적인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군사정권의 최대 피해자는 군인
  
  신대진(申大鎭)씨는 {이번 군 부재자 투표가 공정하게 이루어진 것은 정치로부터 초연해야겠다는 우리 군의 상식을 반영한 것으로서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33년만에 군복을 벗은 그도 장교의 처우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았다. {일선만 돌아다닌다고 자녀 교육에 등한하다가 보니 그 흔한 피아노 교습도 시킬 수가 없었어요, 서울의 친척집에 아이를 데려 갔는데 친척집 아이가 피아노를 자랑스럽게 치고 내 아이는 그 옆에서 멍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합디다} 그는 또 {나는 약 9년간 장군 계급장을 달고 있었는데 가족과 함께 있었던 기간은 아홉 달도 되지 않을 것이다. 부대에 있으면 장성 신분으로해서 다방출입도 삼가야 하고 수도승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申씨는 또 {친구간 술을 산다고 해도 팁 3만원 줄 돈이 아까 와서 여자가 있는 술집에는 갈 수가 없었다. 집사람을 불러내 불고기를 사주는 것이 팁보다 싸게 먹히더라}고 우스개를 했다. 기자가 만난 많은 현역장교들은 [군이 사회로부터 모멸 당하고 있다}는 표현을 했다. 심지어 한 예비역 대령은 {군이 탄압 받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많은 국민들은 군이 우리 사회에서 특혜를 누리며, 자신들은 그런 군의 탄압을 받아왔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장교들은 군이 여론의 탄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극단적인 인식의 차이는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정통성이 약한 군사정권의 존재 때문이었다. 한 예비역 장성은 {군사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군인들이었다}고 주장했다. {일부 정치장교들이 군복을 벗은 뒤 정계, 재계, 국영기업체로 진출하여 마치 군 전체가 특혜를 보는 것 같은 오해를 주었다. 그러나 저들은 자신들의 특혜를 보장하기 위해 군 전체의 이익을 희생시켰다. 예컨대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星友會)를 해산시키는가 하면 동기생 모임도 갖지 못하게 하는 등 선배들을 탄압했다.
  
  예비역 장교들의 사회진출에 꼭 필요한 유신사무관 제도도 대통령 선거를 위해 희생시키지 않았나. 무엇보다도 국민의 사랑을 받던 군을 미움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한줌 밖에 안되는 정치장교 집단이 아니었던가} 노태우(盧泰愚)정권이 출범한 뒤에도 장성 출신 인사들이 국영기업체 사장에 계속해서 임명 돼었다. 민정당 국회의원후보로 나선 한국도로공사사장 정동호(鄭東鎬/육사 13기·전 육군참모차장·중장 예편)씨의 후임으로는 육사 13기로서 중장 예편자인 윤태균(尹泰均)씨가 임명되었다. 석탄공사 총재에는 육사 12기로서 보안사령관을 지낸 안필준(安弼濬/육군대장 예편·청소년 연맹 총재)씨가 임명되었다. 그는 하나회 출신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남웅종(南雄鍾)씨는 특임 6기 출신으로서 12·12사태 때 보안사 참모장이었다. 南씨의 사장 임명에 대해서는 예비역 장교들 사이에서도 비판적인 의견이 더러 나오고 있다. 盧泰愚대통령과 경북고 동창생이라는 인연을 언급하는 이들도 많았다.
  
출처 : 월조
[ 2003-06-30, 14: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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