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선 안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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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보통사람이고,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 사람이 정치인이다.' 기업인의 위대성과 정치인의 사기성을 부각시킨 점으로 보아 이 말을 한 사람은 아마도 정치에 대해서는 환멸을, 경제에 대해서는 희망을 가진 사람 같아 보인다.
  
  올해 들어 와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은 더욱 깊어서 이제는 하나의 분수병을 넘고 있는 것 같다. 환멸이나 증오심보다도 더 나쁜 것은 무관심이다. 환멸이나 증오는 적어도 관심이나 기대의 바탕 위에서 가능한데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 정치에 대한 관심마저 포기해버림으로써 정치를 자신의 삶과 떼 내어 천덕꾸러기 취급하듯 한 구석으로 밀어내 버렸다. 야당의원들의 의원직 사퇴서 제출과 국회 등원거부는 정상적인 나라에는 국가비상사태이다. 정치의 반쪽이 마비되는 국정의 일대 유고(有故)인 것이다. 온 나라가 이 비상사태에 즈음하여 소동이 벌어지고 여론이 들끓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지난 여름 국민들은 그런 정치마비에 대해서 별다른 울분과 걱정을 보이지 않았다. KBS파업 때는 『직장으로 돌아오라』는 얘기라도 나왔지만 야당의 집단파업에 대해서는 그런 호소도 없었나? 정치마비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을 보인 국민들은 휴가나 더위, 그리고 물가고와 물난리에 대해서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아마도 요즈음의 정치 현상에 대해서는 「연예가중계 뉴스」정도의 관심도 쏟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큰 변화이다.
  
  5공화국 때 야당의원들이 집단사퇴 했더라면 그것을 기폭제로 하여 대학생시위와 대중집회가 잇따라 사회불안이 조성되었을 것이고 경제도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정치불안-사회불안-경제불안의 연쇄반응이 올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정치불안은 정치판의 내부불안으로 고립되고 차단됨으로써 사회로 확산되지 않았다. 국민들의 무관심 때문에 연쇄폭발에 필요한 인화물질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불안요인으로서 정치는 이제 다른 부문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을 올해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멀리는 해방때까지 거슬러 오르고, 가깝게는 1987년 대통령선거로부터,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 너무 많이 속고 실망했으며 좌절하였다. 그러다가 서서히 정치인들의 위선에 둔감해지더니 이제는 『정치를 잊고 싶다』『정치란 말만 들어도 골치 아프다』는 식으로 돼 무관심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더욱 치명적인 것은 지난 여름 내내 정치가 마비돼 있어도 나라는 오히려 더 잘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국가의 원리대로라면 정치가 마비될 경우 국정도 휘청해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이다.
  
  여기서 자연히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정치인들은 그러면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던가, 아니면 「오히려 국정에 부담만 주는」존재였던가. 「누가 없으니 오히려 회사가 잘 된다」는 말을 듣는 것만큼 모욕적인 일은 달리 없을 것이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이번 여름에 국민들로부터 그런 모욕을 당한 셈이다. 「있으나마나」한 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은' 존재가 돼버린 정치인들은 참으로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참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 정치인들은 지금 당연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민들을 업신여긴 그 앙갚음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을 속이고 이용하고 무시해온 결과로서 무관심이란 보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정치는 영원한 개판'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 언론인은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접어놓고서, 정치인들이 저렇게 엉터리짓을 해도 나라가 흔들리지 않게끔 경제와 사회 등 다른 분야에서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의 마이너스적인 영향을 미리 감안하여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다른 분야에서 더욱 성장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치가 나라발전의 견인차가 아니라 부담만 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
  
  오늘의 한국정치를 이렇게 만든 데 있어서는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의 책임이 크다. 많은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기자들을 위해서 정치를 해 왔다. 자신의 이름이 기사에 실리도록 하기 위한 연기에 치중해왔다는 얘기다. 가수가 팬들의 취향에 신경쓰듯 정치인들은 정치부기자들의 뉴스취향에 맞추어 행동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정치부기자들이 정치에 영향을 주고 정치인을 리드하게 된다. 한국의 정치는 정치인과 기자들의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정치부 기자들은 가십성 기사에 너무 신경을 쓰고 정작 국정의 흐름과 직결되는 정책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한 점이 많았다. 박철언(朴哲彦)씨가 무슨 늬앙스의 이야기를 했고, 어떤 중진들이 자주 만나며, 누가 누구와 골프를 쳤다더라 하는 식의 기사가 너무 많다. 계파나 인맥을 다루는 기사도 신물날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그 계파라는 것도 북방정책에 대한 강온 노선이니, 경제정책에 대한 성장론자와 안정론자의 대결이니 하는 식의 정책을 기준한 분류가 아니고 출신지역이나 학교, 또는 친인척면을 기준한 전근대적 분류이다. 자연히 정책보다는 정치인의 말을 쫓는 기자가 대종을 이루게 되었다.
  
  스님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그 달을 쳐다볼 생각은 않고 손가락만 따라다니기에 급급한 실정이라는 얘기다. 그러다가 보니 정치기사가 연예가 기사처럼 자질구레해지게 되었다. 지엽적인 데 관심을 쏟다가 보면 본질적인 문제를 놓쳐버리기 쉽다. 정치자금, 이권개업, 정경유착, 정치인의 도덕성 등 국민들이 정말로 알고싶어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정치부 기자들이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다. 남한의 운명에 관계되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외신을 인용하여 남의 나라 문제처럼 보도할 뿐 독자적인 취재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 그들의 말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모두가 애국자요 민주투사이다. 기자들은 정치인들을 행동과 실천으로 평가해야 한다. 말을 쫓는 것보다는 행동을 추적하기가 훨씬 어렵다. 말을 쫓는 데는 녹음기나 팬만 있으면 되지만 행동을 추적하는 데는 투철한 직업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말을 주로 쫓다가 보니 정치부기자들에 의하여 그려진 정치판은 실제보다도 훨씬 그럴 듯 하였다.
  
  그런 정치판의 허상을 여지없이 깨버린 것은 1988년의 국회청문회를 텔레비전이 생중계한 사건이었다. 많은 국회의원들의 무식과 무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정치부기자들이 전달해준 허사와 텔레비전이 전달한 실상의 격차는 너무나 심했다. 국민들이 이때 받았던 충격의 상당부분은 정치부기자들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 정치에의 불신감은 올해 들어 3당통합, 변칙국회, 야당파업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을 따라 불감증으로 전락해갔던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가서 노세요. 안 보이는 데서 당신네들끼리 치고박든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제발 나가서 노세요. 잠 좀 자야겠어요』
  많은 한국인들은 정치인들을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 2003-07-01, 15: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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