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는 말한다(중) - 김일성 지령의 내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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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북한을 너무 모른다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비판
  
  金賢姬는 변호사란 말을 이번에 처음 들었다고 한다. 텔리비전의 퀴즈게임을 보고는 남한 학생들이 너무나 상식이 풍부한 데 놀랐다고도 한다. 金賢姬는 그러나 말끝마다 『여기 사람들은 저쪽을 너무나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金賢姬의 사고체계는 폐쇄된 사회에서 수평적 비교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단선적이고 일차원적이었다. 다원화된 남한사회를 알고 자본주의 사회의 복잡한 생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자 金賢姬의 눈은 비판적으로, 비교 분석적으로 열리고 있다. 남북한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金의 눈앞에는 흥미진진한 신개지가 열려있는 셈이다. 물론 金賢姬가 남한사회를 아는 데 이용하는 도구는 텔리비전과 독서와 수사관들을 비롯한 관계자들과의 대화, 그리고 잦지 않은 시내견문으로 퍽 제한돼 있다.
  
  金賢姬는 중학교 과정의 교과서를 읽으며 뒤늦게 재수를 하고 있다. 남한의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 김소월의 「진달래」를 읽고 『따듯하고 순수한 인간애의 아름다움을 느꼈고, 이것이 바로 문학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金賢姬는 이들 작품에 대해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흔든다』는 표현을 썼다. 북한의 문학·예술작품에 대해서는 『모두가 金日成 우상화에 동원됨으로써 깊이 안겨오지 못하고 개개인의 인간의 마음을 다치지 못한다』는 평을 했다. 『북에서도 시낭송 같은 것을 하지만 그 분위기에 휩쓸릴 뿐, 개개인의 마음에 찡한 감동으로 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온유하고, 오래 참고
  
  金賢姬는 공작원 교육을 받으면서 이성애가 일본에서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등 한국가요를 더러 들었다고 한다. 金은 지금 조용필(趙容弼)의 「친구야」, 주현미(周鉉美)의 「신사동 그 사람」, 그리고 가곡 「비목」을 좋아한다. 金은 연애나 사랑 같은 말을 입엔 올리는 것조차 기피했었으나 요사이는 조금 달라졌다. 金賢姬는 성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관한 귀절을 외고 있었다. 『사랑은 온유하고, 오래 참고, 시기하지 않으며…』 金은 『북쪽에서 사랑이란 낱말이 수령과 조국 그리고 인민에 대한 충실성이란 뜻으로 주로 쓰입니다』고 했다.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말은 『좋아한다』 『생각한다』 『각별한 사이다』 『특별한 관심이 있다』 식이라는 것이다. 신상옥(申相玉)이 만든 영화 「철길따라 천만리」에서 철도 보수원의 딸이 좋아하는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이 처음으로 나와 북한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金賢姬는 요즈음 『북의 인민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착취당하는 것이 불쌍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북한이 자랑하는 의료와 교육의 무료화를 金양은 자본주의적 논리로써 비판했다. 『북쪽에서는 농사는 학생이 짓는다는 말을 합니다. 중학교 3학년에서 대학생까지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농사에 동원되어 모내기, 김매기, 가을겆이 등을 합니다. 일반 인민들도 金日成 기념물 공사 등에 자원봉사 식으로 동원되는데 이 모든 것이 공짜입니다. 저의 옆집에는 40대 여인이 있었는데 남편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아이가 셋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노동당 입당허가를 받아 보겠다고 삼지연 지역에서 혁명사적지를 만들 때 자원해 나갔습니다. 아이들은 친척에게 맡기고 공사장 텐트 안에서 돼지생활을 하면서 몇 달 일했지만 당증도 못 얻고 돌아왔습니다. 돌아 왔는데 해골이 되어 있습디다. 이런 공짜노동에서 번 돈을 金日成이가 차지하여 수령님의 배려니 뭐니 하여 의료와 교육을 무료로 받게 한다고 선전하지 않습니까』(金賢姬는 농촌봉사를 통해서 곡괭이·삽·지게질은 물론 농약도 많이 뿌려 보았다고 한다).
  
  金賢姬는 서울시내를 이동 중에 최루탄 가스를 맡아 목이 아팠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金양은 서울의 혼탁한 공기 때문에 목이 거북해지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차 많고 사람도 많은」서울시내에서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을 보면 어질어질해진다는 金양이다. 金양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고서 다른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어가면서까지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텔리비전을 보면 여기 인민들이 생활수준이 높습니다. 노동자들과 중산층이 저렇게 잘 사는데 왜 그렇게 의견이 다르고 불평을 많이 하며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여기 노동자들에게는 그래도 먹고 살만큼은 주지 않습니까』 金賢姬는 또 한국의 언론이 왜 강도 살인 등 사회의 어두운 면만 보여주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태도이다. 인신매매 뉴스를 보고는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자를 돈벌이의 수단이나 노리개로 취급하고 있다고 비난한다』고 했다. 누군가가 『공작원으로서 배운 격술로 인신매매단을 물리칠 수 있느냐』 고 했더니 『그럴 일이 없어야죠』라고 말했다.
  
  북한의 사전도둑
  
  金賢姬는 주로 텔리비전을 본 지식에 근거를 두고서 『주부들의 생활환경과 학생들의 학습조건이 저렇게 좋은데 왜 부부싸움을 하고 데모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북쪽에 가면 하루도 못 살 것이다』고 했다. 특히 주부들이 청소를 파출부에게 시키는 등 게으름을 피우는 데 대하여 대단히 못 마땅해 한다고 한다. 수사관들 사이에는 『저 애한테 들어가면 나오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金賢姬는 모든 물건을 아낀다는 것이다. 처음에 1회용 커피를 뽑아 주었더니 마신 뒤 종이컵을 모아 보존하고 있더란다. 金賢姬는 평양외국어 대학에 다닐 때 남한에서 발행된 일한사전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강연회에 갔다 오는 사이 일조(日朝)사전이 없어졌더라 는 것이다. 북한 대학에서는 갖가지 사전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 「사전도둑」이 많다고 한다. 외교관인 아버지가 어디서 구했는지 일한사전을 가져와 그 꺼풀을 뜯어내고 썼다고 한다. 여기서는 국민학생들도 카세트 녹음기로 외국어 공부를 하는데 북한에서는 대학생들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북한의 가정에는 텔리비전이 약 20∼30%의 가구에 보급돼 있으나. 라디오는 주파수가 고정된 앰프시설로만 보급돼 있고 주파수를 고르는 포터블 라디오는 가정에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전축도 생산·보급되지 않고 외국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사오는 정도이며, 일반인들이 노래가 녹음된 테이프나 판을 살 필요가 없다고 한다. 金賢姬의 어머니는 교사였기 때문에 피아노를 칠 줄 아는데 주부가 된 이후에는 피아노가 없어 「학교에서 피아노쳤던 추억」만 이야기한다고 한다. 金賢姬는 『여기 사람들이 훨씬 몸이 좋습니다』면서 『여기서는 살빼는 것이 소원이고 저쪽에서는 살찌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안경 낀 사람들이 남한에는 너무 많다고도 했다. 우리는 북한에서 온 귀순자들이 모두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金賢姬는 우리 텔리비전에서 기자가 마이크를 갖다대면 시민들이 줄줄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신기하다는 것이다.
  
  『북조선에서는 즉석대답을 하지 못 할 것입니다. 金日成에 대한 찬사를 연구해야 하고 말조심을 해야하니까요』 金양은 『저희는 부유한 가정에 속했지만 아이들이 한창 클 때인, 중학교 시절에 식량이 모자라 배고픔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밥의 양은 많지만 반찬이 국과 된장·김치 정도로 한정돼 있어 자연히 밥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고 했다. 북에서는 동태가 반찬으로 많이 오르고 멸치는 도시락 반찬으로 주로 쓰이며 고추가루는 귀해서 싱겁게 먹는다고도 했다. 「맛내기」라는 조미료가 인기인데 특히 농촌에서는 평양에 사는 친척에게 사 보내달라고 조른다고 한다. 『여기 사람들이 군것질을 많이 하는 데 놀랐습니다. 북쪽에서는 명절에 사탕과자를 내주는데 돌덩이처럼 단단하여 남한 사람들은 아마도 먹지 못할 것입니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는 쌀에 어떤 것을 섞으면 양을 부풀릴 수 있느냐고 의논을 많이 한답니다』 북쪽에서는 최고의 손님대접이 물에 설탕을 타서 내놓는 것이라고 한다. 커피나 차는 아예 없다. 金賢姬는 『설탕물을 내놓을 정도라면 굉장히 잘 사는 고관의 집일 것입니다』고 했다. 金양은 『북한에서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남게 하여 선생님들이 과외수업을 해주고 있습니다』고 했다. 집에서는 부모가 가정교사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하교시간이 늦어 그런 부모지도를 받을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한다.
  
   남한 사회 뿌리 튼튼한 나무
  
  金賢姬는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수사관들이 무의식중에 더러 『미국 놈!』이라고 하는 데 놀랐다고 했다. 북쪽에서 배운 것에 따르면 남조선 사람들은 미국에 예속돼 미국인들한테는 쩔쩔 매고 무서워할 줄로 알았다고 한다. 金양은 덕수궁·독립기념관·현충사 등 사적지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북한에서는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이 이렇게 풍성한 것을 보고는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金양은 북청사자놀음과 같은 북쪽의 민속이 있다는 것도 모른다. 『여기는 뿌리가 튼튼한 나무이고, 북쪽은 이파리만 달린 연약한 나무 같습니다』 이것이 金賢姬의 소감이었다. 金양의 눈에는 우리 민족사를 생략하고 金日成 역사만 가르치는 북쪽보다는 남쪽에 훨씬 민족정신이 살아있고 따라서 정통성이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내의 모 대학교 총학생회가 신입생 교육용으로 만든 소책자에는 「북한을 똑바로 알자」는 제목으로 여러 가지 주장들을 싣고 있다. 「북한이 못산다고 하지만 아파트의 월세가 2원으로서 맥주 한 병 값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면서 북쪽이 주택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썼다.
  
  金賢據는 이에 대하여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월세 2원 이외에 난방비가 10원, 전기세가 3∼4원이 듭니다. 이것은 겨울기준이고, 여름에는 월세·관리비가 10원쯤 됩니다. 북한에서는 내 집이 없고 전부가 국가소유이며 개인은 빌어 쓰는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월급이 1백30원인데 흑백 텔리비전의 가격이 2백50∼3백원 사이입니다. 파마하는데 3∼4원이나 듭니다. 평양에서 맛사지할 수 있는 미용원은 창광원 지역에 있는데 12원이나 합니다. 노동자들의 월급이 70∼80원입니다. 북한에서는 개인이 자동차를 가질 수 없고 세탁기, 냉장고를 갖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므로 텔리비전이 부자냐 가난하냐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金賢姬는 『북한에서는 필터 달린 담배를 피우면 상당한 직위에 있는 사람으로 본다』고도 했다. 金양의 아버지는 배급받아 사 둔 담배 가운데 필터담배를 「사업용」으로 아끼더라고 한다. 사업용이란 무엇을 부탁할 때 쓰는 물건을 가리킨다.
  
   인분비료 만들어 바치다
  
  金質姬는 공작원교육 기간에 1백15원의 월급을 받았다. 비교적 많은 액수이다. 그 가운데 60원씩을 쓰고 나머지는 저축, 매년 6백원쯤을 만들어 집에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용돈으로는 평양시내에 있는 공작원전용 상점에 들려 화장품, 속옷, 치약 등을 샀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저금을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안 하면 동의 저금소에서 사람을 내보낸다고 한다. 세탁 비누가 없어서 양잿물, 치약이 없어서 소금으로 대용하는 일도 잦고 여자들은 크림을 선물 받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金賢姬는 중학교에 다닐 때 인분비료를 만든 경험담을 『창피하지만…』이라고 부끄러워하면서 이렇게 진술하였다.
  
  『전국적으로 지시가 내렸는데 인분을 말려 시루떡같은 비료를 만들어 제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농촌에서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분뇨를 모으기가 힘들었습니다. 요강으로 모으기도 했고 똥차가 오면 집집마다 바케츠를 들고 나가 마당에서 말린 분뇨를 주고 표를 받습니다 어머니는 식사준비중이시라 제가 맏딸로서 그 일을 했습니다. 이것도 경쟁을 붙여 많이 만든 집에는 배급특혜를 주었습니다』 이 특혜에 대해서 金賢姬는 남한사람들이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에서 말하는 배급은 공짜가 아니라 물건을 살 수 있는 권리증을 준다는 뜻이다. 인분비료를 많이 만든 집에 대해서는 좋은 물건이 나왔을 때 그것을 살 수 있는 권리증을 우선적으로 주는 것이다. 물건이 귀한 북한에서는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또는 「파는 것」이 특혜인 것이다.
  
   노점에 물건 많은데 놀라
  
  金賢姬는 서울의 노점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북한의 큰 상점보다도 물건들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상점에 물건이 있어도 대부분이 전시용 진열품입니다. 「팔아 요?」하고 물어서 「판다」고 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안팔아」하면 「그렇겠지, 뭐, 팔겠니」하고 나오지요』 金賢姬는 북한이 남한보다 못 살게 된데 대하여 나름대로 이렇게 분석하였다. 『첫째. 金日成체제 유지비를 위해 돈을 너무 많이 씁니다. 거대한 기념물을 전국에 만들고, 군사비로 쏟고, 주체사상을 국내외에 선전하는 데 돈을 뿌리고, 자동차 수입하느라 또 돈 쓰고. 둘째. 개개인의 일하고 싶은 의욕이 남한보다 약합니다. 여기서는 자기만 열심히 일하면 잘 산다는 보장이 있고 경쟁도 치열한데 저쪽에는 당에의 충실성만 불러일으켜 해결하려고 합니다. 셋째, 북쪽사람들은 단순하고 순진하지만 창발성이 적고 남한 사람들은 복잡하고 독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하고 적극적입니다』
  
  이러한 북한을 동경하고 주체사상 을 배우며 金日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대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金賢姬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북은 남쪽의 발전을 너무나 모르고 남쪽도 이북을 모릅니다. 수사관들도 저의 말을 못 미더워하더군요. 북한 선전에 속은 이쪽 학생들은 이런 사회에서도 불만이 많은데 거기서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한번 거기에 갔다 와서 이야기를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주사파 학생들이 북쪽에 가면 환영을 받을까?
  『실컷 선전에 이용한 뒤 버리겠지요』
  
  -운동권 학생들이 낸 자료는 金正日이 후계자가 된 것은 金日成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변호하고 있는데….
  『우리 인민들이 金正日을 천거한 것이 아니고 金日成이가 왕권유지를 위해서 지명한 것 아닙니까7. 金正日이가 등장한 뒤 북한에서는 유일체제를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더 활발해지고 사람들은 더욱 못 살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버섯과 야채가 비교적 풍족했었는데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것들을 모아서 수출을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는 자동차를 사 들이는 바람에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할머니는 「채소상점 앞에 종일 줄을 섰다가 사 오는 게 나의 직업이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다대포침투 무장간첩 전충남은 金正日이 여자를 데리고 원산 앞바다에서 뱃놀이를 할 때 자맥질을 하여 전복을 따 갖다바치는 쇼를 했다고 한다. 金正日은 손뼉을 치면서 이 쇼를 즐겼는데 전충남은 전복을 못 따면 혼이 나기 때문에 숨이 막힐 때까지 해저를 헤맸다고 했다. 金은 『북쪽에서는 모든 것을 꽉 막아 놓고 金日成소리만 듣게 해놓으니까 모두가 기계인간이 돼버렸습니다. 저도 여기에 왔기에 문제점을 느낄 뿐입니다』고 했다. 金賢姬에 따르면 북에도 안보논리가 있다는 것이다. 『북쪽의 생활이 곤궁한 데 대해서 이렇게 변명한답니다 남북이 갈라져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데 우리는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생활향상에 들 돈을 군사비에 충당하다가 보니까 이렇게 살수밖에 없다. 간첩이 넘나드는데 여행을 어떻게 자유화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식이지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자조섞인 말로써 「미제놈들이 원수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미제놈의 털가슴을 찌르자
  
  북한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2대 정신적 기조는 金日成에 대한 외경심과 미국에 대한 증오심이다. 金賢姬는 한국에 와서 남한이 미국으로부터 의외로 독립적인 데 대해서 놀랐다고 하지만 미국인에 대한 거의 생래적 거부감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미제놈의 털가슴을 찌르자』 『미제의 각을 뜨자』는 교육을 받고 자랐고, 실제로도 6·25때 북한지역에서 미군과 국군이 벌인 작전양태 때문에 반미감정은 북한사람들의 뼈에 사무쳐 있는 것이다. 金賢姬는 2∼6세 때 쿠바의 하바나에서 살면서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해수욕을 자주 갔었다. 아버지가 金을 고무 튜브에 태우고 손을 놓으면 저쪽 미제가 있는 해안으로 떠내려가지 않을까 공포감에 질렸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金賢姬의 반미감정 형성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황해도 신천에 있는 박물관 방문이었다고 한다. 신천에는 미군에 의해 4백여명의 어머니와 어린이들이 학살당했다는 곳이 있고 이곳을 기념관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살육의 장면을 생생하게 복원해놓고, 굴속에서 생매장되면서 남겼다는 손톱자국과 「김일성 장군 만세!」라는 글도 있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들이 창 밖으로 어린이들을 내던져 살아남게 했는데 그중 한 아이는 어른이 된 뒤 시집가서 네 아이를 낳았답니다. 그 네 아이의 이름을 「복수하리라」라는 문장이 되도록 지었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전쟁놀이와 사격에서 늘 미제놈과 그 주구인 남한괴뢰도당을 표적으로 삼고 저들을 무찔러야 남한의 인민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미국놈이라면 철모를 쓰고 허우대가 크며 겁이 많고 남한여자를 히야카시하는 사람으로 떠오릅니다』
  
  『남한 인민의 발언권 셉니다』
  
  金賢姬는 대학교 1학년 때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제 통일에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朴대통령 때문에 통일이 지연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워낙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전두환(全斗煥)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머리가 나빠서 칼부림밖에 모르는 포악무도한 독재자」라고 배웠다. 그 全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3일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사죄성명을 읽은 뒤 백담사로 떠나는 것을 金賢姬는 텔리비전으로 보았다. 『인민들의 의사가 무섭고 발언권이 세다고 느꼈습니다. 사과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것이 인민들의 힘 아니겠습니까. 여기 와서 보니까 全대통령은 성과도 있으시고 가정적으로는 비난받을 점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金日成이 같으면 그 정도의 가정적인 문제는 도대체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쪽 인민들은 金日成·金正日의 신상에 대해서 모릅니다. 金正日의 아내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신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불경한 일로 되어 있습니다.』 『全 전 대통령의 성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80년에 집권하고 나서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이렇게 발전시킨 것이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북쪽에서도 金日成과 金正日을 흉보는 농담이 있는지?
  『큰일 날 일입니다』
  -비통(秘通 : 유언비어) 으로는 돌아다닐텐데?
  『비통으로도 없습니다. 남편이 술마시고 오면 외도했나 하는 걱정보다도 말실수를 하지 않았나부터 걱정하는 사회인데요』
  
  「金日成 우스개」도 없다
  
  金賢姬는 친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진」 두 경우를 증언하였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의 여학생(주 : 북한에서는 전문학교 이전까지는 남녀 복합반 편성을 하치 않는다)이 아버지를 고발했는데 무전기가 집에서 나왔다고 했어요. 그 아이를 포함해서 그 가족이 하룻밤 사이에 없어졌습니다. 부모는 총살되고 친구는 독재대상구역에서 격리생활을 하고 있다는 편지가 왔어요. 안 해본 농사를 지으며 형제끼리 살아가자니 고생스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평양 외국어대학교와 스페인어과 학생이 있었는데 그의 형이 외국 유학중에 자본주의 국가 로 달아나려다가 붙들려 왔습니다. 동생까지 그냥 사라져 버렸어요. 북쪽에서는 가족까지 싸잡아 처벌합니다』 『金양의 집안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물으면 눈물부터 흘린다.
  
  金賢姬는 남쪽에 와서 비로소 金日成의 뒷머리에 혹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북쪽에서는 그 혹을 직접 본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金日成의 신상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불경하고도 위험하므로 퍼뜨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 같은 나라에서도 스탈린을 빗대는 우스개가 돌아다녔다. 「비통」에서조차 金日成·金正日에 대한 우스개가 없다는 것은 북녁 사람들의 외경심과 공포심의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金賢姬는 재미있는 말을 하고 있다. 『남한 사람들은 KAL기폭파사건을 왜 그렇게 빨리 잊어먹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비행기를 남한이 폭파시켰다면 두고두고 선전하고 군중집회를 열면서 써먹었을 것입니다』
  
   남한이 통일의지 더 강해
  
  金賢姬는 통일의지에 대해서는 남한 사람들과 남한당국이 북쪽보다 강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일이라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데서 출발하는데 북쪽에서는 남한에 대해서 도무지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한다. 金賢姬는 金日成의 통일정책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고려연방제는 남한에 제의한 것일 뿐 실질적인 통일정책은 무력적화통일입니다. 고려연방제를 제의했으나 남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무력적화통일 방안을 고수한다는 논리랍니다. 적화통일의 단계는 지하당건설→남한의 혁명역량 키움→반정부봉기→이를 북에서 지원하는 형식으로(남침의 방법도 포함) 통일을 한다는 겁니다. 동시에 국제적으로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金賢姬는 『수령님 명령만 내리십시요/단숨에 달려가 원쑤 미제/이 땅 에서 소탕하리다』는 가사를 읊으면서 『이것이 바로 저쪽의 통일정책입니다』고 했다.
  
  金賢姬는 체험에서 우러나온 신념이 된 듯 『개방만 되면 신으로 믿었던 金日成의 잘못이 드러나 북한체제는 순식간에 무너질 것입니다』고 했다. 『해방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는 金日成만 알기 때문에 더 교조적인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안다면 달라지지요. 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귀순한 체코 유학생의 예가 그렇지 않습니까. 젊은이들은 용기가 있기 때문에 金日成에 대한 반대도 빠를 것입니다』고 말하더란다.
  
  -통일이 되면 남북한 사람들이 같이 살 수 있을까?
  『처음에는 잘 맞지 않는 점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성은 어쩔 수 없고 인간의 속성은 버릴 수 없습니다. 자유를 주어 행복하게 해주면 이념은 사라지고 인간의 본성이 드러날 것입니다. 金日成이만 죽으면 북한도 빨리 달라 질 것입니다. 金正日에 대해서는 저쪽 인민들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북한 팀과 남한 사이의 국제경기는 북한이 이긴 것만 방영한다고 한다. 어느 권투시합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서로 치고 받는 것을 텔리비전으로 구경하던 북한사람들이 하던 딸을 金賢姬는 기억하고 있다. 『북남이 갈라져서 저런다. 어서 통일이 돼 나라 힘이 강대해져야지. 무슨 비극이람』 金賢姬는 『국제경기에서 남한과 소련팀이 싸우면 북한사람들은 어느쪽을 응원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글쎄요… 반반씩일 것 같습니다』고 했다 (남한 여론조사에서는 북한과 미국팀이 붙었을 때 북한팀을 응원하겠다는 쪽이 압도적이었다).
  
출처 : 월조
[ 2003-06-30, 15:3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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