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는 말한다(상) - 5백일에 걸친 김현희 증언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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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음독-신문-자백
  
   위조여권 뒤에 북한 간첩
  
  11월29일에 KAL858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실종된 이후 안기부의 전 조직에는 비상이 걸렸다. 안기부는 처음부터 공중폭파로 보고 정보망을 가동시켰다. 북한은 서울올림픽을 좌시하 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그 무렵에 여러 번 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수사의 정석대로 아부다비에서 내린 대한항공기 탑승자들을 체크하 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두 일본인의 이름이 떠올랐다. 바레인 입국카드에는 신이찌, 마유미라고 적혀 있었다. 안기부에서는 이 표기방법에 주의하게 되었다. 일본인이라면 하찌야 신이 찌와 하찌야 마유미라고 성명을 다 쓰든지, 하찌야란 성만 쓰는 게 정상인 데 이름만 쓴 것은 도무지 일본인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기부는 바레인과 아부다비의 공관 및 대한항공 지점과 협조하여 두 사람의 여권기재 사항을 파악하여 일본경찰에 조회하였다. 하찌야 신이찌란 사람은 일본에 살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마유미의 여권번호를 알아보니 그 번호의 사람은 남자였다. 즉 두 여권이 모두 위조로 밝혀진 것이다. 하찌야 신이찌는 71세의 실존인물 이었다. 그의 신원사항이 그대로 위조 여권에 적힌 이유를 일본경찰이 조사하였다. 진짜 신이찌는 지난 83년 8월에 미야모도 아키라(65)라는 사람으로부터 전자사업 확장을 위해 동남아 여행을 같이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신이찌는 여권발급에 필요한 서류와 인감을 미야모도에게 제공했다. 미야모도는 신이찌의 여권발급을 대행하면서 그 기재사항을 북한에 제공, 金勝一의 위조여권에 써먹은 것이었다.
  
  미야모도 아키라(宮本明)는 누구인가? 그의 이름은 譴?한국과 일본의 공안기관 사이에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제주출신으로서 본명은 이경우(李京雨)였다. 4·3폭동에 가담한 뒤 1949년경 일본으로 달아났다. 1964년에 처 양희현(66세)을 비롯한 가족을 북송시켰다. 그는 1970년경 일본에서 고즈미 겐조란 이름으로 활동한 북한 거물간첩 朴모에게 포섭되었다. 1985년 3월 일본경찰은 고즈미 겐조의 하부선(下部線)인 김석두(金錫斗)를 간첩혐의로 체포, 조사를 하다가 미야모도 아키라라는 또 다른 하선이 있는 것을 알아내고 그 아지트를 수색, 암호 문 등을 적발했다. 이때부터 안기부 대공수사 부서에서도 미야모도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미야모도는 제주도에 고명윤(高明允)이라는 이름으로 호적에 위장 등재된 사실도 밝혀냈다. 여권위조의 과정을 추적하던 중 북한간첩 조직이 드러났기 때문에 안기부에선 바레인의 리전시 인터 컨티넨탈 호텔에 묵고 있던 신이찌와 마유미를 북한 공작원으로 단정하였던 것이다.
  
   독약 앰플을 준비하고
  
  11월 30일 밤 9시30분 바레인주재 한국대사관 서기관 金정기씨(44)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신이찌가 받았다. 『방문하겠다』는 뜻을 통보했다. 김현희(金賢姬)의 진술에 의하면 김승일(金勝一), 즉 신이찌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는 척하고 침대에 누워 있으라』고 하더란 것이다. 金정기 서기관이 들어오자 金勝一은 『내 딸인데 여행중에 피곤해서 누워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金賢姬는 일어나 간단한 목례를 한 뒤 다시 침대에 누웠다. 金勝一과 金정기 서기관은 영어와 한자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金서기관은 『선생들이 타고 온 대한항공 858기가 버마 부근에서 추락하여 승객전원이 사망하였는데. 그 일 때문에 찾아왔다』고 했다. 金서기관이 돌아가자 金勝一은 『항공기폭파 수사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니 내일 일찍 떠나면 된다. 걱정 말고 자자』고 했다. 金勝一은 천하태평인지 그냥 옆 침대에서 곯아떨어져 코를 골면서 자더라고 한다. 金賢姬는 뜬 눈막?밤을 새우면서 金勝一이 세상 모르고 자는 것이 얄미워 죽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金勝一은 나이 70을 넘은 데다가 극도로 쇠약해 있었다. 시체를 한국으로 가져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 한 결과 키 1백71cm 에 몸무게는 45.95k에 불과했다. 위 수술과 담낭수술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 특히 위의 거의 전부가 수술로 절제된 것이었다. 이 베테랑 공작원은 약을 갖고 다니며. 그의 마지막 봉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새벽에 金賢姬가 화장을 하고 옷을 다 입어도 金勝一이 일어나지 않아 깨웠다. 金勝一은 독약 앰플을 든 말보로 담배 한갑을 金賢姬에게 주면서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니…』라고 했다. 두 사람은 오전7시경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30분 뒤 바레인공항에 도착했다. 로마행 항공권으로 출국수속을 마치고 출국신고 카드를 작성하여 출국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그 곳에서 대기중이던 일본대사관 직원(40세 가량)이 여권과 출국신고 카드의 제시를 요구했다. 두 사람은 이에 응하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일본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레인주재 일본대사관 직원이다. 하찌야 마유미의 여권이 위조로 판명되었으며 두 사람은 이대로 계속 여행할 수 없다. 일본대사관에 가서 일본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레인 경찰관 5명이 나타나 두 사람을 에워쌌다. 두 사람은 의자에 앉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모든게 끝장이다
  
  오전9시쯤 김승일(金勝一)은 김현희(金賢姬)에게 귀속 말로 말했다고 한다.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일본에 보내어지면 우리는 이래저래 고생 하다가 죽게 된다. 차라리 여기서 약을 먹고 죽는 게 낫다』 金賢姬는 『그러면 신호해 주세요』라고 한 뒤 자살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金賢姬는 나중에 이때의 심정을 회고하기를 『김일성 수령님의 지시에 따라 혁명가로 값지게 죽는다고 생각하려 했으나 자꾸만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바레인 경찰관이 휴대품 검사와 몸수색을 받으라고 하면서 공안사무실로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갔다. 검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대합실 의자로 돌아와 경찰관의 감시를 받으면서 의자에 나란히 앉아 대기하였다. 金勝一은 세븐스타 담배 한 개비를 건네주었다. 金賢姬는 자신이 흡연자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독약 앰플을 깨물기가 쉽겠다고 판단하여 가방에서 가스라이터를 꺼내 이 담배 개비에 불을 붙여 물었다. 金勝一은 『나는 살만큼 살았기 때문에 괜찮지만 젊은 마유미상한테는 정말 미안하다』고 속삭이듯 말했다. 金賢姬는 이것이 자살지시인 줄 알고 행동에 옮기려는 순간 경찰관이 가방을 달라고 했다. 金賢姬는 재빨리 가방 속에서 독약 앰플이 든 말보로 담배갑을 꺼낸 뒤 가방만을 건네주었다.
  
  그 옆에 서서 이를 지켜보던 아람 핫산이란 경찰관은 『그 담배도 달라』고 했다. 김현희(金賢姬)는 독약 앰플이 든 담배 한 개비만을 꺼낸 다음 말보로 담배 갑만 건네주었다. 핫산은 다시 『그 담배 개비도 달라』고 했다. 金賢姬는 김승일(金勝一)의 눈치를 보며 함께 앰플을 깨무는 타이밍을 맞추려고 주저하고 있는데 핫산은 金賢姬가 쥐고있던 담배 개비마저 빼앗았다. 金賢姬는 반사적으로 경찰관의 손에서 담배 개비를 낚아챘다. 담배 개비가 반쯤 부러졌다. 金이 독약앰플 부분이 은닉돼 있는 담배토막을 깨무는 순간 핫산이 덮쳤다. 완전히 깨물지는 못해 유리 앰플의 끝 부분만 깨어졌다. 청산액체는 기화되면서 金賢姬의 입속으로 들어갔고 金은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이때 무릎을 다쳤다. 金賢姬가 소동을 벌이는 사이에 金勝一 은 앰플을 와작와작 깨물어 담배 개비째 삼켜버렸다. 그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황적준 박사는 뒤에 金勝一을 부검하여 기도에 들어있는 담배필터와 독약앰플 파편을 끄집어내었다. 金勝一의 뇌척수에선 6.21ppm, 폐에선 5.0ppm의 청산염류가 검출되었다.
  
  한 수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테러리스트에게 잡히면 자살하라고 시키는 나라는 세계에서 북한뿐이다. 다른 조직에서는 잡히면 떳떳히 테러의 이유를 밝히도록 하여 선전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는데 북한에서는 金日成부자에게 누가 될까 싶어 자살을 지령하고 있는 것이다』 1983년 4월 대구시내에서 검거된 북한직파 간첩 정해권(丁海權)은 붙잡힐 때 허리춤에서 독약 앰플을 꺼내 음독 자살을 기도하였다. 그는 이 후유증으로 복역 중 사망하였다. 1984년 9월 대구에서 음식점 종업원 2명을 살해한 남파무장 간첩은 옷깃에 숨겨두었던 독약 앰플을 꺼내 자살했다. 1985년 2월에 일본인으로 위장했다가 붙들린 신광수(辛光洙)는 옷깃에 앰플을 숨겨두고 있었다. 金賢姬가 생의 미련을 갖고 있어 金勝一이 자살하는 것을 보고 뒤늦게 앰플을 깨무는 척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안기부 수사관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먼저 앰플을 깨문 것은 金賢姬였고. 분명히 죽으려고 깨문 것인데 경찰관이 덮쳐서 생명을 구한 것이라는 얘기였다. 金勝一은 아주 냉정한 프로였다. 앰플을 깨물고도 확실히 죽기 위해 헉하고 들여 마셔 파편이 식도가 아닌 기도로 들어갔던 것이다. 金賢姬는 주범 金勝一 이 일본인 할아버지처럼 보이게 하는 일종의 액서서리였다.
  
   바레인에 자료제시
  
  국가안전기획부의 KAL858 실종사건 수사담당 과장 ㅎ씨는 두사람이 음독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무릎을 쳤다고 한다.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음독현장에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신이찌와 마유미가 사용했다는 독약 앰플은 ㅎ과장 팀에게는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2월2일 ㅎ과장은 한 동료와 함께 바레인 행 비행기에 올랐다. 신광수(辛光洙)사건의 자료에는 안기부가 압수한 辛의 소지품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독약 앰플도 있었다. 이 자료와 함께 미야모도 아키라에 대한 수사자료도 같이 가져갔다. 두 사람이 홍콩을 경유 바레인에 도착한 것은 현지시간으로 새벽이었다. 아침에 바레인 대사관에서 정(鄭)해융 대사가 주재하는 대책회의가 열렸다. ㅎ과장은 『신이찌와 마유미가 북괴공작원이란 증거를 갖고 왔다. 이번 폭파가 저들의 소행임을 입증하면 우리가 피해당사국으로서 신병을 인수하게 된다. 이런 방향으로 일하는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대사관측에서는 바레인 당국이 이 사건 처리에 있어서 미묘한 국제관계에 관해 신경을 잔뜩 쓰고 있다고 했다. 한국 측과의 접촉은 『대사하고만 만나겠다』는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3일 아침에 ㅎ과장은 정(鄭)대사의 승용차 뒷자리에 타고 바레인 범죄 수사국 사무실로 갔다. 鄭대사는 수사실무책임자인 영국인 핸더슨씨를 만나러 들어갔다. ㅎ과장은 『핸더슨씨에게 「한국에서 전문가가 한 분 왔는데. 이 사건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만나보지 않겠느냐」고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ㅎ과장은 주차장에서 20분쯤 기다렸다.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핸더슨씨는 6∼7명의 참모들을 배석시킨 채 ㅎ과장을 맞았다. 바레인의 각 부처 장관은 왕족이 맡고 있지만 그 밑의 실무책임자는 영국인들이었다. 60대의 고참 수사관 출신인 핸더슨씨도 그렇게 고용된 영국인이었다. ㅎ과장은 가져간 자료를 일일이 제시하면서 마유미와 신이찌가 북한공작원임을 설명해 나갔다. 북한의 대남 테러전략과 역사, 붙들린 간첩들이 자살했거나 자살을 기도한 사례와 그때 사용된 도구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자신 있나?
  
  ㅎ과장은 30여년간 대간첩수사 부문에서 일해온 사람이다. 그는 『북한의 테러에 관한 한 안기부의 대공수사전문가들이 세계 최고의 노우하우를 갖고 있다』면서 대단한 자부심을 보이기도 했었다. ㅎ과장은 신이찌와 마유미의 여권이 국가기관에 의해 위조된 것이라고 핸더슨씨에게 주장했다. 『이 정도의 정교한 위조는 사조직의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 최신 인쇄시 설을 갖추어야 하는 등 그 뒤에 굉장한 조직과 전문인력이 있는 그런 위조 여권이다. 더구나 여기에 기재된 내용은 북괴 간첩 미야모도 아키라가 실존 인물인 하찌야 신이찌에게 만들어준 여권의 그것과 일치한다』 ㅎ과장은 『두 사람의 비행기표도 이상하다. 베오그라드에서 로마로 바로 가면 될텐데 왜 복잡한 경로를 거쳐 들어가려 하고 있는가. 일본으로 돌아가려면 아시아 남쪽을 도는 항로를 잡아야 하는데 왜 거꾸로 돌고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핸더슨씨 측에서는 ㅎ과장의 설명을 듣기만 하였다.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고 한다. 핸더슨씨는 ㅎ과장의 설명이 대충 끝나자 『신이찌가 담배 개비의 독약 앰플을 깨물고 죽었다고 보느냐』고 했다. ㅎ과장은 『청산 알약은 먹기가 힘들다』면서 북한 공작원들이 사용한 자살도구의 변천사를 쭈욱 설명한 뒤 신이찌가 깨문 담배 개비 속 앰플의 성분과 형태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핸더슨씨는 『그렇게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ㅎ과장은 『1백30퍼센트쯤 확신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를 따라 오라』면서 핸더슨씨는 회의실 같아 보이는 방으로 ㅎ과장을 데리고 갔다. 탁자 위에는 신이찌와 마유미의 소지품들이 놓여 있었다. ㅎ과장은 마유미가 깨문 담배 개비 속 앰플을 집어들고 『바로 이것이다』고 했다. 핸더슨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좋다. 신병처리문제를 검토하여 상부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핸더슨씨가 두 사람의 신병을 한국에 넘겨주는 방향으로 건의할 것이라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핸더슨씨는 헤어질 때 ㅎ과장에게 『당신이 필요한 시간에 언제든지 연락하고 오면 만나주겠다』고 했다.
  
   기내에서 흘린 눈물의 뜻
  
  ㅎ과장이 바레인 당국의 협조를 받아 병상에 있는 김현희(金賢姬)를 만난 것은 12월 6일이었다. ㅎ과장은 金의 그런 위장술보다는 손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관상이 한 인간의 역정과 운명을 알려주는 것처럼 손, 특히 여자의 손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을 엿보게 한다. 金의 손은 결코 평탄한 삶의 궤적을 그려온 여자의 손이 아니었다. 고운 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거칠고 못생긴 손도 아니었다. 단련된 손, 그러나 여자의 부드러움이 그 굳어진 각질 밑에 숨어 있는 듯한 손이었다고 한다. 87년 12월 15일 서울로 실려오는 대한항공 특별기 안에서 金賢姬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金이 자백을 시작한 뒤 수사관이 그때 흘린 눈물의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남조선 특무들에게 혹독한 신문을 당하고 개돼지 취급을 받은 뒤 죽을 생각을 하니 끔찍해서 울었습니다. 남조선 특무는 북한간첩을 잡으면 귀와 코를 자르고 눈을 빼는 등 몹쓸 고문을 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공작원으로 뽑혀 젊은 나이에 이렇게 인생을 끝내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공작원으로 선발돼 집을 떠나는 날. 어머님께의 표정도 떠올랐습니다』 이 단계에선 아직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은 없었다.
  
  안기부 수사단에선 끌고 온 金을 신문실로 데리고 와 침대에 눕혔다. 신문실은 서너 짜리 큰 방. 한쪽에 목욕시설과 변기가 있었다. 신문실에는 탁자와 딱딱한 의자, 침대, 그리고 응접용 소파가 놓여 있었다. 창이 없었다. 金이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자 한 수사관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편히 쉬도록 해. 울긴 왜 울어…』 金은 바레인 공항에서 청산가스를 조금 들여 마신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 질 때 무릎을 다쳤었다. 이 상처는 12월15일에 김포에 도착할 때까지 낫지 않았다. 여자 수사관은 이 상처의 통증을 줄여주려고 찜질을 해주었다. 金賢姬는 『찜질을 해주는데 진심에서 우러난 자연스런 행동이라 미안하기도 하고 의외로 생각했었다』고 나중에 자신의 심경을 밝혔었다. 金賢姬가 자백을 하게 된 심리적 동기 중에는 수사관들에 대한 고마움과 신뢰감도 큰 몫을 차지했던 것 같다. 金을 다루는 데 있어서 맨 처음의 고민은 자해방지 마스크를 언제 제거하느냐였다. 이 마스크는 어린이들에게 물리는 고무젖꼭지 비슷하게 생긴 것이었다. 혀를 깨물지 않게 하려면 이것을 물려 입을 벌려놓으면 된다. 숨을 쉴 수 있게끔 구멍도 뚫려 있다. 이것을 떼 내버린 뒤 金이 자해행위를 하면 한국이 온통 고문조작의 누명을 뒤집어쓸 판이었다. 수사진의 입장에서는 『목을 거는 결정』이었다고 한다. 수사단에선 金이 서울에 도착한 그날 이 마스크를 떼버렸다.
  
출처 : 월조
[ 2003-06-30, 17: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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