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는 말한다(상) - 5백일에 걸친 김현희 증언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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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북한, 이렇게 산다
  
   여대생은 공부 언제 합니까?
  
  김현희(金賢姬)는 대학 입학 때. 공작원으로 선발될 때 신체 검사를 받았다. 산부인과 항목도 포함돼 있다. 공작원으로서는 순결성이 필수조건이라고 한다. 오로지 金日成 부자와 당에 대한 전인 격적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거기에 방해가 되는 남자의 존재는 허용되지 않는다. 金賢姬는 어느 텔리비전의 드라마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렇게 큰 아파트에서 풍족하게 사는데 왜 주부가 불평을 합니까』 金賢姬는 북한의 여자들이 북한의 남자와 남한의 여자보다도 훨씬 큰 고생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은 남녀 평등을 명분으로 삼아 주부들을 일터로 내보내고 있고 가정에 돌아와서는 주부로서 가사를 돌보게 하고 있어 2중의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金賢姬는 서울거리에 술집이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라고 한다. 金은 또 한국의 여자대학생들이 몸치장에 열심인 것을 보고는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는 것이다.
  
  金賢姬는 『남한 사람들이 대체로 북한 사람들보다 체구가 큰 것 같다』고 했다. 해방전의 인류학적 계측에 따르면 한국인의 체격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커지는 것으로 돼 있었다. 金은 『북한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여자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찬찬히 살펴보면 뚱뚱하고 못생긴 주부들은 대체로 고위직의 아내들이고 예쁜 사람들은 하류층이다』고 말했다. 이것은 과거의 계층구조가 역전된 때문으로 분석된다. 金賢姬가 말한 「북한의 여성 생활」 가운데 몇 대목을 간추려 본다. 「북한의 여성들은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원 직장생활이나 노동에 종사하여야만 식량배급 등 의식주 해결을 할 수 있다. 평양에 거주하는 고학력 여성들은 교사·접대원 등 사무직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으나. 학력이 낮거나 지방거주자들은 건축·토목·농사 등 남자들과 똑같은 중노동에 종사하며 노동 후 가정에 돌아와 가사를 돌보아야 하는 이 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북한 일반 주부의 일과는 보통 새벽 4시30분에 기상, 남편과 자녀의 도시락 준비 등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새벽 6시에 출근하여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저녁식사 준비를 비롯하여 세탁·청소 등 가사 정리를 하고 나면 보 통 밤 11 시에 잠자리에 들게 되어 있다. 다른 가족들은 부엌일은 주부 노동이라 하여 도와주지 않는다」
  
  「북한 노동법에는 임산부의 법정 휴가일이 산전 30일. 산후 42일로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해당직장의 노력경쟁운동, 당행정간부 등의 종용형식으로 산전 10일, 산후 20일 정도만 쉬고 나머지는 충성심을 보이도록 휴가 반납을 강요하므로 갓 태어난 유아를 탁아소에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김현희는 조사기간 중 텔리비전 드라머나 뉴스 등을 시청하고 『북조선 여자들은 여가생활을 할 수 없음은 물론 자신을 가꾸지 못해 겉늙어 보이는 데「이곳 여자들은 직장이나 가정에서 깡깡거리는 것을 보니 남조선은 여성들의 천국같다』고 한 적도 있다. 「평양여성들은 과거엔 파마를 많이 했으나 최근에는 생머리를 기르는 것이 유행하며 화장품으로는 살결물(로션), 크림, 물크림, 분, 볼연지, 입술 연지, 눈썹연필 등이 있다. 종류도 적고 질이 극히 낮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생산량이 아주 적어 구하기가 힘들다」
  
  「여성들의 속옷인 팬티나 브래지어 등은 조총련 동포들의 헌납으로 공장을 지어 생산하고 있다. 생산량이 너무 적어 일반 여성들은 구경하기 힘들다. 대부분은 천을 사다가 직접 만들어 입는 실정이며, 여성들의 필수품인 생리대도 평양이나 시골을 불문하고 삼베나 광목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당간부·부인 등 평양시내의 멋장이 여자들이 검정색이나 자주색 빌로드 한복에 흰 동정을 달아 입는 게 아름답게 보여 모든 여성들이 부럽게 생각하며, 중류층 여성들은 외화상점에서 구입한 나일론 꽃무늬 주름치마가 최고의 외출복이다」 「요즘 여자들 사이에 반지를 끼는 것이 유행이나 금반지·은반지를 낄 능력이 없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탄피를 오려서 구리반지를 손수 만들어서 끼고 다니고 선글라스를 무척 가지고 싶어한다」
  
   북한 여대생들의 결혼관
  
  「여대생을 비롯한 북한 여성들의 소망은 경제적 안락이며 권력·명예를 중요한 생활가치로 인식하고 있다. 과거에는 출신성분이 절대적 선택기준이었으나 최근에는 직업·출신성분·배경·성격 등의 순으로 중요시하며 미혼여성들의 남편 직업 선호도 순위는 『①중앙당 간부: 절대적 권력행사, 출세 보장 ②외교관, 무역기관: 해외생활, 외제품 사용 ③정무원 각급기관, 사법 정보기관: 권력행사, 생활혜택 ④사무원 등 관리성원: 의식주 해결, 중노동 모면 ⑤의사, 기술자: 장래유망, 안정성 ⑥군관: 잦은 근무지 이동 등 불안정한 생활 ⑦교원: 발전성 없고 고정된 생활 ⑧노동자, 농어민: 절대적 기피대상』으로 돼 있다」 「지방의 경우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자는 무조건 선호하며, 조총련·북송교포 등 소위 귀국자들은 해외 친인척들의 금품지원 등으로 인해 물질적인 면에서는 일반 북한 주민에 비해 훨씬 나은 편이나 자본주의에 물든 동요계층이고 남조선과 연계를 맺고 간첩활동 할 가능성이 많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어 결혼을 꺼려한다」
  
  「도시 미혼 여성들이 농촌으로 시집가는 것을 극력 기피하고 농촌 미혼여성 역시 농촌생활을 탈피하기 위해 농촌청년과 결혼하는 것을 싫어하자 이를 계몽하기 위해 『대지 뿌리 내린다』라는 계몽영화를 제작 상영하여 농촌 남녀와의 결혼권장 및 이농현상 방지를 시도한 바 있다」「북한 여대생들의 이성교제는 과거에는 연애사실이 발각되면 비판을 받고 퇴학 처분을 하는 등 강력히 억제하였으나 지금은 묵인하는 추세에 있다. 남녀 대학생들의 이성 교제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동강변, 공원, 식당 등에서 데이트하는 남녀를 흔히 볼 수 있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할 뿐 아니라 애인의 집을 자주 찾아다니는 등 여대생들이 이성교제에 오히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해 자살했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북한에서도 미혼모, 이혼 문제가 있다. 부모가 헤어지면서 아기의 양육 문제로 다투다가 서로 맡지 않겠다고 열차간에서 집어던져 버리는 장면의 계몽영화를 본 적이 있다」
  
  金賢姬는 공작원 교육을 받으면서 몇 차례 외국여행을 했다. 그때 사온 라디오를 집에 가는 기회가 있어 동생에게 선물로 주었다. 동생은 다음날 이 라디오를 듣고 사회안전부를 찾아가 신고, 주파수를 북한방송만 듣도록 고정하는 땜질을 받았다고 한다. 안전 부에서는 수시로 라디오 검열을 실시 주파수 고정여부를 조사한다는 것이다. 金은 『북쪽에서는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시면 당에 대한 불평·불만을 털어놓지 않을까 하여 아내가 걱정을 한다』고 했다. 金은 북한이 4중으로 된 주민통제체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국가보위부 담당지도원에 의한 감시(동단위 1명)
  사회안전부 감찰지도원에 의한 감시(분주소당 20여명)
  해당 공장기업소 초급당 비서에 의한 감시(기업소당 1명)
  인민반장 및 인민반 경비원에 의한 감시(30세대당 1명)
  인민반회의를 통한 주민 통제
  
   성문제 심각
  
  북한의 성 문제는 심각한 사회현상 중의 하나이다. 북한에는 남한처럼 접대부가 몸을 파는 술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창녀들이 집단 거주하는 곳이나 러브호텔도 없다. 겉으로 봐서는 성 문제가 없는 것이다. 양성적인 욕구의 배출구가 없기 때문에 남한과는 다른 양상으로 성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간통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직장에서는 간부가 직위를 이용하여 아래 사람에게 성을 요구하는 일이 잦고, 항구도시와 국경도시에서는 외국물건을 얻기 위하여 일부 여성들이 성을 도구화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안기부 수사관들은 북에서 내려온 사랑들이 혼외정사의 경험을 많이 털어놓는데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귀순자들은 한국의 음식점이나 술집에 데려가면 가끔 오해를 한다고 한다. 여자종업원과 짙은 농담을 한 뒤에는 당연하다는 듯 성을 요구하며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그런 농담이 가능할 정도이면 성 관계는 자연스러운 귀결인데, 그런 습관을 남쪽에서 적용하려니까 엉뚱한 짓으로 비치는 것이다.
  
  최근 평양을 찾아간 관광객들의 증언에 의하면 외국인을 상대로 한 창녀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들이 정부의 허락 하에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金賢姬는 이렇게 진술했다. 「80년경부터 평양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섹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불평과 외화벌이의 일환으로 평양 보통강여관을 매춘 허용장소로 지정하고 외국인에 한하여 비공개적으로 매춘 행위를 허용하였으며, 동남아 여성들을 초대소에 수용·교육하여 매춘행위를 시킨 적도 있다. 매춘행위를 하는 여자들은 『딸라 처녀』라고 부른다」 「외화와 관련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데 외화를 소지하고 있는 집에 강도가 자주 들며, 여관 접대원들이 외화를 벌기 위하여 외국인과 동침하는 사례가 많아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평양은 꾸며진 도시
  
  金賢姬는 요즈음 신문이나 방송에 난 북한방문기나 소개필름을 보고서 『북의 실정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평양을 주로 소개하는데 평양은 외국인을 위해서「꾸며진 도시」이며 거대한 선전용 도시일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金은 『평양에 산다는 것은 선택된 행운이며 지방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다』고 말하고 있다. 평양을 통해서 북한체제를 알려고 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라는 말인 듯하다. 金은 평양에 대해 이렇게 진술하였다. 「평양을 「붉은 혁명의 도시」라고 하면서 선전 도시화할 목적으로 인구수를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함과 동시에 거주주민을 알짜로 꾸리기 위해 거주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몇 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직장, 인민반별로 출신 성분이 나쁜 자. 과부, 신체불구자, 혼혈아, 중병환자 등 조그마한 결함이라도 있는 가구를 색출하여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바 이것을 『소개사업』이라 한다. 과부들은 부화사건(간통)으로 말썽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맹아·농아·난장이 등 신체불구자는 평양을 찾아오는 외국 방문객들에게 나쁜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지방으로 강제이주를 시키는데 평양시내에는 신체불구자를 위한 시설이나 교육기관이 일체 없다. 평양에 대해서는 다른 지방도시와는 현격한 우대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지방사람들에게는 평양 거주자들이 선망의 대상이다. 평양에 나들이 가는 것을 외국여행 가는 것만큼 동경하고 있으나, 평양방문도 할 수 없다」 「주민들의 의식주 생활에 있어서도 쌀 배급이 평양에서는 쌀8 : 곡2 또는 쌀7 : 잡곡3의 비율이나 지방은 쌀2 : 잡곡8 또는 쌀3 : 잡곡7의 비율이며 기타 의류, 신발 등 공산품 공급과 간장·된장·기름 등 식료품의 질량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는 평양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일수록 차별이 심하다. 대학진학의 경우에도 평양거주 학생들이 지방대학에 가는 경우는 없으며 지방에서는 출신성분·성적 등이 특별히 뛰어난 학생들을 엄선, 정원의 20%이내에 한하여 평양에 있는 대학 진학을 허용하고 있다. 평양에서 대학에 다니는 것 자체를 크나큰 긍지로 생각한다. 86년 2월경부터 김정일의 지시로 주민복장 규정을 하달했다. 특히 평양의 경우 「규찰대」를 조직하여 여성의 바지착용, 국방색 점퍼 검정색옷 착용을 일체 금지토록 하고 1회 위반에 5원의 벌금을 징수하고 있다」
  
   가스 순찰대가 연탄중독 점검
  
  金賢姬는 「가스 순찰대」란 조직에 대해서 아주 재미있는 설명을 하였다. 북한에서는 가정에서 분탄을 배급받아 직접 연탄을 찍어 사용하고 있다.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많다. 남한의 반상회조직과 비슷한 인민반에서는 가스중독사고를 막기 위해 방범순찰대와 비슷한 가스 순찰대를 만들어 새벽 2∼4시 사이에 관할 주택을 돌게 한다고 한다. 문을 두드려 잠을 깨워 가스에 취하지 않았음을 도장으로 확인 받은 뒤 돌아간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잠을 제대로 못 자게 한다』고 불평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金賢姬는 북한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는 기간에 몇 차례 집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집으로 갈 때는 반드시 배낭에 자신이 먹을 식량과 비누, 치약 등 일용품을 넣어 갔다고 한다.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명예회장도 북한에 갔다가 온 뒤 『친척들이 쌀밥 먹는다는 것을 자랑하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鄭회장이 『너무 쌀밥만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잡곡도 섞어 잡수셔야 합니다』고 했더니 친척들은 『사실은 우리도 잡곡밥을 많이 먹네』라고 실토하더라는 것이다.
  
  「밥은 굶은 사람이 많이 먹고 고기는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 그대로 金賢姬는 서울에 와서 기름기 많은 육류를 싫어하고. 과일을 많이 먹는다. 金은 음식종류에 대한 상식도 퍽 얕아 이름을 모르는 음식이 많다. 「북한에는 86년 수재로 인한 농작물 피해의 영향으로 최근 식량사정이 악화, 식량과 물자부족으로 인하여 생활 필수품에 대한 도둑이 심해 『인쥐를 단속하자』는 구호가 나돌고 있다. 당 중앙부에서는 평소에도 식량배급에서 『양곡 절약운동』이라 하여 15일분 중 2일분을 공제 지급해 왔었는데 최근에는 입쌀대신 알량미로 지급하면서도 1년분 중 2개월 분을 절약미라고 하여 헌납을 요구하고 있다. 식량절약 방법의 하나로 인민 반장을 통해 식량절약 실적을 조사하고 절약을 많이 한 세대에는 『상품 배정표』를 우선적으로 제공하거나 배급시 일정한 양의 절약분을 제외하고 배급받으며 『절약증명서』라는 것을 발급한다.
  
  반찬 등 여타 식료품은 공급제로서 가까운 식료품 점에 가서 식구 수에 따라 간장·된장·기름·계란 등을 산다. 양을 미리 제한해 놓았기 때문에 사간 만큼의 양을 장부에 기록하고 도장을 받아야 한다. 특히 육류로는 개·닭·오리고기가 기본인 바 4·15행사와 같은 주요명절에 조금씩 배급받을 수 있다. 쇠고기·돼지고기는 구경하기가 힘들다」「또한 초대소나 당간부들을 제외하고 일반주민들은 4월까지는 야채를 먹어 볼 수 없다. 참외·수박·딸기 등은 우선적으로 공급되는 평양의 경우에도 먹어보지 못하고 지나는 경우가 허다하며 바닷가에 사는 주민이 아니면 평생 생선회를 먹어보지 못한다」
  
   광고프로 가장 즐겨
  
  金賢姬가 가장 즐겨 보는 텔리비전 프로는 광고다. 이것은 북서 온 사람들과 남한 어린이의 공통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장면이 자주 바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기한 상품들이 소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金은 소설을 좋아하지 않으며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북한이 영화를 선전·교육의 도구로써 활용하고 있어 그 영향을 많이 본 것 같다. 특히 신상옥(申相玉)감독이 북에 가서 만든 영화는 빠짐없이 다 보았다고 한다. 金賢姬가 가장 재미있어 한 영화는 북쪽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을 때 본 「마타하리」였다고 한다. 그 영화를 보면서 마타하리와 같은 여자간첩이 될 자신의 운명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金賢姬는 북한영화는 너무 정치색깔이 짙어 신물이 난다면서 인간적인 면이 강한 인도영화가 재미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화는 1950년대 남한사회에서처럼 가장 인기 있는 오락이다. 金賢姬는 북한체제가 유지되는 이유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렇게 설명하였다. 「첫째, 북한 사람들은 자유를 경험 한 적이 없어 자신들의 억압 상황을 비교 할 만한 근거를 갖지 못하고 있다. 북한 사회는 조선봉건시대에서 일제로 넘어갔다가 곧바로 김일성체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일제를 경험한 사람들도 줄어들어 이제는 김일성체제만 경험한 사람들이 대다수가 돼 있다. 둘째, 가차없는 처단과 숙청. 셋째, 계속전인 주민 감시」
  
   종교적 광신과 인간주의의 대결
  
  金賢姬는 지난해 11월29일 KAL858기 폭파사건 1주년 행사로서 유족이 현장 부근에서 위령제를 올리기 위해 방콕으로 떠나는 장면을 텔리비전으로 보면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저주하는 말을 하더라고 한다. 金賢姬의 뉘우침은 진실 되게 보인다. 金日成체제에서 당과 金日成 부자의 지시를 무조건적 절대성으로 신봉하도록 교육받은 金은 한국에 와서 비로소 비판적, 상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金은 『비교할 눈을 가졌을 때는 이미 일을 저지른 다음이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수사관들이 북한 사람들을 비판하면 『그 사람들 죄라야 그 곳에 태어난 것밖에 더 있어요』라고 톡 쓸 때도 있다. 金賢姬는 뉘우침과 어머니 생각, 그리고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늘 무거운 표정이다. 그를 관리하는 수사관들은 金의 안위에 대한 걱정으로 신경과민 중세까지 보여 아내로부터 『사람이 달라졌다』는 비난을 받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金의 옆에는 늘 2명 이상의 수사관이 붙어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金賢姬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바람을 쐬게 하고 싶어도 그러다가 교통사고나 테러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극히 삼간다는 것이다.
  
  金賢姬는 북한체제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형이었다. 金日成주의는 공산주의라기 보다는 종교이며 金日成을 교주로, 북한체제를 종교집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시각이라는 것이 많은 북한전문가들의 견해다. 그 金日成 부자의 지령에 의해 별다른 양심의 거리낌없이 1백15명을 죽일 수 있었던 이 아리따운 처녀는 눈앞에서는 벌레 한 마리 죽일 수 없는 여린 마음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金賢姬가 이제 金日成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북의 체제에 대한 남의 우월성 뿐 아니라 종교적 광신에 대한 인간적 합리주의의 승리를 증명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2천만 북한 주민들이 金賢姬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최근 체코에서 유학 중 귀순한 북한 대학생은 남쪽의 압도적인 물질의 우월성을 인정하면서도 전쟁이 나면 북한이 이길 것이라고 했다. 金日成 명령만 떨어지면 수백만의 북한 젊은이들은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에 대한 종교적 열정으로써 마치 순교자처럼 생명을 던지고 남쪽으로 쳐내려올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金賢姬는 양심의 가책과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느끼면서도 金日成의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열 달이 걸렸다. 「金日成의 딸」이었던 金賢姬가 「김원석(金元錫)의 딸」로 돌아온 인간회복의 과정이 남북대치 상황에서 반드시 남한체제의 승리를 예고한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출처 : 월조
[ 2003-06-30, 16: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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