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근교 지하 기계음(1) 녹음테이프 기계음은...(1)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서울근교에서 들려오는 지하(地下) 기계음의 정체(正體)
  
  녹음테이프에 잡힌 기계음은 과연 땅굴 굴착음인가? 김포반도 연천군 등 서울 근교의 지하로부터 갱차 소리 착암기 소리, 굴착기 소리 같은 이상음들이 들려오고, 이 소리에 끌린 민간인들은 그 소리의 정체와 원천을 밝히는 작업에 일생을 건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월간조선 취재팀은 이 미스터리를 추적하여 나름대로의 판단을 해 보았다. 만의 하나 그 지하음이 북한 땅굴 굴착음이라면 우리의 만?근거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월간조선은 소리의 정체를 밝히는 데 주력하였다.
  
  <1992년 5월 월간조선>
  
  제1부·소리의 정체(正體)를 찾아서
  
  3월6일의 제보
  
  지난 3월6일 오후 월간조선부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반도 자원개발주식회사 대표 정지용(鄭址龍/42)이라고 밝힌 전화 목소리의 주인공은 중요한 내용을 제보할 것이 있으니 면담을 하자고 요청해왔다. 월간조선 팀은 그 날 오후 6시쯤 서울시내 다방에서 鄭씨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鄭씨는 「땅굴 이상징후 발견 경과보고」라는 두툼한 복사문서 뭉치와 녹음테이프 2개를 펼쳐 놓고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나는 보안사에서 19년간 근무하다가 89년 7월 퇴역한 예비역 준위이다. 88년 4월 우연한 계기를 통해 땅굴탐사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 이후 80여 개 공의 시추작업을 통해 경기도 김포, 연천 지역에서 이상징후를 발견했다.
  
  그 동안 감지한 이상징후를 서면과 테이프를 통해 당국에 알렸고 여러 차례 군 당국의 협조를 받아 검증작업을 펼쳤었다. 그러나 군 당국의 협조가 만족스럽지 못해 결정적인 단서를 찾는 데 실패했다. 이제 언론 기관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론화(公論化)하고 사실을 명백히 규명하고 싶은 것이 나의 희망』이라는 게 鄭씨의 발언요지였다.
  
  정지용(鄭址龍)씨의 말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또 여러 가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첫째 의구심은 鄭씨의 정체가 뭐냐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보안대 하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전역했다고 밝혔으나 그가 현역인지 아닌지도 당시 상황으론 모를 일이었다. 또 3공·5공 시절 과도한 「안보논리」로 국민들에게 겁을 주었던 상황이 상기되었다.
  
  5공 시절 북한측의 수공(水攻)을 염두에 두고 「평화의 댐」을 만들었던 상황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게다가 3월초는 총선 분위기가 고조돼 가고 있는 시기로서 鄭씨의 제보에는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아니냐는 의심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둘째 의구심은 남북간에 합의서가 교환되고 북측이 금강산 개방까지 거론하는 마당에 엉뚱한 짓을 할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여러 가지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정지용(鄭址龍)씨의 발언과 그가 제시한 문서 테이프 등에는 관심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따라서 월간조선부는 기사를 쓴다는 목적보다 제보내용의 신빙성을 파악하기 위해 1차 검증 작업을 가졌다. 우선 鄭씨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해 보니 그는 「총선 분위기를 잡기 위해서」 동원된 사람은 아니라는 심증이 갔다. 그는 오히려 군 당국을 끊임없이 「괴롭혀 온」인물이었다. 11번에 걸친 진정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3월7일 월간조선의 한 기자가 이상징후가 나타났다는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구미리 일대를 답사, 주민들의 증언을 듣는 한편 8일에는 鄭씨의 집을 방문, 그가 보유한 2백여 개의 녹음테이프 중 일부를 청취해봤다.
  
  이 같은 자료, 증언, 청취 등의 검토과정을 통해 월간조선부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상징후가 사실인지 아닌지 한번 추적해 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기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鄭씨의 활동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鄭씨는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서류와 함께 그의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수기를 월간조선 측에 넘겨줬다. 원고지 2백장 분량에 이르는 그의 수기를 이 자리에 모두 게재할 수는 없어 그의 활동의 편린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수기의 일부를 게재한다.
  
  정지용(鄭址龍) 수기 발췌
  
  <나는 국군보안사령부의 간첩을 잡는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1988년 4월4일 고종 사촌형 최영민이 찾아와 『땅굴이 김포반도로 파내려 오고 있다. 찾아내는 방법은 노량진 성당 임응승 신부가 알고 있다』고 알려 줌으로써 이 작업에 개입하게 된 발단이 되었다. 이튿 날 임응승 신부를 찾아가서 땅굴을 찾아내는 방법 등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 최영민과 함께 김포반도 징후 현장을 몇 차례 답사한 후 땅굴 징후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어 국군보안사령부의 지휘계통으로 보고하였으나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처리되어 개인적으로 땅굴작업을 해보기로 결심하였다.
  
  주위 사람들의 주선으로 시추회사인 암정(주) 이정길 사장을 소개받아 88년 4월15일 지하 1m를 뚫었으나 땅굴을 찾지 못했다. 그런 뒤 임응승 신부의 땅굴 찾는 방법이 잘못 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수소문해서 찾은 지하탐사 전문가 5명을 초청하여 조사해 보니 그곳에 단층 맥이 형성되어 있어 땅굴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지하수 탐사업계에서 20여 년 간 종사했다는 김대중(金大仲)씨는 말하기를 『땅굴 찾는 방법은 임 신부님과 비슷하다. 나는 불란서 신부로부터 우연히 기술을 전수 받아 연구 중에 있는데 김포 반도 전방지역에 북에서 내려온 공동현상(땅굴)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김대중씨와 함께 10여 일간 징후 현장을 탐사했다. 실제로 지하공간을 찾아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하수도, 지하철, 터널, 동굴 등을 찾아다니며 실험해 보니 위치 등은 약간 차이가 있으나 같은 방향으로 찾아내고 있어 「신빙성 있는 기술이다」고 판단했다. 1988년 5월30일 김대중씨가 탐사한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 후평리에서 수 차례의 장비 고장과 우천으로 작업에 장애를 받으면서 22일 만에 지하 1백25m(구경6인치)를 시추했으나 역시 땅굴을 찾지 못했다.
  
  처음으로 들은 지하음
  
  작업이 끝난 5일 후인 1988년 6월5일 오후 8시경 김대중씨의 연락을 받고 후평리 작업 현장에 가보니 땅속 1백여m 밑에 박혀 있는 시추 구멍을 통하여 망치 곡괭이 등 쇠붙이로 암벽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온몸이 감전이 된 듯한 전율을 느꼈다. 인부들도 차례로 이 소리를 들어보았으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리라고는 볼 수 없다는 공통 의견이었다. 그러면 이 소음이 지하에서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추공 내에서 돌이 떨어지기 때문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돌멩이를 시추공 속에 떨어뜨려 보았으나 그 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지하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려온 현상은 1백55m까지 뚫은 암반 시추공에 시추 파이프가 박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청진기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튿날(6월6일) 소형녹음기(일제AIWA)를 구입하여 시추공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외부소리가 들어가지 않도록 모래주머니 등으로 차단한 후 녹음을 하였는데 갱차가 지나가는 소리와 그 외 판단할 수 없는 굉음 등이 녹음되었다. 그 갱차 소리는 소리가 차차 커지다가 지하터널에서 나는 것과 같이 「왕…」 울려 퍼진 후 차차 소리가 작아지는 등 궤도차 소리와 비슷했다. 6월7일 보안사 지휘계통으로 보고하면서 녹음테이프를 들려주자, 吳○○대령은 『그 근처에 광산이나 열차 철로가 있윰치뺐?질문한 후 관계 장교를 호출하여 검토하도록 지시하였다.(중략)
  
  1988년 9월27일부터 10월7일까지 김포군 후평리 김천환씨 집 텃밭에서 2개 공을 시추하였다. 시추공을 통하여 착암기 소음 등 이상소음을 다시 녹음하고 시추시(지하에서) 발생한 돌가루에서 인공시멘트 물질을 검출하였다.(중략)
  
  기계음의 청취
  
  나는 1970년 5월6일에 방첩 하사관으로 지원 입대하여 전후방 부대를 전전 근무하다가 74년 4월부터 간첩 잡는 부서인 보안사령부 대공처에서 전역시까지 근무했다. 북한의 실체에 대해 업무를 통하여 익숙해진 나로서는 국가 기관에서도 찾지 못하고 있는 땅굴의 상황이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주위의 시선이 달갑지 않았고 또한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89년 7월31일 전역을 결행했다. 전역 후에도 순수한 민간인 신분으로 땅굴 찾는 일을 소신껏 추진하기로 다짐했다. 전역 직후인 1989년 8월11일 김포반도 애기봉 입구에 사는 최승대씨가 찾아와 옛날에 땅굴 파는 소리를 듣고 군에 신고했으나 처리되지 않아 불안한데 땅굴조사를 해달라고 하였다. 그가 말한 땅굴 징후 내용을 요약하면-.
  
  「1986년 11월, 3일간에 걸쳐 안방바닥 밑에서 돌을 뚫는 소리(착암기?)를 처와 아들과 함께 들었는데 옆방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군부대에 신고하여 장교가 왔으나 『땅 속에서는 그런 소리가 들릴 수 있다』고 하며 돌아갔는데 방고래를 뚫어서라도 확인하고 싶다. 무서워서 밤에는 일체 나가지 못하고 있다」 1989년 9월3일 구경 8인치 착정기로 그곳을 시추했는데 땅 속 93m 지점 시추시 40cm 공간이 있은 후 2m 가량 기존 암층 보다 3배 가량 빠르게 굴진 되었다. 빠르게 굴진된 암층의 암석가루를 수거하여 화학 반응 검사를 하고 양생시켜 강도를 측정한 결과, 일반 건물용보다 강한 특수 콘크리트로 채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한 시추작업 완료 후 청음기를 설치하였는데 소음이 없다가 2개월이 지난 89년 11월7일 야간과 11월8일 오후 2시경 암반굴착 소음(선진시추)이 청취된 후 소음이 끊어졌다.(중략)
  
  19년간 보안사령부 대공수사관으로 근무한 내가 땅굴 징후에 대하여 수 차례 관계기관에 건의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므로 정들었던 직장을 버렸다. 퇴직금까지 땅굴작업 비용으로 써가면서 시멘트 덩어리를 땅 속 1백m에서 끌어올리고 땅굴작업 기계음을 직접 녹음하여 제시하였으나 고의로 조작했다고 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4천만 국민의 안전이 상당한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대한민국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에게 호소하기로 결심하고 증인을 찾아다니며 설득하여 1990년 5월28일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발송했다.
  
  1990년 6월11일 정부합동민원실장 명의로 회신이 왔다. 「귀하가 보낸 민원은 북괴 땅굴 확인 요구 내용으로 국방부에서 조사 처리함이 타당하며 동 기관으로 하여금 귀하에게 회신토록 조치했다」는 내용이었으나 국방부로부터는 회신을 받지 못하였다. 이제는 어디에 가서 진실을 알려야만 되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지, 계신 곳을 안다면 어떤 고통을 받더라도 찾아가야겠다고 결심했지만….(중략)
  
  사람 말소리 같은 것도 녹음
  
  1991년 8월15일 경기도 연천군 구미리 최(崔)씨 집에서 우물 파는 장비로 시추 확인작업을 했다. 지하 17m 지점 부근에서 물이 빠지고 찬바람이 상승했으며 이상한 냄새가 발생했다. 암반을 굴착하는 비트가 부러져 작업을 할 수 없으므로 시추기 파이프를 인양하고 녹음기를 설치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사람 말소리와 수압굴착기 소음이 녹음기를 통해 잡혔다. 계속 지켜 있으면서 청음을 했으면 명확한 녹음을 했을 텐데, 자동녹음장치로 돌려놓고 등한시한 것이 아쉬웠다.
  
  그후 녹음기 고장으로 인하여 징후를 잡고도 계속 녹음을 못하였다. 시추공으로부터 20m 떨어진 방에서 잠을 자려던 최씨 부인(57세)이 시추작업 이틀 후인 8월18일 새벽 1시경 밖에서 쉬―탁, 쉬―탁 하는 반복 소음이 나고 기름매연 냄새가 진동하여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고치나 하고 밖으로 나가보니 민간인이 시추한 구멍 근처에서 소리가 발생하고 있어 남편 최씨를 깨웠다.
  
  최씨는 무슨 땅 속에서 소리가 난다고 하느냐고 잠결에 말하고 조금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기름 매연 냄새가 진동하여 어디에 불이 났느냐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최씨는 소리를 못 들었으나 기름 매연 냄새는 엄청나게 나고 있었다고 말하였고 최씨 부인 말에 의하면 소리가 끝난 후 20여분 지나니 기름 매연 냄새도 자연히 사라졌다고 하였다.(중략)
  
  91년 11월19일∼92년 2월19일까지 육성녹음 및 기름 매연이 올라온 시추공을 중심으로 절개작업을 하였는데 용석으로 된 수직자연공간이 10여 개 발견된 것으로 보아 북한 땅굴이 자연공간과 연결되어 소음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해빙기로 안전사고 우려 및 공사자금 고갈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어 작업을 중단했으나 지하 22∼25m 사이에 땅굴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하략)>
  
  11차례에 걸친 진정
  
  수기와 자료 등을 참조할 때 그이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88년 4월부터 계속하고 있는 김포지역에서의 작업이다. 그는 김포군의 후평리, 애기봉 일대 고촌면 등지에서 30여 차례의 시추작업을 실시, 이중 7∼8개 시추공에서 이상한 지하음을 녹음했다고 밝히고 있다. 둘째는 91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계속한 경기도 연천군에서의 작업이다. 정(鄭)씨는 이 작업과정 중 백학면 두일리와 구미리에서 역시 김포에서와 유사한 지하음을 녹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4년간의 과정에서 군 당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왔다. 鄭씨의 활동에 대해 군 담당 부서도 한때 관심을 보여 鄭씨가 지목하는 지역에서 탐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같은 탐사작업을 통해 번번이 허탕을 치고 「명백한 물증」, 즉 「땅굴 관통」이라는 성과를 못 올리게 되자 군 당국은 鄭씨의 활동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급기야는 鄭씨의 녹음테이프조차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품게 됐다.
  
  그러나 정지용(鄭址龍)씨는 자신이 확보한 테이프 등에 확신을 갖고 계속 청와대, 안기부 등 요로에 진정하는 등 총 11회에 걸쳐 진정서를 제출하며 이 문제를 끈질기게 잡고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활동 과정에서 鄭씨는 적지 않은 동조자를 만나게 됐는데 이 민간인들 중 일부는 역시 鄭씨처럼 탐사 작업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鄭址龍씨의 진술과 수기 등은 완전한 신뢰를 심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지 않은 데서 제3자를 공감시키는 부분이 있었다.
  
  즉 그가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생돈을 들여가며 그 짓(?)을 했겠느냐는 점과 진정이 번번이 묵살되면서도 끊임없이 요로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뜻을 전달시키려는 모습을 볼 때 최소한 「확신」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같은 한 개인에 대한 「믿음」이 이번 취재의 계기이기도 하다.
  
  녹음테이프에 취재력 집중
  
  일단 정(鄭)씨의 제보를 취재하기로 한 이후 월간조선 취재팀은 한 가지 점만을 집중적으로 규명하기로 했다. 鄭씨가 TBM, 착암기, 갱차 등의 기계음이라고 주장하는 소리가 녹음된 테이프가 진짜냐 가짜냐는 것에 취재의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만일 그 테이프가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 그 소리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규명해 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선 두 가지 접근방법이 필요했다. 즉 테이프 녹음 자체의 진위를 파악하는 과정과 그 테이프 녹음이 이루어질 당시에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3월10일부터 본격화된 취재의 첫 번째 과제는 鄭씨 주장의 사실상 유일한 증거물인 「소리」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취재의 중점은 신디사이저와 같은 전자기기로 합성된 조작음은 아닌가, 조작음이 아니라면 진짜 기계음인가, 기계음이라면 어떤 기계의 소리인가, 지하에서 암석을 통해 전달된 기계음으로 볼 수 있는가 등이었다.
  
  민간부문에서 땅 속의 소리전문가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우선 기계적인 분석과 자문을 구하기 위해 대학교의 음향전문가들을 만나봤다. ㅎ대 공대의 O교수는 지하에서의 소리전달 메커니즘에 대한 저서를 갖고 있고 군의 땅굴탐지 작업 때 몇 차례 조언도 했었던 사람이다. 그에게 월간조선에서 편집한 테이프(鄭씨의 녹음 테이프 가운데 서로 다른 유형의 소리 아홉 개를 선별해 다시 녹음한 것)와 鄭씨 테이프 1개를 일부 들려주고 鄭씨 녹음 시스팀도 설명해줬다. 그는 테이프 가운데 「쏴―」하는 소리는 녹음기나 테이프 자체의 잡음 같다면서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보다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 월조
[ 2003-06-30, 21: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