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 지하 기계음(1) 녹음테이프 기계음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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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흔들렸다』
  
  김천환(金天煥)씨는 우연한 기회에 정(鄭)씨의 시추작업에 관련을 맺다가 그 후 이 작업에 전념하게 됐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집 앞에 뚫은 시추공에 청음기를 집어넣고 계속 청음활동을 하고 있다. 金씨는 갱차음 등은 91년 상반기까지 들렸으나 그후는 고압전기 유도음으로 추정되는 소리만 가끔 들릴 뿐이라고 말한다. 그 역시 정지용(鄭址龍)씨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인물이라 보다 객관적인 증언을 듣기 위해 金씨 집 앞에 설치해 놓은 스피커를 통해 처음으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박(朴)병주씨(여·57)를 만났다.
  
  朴씨가 운영하는 새마을 슈퍼는 金天煥씨 집으로부터 30m 정도 떨어져 있다. 다음은 朴씨의 증언이다. 『날짜는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여하튼 소리가 난 날 오전 9시쯤 가게 앞의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디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에 경운기도 지나가지 않는데 소리가 들리는 게 이상해 金씨 집 쪽으로 가보니 金씨 집 앞 텃밭에 설치해 놓은 스피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침 金씨가 없어 그의 아내와 마을 사람 몇 명과 함께 그 소리를 들었다. 2∼3분간 계속된 그 소리는 뭔지 잘 모르겠으나 경운기가 멀리서 지나가는 듯한 감으로 느껴졌다』
  
  후평리는 북한측의 대남 방송이 크게 들리는 접적지역이다. 한강을 사이에 끼고 있기는 하지만 북한과는 직선거리가 4km 내외. 만일 북한이 공격 의도를 갖고 있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침투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이런 지형적 여건 때문인지 이 지역에선 예전부터 이상징후에 대한 신고가 많았고 주민들도 「땅이 울렸다」는 등의 표현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지용(鄭址龍)씨의 녹음 테이프와는 관계가 없지만 참고삼아 이상징후를 체험했던 홍(洪)성숙씨(37·여·김포군 하성면 시암리) 집을 찾았다. 洪씨의 집은 金天煥씨 집으로부터 북쪽으로 1.5km 더 가야 한다.
  
  다음은 洪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게 언제인가.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으나 지난해 이맘때(3월 초)였다』
  
  -당시 그 소리는 어떤 식으로 들렸는가.
  
  『저녁 8시쯤인데 안방 옆에 있는 부엌바닥에서 갑자기 「드르르륵」 하는 소리가 울리며 집까지 흔들렸다. 집안 식구가 모두 놀랐는데 3∼4차례에 걸쳐 요란한 소리가 난 후 10여 분 후에 조용해졌다』
  
  -그게 무슨 소리 같았나.
  『쇠로 돌을 뚫는 듯한 소리였다. 집까지 흔들릴 정도로 소리가 강했다』
  
  -그 정도라면 옆집에서도 들렸을 텐데.
  
  『이상하게 옆집에선 전혀 그런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한다』
  
  -식구들이 모두 들었는가.
  
  『그렇다. 시어머니와 남편도 같이 들었다』
  
  -그 소리는 한번 들린 후 끝났는가.
  
  『그날 이후는 다시 나지 않았다』
  
  -그 외의 이상징후는 없었나.
  
  『주변 사람들이 혹시 우물에 이상이 있는지 살펴보라기에 마당의 우물을 들여다보니 평상시보다 물이 엄청 줄어 있었다』
  
  -우물물이 그 이전부터 줄었던 것은 아닌가.
  
  『식구들이 매일 그 물을 쓰기 때문에 바로 그 소리가 나던 날 물이 줄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물이 원래의 수준까지 다시 차 올랐다』
  
  『방바닥이 흔들렸다』
  
  3월13일에는 경기도 연천군 지역을 찾았다. 이 지역은 정(鄭)씨가 지난해 8월부터 집중 탐사한 곳으로 鄭씨는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와 구미리 지역에서의 시추작업 결과 5∼6개 시추공에서 이상음을 청취, 녹음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구미리 지역에선 김포에서와 유사한 TBM, 착암기 소리뿐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 같은 것까지 채록돼 鄭씨가 가장 심증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 지역에서의 녹음은 지난해 8월 이후의 것으로 만일 테이프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북한측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정지용(鄭址龍)씨는 연천 지역에서의 지하(땅굴) 축선은 하나로 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된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즉 휴전선으로부터 백학면 두일리 일대까지는 단일 축선이 이어지다가 여기서부터는 아미리, 구미리 및 파주군 덕천동으로 지선이 갈라졌다는 얘기다.
  
  그가 이 지역에서 채집한, 주민들이 인지한 이상징후는 다음과 같다.
  
  「▲88년 3월 장상리 논에서 물이 빠지고 공기가 상승하는 현상 발견.
  ▲89년 봄부터 90년 가을까지 두일3리 白모씨가 앞마당 부근에서 궤도차가 굴러가는 듯한 소리 간혹 청취.
  ▲89년 9월 두일2리에서 주민 2명이 지하에서 방이 울릴 정도의 폭음과 궤도차 소리가 10여일 간 들리는 것을 청취.
  ▲90년 4월, 노곡리 교회 앞마당에서 우물을 파던 중 지하 15m 지점서 물이 빠지고 공기가 상승하는 현상 발생.
  ▲90년 5월 구미리 최(崔)종록씨 집 앞마당에 우물을 파던 중 지하 15m 지점서 물이 빠지고 찬바람이 상승(편집자 주:鄭씨가 자료에서 밝힌 이 같은 주민들의 이상징후 인지 내용은 취재결과 대부분 사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도표참조>
  
  서로 엇갈린 주장
  
  정(鄭)씨는 91년 8월 연천군 백학면 구미리 1백52번지의 최(崔)종록씨 집 옆에서 시추작업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그의 자료에서 밝히고 있다.
  
  「▲91년 8월16일 오후 우물시추기로 지하 17m 시추 완료. 물이 새고 찬바람 상승.
  ▲91년 8월16일 청음기 설치, 수압 굴착기와 유사한 소음 발생.
  ▲91년 8월18일 새벽 1시30분 崔종록씨 어머니 이정희(李貞姬·57)씨가 시추공 부근에서 녹음소리와 유사한 소음을 10여분간 청취하였는데 소음이 난 후 경유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소음이 중지되자 경유 냄새도 없어졌다. 함(남편 최봉현(崔鳳鉉)씨는 소음이 중지된 후 잠을 깨 냄새만 맡았다고 함).
  ▲91년 8월16일 오후 4시 지하 시추공에 설치되었던 동파이프(청음기)가 없어졌음을 확인」<도표5참조>
  
  정(鄭)씨는 작년 8월의 시추작업 결과에 고무돼 그후 이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작업을 했다. 91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崔씨 집 주변에서 여러 개의 시추공을 뚫었으며 올해 2월에는 崔씨 집 바로 옆의 지역을 포클레인 등으로 파내려 가는 작업을 벌였다. 군 당국도 올해 1월6일부터 2월21일까지 시추작업을 병행했다. 그러나 시추 및 절개작업 이후 군 당국과 鄭씨의 판단은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군 당국은 「징후가 나온 절개부분을 중심으로 15m 간격으로 시추한 후 CW, 팸스 등 첨단 과학장비로 확인한 결과 22∼25m 사이에 물 층은 발견되었으나 땅굴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반면 鄭씨는 「육성녹음 및 기름 매연이 올라온 시추공을 중심으로 절개해 본 바 용석으로 된 수직자연공간이 10여 개 발견된 것으로 보아 땅굴이 자연공간과 연결돼 소음이 발생하였고 우리는 공사여건상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어(해빙기가 되어 崔씨 집 쪽의 흙이 무너지기 시작했음) 작업을 중단했으나 지하 22∼30m 사이에 땅굴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 당국과 정(鄭)씨의 견해차는 복잡한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단지 한가지 사실에 귀착된다. 鄭씨는 사람 목소리가 청취된 시추공의 지하를 25m 이상 파 내려가야 하는데 17∼18m를 파보고 그치는 바람에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군 당국은 해빙기가 되어서 시추지역을 깊게 파 내려가지 못하는 것을 CW 등 첨단장비를 통해 보완해 분석한 결과, 물 층 이외는 혐의점이 없다는 주장이다(3월14일 군 담당 부서를 방문했을 때 군 측은 월간조선 취재팀에게 구미리에서 포착한 지하 암반구조 개념도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따따따따』 하는 착암기 소리
  
  3월13일의 연천지역 답사는 이 같은 엇갈린 주장을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 취재에서는 자기 집 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추작업을 계속 지켜 본 당사자인 최봉현(崔鳳鉉)―이정희(李貞姬)씨 부부는 만나지 못했다. 대신 崔씨 집 이웃에 사는 유희열씨(47)와 지난해 11월의 시추작업 때 시추기 기사로 일했던 金영태씨(36·서울 구로구 시흥동)등을 만났다.
  
  유희열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91년 8월의 상황은 잘 모른다. 그때의 상황은 정(鄭)씨의 녹음 테이프만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91년 11월의 작업 때는 녹음을 하는 현장에서 여러 가지 소리를 직접 들은 바 있다. 무슨 소리라고 분명히 말할 수는 없으나 「따따따따」 하는 착암기 작동음과 비슷한 소리, 갱차음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은 사실이다』
  
  현장에서 기사로 뛰고 있던 金영태씨의 경우 작업 때문에 소리를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으나 작업 후에 녹음 테이프로 이상음을 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가 나느냐며 의심을 가졌다. 그러나 계속 들어보니 기계음이 많이 들렸다. 나도 중장비를 만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는 대충 감이 잡혔다. 특히 착암기 작동하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또 물 빠지는 소리, 파이프를 탁탁 치는 소리 등을 들은 바 있다』 정(鄭)씨는 91년 9월14일에는 백학면 두일2리 지역에서 시추작업을 했었다. 이 지역은 89년 말 박(朴)씨 할머니(78)라는 분이 이상한 소리를 10여일 간 들었다고 신고한 적이 있는 곳이다.
  
  다음은 두일2리 朴씨 할머니(이름이 없다고 함)의 증언이다. 『89년 겨울 어느 날인가 밤에 안방 아랫목에서 잠을 자는데 쿵 하는 소리가 울리며 몸이 털썩 흔들렸다. 그때가 새벽 한시쯤이었는데 그런 쿵 하는 소리가 가끔 나타나다가 2시간쯤 후에야 잠잠해졌다. 나는 전쟁을 겪은 사람이라 그게 포탄 터지는 소리인 줄은 짐작했지만 집밖을 둘러봐도 별 일이 없는 것 같아 그날은 그냥 자 버렸다.
  
  그런데 다음날에도 똑같은 소리가 새벽녘에 들렸다. 이때는 며느리(이영순·41)도 같이 들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또 찌그럭찌그럭 하며 뭔가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그 소리는 안방 아랫목에서만 들렸고 옆방이나 안방의 윗목에서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 소리는 처음에는 앞마당 쪽에서 오는 듯한 감이 들다가 며칠쯤 후엔 안방 바로 밑을 지나가는 듯했고, 7∼8일쯤 후에는 뒷마당 쪽으로 지나가는 듯하다가 10일쯤 지나니까 소리가 그쳐버렸다』
  
  자원봉사자로 나선 주민들
  
  정지용(鄭址龍)씨가 밝힌 두일2리에서의 시추결과는 다음과 같다.
  
  「▲91년 9월14일 오후 6인치 함대 시추기로 지하 84m 시추 완료. 오후 8시 청음기 설치.
  ▲9월15일 오전 8시부터 지하에서 약한 소음이 발생하면서 차차 소음이 커지다가 9월16일 오후 7시쯤 지하소음 중지.
  ▲9월28일 수중촬영기로 시추공 내 촬영결과 이상징후 발견 못했음.
  ▲시추공 내 지하 84m 지점에서 고압전기 유도음은 계속 발생」 鄭씨는 두일2리에서의 작업에서 큰 성과는 없었으나 성원자를 얻게 된다. 즉 인근의 주민들 중 6∼7명이 鄭씨의 활동에 공감, 이후 鄭씨의 시추작업 때 조건 없이 자원봉사 하는 등 적극적인 후원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3월13일 오후에는 이들을 만나봤다. 다음은 이들 중 가장 적극적인 성원자인 李영만씨(48·농업·백학면 두일2리)와의 일문일답이다.
  
  -언제부터 정(鄭)씨 일에 관심을 가졌나.
  
  『지난해 농사를 마친 후였다. 하루는 면사무소 남쪽 3백m 지점에서 이상한 작업을 하길래 구경 삼아 가봤다. 鄭씨가 땅에 구멍을 뚫고 있는 것이었다. 심심풀이 삼아 鄭씨의 청음기를 한번 들어봤다. 그랬더니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명확하게는 모르겠으나 「따따따따」 하는 소리, 「웅웅」거리는 소리 등도 들렸다. 이 지역에선 예전부터 소위 이상징후에 대한 얘기가 많았기 때문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鄭씨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후에도 이상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鄭씨가 11월에 구미리에서 다시 작업할 때 같이 가서 일을 했었다. 그때 여러 가지 소리를 들었다. 작년 11월27일 아침 10시쯤에는 구미리 최(崔)씨 집으로부터 50m쯤 떨어진 곳에서 시추작업을 마친 직후 「따르르륵」 하는 요란한 소리를 시추공을 통해 직접 들었다. 군 관계자를 비롯, 약 10여명이 같이 들었다』
  
  -또 다른 이상징후는 없었는가.
  
  『소리를 직접 들은 시추공 부근에는 4개의 시추공이 모여 있는데 수중촬영기를 통해 보니 지하에서 물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즉 시추공이 밑에서 통했다는 얘기다. 군 당국에선 자연굴일 수 있다고 했는데 소리가 났던 시추공인 점을 감안할 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원봉사를 한다는데 왜 그러는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뭔가 속시원하게 알아야만 손을 놓겠는데 계속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니 鄭씨가 일하는데 쫓아가 도움도 주고 나도 상황을 좀 알고 싶은 것이다』 (이날 이들 자원봉사자들을 5명 만났으나 상황설명이 대개 비슷해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생략한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두 가지 방법, 즉 테이프 내용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과 현장 주민들의 증언을 듣고 테이프의 녹음과정에 하자가 없었음을 파악하는 방법을 통한 월간조선 측의 취재는 불과 4일 밖에 안됐다. 원고 마감일(15일)을 눈앞에 둬 일단 결론을 내려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취재팀은 정(鄭)씨가 처음 제보했을 당시 그 내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더 많이 가졌었다.
  
  아니 엄격히 말하면 땅굴의 실체를 더구나 서울을 바로 코앞에 둔 지역에서 땅굴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정적으로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짧지만 집중적이었던 취재과정을 거친 후 鄭씨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어느 정도의 진실성」이 내포돼 있음을 느꼈다.
  
  첫째는 정(鄭)씨의 수기나 문서에 포함된 중요 내용에 대한 검증과정에서 현장 주민들은 대개 鄭씨의 주장과 일치한 발언을 하고 있었다. 물론 鄭씨가 상상이나 추측으로 전개한 내용은 처음부터 논외로 삼고 있었다.
  
  둘째, 현장 주민들은 鄭씨가 테이프로 이상음을 채록할 당시 주변에서 그것을 지켜봤다는 것을 여러 차례 증언하고 있다. 즉 鄭씨가 보유하고 있는 테이프 중 상당수는 적어도 조작된 것은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셋째, 테이프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과정에서 1개 테이프에서는 기계음으로 추정되는 파형이 나타났다. 또 일부 소리에 대해서는 TBM이나 굴착기의 소리와 유사하다는 견해를 보여줌으로써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땅굴의 존재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존재 가능성도 역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취재팀이 가진 판단이었다. 13일 밤 취재팀은 鄭씨의 집을 다시 방문했다. 鄭씨가 월간조선 측에 넘겨준 테이프 말고도 심증을 굳혀줄 만한 증거물이 더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위에서 다 들려요」
  
  정(鄭)씨는 그 자리에서 91년 8월16과 17일 구미리 시추공에서 채록한 사람 목소리 부분을 들려줬다. 첫 번째 테이프에서 들리는 대화내용 중에선 「막아 막아」 하는 것 외에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테이프에선 딱 한 마디지만 아주 명료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목소리의 내용은 『위에서 다 들려요』였다. 당시 취재팀은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위에서 다 들린다」는 표현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래, 즉 지하에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것은 땅굴의 실체를… 그러나 이상한 점도 없지 않았다. 40대 후반으로 느껴지는 그 목소리 주인공의 말씨는 북한 억양이 아니었다. 밤 12시가 다 돼 집으로 돌아간 취재팀은 흥분 그리고 끊임없는 의문 속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3월15일 오전 8시, 조갑제(趙甲濟) 부장 등 본사 취재팀 3명은 군 담당 부서를 찾았다. 월간조선부는 정(鄭)씨의 제보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땅굴탐사의 핵심부서인 군 담당 부서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기사의 형평상 鄭씨의 활동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담당 부서 측의 입장을 반영할 필요가 있고 또 왜 그 같은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鄭씨의 자료만 보더라도 군 측이 鄭씨에 대해 얼마나 감정이 상해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88년부터 이들은 11차례에 걸친 鄭씨의 진정을 뒤치닥거리 하느라고 엄청나게 시달렸던 것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鄭씨의 의견을 수용, 적어도 수십 개의 시추공을 뚫는 작업을 실시해 왔었다.
  
  군 담당 부서가 鄭씨의 활동에 대해 분석·평가한 공식적인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90년 10월16일자의 민원업무 회신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제보된 녹음 테이프 및 군 야전 청음분석 차량이 현지에 출동해 정밀 분석한 결과 땅굴 굴착음과 상이.
  ▲제보자가 주장한 지점(김포군)에 5개 공을 시추, 카메라 등을 운용한 결과 특이징후 미 발견.
  ▲자비로 시추탐사 하던 중 시추기 롯드가 낙하하였다고 주장해 시추공 카메라를 운용하였으나 연암지층이 붕괴된 현상으로 판명.
  ▲89년 11월 제보자가 시멘트 물질이라고 주장, 제시한 코아를 분석한 결과 시추시 분출된 스라임을 빈 병이나 깡통으로 응고시킨 것으로 판명.
  ▲지하에서는 소음이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잘못된 주장임. 청음시험 결과 지하에서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변동음이 발생하고 연간 2만여 회 포착되고 있음.
  ▲결론 : 진정인이 주장하는 내용을 한미합동으로 정밀 분석한 결과 사실에 부합되지 않음. 그러나 한강하구 축선은 땅굴 존재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계속적인 탐사활동 실시」
  
  『테이프는 조작된 것이다』
  
  담당 부서의 한 장교는 『정지용(鄭址龍)씨의 자세는 이해가 가지만 그로 인해 우리 직원들이 시달린 것을 생각하면 악몽 같은 일』이라며 鄭씨에 대해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3월15일의 육본 방문 취재는 무려 7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오전 8시부터 30분간 진행된 군 고위층과의 면담과 그후 2시간 동안 실시된 담당 부서 관할책임자와의 대화에서는 원칙적인 얘기만 오갔을 뿐이다.
  
  오전 11시30분부터 시작된 담당 부서 인사들과의 실무접촉에서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음향분석장비의 실험과정에서 당초 예상 못했던 문제에 봉착한 것이었다. 담당 부서의 청음장교는 먼저 취재팀이 가지고 간 鄭씨의 녹음 테이프를 음향분석 장비에 걸었다. 그랬더니 주파수가 5백 헤르츠를 넘는 고주파가 그래프선상에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취재팀이 갖고 간 테이프 4개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반면 담당 부서가 보유하고 있는 하이드로폰으로 채취한 지하 기계음의 녹음 테이프를 음향분석기에 걸었더니 5백 헤르츠 이하의 저주파로 나타났다.
  
  이 현상에 대해 청음장교는 다음과 같이 해석을 했다. 『소리는 공기 중에서 고주파나 저주파가 다 전달된다. 그러나 소리가 암반 등 매질을 통과하게 되면 고주파 영역은 매질에 흡수되고 저주파만 전달된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테이프는 시추장비가 70m 떨어져 있는 지점에서 작동하는 것을 다른 시추공 밑에서 포착한 것이다. 이 소리는 암반을 통과했기 때문에 당연히 저주파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鄭씨가 보유한 테이프에서는 모두 고주파 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지상에서 녹음한 소리라고 볼 수 있다』 청음장교의 이 표현은 곧 鄭씨의 테이프가 지상에서 조작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여기서 취재팀은 말문이 막혔다. 소리라는 것이 그냥 들리면 되는 것이지 저주파, 고주파라는 주파수를 갖는지는 처음부터 잘 몰랐다. 소리가 암반 같은 매질을 통과하면 고주파는 흡수되고 저주파만 전달되는지도 잘 몰랐다.
  
  그러나 조갑제(趙甲濟) 부장은 여전히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첫째 의문은 녹음 시스팀이 달라도 지하에서의 소리는 반드시 저주파로 나와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군이 보유한 청음장비는 하이드로폰으로 이는 미세한 소리를 10만 배 이상 증폭하는 것이고 그 운용방식도 FM변조방식이다. 반면 정(鄭)씨의 녹음방식은 콘덴서마이크를 동파이프로 싸고 그 동파이프에 전달된 진동이 녹음되는 방식이다. 또 그것은 AM변조방식이라고 한다.
  
  이처럼 소리 변조방식이나 녹음 메커니즘이 다른 데도 지상음과 지하음을 일정 주파수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판정할 수 있느냐는 게 첫 번째 의문이었다. 두 번째 의문은 암반 중 매질이 얼마만큼 두꺼워야 고주파가 모두 흡수되느냐는 점이다. 만일 두꺼운 암반이라면 청음장교가 말한 대로 고주파가 흡수될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지만 청음기 설치지역과 소리가 나는 지역간의 암반 두께가 얼마 안 될 경우에도 고주파가 모두 흡수되느냐는 것도 의문거리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문과 의문은 결국 4시간이 넘는 기나긴 논쟁으로 번져버렸다.
  
  그러나 그 논쟁은 어느 측의 승리로 끝나지를 않았다. 만일 담당 부서 측이 월간조선 취재팀의 의문제기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었더라면 월간조선 측은 깨끗하게 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담당 부서 측도 소리의 개념과 음향기기의 메커니즘에 대해 우리가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7시간에 걸쳐 벌였던 논쟁 속에 취재팀의 입은 바짝 말랐다. 그러면서도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물어보았다는 만족감도 없지 않았다.
  
  오후 3시쯤 육본 담당 부서 사무실을 나와 정문으로 향하는 길가에서 조갑제(趙甲濟) 부장은 『이번 달에 기사 쓰는 것은 일단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기사의 의미에 비해 취재가 미흡했을 뿐더러 우리도 더 소리에 관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취재팀의 마음은 복잡했다. 우선은 김포, 연천 같은 예민한 지역에서 땅굴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떠올랐다. 일면으로는 취재한 것을 쓸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취재를 다시 하게 된다면 나름대로 이론무장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느껴졌다. 그러나 그 순간에 느껴진 가장 큰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출처 : 월조
[ 2003-06-30, 21: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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