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는 말한다(상) - 5백일에 걸친 김현희 증언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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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KAL을 제껴라!
  
  10월 4일 광주의 金賢姬에게 혼자서 즉시 귀환하라는 급한 전갈이 왔다. 金은 북경주재 북한 민항대표 朴모의 주선으로 평양행 특별 화물기 편으로 10월7일에 평양에 도착하였다. 급박한 임무가 기다리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7일 저녁 金은 용성 43호 초대소 학습실에서 자신이 소속된 대외정보 조사부 2과장 한모(54세)를 만난다. 한과장은 정부부처의 국장급에 해당한다. 한 과장은 金을 데리고 다시 동북리 2층2호 초대소로 이동, 金을 인계하였다. 이곳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데 안면이 있는 대외정보 조사부 1과 과장 최모, 金勝一, 그리고 최모 지도원이 들어왔다. 최과장은 『오늘부터 옥화동무는 다시 김승일 동지와 배 합된다. 임무는 곧 부장동지가 직접 오셔서 말씀해주실 것이다』고 했다. 이때가 밤 8시를 넘은 시간이었다. 잠시 후 李모 대외정보 조사부장이 도착하였다. 그의 직급은 남한에 견준다면 국가안전기획부의 해외담당차장 정도이다.
  
  노동당 대외정보 조사부는 납치, 테러, 해외첩보 임무를 맡고 있다. 북의 당 정보기관으로서는 金正日이 관장하는 연락부, 작전부, 통일 전선부, 대외정보조사부가 있다. 앞의 3부는 金正日의 관장하에 당의 대남 사업담당비서가 통제하고 대외정보 조사부는 金正日이 직접 통제한다고 한다. 李부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金賢姬는 안기부에서 진술한 바 있다. 『이번 동무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는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는 것이다. 남조선 비행기 폭파 목적은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남조선 괴뢰의 2개조선 책동과 준동을 막고 적들에게 큰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 임무는 중요하고 어려우며 특히 비밀이 담보되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완전한 임무수행을 위한 준비사업을 철저히 하라. 이번 임무수행과정에는 완전한 일본사람으로 위장해야 한다. 오화예ゴ?일본여자로 위장할 수 있도록 일본어 학습에 열중하고 임무수행 중에는 일본인 부자집 딸처럼 행동하라」
  
   마스터 플랜을 완성
  
  崔과장과 崔지도원, 그리고 金勝一과 金賢姬 네 사람은 10월7일부터 11월12일까지 초대소에 밀봉 수용돼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두 崔씨는 안내, 두 金씨는 공작조였다. 崔과장은 공격목표가 「11월28일 바그다드발 아부다비 경유 서울행 남조선의 대한항공 858기」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 金勝一은 이의를 제기했었다고 金賢姬는 기억한다. 『중동에서 이란·이라크 전쟁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공항의 검문·검색이 심하다』 이런 반론에 대해서 崔과장은 『이것은 金正日동지의 친필비준이 난 계획이므로 수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金勝一은 그래도 이의를 제기했다. 崔과장은 『이 비행기에는 남조선 노동자들만 타기 때문에 국제 문제로 비화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나중에는 李부장이 와서 『김정일 동지의 지시다』고 논란을 끝내게 했다. 테러단 네 사람이 한달간의 회의와 토론 끝에 완성한 세부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1987·11∼12·08:30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공화국 공무여권으로 모스크 바행 조선 항공기편으로 안내조인 최과장, 최지도원, 공작조인 공작조장 김승일, 공작조원 김옥화가 동행, 평양을 출발하여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모스크바에 도착 후 소련주재 공화국 대사관 초대소에 투숙, 2박3일간 체류하면서 현지 지도원과 협의,
  
  11·14 09:00 모스크바발 부다페스트행 소련 항공기 탑승권을 구입한다.
  
  11·14 09:00 소련 항공기편으로 모스크바를 출발 같은날 11:00경 부다페스트에 도착하여 그 곳 주재 대외정보 조사부 조대소에 투숙, 4박5일간 체류하면서 현지 지도원과 함께 사증없이 비엔나로 들어가되 이때부터 공작조와 본부 성원인 안내조는 별도 분리행동 한다. 이때 안내조와 공작조가 헤어지면서 안내조와 공작조와의 연락 조직으로 비엔나, 베오그라드, 부다페스트 주재 공화국 대사관 전화번호를 알려 준다. 전화로 안내조를 찾을 때는 영어나 일본말로 「나카무라상」을 찾는다. 비엔나에서 공작조는 암파크링 호텔에 투숙하고, 안내조는 비엔나 주재 공화국 대사관에 투숙한다. 공작조는 비엔나에서 6박7일간 체류하는 동안 일본 여권을 사용하여 일본인 부녀관광객의 신분에 맞게 관광을 하면서 전투지 침투로 항공권과 복귀로 항공권을 구입한다. 침투로 항공권은 비엔나-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부다비-바레인간을 구입하되 바그 다드에서 대한항공 858 기에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리도록 조직한다. 아부다비 바레인간 항공권은 위장항로이고 복귀로 항공권으로는 아브다비-암만-로마행을 별도 구입한다. 침투 및 복귀로 항공권을 구입한 후 비엔나 주재 공화국 대사관에 대기하고 있는 안네조인 최과장에게 항공권 구입 상황을 전화 보고한다.
  
  11·24 11:00경 오스트리아 항공편으로 비엔나를 출발, 같은날 14:00경 베오그라드에 도착하여 메트로폴리탄 호텔에 투숙, 4박 5일간 체류한다. 베오그라드에 체류하는 동안 타인으로 하여금 위장신분인 일본인 부녀관광객으로 인식하게끔 자연스럽게 관광하면서 로마에서 비엔나로 복귀하는 항공권을 구입하고,
  
  11·27 19:00 메트로폴리탄호텔에서 안내조인 최과장과 최지도원을 접선하여 대한항공 858기 폭파에 필요한 기재(폭발물)를 전달받는다.
  
  11·28 14:30.경 디지(DG) 항공기편으로 베오그라드를 출발하여 같은날 20:30경 바그다드 공항에 가서 그곳에서 대한항공 858기로 갈아타기 위하여 2시간 가량 대기하는 동안 폭파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작동시킨다. 폭파용 트랜지스터 라디오 작동조작은 작동 9시간 후에 폭발하도록 되어 있는 고정 위치에 스위치를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상황이 변동되면 임의로 시간을 조정하여 작동시킨다. 폭파용 트랜지스터 라디오작동은 김승일이 하되 김승일이 작동시킬 수 없을 상황이 생기면 김옥화가 대신한다.
  
  11·28 23:45 바그다드에서 대한항공 858기에 탑승 후 폭파용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액체폭약은 좌석 위 선반에 올려놓고 아부다비에서 내릴 때 그냥 두고 내린다. 혹시 내리기 전에 발각되면 내 짐이 아니라고 위장한다.
  
  11·29 02:50 아부다비 공항 도착 후 대한항공 858기에서 내려서 현지를 이탈한다. 이때 폭파가 성공되면 아부다비, 바레인 등에서 수사가 이루어질 것이므로 바레인으로 가지 말고 보세구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같은날 09:00 아부다비에서 출발하는 이태리 항공편으로 로마로 떠난다.
  
  11·29 오후 로마에 도착하면 적당한 호텔에 투숙하여 2박3일간 부녀관광객으로 위장, 관광을 하면서 휴식하다가
  
  12·1 11:00 이태리 항공편으로 로마를 출발, 같은 날 21: 00비엔나에 도착하여 비엔나주재 공화국대사관에 대기하고 있는 안내조인 최과장과 최지도원에게 전화하여 재 합류한 후 최과장의 지시에 따라 평양으로 복귀한다.
  
  폭파용 시한폭탄은 내부에 폭약이 장치되어 있는 일제 파나소닉(PANASONIC) 에이엠, 에프엠 겸용 트랜지스터 라디오, 모델번호 RF-O 82형으로 하고, 폭파시간 조작은 기본적으로 작동 9시간 후에 폭발하도록 한다. 유사시에는 임의 시간으로 조작하여 필요한 때 폭발하도록 한다. 작동 9시간 후 폭발할 수 있도록 하는 조작방법은 ①폭파용 파나소닉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전면 우측 디지탈 시계 밑에 장치되어 있는 스위치 4개를 왼쪽으로 고 정시킨 다음 ②얼람(ALARM) 스위치를 라디오(RADIO)라고 쓰여진 중간지점에 놓으면 작동시간으로부터 9시간 후에 폭발한다. 임의시간에 폭발할 수 있도록 하는 조작 방법은 ①위 폭파용 라디오전면 우측 디지탈시계 밑에 있는 스위치 4 개를 왼쪽으로 고정시킨 다음 ②디지탈 시계 밑 우측 3개의 버튼을 눌러 현재의 시간을 맞추고 ③디지달시계 밑 우측에 있는 디스 플레이(DISPLAY) 스위치를 우측 끝, 즉 얼람(ALARM)이 라고 쓰여진 부분으로 이동 고정시킨 후 ④디지탈 시계 우측 3개의 버튼을 눌러 폭발이 요구되는 시간을 맞추고 ⑤디스플레이 좌측에 있는 얼람(ALARM)스위치를 우측 끝, 즉 쳐프(CHIRP)라고 쓰여진 곳으로 이동, 고정시키면 요구되는 시간에 폭발한다.
  
   자살로 수령의 위신 지켜라
  
  金賢姬가 일본인 부자 집 딸로 행세하기 위해 휴대한 소지품은 장신구와 화장품 등 다양하였다. 일제를 주로 사용하였다. 그 리스트를 보면-. 가디간 곤색 쉐터(Racica), 구두(일제), 겨울용 코트(일제), 원피스(검은 벨트), 여자용 손목시계(일제 오리엔트), 인조가죽 손가방(일제), 부러쉬 콤팩트(일제), 아이라이너 용액(일제), 립스틱 튜브(일제), 아이라이너 튜브(일제), 작은 연필(빨간색), 로션. 여행용 가방(일제), 생리대(일제) 7점, 콜셋(Double Swallow) 1점, 스타킹 1족. 잠옷(일제 상하) 1벌, 파카 볼펜(일제) 1개, 안경(일제 근시용, 프랑스제 선글라스) 2개, 팬티(일제) 3점, 콤팩트 크림(일제) 1점, 리바이탈 팩(일제) 1점, 파우더 콤팩트(일제) 1점, 아이쉐도우(일제) 1점, 향수병(초록색) 1병, 향수병(파나마제) 1병, 파우더 콤팩트 및 립스틱 튜브(일제) 1점, 리퀴드 메이크업(프랑스제) 1점, 눈썹올리개(Viny) 1개, 브러쉬(프랑스제) 1개, 눈썹연필(Vover) 1개, 헤어컬(일제) 1개 등등. 여비는 두 사람 몫으로 1 만 달러였다.
  
  11월6일 오후 동북리 초대소 2층 2호 응접실에서 최(崔)지도원은 김승일(金勝一)과 김현희(金賢姬)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중요한 전투과업 수행 중 우리의 정체가 탄로 나게 될 경우에는 죽음으로써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 담배는 담배와 담배필터 사이에 독약 앰플이 들어 있는데 앰플 속에는 액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깨무는 순간 기체화하여 자연적으로 들이마셔져 즉사하게 되어 있으므로 최악의 경우에는 담배를 피우는 척하면서 담배필터 앞쪽을 깨물면 된다. 독약 앰플이 들어 있는 이 담배 개비는 필터 끝에 담배가루를 붙여 놓았고 담배 갑 뜯긴 쪽에 놓여있으므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독약 앰플이 들어 있는 이 담배 두 갑은 김선생이 보관했다가 최악의 경우 옥화동무에게도 한 갑을 주시오』
  
  11월10일 저녁 무렵 초대소 응접실에 대외정보 조사부장 李모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폭파팀 네 명을 불러놓고, 『알다시피 이번 임무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친필비준이 난 것으로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하는 것이다. 이번 일은 88서울올림픽 을 개최하여 두개의 조선을 책동하는 적에게 큰 타격을 주는 중대한 임무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李부장은 건배를 들면서 이들을 격려하였다. 11월 12일 아침 6시30분경. 동북리 초대소 2층2호 응접실에서는 네 명의 폭파팀이 선서모임을 갖고 「적후로 떠나면서 다진 맹세문」을 낭독하였다. 기억력이 비상한 金賢姬가 진술한 맹세문은 이러했다. 「지금 온 나라가 80년대의 속도로 사회주의 대 건설에 들끓고 있고 남조선 혁명이 고조에 이르고 있고 적들의 2개 조선조작 책동이 악랄해지고 있는 조건에서 전투임무를 받고 적후로 떠나면서 우리는 맹세합니다. 우리는 적후에서 생활하는 동안 언제나 당의 신임과 배려를 명심하고 3대 혁명규율을 잘 지키고 서로 돕고 이끌어서 맡겨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마지막까지 친애하는 지도자 동치의 높은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지켜 싸우겠습니다. 1987·11·12 김승일 김옥화」
  
   얼굴이라도 못 생겼더라면…
  
  김현희(金賢姬)는 외모는 다소곳한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상이지만 마음씨는 다소 건조한 편이라고 한다. 연애의 경험이 없는 金은 애틋함이나 아기자기한 정감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金賢姬의 심금을 울린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11월 12일 동북리 초대소를 떠날 때 식모 아주머니가 한 푸념이다. 『차라리 얼굴이 못 생기고 공부를 못했더라면 아깝지나 않을텐데…』 이날 오전 8시30분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네 사람은 대외정보 조사부 부부장의 전송을 받으며 북한 여객기에 올랐다. 그날 오후 2시 그들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원래는 여기서 2박 3일간 머물면서 계획을 점검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14일의 부다페스트행 여객기는 예약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오늘밤 12시에 출발하는 여객기로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현지 공작원의 조언에 의해 일정이 단축되었다. 이에 대해 건강이 좋지 않은 金勝一은 『나는 그런 강행군을 못하겠다』고 대사관 내 초대소에서 드러누워 버렸다고 한다. 그 金을 설득하여 떠나기는 했는데 모스크바에서의 일정변경은 金勝一과 金賢姬의 운명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모스크바에서 2박3일간 머물렀다면 중동의 공항사정에 밝은 사람이 와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 나중에 아부다비공항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차질은 예방되었을 것이라고 金賢姬는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金勝一 과 金賢姬는 오스트리아에 들어온 뒤 공무여권을 북한 현지 지도원에게 반납, 신이찌와 마유미 명의의 위조여권을 건네 받았다. 10월27일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의 메트로폴리탄호텔에서 崔과장과 崔지도원은 라디오 폭탄과 술병으로 위장된 액체 폭약을 金勝一에게 건네주었다. 金勝一은 金賢姬에게 『술병에 든 액체폭약은 이 라디오가 터지면서 함께 폭발하여 위력을 높이는 것이니 늘 같이 두어야 한다. 라디오에 들어 있는 배터리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으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 내가 먹고 있는 물약이 든 약주병과 폭약 술병이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뒤 金賢姬는 라디오와 술병에 든 청색 비닐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역할을 했다. 베오그라드에서 바그다드행 이라크항공기에 탈 때 이라크 항공기여자 승무원에 의해 배터리 4개는 분리되었다.
  
   온정주의가 사건 방조
  
  28일 저녁 7시경 이라크항공기가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김현희(金賢姬)는 배터리 4개를 돌려 받았다. 두 공작원은 바그다드 공항 통과 여객 대합실로 가는 보안 검색대에서 헤어졌다. 여자 검색대에서 여자검색원이 金의 몸수색과 휴대품검사를 하다가 배터리 4개를 발견했다. 여자 검색원이 『배터리를 가지고는 비행기를 탈 수 없다』면서 4개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이 배터리를 돌려 받지 못하면 라디오 폭탄을 터뜨릴 수 없기 때문에 金賢姬는 아주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이때 김승일(金勝一)은 먼저 검색을 끝낸 뒤 여자 검색대 앞에서 金賢姬가 통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金賢姬는 쓰레기통에 들어간 배터리 4.개를 끄집어내 재빨리 金勝一에게 주었다. 金勝一은 여자 검색원이 보고 있는 앞에서 라디오에 배터리를 끼운뒤 작동시켜 소리나는 것을 보여준 뒤 오히려 큰소리로 항의했다. 『이것은 순수한 라디오다. 휴대품 검색이 지나치게 까다롭다』 여자 검색원은 이를 묵인 金勝一이 배터리를 갈고 타도록 내버려두었다.
  
  여자 검색원의 사소한 온정주의가 1백15명의 목숨과 맞바꾸어진 것이었다. 여자 검색원이 원칙대로 했다면 대체 불가능한 배터리를 달리 구하지 못해 858기 폭파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金賢姬는 라디오와 술병이 든 쇼핑백을 아예 金勝一에게 건네주었다. 金勝一은 쇼핑백을 들고 2차 검색대도 무사 통과하였다. 그는 출국장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KAL858기가 출발하기 20분전인 28일 밤 11시 5분경에 9시간 뒤에 폭발 하도륵 시한장치를 조작하였다. 밤 11시10분쯤 두 사람은 대한항공 858기의 보통석 왼쪽 두 번째 줄 7B(金賢姬), 7C좌석에 자리 잡았다. 金勝一은 쇼핑백을 머리 위 선반에 올려놓았다. 밤 11시27분에 비행기는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 다음날 2시44분에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하였다. 두 사람은 쇼핑백을 선반 위에 둔 채 아부다비에서 내렸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장애물
  
  11월29일 새벽3시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날 오전9시에 로마로 출발하는 이탈리아 항공기로 갈아타기 위해 통과여객 대합실로 걸어갔다. 출구에서 공항 안내원이 항 공권과 여권의 제시를 요구했다. 여기서 金勝一은 망설였던 것 같다. 탈출용으로 별도로 끊어둔 아부다비-암만-로마행 비행기표를 보일 경우, 아부다비가 출발지로 돼 있어 원칙적으로 통과비자를 받아 일단 아부다비 공항바깥으로 나와 입국형식을 취한 뒤 다시 출국수속을 하여 비행기에 타야 한다. 평양에서 루트를 연구할 때 아부다비에서는 일본인이 통과비자를 받을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통과여객 대합실로 들어간다면서 아부다비까지 오게 된 과정이 명시되지 않은 아부다비-암만-로마행 항공권을 제시하면 의심을 살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타고 온 항공권(비엔나-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부다비-바레인행)과 여권을 제시했다. 안내원은 여권과 항공권을 받아 탑승수속을 대신해주고. 바레인행 탑승 카드도 끊어주었다. 두 사람은 통과여객 대합실에서 대기하다가 11월29일 오전9시에 마음내키지도 않은 바레인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사람은 수사가 시작될 때 아부다비에서 내린 탑승자가 추적대상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아부다비에서 내린 뒤 종적이 끊기도록 하여 추적을 따돌리려고 아부다비-암만-로마행 항공표를 따로 갖고 있었는데 이것을 써먹지 못하고 아부다비-바레인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밟게 되었다. 북한의 폭파팀은 아부다비의 통과 여객 수속과정을 잘 모르고 도상 연습식 계획을 짰던 것이다. 최(崔)과장이나 지도원은 아부다비 현장을 답사한 경험도 없었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3일간 쉬면서 상세한 현지사정을 브리핑 받게 돼 있었으나 서둘러 모스크바를 출발하는 바람에 그것도 되지 않았다. 북한 공작기관의 허술한 국제감각이 金勝一과 金賢姬의 운명을 결정해 버린 것이다. 두 사람이 로마로 가버 렸다면 신원확인에 시간이 걸려 잡을 수 없었을지 모르고 그랬다면 858기 폭파는 영원한 미스터리나 남한 조작극으로 치부되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 : 월조
[ 2003-06-30, 17:2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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