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는 말한다(상) - 5백일에 걸친 김현희 증언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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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가책으로 인간회복 유도
  
  ㅎ과장은 金賢姬의 신문을 맡은 수사관들을 불러 이런 지침을 내렸다.
  첫째 북한이 이 여자에게 교육한 허구를 타파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유도한다.
  둘째, 한국말을 다 알아듣고 있으니 한국의 경제발전, 민주화의 과정, 우리 민족의 역사를 설명하라. 이 여자가 북한의 교육이 만든 고정관념을 스스로 깨고 저절로 배신감을 갖도록 이끈다.
  셋째, 인도적 대우로 일관하자. 우리도 같은 전통과 사고방식을 가진 동족임을 일깨워주자. 넷째, 절대로 윽박질러서는 안된다. 마유미의 진술이 허위라는 것을 과학적 반증을 대어 반박하라. 안기부 수사단은 신문팀을 구성할 때 ①북한 공작원과 북한 여자의 생리에 정통한 사람 ②중국어와 사투리 및 지리 풍습에 밝은 사람 ③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으로 혼합 편성하였다.
  
  한 수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보통 간첩은 신문을 시작한 지 3일만 지나면 모든 것을 술술 불게 됩니다. 고문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럴 필요가 있어야지요. 그들은 확신범입니다. 그런 확신을 어찌 고문으로 꺾을 수 있겠습니까. 일시적으로 그를 굴복시킨다 해도 순순히 자백을 하겠습니까. 간첩들을 돌려놓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국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면 2∼3일이면 사랑이 증오로 바뀌듯 순식간에 돌아서서 북을 욕하기 시작하지요. 북의 선전에 속은 데 따른 배신감과 남쪽의 진상을 확인한 충격으로 단숨에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탈출합니다. 김현희(金賢姬)가 8일만에 자백한 것은 오래 걸린 겁니다. 여자이니까 그렇지요. 어머니, 아버지 생각에 연연하다가…』 다른 수사관은 金賢姬를 수사하는 데 있어서 우리 국민과 언론, 그리고 고위 간부들이 잘 참아주었다고 말 했다. 수사실무자들을 들볶지 않고 잘 기다려 주었다는 뜻이다. 수사에서는 상관이 아래 사람을 독촉하면 무리를 하게 만들어 수사를 망치는 수가 종종 있다. 상관이 수사현장에 나타나 신문에 간여하는 것도 금물로 돼 있다. 신문담당자들은 겉으로는 넉넉하게 金賢姬를 대했지만 속은 탔다. 그들은 이빨 닦을 시간이 없을 정도였고 잠은 하루 2∼3시간에 그쳤다. 자백을 받아내는 것보다도 金의 신상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일이 더 괴로웠다고 한다.
  
   한자 시를 써 중국인 행세
  
  김현희(金賢姬)의 태도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빨리 죽여달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식사도 거부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18일부터 식사를 시작한 뒤에도 중국어와 일본어를 써가며 한국인이 아니라고 강변하였다. 한 수사관은 『우리는 마유미가 한국인이란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으나 상관들 중에는 「정말 맞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첫 신문때 자동 판매기에서 코피를 뽑아와 金賢姬에게 주었더니 뜨겁다고 후후 불면서 마시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고 했다. 그 이외에도 하체가 발달한 점. 소지품의 하나인 수첩에 적힌 점자 암호 표시, 자신의 침구를 군대식으로 정리하는 습관 등등이 金을 북한 공작원으로 확신하게 하였던 근거였다.
  
  서울에 온 다음날인 12월16일부터 金은 중국어와 일본어로 신문에 응했다. 『나는 흑룡강성 태생의 백취혜로서 광주에서 살았다』느니 『86년 7월에 광주에서 마카오로 불법이주, 도박장 종업원으로 생활하던 중 하찌야 신이찌를 만나 그의 양녀로 입양돼 일본에서 살고 있다』고 사리에 닿지도 않은 거짓말을 계속했다. 한자로 시를 써 보이며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金賢姬에게 한 수사관이 『11월에 일본을 떠났다고 하는데 그때 일본 수상이 누구냐』고 물었다. 金은 나카소네라고 이야기했는데 사실은 다케시타였다. 나리다 공항을 통해 출국했다고 하여 공항의 지리적 상황을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본 승용차의 운전석이 어디냐고 했더니 『왼쪽이다』고 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고 있느냐』고 다그쳤다. 金은 『외출을 거의 안 했고 할 때도 다른 사람을 따라서 땅만 보고 다녔다』고 변명하는 것이었다.
  
  金은 일본에는 1년밖에 있지 않았다면서도 일본어를 곧잘 했다. 중국에는 20여년간 살았다면서 중국어 실력은 별로 좋지 않았다. 金은 흑룡강성에 태어나 그곳에서 오래 살았다면서 말은 북경어로 하는 것이었다. 金은 중국에서 호떡을 많이 먹었다고 했다. 호떡은 중국의 상류층에서나 가끔 먹을 수 있는데, 하류층 생활을 했다는 金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였다. 한 수사관이 이렇게 물었다. 『일본에서 텔리비전을 많이 보았을 텐데 그 상표가 뭐였지요』 金은 무심코 『쯔즈지』라고 했다. 쯔즈지는 진달래를 뜻하는 일본어인데 북한에서 생산하고 있는 수상기 상표가 쯔즈지였다. 어이없는 답변도 일단은 받아두고 『쯔즈지가 무슨 뜻인데?』하는 식으로 꼬치꼬치 캐물어 허위의 구조가 저절로 밝혀지게끔 파고들었다. 그러면 金은 몸이 아프다면서 드러눕기도 했다.
  
   화려한 외출
  
  12월22일 저녁 6시 무렵에 수사관들은 김현희(金賢姬)를 승용차 뒷좌석 가운데에 태워 외출을 나왔다. 광화문, 롯데호텔, 시청 앞을 지나 남산에 올라 연말의 부산한 서울야경을 내려다보게 했다. 수사관들이 차중에서 소감을 물었더니 金은 중국어와 일본어로 『건물이 밝습니다』고 했다. 金賢姬는 자백을 시작한 뒤에는 더 구체적으로 소감을 피력하였다. 『그때는 건물보다는 행인들, 특히 여자들의 옷차림과 화장술 및 인상을 더 유심히 보았습니다. 여자들은 한결 같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복장이었으며, 명랑한 표정이더군요. 어린이들은 포동포동 살이 쪄 있고…. 저는 유럽에 가서는 그들이 우리보다 잘 살아도, 우리는 분단국가이니까 하면서 자위했었습니다. 남한사람들은 유럽사람들보다도 더 잘 사는 것 같아 자랑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조선 인민의 반은 기아선상에 있다는 북한에서의 이야기가 완전한 허위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金賢姬가 한국말을 하면서 자백을 시작한 것은 서울야경을 본 다음날인 12월23일 오후 5시께부터였다. 그때의 신문은 응접용 소파에 金을 앉혀놓고 잡담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날의 서울구경으로 심경변화가 급속하게 진행중임을 눈치챈 수사관들은 金에게 은근히 결단을 재촉하는 말을 툭툭 던지고 있었다. 金은 『내일 아침에 말씀 드릴께요』라고 했다. 『결단은 빨리 내릴수록 좋단다』 『이름만이라도 한번 들어볼까?』 金은 아주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끊어가며 얘기하였다. 『金…賢…姬…』
  
   8년만에 되찾은 이름
  
  金은 그 말을 한 뒤 입을 손으로 가리고 다리를 꼬면서 부끄러워하였다. 공작원으로 선발된 지 8년만에 처음으로 본명을 말하니까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 뒤에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대해 한 수사관은 이렇게 받아주었다고 한다. 『너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 인간회복을 한 거야』 수사관이 『어디서 살았느냐?』고 물었다. 金은 『평양에서 살았습니다』고 대답했다. 생년월일, 직업 등 구체적인 신원관계를 캐묻고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때 여자수사관이 방으로 들어왔다. 『저 애가 이제 한국말 하네?』 金賢姬는 부끄러워하는 몸짓을 하면서 여자수사관의 팔뚝을 툭 치며 말했다. 『언니, 미안해』 한 번 말문을 열자 金은 모든 것을 쏟아놓고 싶은 욕망에서 안달을 하기 시작했다. 수사관은 오히려 느긋하게 나왔다.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하자』고 여유를 보였다. 그러면서 타일렀다고 한다. 『정말 올바른 선택을 하였다. 이 결심을 변치 말고 정직하게 진술해주기를 바란다』
  
  저녁식사 후 잡담 중에 金이 습관적으로 일본어를 쓰니까 수사관이 이를 꼬집었다. 金賢姬는 얼굴을 붉히며 몸을 비틀었다. 金鷺姬는 자백을 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거짓말도 한계에 이르렀고, 북에서 교육받은 남한의 사정이 모두 엉터리임을 깨달았으며, 남쪽 사람들도 동족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수사관들이 진실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金賢姬가 자백을 시작한 뒤 한 수사관이 꿈 이야기를 했다. 『며칠 전 꿈에서 내가 재떨이를 던져 동료를 죽게 했다. 회사 뒤의 숲 속에 파묻었는데, 이 사실을 숨기느라고 꿈속에서 무진 고심을 했다. 다른 동료가 죽은 친구를 들먹이면서, 「왜 그 친구가 나오지 않지. 자네가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으니 알 것이 아닌가」하고 추궁하는데 미칠 지경이었다. 거짓말로써 위기를 모면하려고 진땀을 흘리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흔들어 깨웠다.
  
  깨고 나서도 꿈속인지 아닌지 한 참 어리둥절해 있었다. 꿈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얼마나 행복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金賢姬는 『거짓 진술을 한 8일간은 제가 꼭 그런 심정이었습니다』고 실토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존재는 나이고 이 세상은 나와는 별개로서 돌아가고 있다는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수사관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으며. 그들이 웃고 하는 것이 저와는 아무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디다』 자백을 시작한 뒤 金은 얼굴이 밝아지고 행동도 조선인으로 돌아갔다. 『종이 태운 것 아니냐』고 능청을 떨었던 김도 먹고, 『냄새난다』면서 손을 휘휘 내저었던 마늘과 김치도 즐기기 시작했다.
  
   자백 뒤에도 金日成 옹호
  
  김현희(金賢姬)는 거짓 진술을 하면서 버티는 가운데에도 수사관들의 거동을 분석적으로 관찰했었다고 한다. 金이 서울로 붙들려온 다음날은 대통령 선거날이었다. 투표를 하고 온 수사관들이 자기들끼리 『나는 ○○○을 찍었다. 너는 누구를 찍었느냐』고 잡담을 하는 것을 엿듣고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독재치하에서 언론의 자유가 전혀 없는 나라라고 배웠는데 딴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안기부수사관들의 자유로우면서도 투철한 사명감을 관찰하면서 북쪽의 지도원들과 비교하기도 했다고 한다. 안기부수사관들은 상관이 내려와도 일어서지도 않고 마치 동료를 대하듯 하는데 그러면서도 일에 있어서 만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몰두하더라는 것이다. 북쪽의 지도원들은 상관 앞에서는 쩔쩔 매고 초대소에 와서는 대접받는 일에만 신경을 써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것이었다. 수사관들이 운전수에게 존대말을 하는 것을 보고도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북쪽에서 온 사람들은 안기부 직원들이 생각보다 끗발이 약한 것을 보고 놀란다고 한다. 차를 탈 때나 표를 살 때 줄을 서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정착한 귀순자는 『아파트 입주권을 하나 구해달라』고 예사로 부탁을 한다는 것이다. 북의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보다 훨씬 권위에 종속적인 면을 보인다는 얘기다.
  
  김현희(金賢姬)는 수사관들끼리 주고받는 우스개를 들을 때가 가장 괴로웠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다 알면서도 중국 여자 행세를 하려고 웃음을 참아야 했는데, 나중에는 화장실에 가서 입을 막은 채 웃고서 나왔다고 한다. 金賢姬는 신문을 받으면서 가끔 북한의 공작지도부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더라도 한다. 수사관이 『폭탄과 같이 터져 죽는 방법을 택했더라면 완전 범죄가 되었을 텐데』라고 하니까 金은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했더라면 제가 잡혔겠습니까. 수사는 이렇게 치밀하게 하는데 계획은 순전히 형식주의로 했으니…』라고 했다. 金賢姬는 요사이 성경을 읽고 있다. 어느날 이런 소감을 말하더라고 한다. 『성경이 어쩌면 그렇게도. 주체사상과 비슷한지 모르겠어요. 성경을 먼저 공부하고 주체사상을 배우면 이해가 빠를 것 같아요.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님이란 이름 대신에 金日成이란 이름을 집어넣어도 될 것 같아요』 물론 이 말은 金賢姬가 金日成이란 우상으로부터 꿈을 깬 뒤 한 이야기였다.
  
  김현희(金賢姬)는 서울로 압송된 지 8일만에 자백을 시작함으로써 수사에 협조를 하게 되었으나 이것이 곧 金日成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金은 북한체제를 비판하면서도 한 동안 金日成을 옹호했다고 한다. 金日成이란 이름으로 부르지도 않고 「위대한 수령님」이란 수식어를 주로 썼다. 수사관이 金日成을 비판하면 『어디 그것이 수령님의 잘못 때문입니까? 밑의 부하들이 잘못한 때문이지요』라고 대들다시피 했다. 이런 심리현상은 金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간첩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고 한다. 金日成은 북한 사람들에 게는 살아 있는 유일신이다. 교회를 비판해도 예수를 비판하기는 어렵듯이 북한체제에 환멸을 느껴 전향한 사람도 金日成의 권위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출처 : 월조
[ 2003-06-30, 16: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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