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 지하 기계음(1) 녹음테이프 기계음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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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소리와 과학과 실험
  
  청음기의 성능
  
  정지용(鄭址龍)씨가 제시한 테이프가 조작된 것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군 담당 부서는 한발 더 나아가 鄭씨가 녹음을 한 시스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군 측은 鄭씨의 청음기로는 도저히 지하음을 채록할 수 없다는 일종의 확신을 갖고 있었다. 鄭址龍씨가 김포의 김천환(金天煥)씨에게 제작을 의뢰한 청음시스팀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다
  
  동파이프에다가 시중【?파는 콘덴서마이크(크기1㎤이하)를 넣고 1백m가 넘는 전선으로 연결한 것이다. 다만 동파이프 내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한쪽은 땜질을 하고 마이크가 들어가는 쪽은 밀납으로 밀봉하고 고무테이프로 입구를 칭칭 감아 놓은 것이다. 녹음기는 일본 아이와사나 소니사 제품이었다.
  
  취재팀도 정(鄭)씨의 청음시스팀이 너무 간단한 데 놀랐다. 군 측은 내친 김에 청음기의 성능을 시험해 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땅굴 중 한 군데를 선택, 기존의 시추공에다 청음기를 넣고 소리가 잡히는지 않는지를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에 월간조선 측과 鄭씨는 3월20일 이후 적당한 날에 시험을 해보기로 동의했다. 청음기 시험에 앞서 월간조선 측은 다시 테이프의 소리에 대해 재 감정하는 한편 테이프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었던 증언자들을 찾는 노력을 경주했다.
  
  이 과정에서 취재팀은 국내에는 지하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인사들이 별로 없다는 점 때문에 갑갑했다. 소리에 대한 전문가는 암반의 성질 등 지하세계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지하세계를 아는 지질학자들은 소리나 음향에 대한 지식이 약했다. 특히 소리가 암반 등 매질을 통과할 때 어떤 변형이 이뤄지는지를 명쾌하게 답변해 주는 전문가들이 전혀 없었다.
  
  그러기에 소리에 대한 취재는 짜깁기 식이 돼 버릴 수밖에 없었다. 테이프에 대한 보다 정확한 기계적 분석을 위해 3월21일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 표준연구소를 찾았다. 도량형을 포함한 각종 기준의 설정과 극한기술 등을 연구하는 이 연구소는 음향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음향·진동실도 가지고 있다. 역학연구부장 ㅇ박사의 배려로 박사급 연구원 세 명의 도움을 받아 주파수 분석을 했다. 파형과 주파수를 분석함으로써 기계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이 방법으로 소음을 제거해 놓은 재처리 테이프와 「1990년 10월25일 우회갱도 관통 직전(김포군 후평리 녹음)」테이프를 살펴봤다.
  
  두 개의 테이프에서 확인된 기계음
  
  재처리 테鎌?가운데 「웅―웅―웅―웅」하는 엔진 유사음은 기계음이란 반응이 나왔고 나머지 걋?빠지는 소리 등은 기계음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정(鄭)씨 테이프 원본 중 1990년10월25일 녹음된 것(웅―웅―하는 소리인데 鄭씨는 자동굴착기 소리라고 주장했다)도 기계음 반응이 나왔다. 이 분석으로는 녹음된 소리가 기계음의 특성을 갖는지 여부만을 확인할 뿐 이것이 무슨 기계음인지, 이 소리가 지하에서 매질을 통해 녹음된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는 없다. 세 명의 연구원들은 후자에 대해 확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땅속에서 매질을 통해 전달된 소리는 원음과 다소 차이가 있을 텐데 이 차이로써 매질 통과 여부를 알 수 있지 않나.
  
  『같은 소리라도 매질의 종류와 거리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예를 들어 같은 TBM음이라도 화강암을 통해 전달된 것이 다를 수 있고, 10m 떨어진 곳에서 듣는 소리가 다를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복잡한 상황, 각각의 경우에 대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는 지하의 소리를 들어본 경험도 없다』
  
  -군 담당 부서에선 고주파음은 땅 속에서 멀리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5백 헤르츠 이상의 음이 있으면 지하 매질을 통하지 않은 음으로 판단하던데….
  
  『땅속에서 고주파가 전달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기계에선 고주파음과 저주파음이 함께 나오는데 고주파음은 전달되는 거리가 길어짐에 따라 급격하게 약해진다. 크랙이 있으면 더 급격하게 약해진다. 때문에 군에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5백 헤르츠라는 기준은 항상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지만 획일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녹음됐다면 고주파음이 녹음될 수 있지 않은가.
  
  『아주 가까운 거리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주파가 몇 m까지 전달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
  
  -鄭씨 녹음 시스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실물을 보지 않아 뭐라 단언하기 어렵지만 그런 방식으로 이렇게 선명하게 녹음됐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鄭씨 방식으로 사람의 목소리가 녹음될 수 있는가.
  
  『가능하리라 본다』
  
  『사람 목소리 잡을 수 있다』
  
  -모 레코드사의 추정에 의하면 테이프의 기계음 가운데 6천rpm짜리가 있는데 실제 굴착기계들의 rpm은 이보다 훨씬 작다. 굴착기계음이 아닌 것으로 해석해야 하나.
  
  『모터는 그 자체의 회전수 뿐 아니라 내부의 전자석 등이 주파수 특성에 영향을 끼친다. 원래 6천rpm의 성능을 갖는 모터라면 자체의 주파수는 1백 헤르츠인데 전자석의 영향, 모터를 감싸고 있는 기타 구조물의 영향으로 1백 헤르츠의 몇 배 즉 2백, 3백 헤르츠의 주파수 특성이 나타날 수도 있다』
  
  표준연구소에서의 검사결과 한 가지 사실은 재확인됐다. 즉 3월10일 서울공대에서 실시한 시험과 마찬가지로 정(鄭)씨가 제공한 테이프의 일부에서 기계음으로 분석되는 소리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소에서도 암반 등의 재질을 통과한 음은 반드시 저주파여야 한다는 군 담당 부서 측의 견해를 확인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암반의 종류, 두께에 따라 고주파음도 전달될 가능성을 시사하기는 했으나 확고한 의견으로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병행해 증언자에 대한 취재도 계속했다. 어차피 소리의 메커니즘에 대한 견해가 엇갈리는 이상 테이프가 녹음될 당시에 어떤 조작이 있었느냐는 점을 보다 명쾌히 확인함으로써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취재과정에선 연천군 구미리 시추현장의 집주인인 최봉현(崔鳳鉉)-이정희(李貞姬)씨 부부와 정지용(鄭址龍)씨에게 시추장비를 대여해 주었다가 그 자신이 땅굴 탐사작업에 깊숙이 빠져버린 강정산(姜井山)씨 등 핵심적인 증언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음은 3월21일 경기도 부천에서 만난 崔鳳鉉―李貞姬씨 부부의 증언이다.
  
  시추공에서 나는 경유 냄새
  
  이들은 경기도 부천에 살면서 구미리에 자주 왕래하고 있는데 구미리 집에는 아들 최(崔)종록씨(35)가 혼자 머물고 있다.
  
  -구미리 집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언제부터인가.
  
  崔씨=『90년 5월경이었다. 당시 집안에 우물이 없어 업자에게 우물을 파달라고 했는데 그 업자가 우물을 파다 말고 「지하에서 찬바람이 올라온다」고 했다. 그래서 우물 시추구멍에다 얼굴을 대보니 시원한 찬바람이 올라오고 라이터불도 꺼지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인근 군부대에 신고했더니 군인들이 나와서 여러 번 시추한 후 「별 이상이 없다」면서 철수해 버렸다. 결국 우물은 못 팠다』
  
  -그 외에는 별 이상이 없었는가.
  
  崔씨=『91년 8월 정지용(鄭址龍)씨가 올 때까지 우리 식구가 이상한 징후를 느낀 적은 없었다. 다만 뒷집의 할머니(올해 초 潁?가 「구들장 밑에서 소리가 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은 전해들은 적이 있다』
  
  -鄭씨는 언제 만났는가.
  
  崔씨=『지난해 8월이다. 하루는 鄭씨가 찾아와 우리 집 앞의 축사지역에서 시추작업을 해도 되느냐기에 거절해 버렸다. 그 전 해에 군인들이 시추작업 할 때 소음과 진동 때문에 시달렸던 우리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鄭씨가 간청을 하고 또 우물을 공짜로 팔 수도 있을 것 같아 집에서 약간 떨어진 지역에서 시추공을 뚫도록 허락했다』
  
  -당시 어떤 상황이 나왔는가.
  
  李씨=『鄭씨는 8월15일부터 우리 집 부엌에서 왼쪽으로 7∼8m 떨어진 지점에서 시추작업을 했다. 그런데 8월17일 밤 자정을 지나 새벽 1시쯤(8월18일 새벽)에 목욕을 하고 자려 하는데 갑자기 경유냄새가 진동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집에 불이 난 게 아닌가 하고 집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 냄새는 鄭씨측이 판 시추공 쪽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그 구멍 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냄새만 나는 게 아니라 「쉬익」 하며 물이 세차게 뿜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안방에서 자는 남편을 깨웠는데 남편도 깨자마자 「이게 웬 석유냄새냐」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소리는 2분 정도 계속되다가 끝났는데 그 소리가 멈추자 석유냄새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 소리는 어떤 것으로 생각되는가.
  
  李씨=『잘은 모르겠지만 물이 강하게 뿜어지며 부딪치는 소리 같았다』
  
  -석유냄새는 시추하려고 가져온 장비나 그 장비에서 흘러내린 엔진오일의 냄새가 아닐는지.
  
  李씨=『시추장비는 집에서 40∼50m 이상 떨어져 있어 거기서 나는 냄새는 분명 아니었다. 또 시추공 근처에 기름이 좀 떨어져 있긴 했는데 만일 거기서 나는 냄새였다면 그 시점에만 냄새가 날 리가 없지 않은가. 냄새는 불과 2∼3분 정도 나다가 사라졌다. 분명히 냄새는 그 구멍(시추공)에서 난 것이다』
  
  -또 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는가.
  
  崔씨=『다음날(18일) 아침 鄭씨와 함께 청음기를 꺼내는데 청음기의 동파이프는 없어지고 마이크가 붙은 부분만 올라왔다. 동파이프로 씌워진 청음기는 고무테이프로 칭칭 감아 잘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동파이프를 감싼 테이프의 일부가 잘려진 채 마이크만 올라왔다. 당시에 없어졌던 동파이프는 올해 2월 그 일대에 대한 개복작업을 할 때 발견됐는데 칼처럼 예리한 것으로 자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동네 사람도 다 들었다』
  
  -8월10일 직후 어떻게 됐는가.
  
  李씨=『그 직후 군인들도 조사하고 가는 등 한동안 시끄러웠다 한번은 시추작업 중인 인부가 불러 가봤더니 뿌연 물이 시추공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 인부는 「우물 파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는데 나로선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상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 이후는 별 일이 없었는가.
  
  李씨=『추석을 지난 직후인 10월5일께도 새벽에 첫 번째 시추공에서 5m 정도 떨어진 곳에 다시 판 시추공에서 예전과 같은 석유냄새가 난 적이 있다. 그때는 친척들도 같이 있어 다들 냄새를 맡았었다. 다만 예전과 같은 「쉬익」하는 물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부터는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밤을 새는 일이 많았다. 鄭씨의 녹음기에다 스피커를 부착해 놓으니 시추공 아래 장치된 청음기에서 잡힌 소리를 안방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장 부녀회장 등 동네사람들이 라면 끓여먹으며 새벽 4∼5시까지 소리를 들었다. 대개 「웅웅」거리는 소리와 「푸드득」하는 돌 깨지는 소리 등이 들렸다. 그때 이곳에 나와 있던 사병들도 「이상하다」고 했는데 보고가 제대로 됐는지는 모르겠다』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군부대가 그 지역에서 시추작업을 했다는데 그때는 이상 현상이 없었는가.
  
  崔씨=『그때는 신경을 안 써서 잘 모르겠다. 군인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 하고 생각했고 또 겨울이라 문 닫고 지내서 바깥일에 관심이 없었다』
  
  -두 분의 말씀 중엔 허점도 적지 않다는 게 주변의 지적이다. 즉 경유 냄새가 났다는 것은 내연기관으로 작동되는 장비를 썼다는 얘긴데 사실상 지하동굴에선 이런 내연장비를 쓸 수 없다고 한다.
  
  李씨=『그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 그런데 문제는 내 스스로가 그런 체험을 한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어떤 표현을 하건 나와는 상관이 없다. 사실 나는 우리 집 아래에 땅굴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또 없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상한 체험이라고 해서 아예 없었던 것으로 하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다시 증언을 해도 같은 말이 되풀이될 뿐이다』
  
  -정지용(鄭址龍)씨가 시추현장에서 녹음 테이프를 조작할 가능성은 없었을까.
  
  李씨=『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가 왜 그런 짓을 하겠는가. 나도 처음에는 鄭씨에 대해 좋은 감정은 갖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젊은 사람이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국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돈도 생기지 않는 일에 빠져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가 바로 애국자다』
  
  『지하공동 현상이 내 발목 잡아』
  
  강정산(姜井山)씨(51)는 서울에서 모 중기회사를 운영하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11월 정지용(鄭址龍)씨와 중기대여 계약을 맺고 연천군 구미리에 들어왔다가 그 자신이 땅굴의 존재를 확신하고 鄭씨 보다 더 적극적으로 땅굴탐사 작업에 빠져 있다. 그는 지난 해 11월부터 3월 하순까지의 4개월 여 동안 무려 3백 개가 넘는 시추공을 뚫어 이 부분에선 오히려 鄭씨보다 더 많은 「실전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다음은 姜井山씨와의 1문1답이다.
  
  -구미리 시추작업에는 언제 투입됐나.
  
  『지난해 11월 서울 연곡동 지하차도 공사를 하고 있던 중 鄭씨가 찾아왔다. 그때 鄭씨가 우리 시추장비를 며칠간 빌려 달라고 해서 하루에 40만원씩 받기로 하고 구미리 현장에 들어간 것이다』
  
  -작업은 어떻게 진행했는가.
  
  『91년 11월13일부터 정(鄭)씨가 지목하는 구미리 1백52번지 최(崔)종록씨 집 바로 옆에서 시추공을 뚫기 시작했다. 그런데 3시간 정도 작업하여 지상으로부터 15m까지 뚫는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 지점에서 공동(空洞)이 있는 듯한 현상이 감지된 것이다. 시추장비에는 비트라는 암반을 깨는 것이 있는데 이 비트가 15m 지점에서 크게 흔들리며 빠지지를 않았다.
  
  암반에서는 비트가 수직으로 뚫고 가지만 갑자기 공동이 나타나면 비트가 푹 빠지며 크게 흔들리고 잘 뽑히질 않는다. 바로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뭔가 이상한 감이 잡혀 그 시추공을 계속 파 내려가려 했으나 물이 많이 차 오르고 양수기마저 고장나 버려 그 시추공에 대한 작업을 포기했다』
  
  -지하에는 천연동굴도 있는데 그 시추공에서 나타난 현상을 인위적인 땅굴로 단정할 수 있는가.
  
  『나는 처음엔 인위적인 땅굴이라는 데 부정적 시각을 가졌던 사람이다. 25년이 넘는 동안 공사현장을 따라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축적한 나로선 그 같은 공동현상을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자연공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만약 이 지역에까지 땅굴이 왔다면 세금 내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북한측이 판 땅굴이 아닐지언정 무언가 지하공동이 있는 것이 확실한 이상 그냥 작업에서 손을 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부러져 버린 비트
  
  -강(姜)선생께선 땅굴의 존재를 확신하고 지난 4개월 여 동안 땅굴 확인작업에 매달리고 있는데 그 같은 확신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구미리에서 첫 시추작업을 한 후 나는 그 일대에서 2백 개가 넘는 구멍을 팠다. 그 과정에서 나는 두 가지 이상한 상황에 주목하게 됐다. 첫째는 모든 구멍에서 나타난 현상은 아니지만 3개 공에서 인위적인 공동이라고 추정할 만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지하에는 수많은 파쇄대(破碎帶·바위가 부스러진 지대)가 있다. 이 파쇄대가 인위적인지 자연적인지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식별할 수 있는 것이다. 구미리에서 작업하는 동안 나는 거의 시추기 옆에서 기계의 작동현황, 즉 천공속도, 진동, 비트의 마모상태 등을 주시해 왔다.
  
  『선택의 문제이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휴전선에서 구미리까지는 거리가 10km가 넘어 환기 등 작업에 문제가 많을 것 같은데.
  
  『나는 발파전문가여서 건설공사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다만 내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재래식 공법, 즉 발파를 통한 굴착작업으론 10km가 넘는 긴 굴을 뚫을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TBM공법으로는 땅굴을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TBM을 쓰면 굴착공사의 가장 큰 난점인 분진을 거의 없앨 수 있다.. 또 요즘은 암석을 뚫을 때 고압 살수기를 쓴다. 물로 암석을 자르는 상황에선 굴 뚫는 작업은 자금과 선택의 문제이지 기술상의 문제는 아니다』
  
  -정(鄭)씨의 테이프가 조작된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지.
  
  『세상에 할 일이 없어 그런 짓을 하겠는가. 게다가 나는 鄭씨와 계속 행동해 왔기 때문에 그가 다른 곳에 가서 딴 짓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밤잠이 없다. 하루에 2∼3시간 자는 사람이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 한 그가 장난칠 기회는 절대로 없었다』
  
  -강(姜)선생께선 지난해 11월 구미리 지역에 들어오신 후 오로지 땅굴 찾기 작업에 매달리고 계신데 그 이유는 뭔가.
  
  『내가 생각해도 「내가 미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다른 공사현장에 투입하면 한 달에 4천 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계를 가져다 놓고 단 한푼의 돈도 생기지 않는 곳에서 4개월 넘게 이 짓을 하는 나를 제3자들은 다 미쳤다고 할 것이다. 사실 가족과도 생이별한 상태에서 아내가 아직도 이해해 주지 못하고 내가 거느린 직원들이 「사장이 제 정신이 아니다」라는 시선을 보낼 때 금방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야말로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이 작업을 하겠는가. 그러나 내 스스로 땅굴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이상 도저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공명심 때문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의 의무감이자 또 나의 처자식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행동일 뿐이다』
  
  『땅굴 관통이 나의 목표』
  
  -그렇다면 강(姜)선생은 땅굴의 존재를 확신하는가.
  
  『나에겐 이제 땅굴이 있다 없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내가 체험적으로 터득한 이상 남들이 믿든 안 믿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다만 이 시간에도 내가 땅굴 찾기에 매달려 있는 것은 땅굴의 징후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땅굴을 관통한 뒤 카메라를 집어넣어 그 실체를 사진으로 증명하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북한측의 대응능력도 이미 상당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시추기가 그들의 땅굴을 관통할 때쯤이면 그들은 이미 제작해 놓은 철, 시멘트 구조물을 즉각 받쳐 놓은 듯한 감을 많이 느꼈다』
  
  -구미리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구미리에서만 2백여공을 판 후 파주군 덕천으로 옮겨 50여 공을 뚫었고 다시 연천군 아미리 지역에서도 40공 넘게 작업을 했다』
  
  -그 지역에서도 징후가 나타났는가.
  
  『그렇다. 특히 덕천에서는 큰 지하공동현상을 감지했다. 또 아미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아미리는 구미리와 야산 한 개 사이로 인접한 지역인데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가.
  
  『아미리에선 커다란 지하공동 현상이 감지돼 3개 시추공에다 폭약을 넣고 발파해 본 적이 있다. 보통 시추공의 폭은 20cm 미만인데 지하 30m 지점에 폭약을 넣고 터뜨리면 폭약 주위가 모두 암반일 경우 시추공 바깥으로 큰 분출현상이 생긴다. 암반이 폭발력을 모두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미리 현장에선 미미한 외부 분출만 있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폭발력이 지하에서 모두 흡수됐다는 얘기다. 그것은 폭약을 장전해 놓은 지하 30m 지점에 시멘트 등 약한 구조물이 있었다거나 아주 인접한 지역에 지하공동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덕천 지역에서는 어떤 작업을 했는가.
  
  『지난해 11월부터 구미리에서 2백 공이 넘는 실험을 해본 결과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겼다. 올해 초 덕천 지역으로 옮긴 이후 50여공을 파니 5∼6개 시추공에서 징후가 나타났다. 그래서 나는 지난 3월5일 이 시추공에다 폭약을 넣고 폭파해버리려고 했다. 특히 징후가 감지된 시추공은 개천 옆에 있어 만일 폭파가 된 후 지하공동이 뚫리면 개천의 물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갈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군 관계자들이 말려 그 같은 실험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인가.
  
  『단순 계산으로 봐도 한 시추공에 1백 만원씩 투입했다면 이미 3억원 이상이 투입된 셈이다. 그러나 돈도 문제이지만 주변의 시선이 더 부담스럽다. 민간인이 생돈 들여가며 땅굴 찾으려고 한다면 돕지는 못할망정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하는데 일부 인사들이 부정적 시각으로 대하고 있어 마음이 편치 못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때려치울까 말까 고민하면서 여태까지 팠는데 앞으로 얼마만큼 이 작업을 더 하게 될지 내 자신도 모르겠다』
  
  시추기는 보통 한 시간에 3m 정도를 파내려 갈 수 있다. 그런데 구미리의 어떤 시추공에선 5cm를 파 내려가는데 40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있었다. 천공속도와 로타리가 달린 그라인더의 진동을 감안할 때 파쇄대를 통과할 때는 흔들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 흔들리는 정도가 너무 강했다. 그래서 시추장비를 끌어 올렸더니 비트가 모두 망가져 있었다. 내가 쓰는 독일제 비트는 중석이 포함된 합금으로 1백5mm 포신보다 더 강한 것이다.
  
  암반을 뚫을 때는 마모가 될 뿐이지 부러지지 않고 보통쇠도 그냥 뚫게 된다. 그런데 이 비트가 한꺼번에 4개가 부러져 나갔다는 것은 강철같은 강한 물체가 닿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비트 부위에 강한 쇠를 간 것 같은 흔적이 역력했다. 바로 이것이 나를 붙잡아 놓은 첫 번째 이유다』
  
  -강철이 갈리며 부서진 흔적을 보았는가.
  
  『그런 것은 보지 못했다. 시추할 때는 돌과 흙이 뒤범벅이 돼 올라오기 때문에 정밀 조사를 하지 않는 한 그것을 외견상 구별하긴 쉽지 않다. 흔히 동광(銅鑛)에선 광맥이 나타나기 전에 유화철이 있고 이 유화철 지대를 뚫을 때 비트가 흔들리는 경우가 있는데 구미리 지역은 동광 지역도 아니고 또 유화철의 흔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 번째 확신의 계기는 무언가.
  
  『소리다. 나는 시추기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저녁나절 조용할 때마다 정(鄭)씨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었다』
  
  -무슨 소리였나.
  
  『그것은 우리의 시추작업 때문에 나오는 소리는 아니었다. 왜 땅 속에서 고압전기 유도음이 나오겠는가』
  
  -다른 소리는?
  
  『비트 가는 소리와 TBM 소리였다. 강한 쇠와 암석이 부딪치는 소리가 확실하다. 수십 년간 공사현장에 있었고 중장비 대여 업을 하는 나로선 그 정도 소리는 판단할 수 있다』
  
  -강(姜)선생깨선 지금 TBM을 지적하셨는데 북한 능력으로 TBM 구입이 힘들고 또 TBM은 후진을 할 수 없어 땅굴 굴착장비로는 부적당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북한이 TBM같은 고가장비를 살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선 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TBM이 후진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해선 할 말이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TBM장비를 만드는 회사는 로빈, 카사그랜드, 스톡홀름, 아틀라스사 등 다섯 손가락을 꼽는데 이들이 만드는 제품은 굴착기 구경이 2.2m, 2.8m, 3,6m, 5.8m 등 종류가 수없이 많다. 지하철은 최소한 5.8m 이상 돼야 한다. 관개수로용이나 땅굴용은 3m 이하짜리로도 가능하다.
  
  특히 2.2m짜리는 몸체 길이가 5∼6m정도인데 이는 후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정도의 TBM을 쓰려면 후방에 버럭을 나를 수 있는 콘베이어 벨트, 광차를 끄는 기관차가 있어야 한다. 물론 내연기관을 쓰는 기관차는 안되겠지만, 전기기관차라면 얼마든지 작업이 가능하다』
출처 : 월조
[ 2003-06-30, 21: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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