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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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력 측정기라는 것이 우리나라 도시의 거리 곳곳에 놓여 있다. 100원짜리 동전을 집어넣으면 주먹처럼 생긴 표적이 일어선다. 그것을 향해 스트레이트를 날리면 펀치력의 세기가 숫자로 나타난다. 그날의 최고기록이 표시돼 있어 거기에 도전하려고 꽝꽝 주먹을 뻗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도 왕년에 샌드백을 좀 쳐본 경력이 있어 가끔 이 기계를 두들겨 팬다. 혼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구경꾼이 있어야 마음이 동한다. 두 딸이 곁에서 '우리 아빠 최고다'고 응원을 해주거나 직장동료가 관전을 해야 펀치에 탄력이 붙는다.
  
  한번은 주먹을 날렸더니 펀치력을 나타내는 계수판의 숫자가 160, 161, 162…로 막 올라가다가 고장이 나버렸다. 이것을 구경하던 직장동료들에 의해 나는 '측정범위를 초월하는 괴력의 소유자'로 평가받게 되었다. 더구나 나의 체구가 176cm에 60kg에 불과하니 그들의 경이는 더했을 것이다. 내심으로는 그때 그 측정기에 이상이 생겨 실제보다 더한 펀치력으로 계측되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KO 펀치의 소유자란 칭송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한 일본인 기자와 함께 그 기계 옆을 지나갔는데 한 청년이 데이트 상대인 여자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일본인 기자가 하는 말이 '저 기계야말로 정말 한국적인 상품이다'는 것이었다. '한국 남자들은 남자답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늘 목에 힘을 주고 남자다움을 뽐내고 다녀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지요.' 내가 '일본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특히 야쿠자들이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박했더니 일본인 기자는 '우리가 이상형으로 삼는 남자는 평소에는 예절바르고 온순하여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있다가 위기 때 등장하여 영웅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고 했다.
  
  한 재미동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 보니 한국 남자들의 음걸이?미국인이나 재미동포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뭐라고 할까요, 늘 타인을 의식하면서 걸음을 걷는다고 할까요…. 청중 앞에 선 사람처럼 몸가짐이 딱딱하고 자연스럽지가 못해요.' 한국 남자처럼 섹스와 정력에 관심이 많은 사람 또한 드물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공상중 3분의 1은 섹스에 대한 것이다'고 했었다. 한 유명한 정신과 의사는 '한국인의 경우에는 반 이상이 아닐까'라고 했다.
  
  해외여행을 하면 한국 남자는 정력제를, 여자는 보석류를 즐겨 찾는다는 말도 있다. 전국의 쥐를 일시에 없애려면 어느 교수가 「쥐에는 정력에 특효가 있는 성분이 들어있다」는 논문을 발표하면 될 것이다. 남자가 정력에 관심이 많은 것은 쾌락을 추구하려는 뜻과 함께 여자에게 자신의 강함을 과시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의무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다움을 늘 의식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 남자들은 그러면 진정 남자다운가.
  
  남자다운 점을 가장 쉽게 측정하는 방법은 '남자답다'는 말 뜻 그대로 여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행태를 보이는가를 관찰하는 것이다. 남자다움의 기본은 여자를 대하는 태도인 것이다. 여자중에서도 약한 여자에 대한 태도다. 일본에서 술집 접대부 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 여자들의 공통된 견해가 '한국에서보다 편하다'는 것이다. 그 말 속에는 일본 남성들로부터 훨씬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룸 살롱에서 벌어지는 한국 남자들과 접대부 사이의 일들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세히 쓸 필요가 없다.
  
  다만, 많은 한국 남자들이 가학취미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폭탄주 먹이기, 옷벗기기, 주무르기 등등 '돈으로 산 여자이니까…'하는 안도감에서, 또는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는 이기심에서 많은 한국 남자들은 잠시 인간이 달라진 듯한, 심한 경우엔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
  
  신문 사회면의 살인사건을 들여다보면 죽임을 당하는 것은 거의가 여자들이다. 특히 사랑이나 정욕과 관련돼 한국의 여자들은 한국의 남자들에 의해 많이들 죽어나가고 있다. 아내가 간통했다고 농약을 먹여 죽이는 남편, 애인이 변심했다고 칼을 휘두르는 남자, 학대에 못이겨 가출한 내연의 처를 붙들었는데 그 여자가 도망치다가 추락하여 병원에 입원한 것을 또 쫓아가 기름을 끼얹어 불태워 죽이고 그 옆에 있는 다른 두 환자도 죽게한 남자….
  
  이런 것들은 모두 남자다움의 비뚤어진, 범죄적 표현인 것이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자질 중에서도 가장 부족한 점은 남자다움이리라. 약속을 안 지킨다는 것은, 더구나 약속을 깨는 이유를 사기적 수법으로 그럴 듯하게 꾸며대는 것은 남자다움에 치명상이 된다. 절벽에서 한 사나이가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잡고 매달렸다. 이때 그 손을 놓고 운명을 허공에 맡겨버리는 자세를 동양에서는 남자다움의 표상으로 삼았다. 구차하게 살기보다는 자신을 내던져 운명과 정면승부하는 자세, 그런 결단과 대범함과 당당한 자세를 가진 지도자가 지금 이땅에 있는가.
  
  많은 한국 남자들은 약한 자에게 으스대는 자세를 남자다움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남자다움은 타인에 대한 관용, 자신에 대한 엄격함, 약자에 대한 이해심, 강자에 대한 꿋꿋함의 종합적 표현이다. 특히 관용 .정직. 용기야말로 남자다움의 3대 조건이 아닌가 한다. 남자다움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힘이지 자기과시나 연기술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누르고 지배해야 남자다움을 입증할 수 있는 사회라면,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남자다움을 과시하려는 안달을 내고 있다면 아무리 그 사회가 문명의 이기로 포장돼 있다 하더라도 속은 야만의 정글세계에 다름아닌 것이다.
  
  한국 남자들은 머리가 좋고 악착같으며 성취욕이 강하다. 거의가 유능한 인간이다. 그러나 한국 남자와 가장 거리가 먼 이미지는 신사-교양과 추진력과 용기를 두루 갖춘 남자의 이미지가 아닐까?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많이 마신 신기록을 세워야 남자로서의 체면이 섰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과연 선진조국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남자다움을 과시할 필요가 있는 사회는 법보다도 권력과 금력과 폭력과 갖가지 연줄이 더 힘을 쓰는 사회이다. 구태여 목소리를 높이지않아도, '나 여기 있는 사람이요'라고 티를 내지 않아도, 그리고 정력의 세기로써 사랑의 세기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면 아마도 폭탄주나 정력제나 펀치력 측정기는 줄어들 것이다. 정복과 승부개념에 바탕을 둔 남자다움의 의미가 퇴색할 것이니까.
  
  나는 수습기자 시절에 한 선배로부터 이런 충고를 들었다. '기자는 자기가 출입하는 부처의 장을 만날 때나 그곳의 수위를 만날 때나 같은 자세여야 한다.'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되 건방지지 않는 몸가짐이야말로 진정한 남자다움의 출발점일 것이다. 힘은 절제에서 생기듯, 남자다움은 부드러움에서 피어나는 꽃이어야 하리라.
[ 2003-07-01, 15: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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