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바다처럼 바다를 사막처럼 - 걸프만의 베드윈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사막을 바다처럼, 바다를 사막처럼 - 걸프를 주름잡던 베드윈족을 찾아서
  
  '알렉산더 대왕에서 스탈린까지, 세계 제패의 야망을 품었던 사람 치고 걸프를 외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먹이 중의 먹이, 또는 많은 사람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바 그대로 '지상 최대의 현상금'이었다. 동서양의 통로를 장악하려는 자는 걸프를 손아귀에 넣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했다. 걸프를 통제하면 인도와 유럽을 연결하는 길목을 누르게 되고 중동을 휘어잡게 되며 나아가서 인도양을 영향권 아래 둘 수 있다. 그리하여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교차로를 움켜쥐게 되는 것이다.'(노엘 모스터트 씀 '슈퍼쉽')
  
  걸프는 이미 석유의 등장 훨씬 이전부터 그 지정학적 위치로 해서 세계 열강의 입맛을 돋구어 왔다. 기름의 바다가 되면서 걸프는 '지상 최대의 먹이'로서 그 명성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걸프 그 자체는 평온하기 짝이 없는 바다다. 세찬 해·조류도, 계절풍도 없으며 수심은 얕고 수산물은 풍성하다. 세계에서도 항해하기에 가장 안전한 바다로 꼽히는 게 걸프다.
  
  수에즈 운하 개통 이전 유조선의 바다로 변하기 이전, 이 내해(內海)는 무역선들로 번잡한 교통로였다. 인도와 극동에서 진귀한 물건을 싣고 걸프를 종단한 무역선들은 이라크나 쿠웨이트 항구에서 짐을 풀었다. 이 물건들은 이라크나 시리아의 육로로 지중해까지, 거기서 다시 유럽으로 운반되었다. 제국주의의 진출 이전 이 바다를 주름잡은 것은 아랍인, 특히 쿠웨이트 상인들이었다.
  
  아랍인들에게는 두 개의 바다가 있었다. 물의 바다와 모래의 바다. 그들에게 두 가지 배가 있었다. 사막을 항해하는 낙타, 바다를 가르는 '다우'(Dhow)선. 바다나 사막에서나 그들은 별을 보고 진로를 잡았다. 사막에서 단련된 인내심은 장기 항해에?통용됐다. 이런 공통점으로 해서 많은 사막의 유목민-베드윈족은 뛰어난 항해자들로 변신할 수 있었다.
  
  쿠웨이트의 무역 상인들은 동력선의 등장 이전에도 그들이 고안한 다우선을 몰고 인도에서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누비며 무역을 했다. 한 항차가 여섯 달, 늦으면 1년이나 걸리는 장거리 항해였다. 가을에 고향을 떠난 그들은 인도에서 목재, 아덴에서 소금, 옷가지, 식용류를 구입한 뒤 아프리카의 잔지바르까지 내려가 지붕을 입히는 데 쓸 건축 자재를 구해서 귀항길에 오르곤 했다고 한다.
  
  아랍 국가에서는 주민들을 '마을 사람'(Townspeople)과 '베드윈'으로 그 출신 성분을 구별하는 관습이 있다. 19세기 이후 특히 석유 발견 뒤부터 베드윈은 서서히 '마을 사람'으로 변해 가고 있는 추세다. 거침이 없는 사막과 바다를 생활 무대로 삼았던 베드윈족은 '도시와 문명의 생활'에 적응하는 데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쿠웨이트 국영 석유 회사 알 가님 회장처럼 베드윈족의 본능적인 적성을 살려 해운, 무역업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있으나 현대 문명을 한사코 거부하는 베드윈족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지난 '75년 국세 조사에 따르면 쿠웨이트 문맹률은 36퍼센트나 되었? 더욱 놀라운 것은 쿠웨이트 원주민의 문맹률이 44.6퍼센트로 쿠웨이트인의 29퍼센트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는 사실. 50세 이상 쿠웨이트 원주민의 85퍼센트, 40∼49세 쿠웨이트 원주민의 70퍼센트가 문맹이다. 20세기 물질 문명의 최고급품으로 휘황하게 겉치레를 한 이 나라의 살 속에는 아직도 '전근대성'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증거다.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공짜 공부를 시키는 데도 문맹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쿠웨이트 원주민들 중에 '개화'에 저항하는 '고집불통'이 도사리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 고집을 부리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들이 베드윈족.
  
  베드윈족은 지금도 사우디, 쿠웨이트, 이라크 등의 국경을 아랑곳하지 않고 멋대로 넘나들며 유목 생활을 하기 때문에 국적이 없다. 국민 숫자가 자기 나라 거주 외국인보다도 적은 쿠웨이트 정부는 이들 순종 아랍인들의 정착을 유도, 국민으로도 우선적으로 입적시키고 있다. 이들 베드윈족은 택시 운전사로 가장 많이 취업하고 있다.
  
  빨간색의 택시인데 미터기가 붙어 있지 않다. 타기 전에 운전사와 요금을 흥정해야 하는데 이들 운전사들은 아무런 기준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요금을 불러 여행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손님을 싣고 가다가 길가에 세워 놓고 말없이 내려 식사를 하고 오는 경우도 있다. 신호등에 걸리면 교통 순경한테 '나만 보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차선도 잘 안 지켜 빨간 택시 옆에 가기를 일반 운전인들은 꺼린다.
  
  쿠웨이트 도시 안에서도 이들은 도로변 사막에 천막을 쳐 두고 양떼를 기른다. 1월26일 우리는 현대 건설의 사바 알 살렘 주택 공사장 부근에 있는 세 군데의 베드윈족 목장을 찾아갔다. 현대 건설의 아랍인 고용인을 데리고 가 천막 내부를 보여달라고 간청했다. 깡마른 몸집에 눈이 깊숙하고 매부리코에 턱수염이 거센 베드윈 남자들은 한결같이 '집안이 누추하다'면서 거절했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베드윈족을 찾아 나섰다. 사우디 국경쪽의 남서 사막 지역으로 빗속의 진창길을 10킬로미터쯤 달렸을까 오목한 분지 안에서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베드윈 노인 둘이 양을 지키고 있었다. 양떼 저편에서 유전의 가스가 타오르고 있었다. 양떼들은 송유관을 넘나들며 모래밭에서 억척스럽게 돋아난 풀을 먹고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천막 생활 취재였다. 그곳엔 천막이 없었다.
  
  우리는 다시 두 시간을 헤맨 끝에 남쪽 사막 한구석에서 천막을 찾아냈다. 차를 타고 다가갔더니 여자들은 놀란 듯 천막 안으로 숨어버리고 60세쯤 된 깡마른, 매부리코에 독수리 눈을 가진 노인이 천막에서 나왔다. 우리를 안내한 아랍 고용인이 한 5분쯤 설득을 한 효험이 있어 베드윈 노인이 천막으로 우리를 들어오라고 했다. 천막 안은 모래바닥 그대로였다. 가구다운 장치는 아무 것도 없었다. 여자들은 칸막이 뒤편으로 숨은 듯했다.
  
  노인은 우리에게 융단 방석을 내어놓았다. 그러고는 천막 안에 폐목 부스러기를 주어 모으더니 불을 피웠다. 치마 같은 두루마기 앞자락으로 부채질을 하여 불길을 높였다. 우리가 추울까 봐 그런다는 것이 고용인의 통역이었다. 그러고는 차를 내어놓았다. 보온병에 담은 온수를 사용했다. 가부좌를 한 노인은 시계도 차고 있었다. 차를 내놓는 것은 베드윈족의 손님 대접 방식인데 이 때 잔을 비우고 그냥 돌려주면 더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자꾸만 권한다고 한다. 우리는 연거푸 세 잔을 얻어 마셔야 했다. 겨우 사양하는 방법을 고용인으로부터 듣고 알아냈다. 빈 잔을 요리조리 흔들면서 돌려 주며 '슈크람!'(감사합니다)이라고 했더니 더 권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을 붙여 보려고 얘깃거리를 이것저것 꺼내 보았으나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꼬레아'도, 축구도, 기자도 모르고 있었다. 사진을 찍게 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했지만 그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집안이 누추하다는 것이 사양의 변이었다. 그러는 사이 눈만 내어놓은 여자(어른)가 세수 대야만한 양푼에 양젖을 담아 가지고 왔다.
  
  아랍 고용인 와일리는 억지로라도 마셔야 실례가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두 모금을 마셨다. 산화된 젖으로 요구르트 비슷한 맛이 났으나 비위에 잘 맞지 않았다. 조금 있으려니 30대의 아들이 들어왔다. 도시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아들에게 사진 촬영 협조를 부탁했더니 일단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아버지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거절했다.
  
  노인의 이름은 압둘라. 우리는 소득 없이 천막을 나와 다시 다른 천막을 찾아나서야 했다. 압둘라 노인은 낙타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동할 때는 픽업 차를 이용하는 듯했다. 그의 천막에서 본 문명의 도구는 시계와 보온병뿐이었다.
  
  한 시간을 더 사막을 헤맨 끝에 소년들이 양떼를 지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열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베드윈 소년을 구슬려 소년의 천막까지 따라갔으나 그곳에는 어른이 없고 서너살 된 아기들 세 명이 천막 안 모래바닥 위에서 천진난만하게 놀?있었다. 이 소년이나 조금 전에 만났던 노인이나 모두가 코가 납짝한 이방인의 출현에 경계를 하는 눈빛이 완연했고,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물질 문명에 잔뜩 오염된 우리의 존재가 깨끗한 사막을 방랑하며 아랍과 이슬람의 원시적 순수성을 아직도 지켜가고 있는 그들을 안쓰럽게 만든 듯했다.
  
  현대 건설이 지은 1천6백29채의 대궐 같은(서울에 가져다 놓으면 최저 1억 원짜리) 서민 주택은 베드윈족에게 특히 많이 분양되고 있다. 이들이 가끔 집을 보러 오는데 아내가 두서너 명에 아이들까지 보태면 과장을 좀 해서 버스 한 대분의 사람들이 와르르 몰려다니는 것 같다고 한다.
  
  현대 건설이 지은 주택형은 똑같은 설계 도면에 따른 것인데 대지 70평에 2층, 연건평은 60여 평에 방이 일곱 개. 2층 옥상에는 '슬리핑 테라스'라는 게 있다. 4×6미터의 공간 사방을 높이 1.7미터의 시멘트 벽으로 막고 뚜껑을 씌우지 않은 꼴. 베드윈을 포함한 쿠웨이트 원주민들은 이곳에서 잠을 자는데 트인 천장을 통해 별을 헤며 사막의 천막 생활 기분을 낸다고 한다. 일부 베드윈들은 1층의 벽을 헐어버리고 양떼를 집어넣어 살게 하고 자신들은 집 바깥에서 천막 생활을 하기도 한다.
  
  입주가 시작된 제1주택 단지를 둘러보았다. 새 집의 벽을 헐고, 블록 울타리를 쳐내며 슬리핑 테라스를 확장, 2층을 3층으로 만들고 대문을 두, 서너 개 더 내는 증·개축 작업이 한창이었다. 입주자가 자기 취향에 맞게끔, 만든 지 한 달도 안 되는 신축 주택을 헐고 두 번 짓는 식이다. 현대 건설 고 재목 과장(35세)은 '거의 대부분이 집을 뜯어고치는데 천장 무게를 지탱하는 내력벽까지 쳐버리고 있어 걱정이다'고 했으나 아무도 말리려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의 증·개축은 대체로 창과 대문을 많이 내고 넓히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광활한 사막 생활 습관에 젖은 그들은 갑갑한 실내를 어떻게 하든지 열어 제끼고 싶은 듯했다. 이들은 집 바깥의 공유지에서 마음대로 밭을 일구어 나무나 채소를 심기도 한다. 시멘트 인도를 파헤치고 나무를 심어도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사막에서 자란 이들의 식물에 대한 향수와 집념은 굉장하다는 것이다.
  
  153호 주택 앞에는 다섯 대의 캐딜락 등 자가용 승용차가 바깥에 세워져 있었다. 아하마디 경찰서 주임 집이었다. 그 옆에는 신축 건물의 양쪽 벽을 완전히 헐어 기둥만 남은 집에서 '제2의 신축'이 진행되고 있었다. 고 과장은 철제 대문까지 뜯어 우겨버린 것을 보고는 '우리가 애써 지어 준 것인데…'라고 중얼거리며 혀를 끌끌 찼다.
  
  이곳 서민 주택의 방 하나 장식비는 보통 3천 달러라고 한다. 이들 옥상의 텔레비전 한테나 가운데는 국제 전화국의 안테나를 방불케 하는 거창한 삼각탑이 많았다. 어느 집에서 그런 것을 설치했더니 몇 달 사이에 너도 나도 경쟁하는 식으로 솟아나더란 것이다. 신축 주택의 대문 앞에는 가끔 천막이 쳐진다. 사랑방인 것이다. 노인네들이 긴 담뱃대를 물고 여기에 모여 앉아 터키식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뜨인다. 집들이를 한다고 양을 열 마리나 잡고 이 천막 밑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회식을 하기도 한다.
  
  <1982년 4월 마당>
출처 : 마당
[ 2003-07-01, 15: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