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잠입한 北韓工作 지도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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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鄭亨根) 안기부 차장보 겸 수사국장
  
  
  『남한(南韓) 내 북한 공작(工作) 지휘자의 실체(實體)를 확인했다』
  
  金洛中 간첩사건의 수사 책임자인 鄭차장보는 서울에 잠입, 김낙중(金洛中)을 현지 지도해왔던 거물 공작원 林모는 충청도 태생의 인텔리 월북자로 확인돼 가고 있으며 거액의 달러를 밀반입한 것은 다른 간첩조직이었다고 밝혔다.
  
  1992년 10월 월간조선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사건>
  
  -金洛中 간첩사건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해방 이후 대규모 간첩사건이 있었지만 저는 이번 사건이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사건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과거에 보면 이미 지나간 사건을 발표했던 것이 많았는데 이번 사건은 지금 바로 살아 있고 움직이는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잡는 그 순간까지도 무전을 치고 팩스를 보내고 했던 진행중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간첩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공작 장비를 다 압수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발·수신용 난 수표나 단파 라디오는 물론이고 독약앰플과 권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메모리식 무전 송신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르스 부호를 레코딩 해두었다가 단 한번의 동작으로 정보를 한꺼번에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공작금 규모면에서 다른 사건과 비교가 안됩니다. 저희가 기억하기로는 60년대에 20만 달러의 공작비가 쓰였던 사건이그래도 큰 간첩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2백10만 달러였습니다. 이것을 한화로 계산하면 16억원인데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의 경제사정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돈입니다. 그것도 모두 달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간첩사건의 주요 목표는 지하당을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만 그것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1956년 金洛中이 북한에서 다시 넘어올 때 지령을 받은 내용대로 북한의 통일 이론을 대남 전략에 따라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확산시켜온 원조의 역할을 하면서 사회 각계 각층에 영향을 끼쳐왔다는 점입니다. 金이 각계 인사들과 교류해 온 범위를 보면 그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점을 종합해서 사건의 규모와 그 심도에서 이 사건이 해발 이후 가장 큰 간첩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하당에서 합법 정당 전략으로
  
  -이번 사건을 통해서 김일성의 대남 전략의 한 단면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보면 김일성의 대남 전략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까?
  
  『우리나라 국가보안법이나 형법의 간첩 개념은 지령을 받고 기밀을 탐지, 수집하는 것이라고 돼 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 사회에서 중앙청의 위치나 미 8군의 위치, 심지어는 물가를 탐지하는 것도 국가 기밀 보호에 저촉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서 북한의 공작은 국가 기밀 탐지에 역점을 두고 지하당 건설을 가장 중요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사회가 완전히 개방돼 있어서 비밀 탐지라든지 지하당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처럼 공공연하게 합법 정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노동당이 있으니 남한에는 노동당과 바로 연계될 수 있고 노동당과 비견될 수 있는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도권 정당이 동조하는 세력을 늘려서 이것을 바로 연공 정부로 연결한 다는 것이 북한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전략이 실행되는 과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하면 북한의 민족 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이론에서 나온 것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여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대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론들이 金洛中이나 그 아류들에게서 퍼져 나와 마치 우리 사회의 진보적 지식인의 이론인 것처럼 위장되어 우리 사회에 풍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변화된 대남 전략을 본다면 이젠 간첩의 개념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 통일론 선전의 첨병
  
  -金洛中씨의 역할은 민중당 공동 대표로서의 기능이 있었고 그 전에는 재야나 민간부분에서 상당히 존경받는 민족통일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주로 민중당 공동대 표로서의 역할에 수사의 초점이 모여졌는데 민족통일 운동가로서 활동한 것도 간첩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연관이 있습니다. 金洛中에 대한 북한의 지령에서도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고려연방제를 연구, 전파하고 교수, 언론인, 정치인, 변호사, 재야 인사 등 각계 각층과 교류를 넓혀서 공작 기반을 구축하고 연방제 통일론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켜라」는 내용이 바로 북한의 지령입니다. 이런 지령에 따라서 72년에 통일원 산하의 공식단체로 등록된 민족통일촉진회에 들어가서 정책연구실장, 정책심의회의장, 통일정책위원장, 부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정치인, 독립운동가 등과 폭넓은 교류를 하면서 실질적으로 이 단체를 장악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특히 평화통일연구회를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 단체는 바로 金洛中 자신의 단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그는 공작금 중에서 5천만원이나 들여 운영을 해왔습니다. 여기에 는 1백62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습니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국회의원을 비롯해서 유명 교수, 현직 언론인, 변호사 등 사회 저명인사들이 총 망라돼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교류를 하며 북한이 주장하는 핵문제나 통일론을 계속 확산시켜왔던 것입니다. 이들에게서 그런 주의·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때 그 영향이라는 것은 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어찌 보면 민중당보다 평화통일연구회쪽이 북한으로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金洛中이 공작의 총책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었던 점일 것입니다』
  
  김일성 비판은 절대 금기
  
  -우리 잡지에서도 金洛中씨와 인터뷰한 기사가 2∼3년 전에 있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남한도 비판하면서 북한도 비판하고 있는데 그런 양비론적 입장으로 金洛中씨는 민족 통일운동의 도덕적인 명분을 확보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金洛中씨 같은 재야 민족통일 이론가들 중에는 북한에 대한 비판은 하지만 김일성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고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맞습니다. 아주 핵심을 찌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관련된 조직에 인입(引入)이 된 사람들의 절대 금기 사항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금기 사항을 철저히 지키면서 북한을 비판하더라도 교묘하게 그 사이 사이에 결국은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펼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91년 10월의 「한반도 통일의 그 과제와 방향」이라는 金洛中의 논문을 보면 「북조선 경제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그 성과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주의 경제 원칙에 철저하다…경제생활이 대외 종속성을 막고 자주독립을 유지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나옵니다. 북한을 비판하면서도 이런 말들을 교묘하게 삽입하여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학문적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흠을 잡을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金洛中씨를 통해서 돈을 받은 민중당 사람은 우리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돈 받은 사실을 시인했지만 그 돈의 출처를 몰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알았다고 시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몰랐던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을 알고 받았던 사람도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하조직도 있다
  
  -나이는 60대이고 남한 출신이라는 장관급 공작원인 林모는 남파되어 총선 기간을 포함해서 6개월 이상을 상주하기도 했는데 金洛中씨와의 관계는 상하관계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때는 메신저 역할도 합니다만 북한의 지령을 전달하고 지시하는 상하관계입니다』
  
  -그러면 林모는 다른 역할도 있었습니까.
  
  『다른 역할도 있었습니다. 金洛中 조직외에 다른 지도부도 구축하고 다른 조직선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공작금이 다른 조직에도 들어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재야나 노동계, 학원계 등입니까? 혹시 기존 정당에는….
  
  『주로 운동권과 관련된 부분이겠습니다만 정당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아직 수사가 진행중이고 확인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가장 주력하는 것이 영향력을 가장 크게 가질 수 있는 제도권 정당이기 때문에 그 점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서경원 사건에서도 보듯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남파한 방법을 보면 아주 대담한 행동이었는데 반잠수정을 이용했다는 것은 확인된 일입니까?
  
  『확인된 것입니다. 심금섭에게 공작원들이 남한으로 들어온 방법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뻘 속을 걸어 나오느라 온 몸이 뻘 투성이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林의 신원은 밝혀졌습니까?
  
  『거의 밝혀졌습니다. 충청도에서 교사생활을 했고, 서울에서도 지냈습니다. 6·25때 월북했는데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로 아주 유연하고 노련한 인물입니다』
  
  -공작금은 공작원이 직접 가지고 내려 왔습니까?
  
  『아닙니다. 적은 돈은 이들이 내려올 때 전대에 차고 내려오기도 했지만 많은 돈은 강화도 부근의 「드보크라는 비밀 매몰지에 돈과 총 등을 묻어 놓으면 가서 파내어 왔습니다. 잠수정으로는 그것을 다 나르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그러니 돈과 권총 등을 거기에 묻어둘 정도의 기동성을 갖춘 또 다른 조직이 있는 것입니다 』
  
  -다른 사건에서도 공작원이 이번처럼 7개월 이상 장기간 머문 경우가 있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보통 그날 저녁에 침투해서 그날 저녁에 끝마친다는 뜻의 「당야(當夜) 공작」이 대부분인데 이번 경우는 좀 특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 3국인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합법적으로 들어와서 고첩으로 있다든지 하는 경우는 장기적으로 있는 경우도 있지만 북한에서 직접 침투하여 이렇게 오랫동안 머문적은 거의 없습니다.
  
  남파 간첩이 선거 지휘
  
  -그렇게 오래 머물렀던 중요한 목표는 총선을 보고 가겠다는 것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민중당 선거대책본부장 金洛中이 전국구 1번이었는데 자기 세력이 국회에 진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 지휘도 직접하면서 그것을 지켜보기 위해서 그렇게 오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金洛中이 국회로 진출했다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위해 정도는 상당하리라고 봅니다』
  
  -침투 방법상 북에서의 직접 침투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조총련이라든지 외부 인물을 왜 안 썼는지 의문인데요.
  
  『그것은 북한이 이 사업에 얼마나 중요성을 부여했는가를 대변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 단계 건너서 오면 지도력과 당성이 약화되기 때문에 남조선 공작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이 사업을 위해서는 북에서 직접 고위 인사를 파견, 金洛中 조직을 강하게 장악하도록 한 것입니다』
  
  -일부 언론에서 간단하게 났는데 지령문 중에서 지난 6월에 A-3 방송으로 암호문을 내린 것 중 「다음 대선 때는 민주당을 지원하라」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발표문에는 그런 내용을 넣지 않努윱求? 정치적인 문제가 걸려 있어 오해를 받을까 봐 그 내용을 빼고 발표문을 만들었는데 보조자료를 어떤 기자가 보고 발표를 보류해달라는 당부를 무시하고 기사화 했던 것입니다』
  
  -민주당이 구체적으로 거명되어 언급된 것은 그것 한 번뿐이죠?
  
  『예. 「모든 민주세력이 단결해서 민주당 후보를 밀어주며 민중 독자 후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인데 민중 독자 후보로는 가능성이 없으니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지지 카드로 국가보안법 철폐나 주한 미군 철수 양심수 석방, 한반도 비핵지대화 등의 북한 논리를 그대로 제시하고 요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대남 노선이 상당히 신축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양비론을 주장하면서 북한을 비판하게도 하고, 어떻게 보면 반 김일성적 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민중당에도 간첩을 침투시키고….
  
  『북한은 공작에 관한 한 굉장히 신축적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몇 가지 금기가 있죠. 김일성, 김정일 부자 비판은 안 되고, 김평일 같은 다른 친족의 찬양은 금물입니다』
  
  -북한이 외화가 부족한 상대에서 공작금 2백10만 달러라는 것은 저들의 형편에서는 1억달러 이상의 비중 일 것 같은데 이런 돈의 규모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林이 이런 말을 金洛中에게 했습니다. 「리창선 사회문화부장으로부터 당신(金洛中)이 남조선 공작 총책이라는 말을 들었다. 리창선 부장은 또, 주석께서 이 일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 일을 하는 당신(林모)은 무한한 영광으로 여겨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만큼 중요한 공작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액의 공작금이 가능했겠죠. 이런 말을 한 林은 이례적으로 침투 할 때마다 두 번이나 영웅 칭호를 받았습니다. 공작 총책이라는 용어, 두 번에 걸친 영웅 칭호, 이런 것으로 볼 때 전대협 등의 세력들이 그 동안 말해 오던 남한에 비밀 지도부가 있다는 것이 바로 이들을 지칭했던 것이 아닌가 라고도 생각합니다』
  
  활동이 단절된 간첩 아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으로는 金洛中씨가 북한 공작원과 직접 접촉하며 활동을 한 것은 90년 2월부터인데 그가 36년간 계속 간첩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활동이 단절됐던 간첩이 아니겠습니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金이 주장하기로는 88년 말에 북경 사회과학 대학원 이상문에게 자신이 미제 간첩으로 몰렸던 억울함을 북측에 알려달라고 해서 다시 연락이 됐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 북한이 金洛中이 어떻게 변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 어느날 갑자기 서해안으로 공작원을 남파해 거액의 공작금을 주고 갈 수 있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북한은 이번 대선에서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북한은 합법적인 제도권 내의 혁신 정당에 대한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않겠지만 우선 이번 대선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한쪽을 지지하는 대신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 비핵지대화 등을 그 정당에 요구하는 식으로 그들의 대남 전략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또 민중당이 해산되고 난 뒤로 전국연합을 결성하여 민주세력의 힘을 집결시켜라는 그들의 지령 내용이 실제로 실현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더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은 남북대화도 진행 중인데 설마 간첩을 남파하겠는가 하고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고 대공 사업도 이제는 사양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솔직히 그 만큼 축소되고 위축된 경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이런 열악한 대공 사정을 최대한 이용하여 간첩을 남파하고 지하지도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공 분야의 「한국병」은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과 조건을 갖추는 것이 시급합니다. 대공 수사를 책임지고 있는 안기부의 수사 담당자로서 하고싶은 말은 외부에서 보면 안기부가 막강한 힘을 가진 곳이라고 보일지 모르겠지만 대공부분을 사양시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고독함을 느끼는 수사 요원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를 지키는 한 파수꾼임을 잊지 말고 수사에 협조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월조
[ 2003-06-30, 22: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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